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의 첫날. 적침 뉴스에 치를 떨던 국민들은 적을 응징하러 북으로 가던 국군 트럭과 버스에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면서 그들을 격려했다.
죽음의 싸움터로 나가는 군인들에게 운동 경기장에 나가는 대표 선수를 환송하는 그 열띤 응원과도 같은 환호와 격려로 25일 하루를 보낸 국민들, 그러나 그 환호와 박수의 열띤 격려의 여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눈물로 작별을 고해야 했던 처절한 현실. 환호성이 눈물로 바뀌고 기대가 절망으로 변모한 죽음의 시간이 임박한 서울 거리.
그 서울 거리 한 귀퉁이 삼선교에서도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 빈집에 들어가 누룽지로 배를 채운 조 상사와 김 상병은 부인이 내주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남하를 서둘렀다. 둘은 우선 주인 내외에게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
“그나저나 그런 몸으로 어떻게 무사히 갈 수 있을지 모르겠수.”
“괜찮습니다. 여기 김 군이 옆에서 도와주니까…… 강만 넘으면 문제없습니다.”
주인 여자는 부상당한 조 상사의 몸이 매우 걱정스러웠다. 조 상사 역시 인자한 주인 여자의 말에 가슴이 찡해 왔다. 숙연한 분위기가 됐다. 그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주인 남자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 언제 돌아옵니까? 서울을 영영 포기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 있겠습니까? 무슨 수를 쓰든지 서울은 다시 탈환해야죠.”
조 상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네, 제발 몸조심하구 잘들 가요.”
주인 여자는 마침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죽지 않음 꼭 찾아오겠습니다. 그러니 아주머니 아저씨들두 제발 몸조심하시구 안녕히 계십시오.”
조 상사와 김 상병이 마악 대문으로 돌아설 무렵, 누군가 대문을 두들겼다.
“어머니! 어머니!”
주인 여자의 아들 태식이었다.
“아니, 헐레벌떡하구 웬일이냐?”
빗장을 열자마자 뛰어 들어오던 태식은 대문 앞에 서 있는 군인들을 보더니,
“아, 아저씨들, 지금 나가지 마십시오. 종로에 적들이 마구 밀려들어옵니다. 동대문엔 탱크허구 보병들이 잔뜩 와 있습니다.”
“너 보구 오는 길이냐.”
“네.”
조 상사는 당황한 어조로 김 상병을 바라보며 의논하였다.
“어떻게?”
“상관없습니다. 조 상사님, 우린 사복을 했으니까 군중들 속으로 빠져나감 됩니다.”
“그렇지만 내 부상은 감출 수 없잖아.”
“그래도 여기서 더 지체할 수 없잖습니까? 조금이라두 빨리 가는 게 한강 넘기두 좋단 말입니다.”
“그래, 가자. 죽든 살든 나가 보자! 저 우린 가겠습니다.”
조 상사가 다시 주인 내외에게 인사를 드렸다.
“아니 밖에 적들이 우글댄다는데 어떻게 간다구 그러지요.”
주인 여자의 애타는 만류를 뿌리치고 두 사람은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듯 간간이 총성이 들려 왔다.
“야, 좀 천천히 걸어. 다리 아픈 사람 생각두 해야 할거 아냐!”
“미안합니다.”
“아냐, 사실 미안한 건 나다! 그러나 어떡허니?”
“아, 저길 보십시오!”
“음, 빨갱이들이 날치기 시작하는군.”
“뭘 보구 그러세요. 저기 저 자동차 부서진 걸 보란 말입니다.”
“어디? 오! 시체? 있는데……”
“잘못 어물거리다간 우리두 저 꼴이 됩니다.”
“두리번거림 이상하게 생각한다. 아무 소리 말구 가자.”
“아, 차가 옵니다. 빨리 저리 골목으로 들어갑시다.”
