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때까지
원제 : I'll Be Seeing You
1944년 미국영화
감독 : 윌리암 디텔레
출연: 진저 로저스,조셉 코튼, 셜리 템플
스프링 바잉튼, 톰 털리, 존 데릭
칠 윌스
역대 한국 영화중 최고의 걸작을 뽑을 때 많이 거론되는 작품은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 김기영 감독의 '하녀' 그리고 이만희 감독의 '만추', 대략 이렇게 세 편이 빠지지 않고 꼽히는 작품입니다. 이 세 작품중 아쉽게도 김기영 감독의 '하녀'만 온전한 좋은 영상으로 볼 수 있고, '오발탄'의 경우는 그다지 좋지 않은 화질의 영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만희 감독의 '만추'의 경우는 아예 영상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영화의 실체를 평가하기가 불가능하지요. 단지 리메이크 작품인 김기영 감독의 '육체의 약속' 과 김수용 감독의 '만추'로 추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만추'와 꽤 유사한 내용의 영화가 몇년전에 알려졌습니다. 사실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1950년대에 개봉된 '다시 만날때까지'라는 작품인데 이미 개봉해서 극장에 걸린 영화이니 새로운 발견도 아니고, 그 영화가 개봉된 후 10여년 후에 이만희 감독의 '만추'가 등장한 것입니다. 과연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야기의 설정을 제외하고는 크게 유사점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김수용 감독이 '만추'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입니다. 이야기의 설정이란 죄를 짓고 가석방중인 여자가 열차안에서 한 남자를 만나 며칠동안의 짧은 사랑에 빠진다.... 뭐 이런 설정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정의 영화들은 비단 '만추' 두 편과 '육체의 약속'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두 연인'도 있고, 짝퉁만추인 '동녀'라는 작품도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두 연인'이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 이 작품이 아마도 '만추'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확대해 들여다보면 '두 연인'은 같은 헐리웃 영화 '다시 만날때까지'와 좀 더 유사하고 '동녀'는 '만추'와 더 유사합니다.
일단 '만추'는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입니다. 대사보다는 영상이고 여운입니다. 열차 라는 공간과 도구가 많이 활용됩니다. 반면 '다시 만날때까지'는 열차장면은 오프닝과 엔딩에 잠깐 나오고 주요 무대는 여주인공 메리(진저 로저스)가 머무는 작은아버지의 집이 있는 파인힐이라는 마을입니다. 그 마을에서 메리와 잭커리(조셉 코튼)라는 병사가 크리스마스와 신년을 보내면서 짧은 로맨스를 벌이는 과정입니다. '만추'보다 훨씬 구제척이고 많은 드라마가 있지요.
직장 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서 저항하다가 실수로 그를 죽이게 된 메리는 정상이 참작되어 6년형을 선고받습니다. 이후 3년만에 모범수로 10일간의 특별 휴가를 받습니다. 부모가 없는 메리는 파인힐 이라는 마을에 있는 삼촌의 집으로 가게 되고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재커리 라는 병장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재커리는 메리에게 자신도 파인힐에서 내린다고 이야기를 하고 두 사람은 금방 친숙해집니다. 열차에서 내려서 마을에서 헤어진 후 재커리는 메리에게 다시 연락을 하여 초대를 받고 삼촌 가족들은 재커리를 환대해 줍니다. 재커리는 전쟁의 상흔이 깊게 자리하고 있는 일종의 정신적 요양이 필요한 병사였습니다. 메리 역시 전과자라는 사실을 숨긴채 조심스럽게 재커리와의 만남을 행복하게 즐기지만 불안감이 늘 자리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함께 보낸 두 사람, 재커리에게는 메리가 자신의 전쟁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달래주는 위안같은 존재였고, 메리에게 재커리는 짧은 며칠동안의 휴가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포근한 존재였습니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메리는 다시 교도소로 향해야 하고, 재커리는 다시 복귀를 해야 합니다. 두 사람의 이 짧은 사랑은 어떻게 결말이 내려질까요?
