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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전(巳時 前, 오전 9시 경) 한남국의 태양은 중천에 떠 있었다. 하지만 유리에게는 이른 시간이었다. 평소였다면 아직도 잠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아침은 간단히 먹고 단장을 서둘렀다.
“…….”
오늘은 황제와의 약속대로 위전에 문안인사를 가려 한다. 지난 밤 황제와 약속을 하였다. 그 약속은 황제가 먼저 준 것 이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 패망국 공주로 살아가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 하였다. 패망국 공주로의 삶은 끝났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유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어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라 하나, 사리분변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정을 해야했다. 패망국의 공주 유리로 죽을 것인지, 한남국 황제의 후궁 화비로 살아갈 것인지.
초이란이 패망하던 날, 분명 죽기를 바랬으나 그리하여 검은 든 적군의 황제에게 그리도 발악을 하였으나, 생(生)은 쉬이 끊어지지 않았다. 이 또한 내 운(運)이고 명(命)이 아니겠는가,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보자,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하아…….”
깊게 숨을 들이마시었다 내쉬며 어려운 걸음을 하였다. 가는 중간에도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었는지. 몇 번이나 마음이 돌아섰는지 모른다. 태후 전에서 저를 보지 않으려 하면 어쩌나. 저를 어렵게 하려고 이 뙤약볕 아래 내내 세워두면 어쩌나. 자꾸만 어려운 생각이 들어 마음도 걸음도 천근만근이었다.
“태후마마께 문안 인사 왔네.”
태생이 황족인지라, 아랫사람을 대하는 데는 그 권위와 위엄을 숨길 수 없었다. 이에 태후 전의 상궁이 바로 예를 갖추어 태후 전 안으로 유리를 들였다. 그렇게 마침내 한남국의 태후이자 곧, 자신의 시어머니가 될 이와 처음으로 마주하였다.
“태후마마께, 인사 올리옵니다.”
아침 일찍부터 자신을 모시는 궁인들에게 몇 번이고 한남국의 예를 물으며 익힌 대로 두 손을 곱게 모르고 사뿐하게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올리자, 앉아 유리의 인사를 받던 태후가 예의 온화한 미소로 답하였다.
“앉으시게.”
태후가 예의 손짓으로 앉기를 권하자 유리는 다시 한 번 예를 갖추고 의자에 앉았다. 방의 중앙 단상 위에 태후가 앉아 있고, 그 양 옆으로 의자가 있는데, 유리가 앉은 맞은편으로는 신분이 높은 듯 보이는 여인들이 관찰하듯 유리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매우 불편하였으나, 그래도 이 정도면 태후와 첫 대면이 수월한 듯하여 안도하였다.
“그대가 화비로구나.”
“예를 갖추는 것이 늦어 송구하옵니다.”
유리가 태후를 향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자 온화한 표정으로 태후가 말하였다.
“아니다. 시간이 필요했음을 내 헤아려 줄 터이니.”
“황공하옵니다.”
태후의 반응을 보며 유리는 가히 이것이 대국의 여유이고 위엄인가 하였다. 그러면서 속 좁게 생각하였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듣던 대로 곱다.”
태후가 또 유리를 칭찬하자, 유리가 몸 둘 바를 몰라 고개를 낮추며 또 예를 갖추었다.
“앞으로 자주 보며 정을 쌓으면 어렵지 않은 걸음이 될 것이야.”
“명심하겠사옵니다.”
“이제 또 황후에게 가야겠지?”
“예, 마마.”
“그래. 황후와 화비는 같은 하늘을 뫼시고 있으니, 결코 투기하거나 시기하여서는 아니 될 것 일세.”
“또한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래야지.”
태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자, 곧 유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고 태후 전을 나섰다. 유리가 나가자 내내 온화하게 미소 짓고 있던 태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저 아이로구나.”
자고 나니, 궁 안에 간밤 황제와 화비의 월하연애(月下戀愛)가 파다하게 퍼져서는 살을 붙이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태후 역시 기침하여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내내 심기가 불편하였으나, 그렇다고 아직 속을 알 수 없는 어린 며느리 앞에 무턱대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이가 아니었다. 선황제의 붕어 후 2년 동안이나 수렴청청을 하며 대국을 이끌었던 여인이다.
“마마. 생긴 것부터가 요물이옵니다!”
유리의 미모에 질투가 났는지 후덕하게 살집이 있는 중년의 여인이 눈을 밉게 뜨며 말한다.
“태후 마마. 이대로 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어찌 하셔야할 것이 아닙니까?”
“태후 마마. 이러다 정녕 저 공주의 몸에서 먼저 황자가 나오는 것은 아닐는지요?”
태후 전에는 소문을 들은 황실 인척(姻戚) 여인들이 몰려와 안 그래도 불편한 태후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왜요? 그리 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하!”