두 사람은 골목에 숨어서 내다보았다. 돈암동 쪽에서 쏜살같이 달려오는 차들은 일단의 무장 자동차 대열이었다. 차를 위장한 나뭇가지도 싱싱한 내음을 풍기도록 발랄한 행렬이었다.
“아, 국군입니다. 틀림없는 국군입니다. 그렇죠, 조 상사님?”
“음, 우리 국군이다. 잘못했다. 국군이면 손들구 정지시킬 걸 그랬다. 저기 편승함 강까진 편히 갈 수 있었는데 그랬어…….”
“이 꼴하구 정지시켜 보십시오. 영락없이 빨갱이로 몰려 사살됩니다.”
“아, 대포까지 끌구 간다!”
“포병이군요! 도대체 어디 있다 인제사 철수하죠.”
“음, 모두 6문이다. 보아하니 대전차포 같군.”
“신나는데요.”
“음, 신난다…… 사실 저렇게 조직적으로 철수하는 부댄 오랜만에 봤다.”
“헌데 우리처럼 고생들을 직사하게 안한 것 같습니다. 모두 또릿또릿한데요.”
“저런 부댄 지휘관이 똑똑한 거야! 군댄 지휘관 잘못 만남 젬병이야!”
“저 조 상사님, 용길 냅시다. 국군이 아직 대열을 짓구 철수하는 걸 보니까 소문처럼 그렇게 험악하진 않은 모양입니다.”
“아냐! 아까 그 포병들은 적중 강행 돌파다! 결사적으로 가는 거야!”
“좌우간 빨리 갑시다!”
임춘발의 철수부대는 예정 코스대로 시내를 질주했다. 전날 그렇게도 목메어 소리치던 시민들의 환송은 간 곳이 없고 대신 차가운 눈초리가 그들을 지켜봤다. 이윽고 행군 차량은 용산역 근처 큰길에 다다랐다.
그때다. 인도교 쪽에서 지프 한 대가 쏜살같이 마주 달려왔다. 그리고 멎는다. 급정거한 지프에서 대령 계급의 장교가 소리친다.
“어느 부대야?”
“네, 23연대 대전차포중댑니다. 지금 노량진 역전으로 집결하러 갑니다!”
“23연대 대전차포중대?”
“네.”
“귀관이 지휘관인가.”
“네.”
“안 돼! 한강은 못 넘어! 인도교가 폭파됐어. 절단됐단 말이야!”
“아! 인도교가 절단됐습니까?”
“응, 귀관은 그것도 몰랐나?”
“처음 듣는 얘깁니다.”
“그래 어디서 오는 길인가?”
“미아리서 옵니다.”
“미아리? 아니 여태 미아리에 있었어.”
“네, 줄곧 싸우다가 시내에 적이 들어왔단 소릴 듣고 그것을 확인한 다음 지금 후퇴해 오는 길입니다.”
“돈암동 방면엔 적이 어느 정도 침투했나?”
“우리가 철수할 당시는 한 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동대문 방면엔 몇 대의 탱크와 보병이 침입했을 뿐입니다.”
“알았어, 차 머릴 돌려 서빙고 쪽으로 가! 서빙곤 강폭이 좁으니까 도강에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번개처럼 나타났다, 번개처럼 사라져 간 육군 대령. 임춘발은 그가 누구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그가 가르쳐 준대로 차를 서빙고로 몰았다. 차가 서빙고로 향해 막 치달리고 있을 때 이번엔 40세 가량의 민간인이 선두차를 두 팔로 가로막는다. 웬일인가 싶어 앞을 넘겨다보는 임춘발에게 선두차에 탔던 이필헌이 뛰어왔다.
“중대장님! 웬 민간인이 차를 막으며 못 간다고 버팁니다.”
“민간인이? 차를 막아?”
“네.”
“새끼들, 철수한다구 국군은 다 죽어 자빠진 줄 아나?”
권총을 치켜든 임춘발은 선두차로 다가갔다.
“뭐야! 당신은? 왜 차를 막구 이러는 거요? 엥? 당신은 뭐요?”
