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郡守愼侯炳佑淸白恤民善政碑
(행군수신후병우청백휼민선정비)
행군수 신병우 선정비는 순천시 외서면 외서복지회관 앞에 종7위 선영배 불망비와 나란히 있으며, 1893년(고종30년)에 건립 되었다.
비높이 150cm, 넓이 29cm, 두께 2cm의 규모로 비갓은 기와지붕모양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전면에는 사각형 홈 내부에 양각으로 行郡守愼侯炳佑淸白恤民善政碑(행군수신후병우청백휼민선정비), 그리고, 후면에는 癸巳九月日竪碑有司 內西 朴海烈 韓景錫 外西 韓治錫 宣永赫(계사구월일수비유사 내서 박해열 한경석 외서 한치석 선영혁)이라 새겨져 있어 건립 연대와 이 비를 세우는데 앞장 선 사람들을 알수 있다.
비신에 총구멍으로 보이는 3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비가 서있는 순천시 외서면은 주변의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과 함께 옛 낙안군이었다.
비의 주인공 신병우(慎炳佑)는 관향은 거창이고, 초명은 종구로 자는 하서이다. 호는 단사 또는 어천이라 하였고, 서기1840년 출생하여 서기1870년에 급제하여 벼슬이 사헌부감찰 지평 사간원정언 은대 옥당을 거처 좌우부승지 병·예·형·공등 제조참의를 역임하고 서기1884년에 수찬에 올라 갑신정변때 입직으로 고종황제의 파천을 시종 호위하여 무사케 하였다.
이때 병란의 무리가 대궐을 범하여 해치려는 즈음 공은 홀몸으로 탄환과 역도를 막아 끝까지 어가를 호위하니 왕이 충을 장허하였다.
평정후 낙안군수를 특제하였으며, 낙향하여 북상창선의 고요하고 천석 맑은 곳에 정대를 지어 귀래와 낙선이라 이름하여 자연을 즐기다가 서기1897년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충의를 기려 면암최익현선생의 명이 전한다.
▲ 행군수 신병우 선정비와 종7위 선영배 불망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