날카로운 태후의 반응에 여인들이 입을 다물고 태후의 눈치를 살피며 물러났다. 불편한 심경에 한 숨만 내쉬고 있는데 곧 이 승상이 들어 태후를 향해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태후는 그런 이 승상을 힐끗 한 번 보고는 바로 고개를 돌리며 깊이 한 숨을 내쉬었다.
“간밤의 얘기는 들으셨습니까?”
“입궁 후에 들었사옵니다.”
태후가 승상에게 물으니, 승상이 차분히 대답하는 모습이 꼭 그 딸인 황후와 닮아 있어 태후를 더욱 못 마땅하게 하였다. 황후로서 그릇이 크고 자비와 덕이 차고 넘치는 것은 좋았으나, 황후도 결국은 부처가 아닌 지아비를 모시는 여인이 아니던가.
“이를 어쩐답니까. 하이고…….”
태후가 다시 깊은 한 숨을 쉬니 승상이 말하였다.
“침실의 일까지야 비록 부모일지라도 어찌 자식에게 다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내 승상더러 황후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라 함이 아니에요!”
답답한 마음에 태후가 역정을 내다가 간신히 화를 누르고 냉정을 찾으려 노력하며 말하였다.
“압승술(壓勝術, 주술을 쓰거나 주문을 외어 음양설(陰陽說)에서 말하는 화복(禍福)을 누르는 일)이라도 쓰던지, 이대로 황후에게만 맡겨 두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러하옵니다.”
승상이 대답하였다.
“이대로 두어서는 아니 되겠지요.”
대답하는 승상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10.
화향은 손님을 맞을 준비로 동이 트기 전부터 분주하였다. 종노비들은 연회 음식을 준비하느라 허리를 펼 새가 없고, 기생들은 꽃단장을 하느라 분주하였다. 큰 연회를 앞두고 행수가 연정을 따로 불렀다.
“매해 이맘때쯤 되면 채 대인께서 나라의 큰 신료들을 초대하여, 서역이나 다른 지방에서 가져온 진귀한 것을 선보이곤 하시지.”
“그렇습니까.”
연정이 차분히 대답하였다. 행수는 그런 연정의 차분함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연정을 처음 이곳으로 데려온 이는 ‘기생어미’라 불리는 이로, 도성 밖에서 기생이 되고자 하는 이들을 선별하여 화향으로 데리고 오는 역할을 하였다. 화향의 기생 대부분이 그녀를 거쳐 기생이 되었음으로, 기생으로 만들어준 어미다 하여 기생어미라 불렀다. 대게 10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을 데려와 교육을 시키고 그 중 통과한 이들만이 기생이 되는 것이다.
석 달 전 기생어미가 연정을 데리고 왔을 때 연정은 이미 다 큰 처녀였기에 의아하였으나, 미색이 고와 한 번 보기로 한 것이었다. 행수가 연정의 출신을 물으니, 기생어미는 연정을 ‘애홍(哀鴻)’이라 하였다. 애홍은 ‘슬피 우는 기러기’라는 뜻으로 유랑민을 빗대어 쓰는 말이었다. 행수 역시 화향에 오기 전까지 그 어린 나이에 하늘 가릴 곳 없는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배를 곯다 혼절도 해보았다. 화향에 온 기생 중 사연 없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 사연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다.
다만 화향에서 기생이 되려면 실력이 검증 되어야 했다. 그리하여 화향의 기생들 중 가장 뛰어난 기생들을 불러 그 앞에서 기생이 되기 위해 치러야할 시험을 치게 하였는데, 서화가무(書畵歌舞, 글.그림.노래.춤)가 화향에 있는 어떤 기생보다 뛰어나 행수와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성품 또한 차분하고 작은 일에 기복 있는 일이 없었으며, 종노비를 대함에도 인간의 예를 가지고 대하였고, 늘 이른 시간에 기상하여 단장을 하니 자태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리하여 연정을 곁에 두고 본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나 충분히 화향의 차기 행수감이라 신임할 수 있었다.
“채 대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선황제의 누이이자, 황제 폐하의 태장녀(고모)가 되시는 공주마마의 부마이시지.”
“황실의 인척입니까?”
연정이 조금 관심을 가지고 묻자, 행수가 생긋 웃어보았다. ‘아무리 저 아이라 하여도 황실은 어려운 게구나.’ 싶어서였다.
“그래. 허나, 그렇지 않다하였어도 황실에서 그이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수완이 어찌나 좋은지. 초이란과 나라의 사이가 흉흉하였을 때에도 초이란 황제의 신임을 받아 그만은 자유로이 왕래를 하였었지.”
행수의 말에 연정의 눈동자가 잠시 무언가를 응시하는 듯 굳어졌으나, 곧 표정을 고치며 말하였다.