“저저…… 전 이 동네 사는 사람인데요…… 요 넘어 인민군들 탱크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리려고 차를 세웠습니다요.”
“봤소? 보구서 그런 소리하는 거요.”
“예 보구말굽쇼! 제가 왜 거짓말 하겠습니까요. 전 여러분을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좌우간 고맙소. 허나 유언비어가 하도 많으니 당신 말두 믿을 수 없어요.”
“야, 차 빼! 전진!”
임춘발의 명령 일하에 다시 행군 차량이 발동을 걸자 민간인은 다급하게 소리친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못 가요! 탱크가 있다는데 왜 자꾸 간다고 그러시오? 정말 탱크가 있어요.”
“비켜요! 우린 갈 길이 바쁜 사람들이오!”
“안 돼요! 절대 못 가요! 절 쏴 죽이고 갈려거든 가세요! 전 거짓말 안 해요!”
철수부대의 진로를 막고 이렇게 의치는 민간인의 결사적인 저지는 마침내 임춘발의 마음을 움직였다. 임춘발은 척후 이필헌에게 적정을 살펴보게 했다. 민간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필헌의 보고에 의하면 적 탱크 2대가 임춘발의 부대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임춘발은 즉시 전원을 하차시켰다. 이 소위의 지휘로 대기 태세를 취한 대원들에게 임춘발은 비장한 어조로 명령을 한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사태가 이렇게 급박해진 줄은 몰랐다. 이게 내 불찰인지 아니면 나를 명령하고 움직이게 하는 상부의 불찰인지 지금 그것을 따질 단계는 아니다. 허나 결단의 시기는 왔다. 난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이건 내 심정이자 너희들 심정일 것이다. 싸우자! 싸워서 국군다운 죽음을 하자! 이필헌 하사!”
“네.”
“넌 특공대 분대장으로 대원 11명을 지휘 적 탱크 2대를 공격한다. 알았나?”
“네,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1소대!”
“네.”
“제1소대는 특공대 12명이 탱크에 육탄 공격을 하는 것과 동시에 수류탄으로 공격한다.”
“네.”
“그리고 화기소대! 너희는 탱크를 엄호하는 적 보병을 저격, 특공대의 격파공격을 지원한다.”
상황이 개시됐다. 전투 준비다. 이때 이 소위가 임춘발 앞을 가로막는다.
“뭐야 이 소위!”
“육탄 공격으로 탱크를 격파하는 건 저도 원하는 바입니다. 허나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뭣이? 시기가 아냐?”
“네, 시기가 늦었습니다. 지금은 육탄 공격할 시기가 아닙니다. 무모한 작전입니다. 죄송합니다.”
“음.”
“이런 시건방진 말로 중대장님의 노염을 산다면 그 노여움은 달게 받겠습니다.”
“상관없어. 말 계속해.”
“고맙습니다. 전 이 지점에서 육탄 공격을 하느니 차라리 대원들을 살려 가지고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싸움은 오늘로 끝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소위의 말은 조리가 분명했다. 임춘발은 부하 소대장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냐, 이 소위 말을 듣고 보니 내 작전 계획이 너무 무모하고 황당무계한 것을 알았어. 그래, 특공대 공격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해. 미아리서 만난 노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뒷날로 미루는 게 좋겠군.”
“중대장님!”
“좋아, 조직적인 작전의 기회는 나중 만들자. 특공대 해산!”
결사대는 해산했다. 그 대신 임춘발은 장비의 파괴를 명령하고, 전 대원에게 단독 무장을 실시케 했다.
“화기소대하고 3소대!”
“네."
“단독 무장 갖췄음 철수 개시! 그리고 제1소대는 파괴 작업! 각 포 공이틀 뭉치는 모조리 뽑아 버려! 그리고 남은 포탄은 트럭에 담은 채 그 위에다 휘발율 끼얹어!”
임춘발이 바쁘게 파괴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동안 적 탱크는 자꾸자꾸 가까이 다가왔다. 이젠 시계에 들었다. 저만치에 삐죽이 나타난 것이다.