김수용 감독의 '만추'는 상당히 추상화 같은 영화였고, 아마도 이만희 감독의 영화도 그랬을 것 같은데 '다시 만날때까지'는 40년대 헐리웃 영화답게 굉장히 구체적이고 친절한 상황설명도 많고, 대사도 많습니다. 대사와 드라마로 흘러가는 영화입니다. 한국영화와 이 작품의 결정적인 공통점이라면 '스토리 줄기'일텐데 수감생활을 하는 여주인공이 특별휴가 기간에 낯선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다시 복귀한다는 내용자체는 동일합니다. 나무는 같은 나무인데 가지가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영화의 영상이나 전개방식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만추'가 가을을 배경으로 한 자연미와 여운의 시적 영화라면 '다시 만날때까지'는 겨울을 배경으로 아기자기함과 사람들간의 화목함에 집중한 영화입니다. 만약 '만추'라는 영화가 걸작이라고 꼽히는게 단지 기발한 스토리 때문이라면 유사작 또는 표절작으로 평가절하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영상미와 표현방식, 구도 등이 탁월하여 호평받았다면 당연히 이 40년대 헐리웃 영화와는 유사스토리만 가졌다는 것으로 참작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볼 수 있어야 평가가 가능하지요. 일단 김수용 감독의 '만추'는 '다시 만날때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라는 것이 저의 분석입니다. 등장인물의 비중도 '만추'는 여주인공의 원톱주연에 가깝고, 열차안에서 만나는 남자와 감시하는 교도관이 주요 인물인데, '다시 만날때까지'는 감시하는 교도관 자체가 나오지 않으며, 삼촌과 그 가족들의 비중이 매우 큽니다. 아마 리메이크작이라고 표명했다면 완전히 원작의 훼손 또는 대대적인 각색을 통하여 다른 영화로 만들었다고 평가를 받았을 것입니다. 리메이크작으로 보기는 확실히 무리입니다.
30-40년대의 명 여배우 진저 로저스가 여주인공 메리 역인데 관록있는 차분한 호연을 보이고 있습니다. 상대역인 조셉 코튼은 1941년 데뷔한 이래 이름을 높여가는 시기였는데 영화계의 훨씬 선배인 대 여배우를 상대로 위축되지 않은 호흡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셉 코튼 자체가 이러한 고독하거나 우수에 젖은 역할이 잘 어울리는데 '제니의 초상' '여수' 같은 영화들에 출연하게 된 것도 이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가 다시 재활용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두 배우만 비중이 있는 것은 아니고 30년대 전설의 아역 '셜리 템플'도 출연하는데 메리의 사촌여동생 역할입니다. 처음에는 전과자인 메리를 다소 경계하다가 메리의 사연을 알고 나서 진심으로 마음을 여는 10대 소녀 바바라 를 연기합니다. 스토리의 핵심에서는 곁다리 같은 역할이지만 출연비중은 꽤 높습니다. 당시 셜리 템플은 16세 였는데 꽤 예쁘게 잘 크고 있었다는 느낌입니다. 마음만 먹었으면 성인배우로도 어느 정도의 활약은 할 수 있었겠지만 1949년 21세의 나이에 아예 영화계 은퇴를 해버렸습니다. 아역시절 너무 높은 위치에 올라서 그저 그런 성인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만추'가 여운을 남기고 끝난 영화라면 '다시 만날때까지'는 아주 구체적인 엔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굉장히 명확한 기승전결과 친절한 설명을 하고 있어서 꽤 개운한 영화입니다. 각자 아픔과 비밀을 숨기고 있는 두 남녀와 관계가 꽤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가장 관객이 바라는 방향으로 엔딩을 잡고 있습니다. 삼촌 가족의 선량함과 친절함이 보기 좋고, 10대 소녀 답게 약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면모가 있지만 순수하고 솔직한 면이 그야말로 소녀 다운 셜리 템프의 캐릭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아픔도 가졌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영화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조셉 코튼은 '제니의 초상'과 '여수'를 통해서 윌리암 디텔레 감독과 애틋한 로맨스 영화 3편을 찍었는데 이 영화까지 합쳐서 두 감독-배우 콤비의 애틋로맨스 3부작이라고 할만 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제니의 초상'이지요.
ps : 개의 공격을 받는 장면에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개 논란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큰 개는 굉장히 위험한 살인무기도 될 수 있다는 느낌입니다. 개의 날카로운 이빨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이 오싹하게 느껴졌지요.
ps3 : 돌을 던져서 가로등의 기둥을 맞추는 장면들을 보면 왠지 르네 클레망의 '방문객'에서 참조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드네요.
ps4 : 이 영화의 여주인공도 직장내 상사의 성추행의 피해자였네요.
ps5 : 남자가 낯선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의 시간은 10일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입니다.
ps6 : 우리나라에는 '제니의 초상'이 먼저 개봉되었습니다.
[출처] 다시 만날때까지(I'll Be Seeing You 44년) 만추와 유사한 내용|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