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인공연못 왜숨기나
황룡사 전시관 부지서 작년부터 발굴
문화재청(청장 노태섭) 산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황룡사전시관 건설(구황동 292-1번지 일대)을 위한 부지 발굴 중 지난 해 6월부터 통일신라 초기 인공 연못 유적을 발굴했으면서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숨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유적의 발굴이나 성격 규명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고학계는 그러나 중요한 유적 출토 때문에 황룡사 전시관 건립에 반대 여론이 일 것을 염려했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해 6월 22일 문화재청장에게 인공 연못 유적 발굴을 보고하면서 “고고학계와 일부 언론, 국립박물관 관계자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중요한 유적 출토와 경주의 역사 경관 저해 등을 명분으로 전시관 건립 반대 성명서 발표 등 쟁점 부각 예상”이라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주문화재연구소가 지금도 발굴 중인 인공 연못 유적은 현재 드러난 호안(연못의 벽을 이루기 위해 쌓은 시설)의 길이가 100m를 넘으며, 못 안에는 인공 섬(조산) 2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출토된 토기와 기와편, 신라의 삼국통일 전후에 제작했던 판불(판에 새긴 불상) 등이 출토되는 것을 종합할 때 삼국 통일 직후인 서기 8세기 초반 즈음에 축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 인공연못은 ▲자연석을 이용해 호안을 쌓았으며 현재 남은 호안은 2~3단 정도이며 ▲연못 깊이는 70~80㎝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커다란 돌을 깨뜨려 물 속에 군데 군데 넣어서 마치 섬을 보는 듯한 효과를 노리는 등 자연미를 최대한 살린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인공 연못의 성격을 현재로서는 명확히 규정할 수 없다. 규모나 입지로 볼 때 왕궁과 관련한 시설이거나 부유한 집을 일컫던 금입택, 혹은 분황사의 부속 시설 등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중 신라 전성기 경주에 35채 있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된 금입택(집을 금으로 치장한 듯 화려하게 지은 집)의 부속 시설로 보는 입장에 대해서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황룡사 북편, 분황사 동편과 맞닿은 왕경(통일신라 경주의 중심지구)중에서도 중심가에 위치한 이만한 규모의 개인 저택이라면, 그것은 왕권에 ‘도전’할만한 세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추정 때문이다.
발굴단은 이 연못 유적이 삼국유사 원성대왕 11년조(서기 795년)에 기록된 동지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
한국고고학회 정징원회장(부산대교수)은 “인공 연못 유적이 발굴된 게 사실이라면 경주의 역사유적 환경 보존을 위해서도 그 자리에 전시관에 들어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