“그럼 이 소위, 노련한 운전병보고 포탄차를 탱크 앞으로 몰고 가다가 차는 그냥 굴려 보내고 운전병은 탈출할 수 있는가 물어 봐!”
이 소위가 운전병들에게 뛰어갔다. 벌써 탱크포에선 포탄이 튕겨 나왔다.
“중대장님, 운전병보고 명령했습니다.”
“할 수 있대?”
“네, 할 수 있답니다.”
포탄을 실은 아군 트럭을 적 탱크에 충돌시키자는 것이다. 트럭 위엔 휘발유가 뿌려졌다. 도화선은 준비됐다. 임춘발부대는 바삐 서둘렀다. 모두가 각자 부서에 붙어 재빠르게 움직인다.
“사격 개시! 목표 70야드!”
이윽고 대소 총기가 불을 뿜어댔다.
“이 소위! 포탄차는 어찌됐나?”
“지금 떠납니다.”
“탱크 정면을 들이받도록 해라!”
포탄차는 곧장 적 탱크 쪽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커다란 폭음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무서운 폭음과 폭발음이었다.
“중대장님, 명중했습니다.”
“음, 통쾌하다!”
포탄차는 적 선두 탱크에 충돌 일대 폭음과 함께 박살이 났다. 탱크도 박살이 났다. 화염이 충천하고 폭음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포에도 휘발유를 부어라!”
“트럭 6대도 포 앞에 집결시켜!”
“제1소대도 철수!”
“이 소위! 저 포들을 폭파시켜야겠어. 명중탄 한 발 쏴!”
이렇게 임춘발의 포 6문은 적전에서 자폭 당했다. 스스로의 손으로 아끼고 쓰다듬어 오던 포에 사격을 명한 중대장 임춘발. 그의 눈엔 이슬이 맺혔다.
“가자!”
임춘발은 나머지 부대원과 함께 강가 쪽으로 구보를 하다가 먼저 출발했던 부대원들이 되돌아오는 것과 부딪쳤다.
“왜 되돌아오나.”
“도처에 적입니다. 뚫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 희생자가 났단 말이냐?”
“네.”
“음, 그럼 모두 골목으로 들어와.”
부하들을 골목으로 끌어들인 임춘발은 부하들의 손목을 일일이 잡고 뜨거운 악수를 청한다.
“수고했다! 정말 잘 싸워 줬어! 비록 후퇴하지만 오늘 너희들이 보여준 기백은 나를 감동시켰다. 고맙다. 정말 잘해 줬어!”
임춘발의 울음 섞인 말을 듣는 부대원들은 오열에 잠겼다.
“너희들의 그 공훈은 부끄러움이 없다. 너희들이야말로 참된 용사들이다! 너희들이 있는 한 국군은 끝내 승리할 것이다. 난 확신한다.”
중대장도 울고 부하들도 운다. 사나이의 무거운 눈물이…… 그 싱싱하고 힘찬 사나이들의 오열이, 상하의 구별 없이 두 눈을 흘러내린다.
“너희들은 가라! 무슨 수를 쓰든지 한강을 넘어야 한다! 그러자면 사복으로 변장을 해야 한다. 총은 민가에다 감추고 각자 사복으로 갈아입고 한강을 넘어라!”
“중대장님! 중대장님은 어쩌려고 우리보고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 갈 길이 또 있어!”
“안 됩니다! 중대장님도 우리와 행동을 같이 하셔야 합니다. 여지껏 포연 속에서 생사를 같이 하시지 알았습니까? 그런데……”
“이 소위! 그 칼빈 나 줘!”
“네.”
“빨리 해산하고 행동을 취해야지.”
“중대장님도 사복으로 갈아입으시고 함께 가십시다.”
“난 그럴 수 없어. 난 대한민국 장교다. 게다가 난 일개 중대장이지만 지휘관이야. 군복을 벗을 순 없어. 명령이다! 일분 내로 각자 해산!”