“참으로 대단한 어른이십니다.”
“그래. 듣기로 그 아드님도 대인 못지않다 하더구나. 오늘은 그 아드님이 신료들 앞에 처음 인사를 드리는 자리가 될 게야.”
“그렇습니까.”
“그래. 하여, 채 대인도 어느 때보다 신경을 써서 준비하지 않겠느냐?”
“그럴 테지요.”
“오늘 보면 너도 재미있다 할 것이다. 정말로 진귀한 것들이니.”
살짝 상기된 듯 웃는 행수의 얼굴은 아직도 방년의 소녀 같이 생기가 넘쳤다. 행수가 걸음을 옮기자 연정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연정의 시선은 곁눈질로 줄곧 이승상이 앉을 자리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대답하였다.
“예. 기대하고 있습니다.”
+
태후 전에 문안 인사를 올린 후 유리는 바로 황후 전으로 향하였다. 돌을 다듬어 성벽을 높이 쌓고 그 안에 요새처럼 지어진 초이란의 궁과 달리, 한남국의 궁은 대국의 명성에 걸맞게 끝없이 넓게만 펼쳐져 있었다. 가는 곳마다 꽃과 나무가 그득하고 풀과 물이 흐르니 생기가 넘쳐 좋은 기운이 가득하였다. 초이란에서는 좀처럼 맡기 어려웠던 습한 공기와 풀의 향이 처음에는 그리도 낯설고 싫었는데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었는지, 꽃의 향과 어울러 진 것이 기분을 맑게 하였다.
“황후마마께 문안인사 드리러왔네.”
유리의 말에 황후 전 앞에 있던 궁인이 힐끗 살피더니 예를 갖추기는 하나 표정이 영 그러하였다. 이에 유리를 모시는 궁인이 나서 한 마디 하려하자, 유리가 손을 들어 이를 제지하였다.
“드시지요.”
궁인의 말에 유리가 안으로 들어섰다. 온통 진귀하고 화려한 장식들로 가득했던 태후의 방과 달리 황후의 처소는 단아하였다. 그렇다고 결코 누추하거나 소박한 것은 아니었고, 황후의 위엄이 충분히 느껴질 정도였으나. 태후의 처소에 비하자면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황후 마마께 인사 올립니다.”
유리가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자, 곧 황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화비.”
목소리도 처소의 분위기처럼 단아하였다. 유리가 고개를 들어 황후를 보니, 그야말로 황후라면 응당 그러하겠다는 생각이 대번에 들었다. 생기 있는 혈색과 총기가 넘치는 눈동자 하며, 진하자도 연하지도 않게 연지가 발린 입술에도 생기가 넘쳤다. 입고 있는 노란색의 의복이 황후의 위엄을 더하였다. 한남국의 얇은 의복 덕에 드러나는 체형 역시 너무 작지도 거대하지도 않아 보기에 건강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비율이었다. 표정은 자애로우나 위엄이 있어 국모(國母)의 바로 그것이었다.
“앉으세요.”
황후의 말에 자리에 앉은 유리가 말하였다.
“문안 인사가 늦었습니다.”
비록 자신의 앞에 있는 여인이 한 나라의 국모인 황후라 하나, 태생이 황족인 유리는 제 또래의 다른 여인에게 존대를 해본 적이 없어 어색하고, 왠지 탐탁지 않은 기분도 들었다. 그러자 폐망국의 공주라는 신분이 다시 상기되어 기분이 가라앉았다.
“내 이해해 줄 것입니다.”
온화한 황후의 목소리에도 유리는 왠지 점점 더 자신이 낮춰지는 굴욕감이 들었다.
“허나, 앞으로는 예를 갖춤에 소홀히 하여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저를 꾸중하는 황후의 말에 더욱 기분이 상하였으나, 대응할 말이 없어 그저 시무룩하게 대답하였다.
“예.”
“…….”
그리고 말이 없자, 유리가 힐끗 고개를 들어 황후를 마주하였다. 황후의 시선은 분명히 유리를 향하고 있는데, 그것은 절대로 적대적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한 없이 어여뻐하지도 않았다.
“화비.”
“예…….”
“아직도 예가 많이 부족한 듯 합니다.”
“…….”
“대답을 한 후에는 반드시 상대하는 위전의 존칭을 불러야 해요.”
황후는 온화하면서도 위엄 있게 유리를 꾸짖었다. 궁인에게 듣기로 황후는 황제보다 한 살이 연상이니, 유리보다는 네 살이나 위였다.
“예. 황후마마.”
유리가 대답하니, 황후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차라도 한 잔하면서 더 얘기를 나누어볼까요?”
