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골 최씨와 내시 조사장소 : 면목동 1272번지(중랑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조사일시 : 2002. 5. 31. 조 사 자 : 정광순
제 보 자 : 이현로(1923년생,남) 묵동 121번지 부근 중리, 즉 간데말에는 옛날 최씨가 정착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최씨가 이 마을에 정착한 시기는 조선전기 성종(成宗) 때이다. 성종의 후궁으로 숙의(淑儀)였던 윤기무(尹起畝)의 딸이 연산군(燕山君)을 낳자 왕비로 책봉되자 투기가 많고 방자해서 왕의 모후인 인수대비(仁粹大妃)의 미움을 사고 있던 중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사건으로 인해 왕대비와 왕의 격분을 사서 관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폐비(廢妃)되어 친정으로 쫓겨나 세상과의 접촉도 금지되었다. 비록 폐서인이 되었으나 세자의 어머니이므로 나라에서 살 곳을 마련해주고 생활비를 주어야 한다는 상소가 한편에서 계속되자, 또 다른 한편에서는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마침내 성종도 사약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이때 왕의 측근에 있던 최씨 성을 가진 내시(內侍) 한 사람이 왕세자의 생모에게 사약을 내리는 것은 장차 국운을 어지럽힐 수 있는 일이니 이를 거두어 주는 것이 옳다며 왕께 간청하였고, 또 도승지를 지낸 손순효(孫舜孝)도, "폐비에게 칠거지악(七去之惡)의 죄가 있다하나 삼불거(三不去)인 경우 사대부나 평민들도 모두 용서해 주는 것인데 하물며 원자의 생모인데 어찌 이를 적용하지 않습니까?" 라며 하루빨리 왕비로 복위시켜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윤비사사(尹妃賜死)는 성종에게 확정된 사실이어서 최별감은 더 이상 곁에서 왕을 모실 수 없다고 판단한 뒤 왕에게, “소신이 너무 늙고 병이 들어서 예전처럼 뫼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항간에 나갈 수 있게 해주시길 간절하게 비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라며 나머지 여생을 성 밖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왕께 간청하자 처음에 거절했던 왕도 누차 계속된 간청을 허락하여 그는 봉화산 아래 자신의 본가(本家)가 있던 곳에 자리 잡았다.
성종은 최별감이 어려서 입궐하여 후손도 없이 평생 결혼도 않고 궁 안에서 지냈던 것에 대해 특별히 비단 여러 필과 양주군에서는 최별감을 각별히 잘 모셔야 한다는 특별교지까지 함께 내려주었다. 봉화산 기슭으로 온 최별감은 한가롭게 여생을 보내면서도 폐비 윤씨의 사사 사건이 마음에 걸렸고 또 윤씨의 몸에서 태어난 원자가 점점 자라고 있으나 어딘지 모르게 성격이 거칠다는 소문도 듣고 있었다. 원자가 열 살 되던 해 궁중 후원에 어미 사슴과 새끼 사슴이 뛰어놀고 있었는데 어미 사슴을 원자가 활로 쏘아 죽인 일이 있었다. 성종은 원자가 살생을 저지른 것에 대해 꾸짖었으나 오히려 원자는, "어미 뒤를 따라 다니는 새끼사슴이 밉기도 했지만 어미 없는 새끼사슴이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해서 어미 사슴을 쏘아 죽였습니다." 하며 태연하게 답하였다. 원자의 이 같은 대답을 전해들은 최별감은 앞으로 불어 닥칠 위험스러움을 염려하였다.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뒤 사치와 향락이 나날이 심해질 때 임사홍(任士洪)에 의해 생모 윤씨가 폐서인 되어 사약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연산군이 알게 되어 성종의 후궁이었던 엄숙의와 정숙의를 궁중 뜰에서 착살하고 그들의 아들인 안양군(安陽君)과 봉안군(鳳安君)을 귀양 보내 사사시킨 것은 물론, 생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왕비로 추숭하여 성종묘(成宗廟)에 배향할 때 반대했던 권달수(權逹手)를 죽이는 등 윤비폐위와 사사에 관련되거나 방관한 사람은 그 가족까지도 모조리 추죄하여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갑자사화를 일으켰다.
이런 과정에서 일찌감치 궁 밖으로 나왔던 최별감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최별감의 이같은 안목에 놀라워했다. 이후부터 늙어 오갈 데 없어진 궁녀들은 자수궁으로 가고 내시들은 최별감이 사는 마을로 모여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들이 퇴임할 때마다 임금이 일대의 땅을 하사해 줌으로써 봉화산 아래 먹골을 내시 땅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생산기능이 없는 내시들은 후손도 없었으므로 내시들이 모여 사는 땅, 혹은 내시 땅이라 부르던 이곳을 감감하고 아무런 미래가 준비되지 않는 땅이라는 뜻에서도 먹골이라고도 부르는 이도 있었다 한다. [출처] 먹골 최씨와 내시 [출처] 먹골 최씨와 내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