말을 마치고 임춘발은 어디론가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 뒤에서 이 소위 이하 전 부대원은 오열에 젖은 목소리로 ‘중대장님!’을 불렀다.
국군 최후의 항전부대 임춘발 대전차포중대. 우군이 철수한 미아리고개에서 영웅적인 투지와 저력으로 국군의 명예를 지켜 준 임춘발 중위, 그의 기록은 어느 전사(戰史) 어느 전공기(戰功記)의 한 귀퉁이에도 언급된 바 없다. 그러나 그의 영웅적인 투쟁 기록은 어느 갸륵한 부하의 손을 빌어 이제 세상에 나왔고 드디어는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수다한 상관들이 부하를 버리고 허둥지둥 남하할 때 이 무명의 지휘관은 끝까지 자기 소임을 다하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군복에 철모를 눌러 쓰고 칼빈과 권총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장교의 긍지를 살리면서 임춘발은 눈물로 남하를 권하는 부하들을 뿌리치고 적중으로 사라져간 것이다. 그날 중대장의 비장한 최후 모습을 눈물로 지켜보던 잔여 임춘발의 부하들은 뿔뿔이 흩어져 사복으로 변장 다시 강가로 몰려들었다.
하사 이필헌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이 하사는 골목을 빠져나와 어느 행길 옆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는게 안전할 것 같아서다. 그러나 문득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다! 여기!”
“어? 아니 김 중사!”
“허허허! 왜 놀란 토끼상을 하고 그래?”
“아니 지금 어느 판국인데 버젓이 군복 입고 있습니까?”
“군복 누가 못 입게 한다든. 입고 안 입곤 내 자유야. 난 아직도 대한민국 육군 중사야. 빵이나 먹어.”
“아는 집입니까? 이 집?”
“몰라, 지나다가 배가 고파 기웃하니까 빵집 아냐. 그래서 잠깐 실례했지.”
“네, 아니 총까지 갖구 있군요.”
“내 총인데 내가 가져야지. 봐! 대검까지 알뜰히 꽂았잖아.”
“적이 우글우글합니다.”
“이판사판이다, 죽지 않음 살겠지.”
이 하사도 시장하던 김이라 김 중사가 주는 빵을 마구 집어먹었다. 집주인은 없었다. 그들도 어느새 피란 간 모양이다. 둘이 한참 먹으며 이야기하고 있을 때 가까운 곳에서 소총 소리 두 방이 울렸다.
“가까이서 공포를 쏘는데요?”
“덤비지 마!”
둘은 숨을 죽인 채 동정을 살핀다. 말소리로 보아 어떤 노인이 괴뢰군에게 봉변을 당하는 것 같았다.
“사람 살려요! 아구구! 아야야, 여보 노인을 이렇게 때리는 법이 어딨어!”
“쌍 간나 영감쟁이, 죽여 버린다!”
비명과 욕설이 뒤범벅이 돼 들려 왔다.
“바른대로 대! 이래도 안 대겠어?”
“아이구구, 나 죽는다! 나 죽어요!”
노인은 다 죽어 가는 소리로 비명을 내지르며 바둥댔다. 이필헌이 고개를 빼어 엿본즉 괴뢰군 둘이서 노인을 개머리판으로 짓이기고 있었다. 노인은 허우적거리며 신음 반 고함 반으로 소리쳤다.
“아이구, 나 죽는다. 아이고! 우리 국군은 다 어딜 갔어! 우리 국군은 어딜 갔어!”
이때 이 광경을 지켜보던 김 상사가 빨끈 일어났다. 그리곤 쏜살같이 내달았다.
“국군 여기 있다!”
김 중사는 적군 앞으로 뛰어나가며 총을 갈겼다. 김 중사의 총에 적은 어이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노인! 빨리 도망가시오! 야, 필헌아! 새끼들 두 놈 다 처치했으니 우리도 뛰자!”
우연한 곳에서 노인을 구한 두 사람은 또다시 피란 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