솔직한 심정은 차라리 태후 전에 있을 때가 더 편하였다. 역시나 시어머니 보다는 본처인 황후가 자신을 더 미워하는 구나 싶어서 영 마음이 불편하였다. 하지만 예에 엄격한 듯 보이는 황후라 유리는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하였다.
“예. 황후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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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 전 (申時 前, 오후 3시)이 되자 권세가들의 가마가 하나 둘 화향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윤호도 전과 같이 홀로 말을 타고 화향으로 향하였다. 윤호의 성향으로 보아 이런 연회는 결코 그의 취향이 아니었으나, 이 승상으로부터 직접 초대하는 서찰을 받았으니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일전에 이야기 했던 그 혼사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하고자 할 것이 뻔하였다. 수가 보통이 아닌 이니, 또 어찌 얘기를 돌려 윤호가 거절할 수 없게 할 것인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왔다. 서로의 수를 읽고 감추고 속이는 자체가 윤호의 성격과는 맞지 않아, 다시 생각해도 무관이 된 것이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연회가 열릴 화향의 후원에는 이미 많은 권세가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고 승상의 자리인 상석은 비어 있었다. 후원 전각 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이들은 꽃향기에 취해 꽃인지 사람인지 모르고 마구 목덜미에 코를 들이밀며 향을 맡으려 하였다. 전각의 중심에는 거상 채성평이 선보인 진귀한 물건들이 보자기에 가려진 채 하나 둘 진열되고 있었다. 곧 옥색 바탕에 수려하게 자수가 놓아진 진귀한 듯 보이는 의복을 입은 채성평이 후원 중앙으로 들어섰다. 키는 6척이 되지 않았으나, 풍채가 좋고 하관이 반듯한 호남형의 얼굴이었다.
중인의 신분이지만, 귀족이나 황족들 앞에 전혀 위축됨이 없었다. 호기로운 동작으로 사방에 예를 갖춘 후 곧 이어 또 한 남자가 채성평의 곁으로 다가와 섰다. 키는 6척이 넘어 호리호리한 체형이었으나, 골격이 좋아 결코 부실한 인상은 아니었다. 종노비처럼 그을린 피부색도 건강하게 보였다. 짧은 머리는 단정하게 기름을 발라 붙이고 위로 길쭉한 검은 사모를 썼는데, 사모의 줄에는 옥과 같은 보석 장식이 달려 있어 귀족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입고 있는 자색의 의복이 검은 사모나 황토색의 머리카락과 피부와 상이하게 잘 어울렸다.
“채성평. 대인들께 인사 올립니다.”
채성평은 곧 이어 말하였다.
“그리고 이 자가 제 장자이옵니다. 대인들께 인사 올리거라.”
채성평의 말에 윤도 곧 예를 갖추며 사방으로 인사를 하였다.
“채윤이라 하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싱긋 웃으며 조금은 능청스러운 것이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하여, 대인들이 흥미로운 얼굴로 윤을 보았다. 갸름한 얼굴선이나, 이모구비가 아비보다는 어미를 닮아 사내치고 곱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에 조금 다른 흥미로 윤을 관찰하는 이들도 보였다. 윤은 그런 이들 저런 이들을 다 눈에 담아두었다.
곧 보자기 안에 가려져 있던 진귀한 물건들이 공개되자, 일제히 탄성이 터지고 자연스레 경매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물건이 치워진 자리에 기생들이 악기를 들고 자리 했다. 그리고 중앙으로 무희의 복식을 갖춘 연정이 들어섰다. 하늘하늘한 새하얀 옷을 입은 연정은 그야말로 선녀가 따로 없었다.
“......?”
이에 내내 지루하게 앉아 있던 윤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치며 재물이며 서로 떠들어대기 정신없던 이들의 입도 닫혀졌다. 현의 연주와 함께 새하얀 천에 가려진 연정의 손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파라랑 공중으로 향하던 천이 차분히 내려앉는 모습이 꼭 낙화(洛花)와 같았다.
옆으로 길게 뻗었다 바닥을 쓸어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동작은 꽃밭을 누비는 나비와 같이 팔랑팔랑 하였다. 유연한 허리가 뒤로 꺾여 쭉 뻗은 팔을 앞으로 향할 때 그려지는 동선이 마치 무지개를 그리는 듯 하였다. 본 적 없이 뛰어난 춤사위에 모조리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곧 연정의 춤이 끝나자 대인들이 모두 감탄하여 말을 잇지 못하는데,
“네 이름이 무엇이라 하였느냐.”
목소리에 연정과 이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왔는지 승상이 연정을 보며 묻고 있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1.25 19:35
여러모로 미묘한 황후와 화비의 관계입니다.ㅎㅎ
보아주셔서 감사해요~^^
잘보고 가용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황후화 후궁 서로 쓰린 관계라 두고봐야겠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