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영웅 엘리 코헨

수천 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다 1948년 5월 중동의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세운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 주변국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 왔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상대가 공격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는 예방 전쟁 개념으로 선제 공격을 종종 감행했다.
대표적 전쟁 중 하나가 67년 6월5일부터 단 6일 만에 승부가 결정된 ‘6일 전쟁’이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이집트군 비행장과 요르단을 기습 공격해 대승을 거뒀으며, 특히 난공불락의 시리아 요새 골란고원을 단 10시간 만에 완전 함락했다. 병력 수에 서 열세한 이스라엘이 대승을 거둠으로써 6일 전쟁이라는 이름의 신화를 남겼다.
이때 이스라엘 국방장관인 외눈의 모세 다얀 장군은 “엘리 코헨이 아니었다면 골란 고원 요새 점령은 영원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엘리 코헨은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숨은 영웅이다.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이 이집트 비행장 기습작전에 성공한 것은 아랍인들의 정신적인 나태에 기인하지만 더 결정적 승인은 이스라엘 모사드에 의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아 적의 사소한 방심이나 허점을 놓치지 않고 치밀하게 공격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부연하자면 아랍인들은 설마 아침 출근 시간에 비행장을 공격해 올까 하는 방심으로 조기경보 장치 작동을 잠깐 멈췄고 조종사들도 긴장을 풀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실을 모사드의 첩보 제공으로 간파하고 있었기에 전투기로 이를 역이용,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지중해로 멀리 우회했다. 해상 50m로 저공비행, 나일강 안개가 막 걷히는 시간에 23개의 레이더에 전혀 노출되지 않은 채 이집트 상공에 나타나 11개 비행기지 활주로를 비롯해 각종 항공기와 기타 시설물을 정확히 폭격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이집트군은 이스라엘이 레이더망을 무력화하는 특수무기를 개발한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77년 7월29일, 이날은 전쟁으로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이스라엘 소년들의 성인식이 있는 날이었다. 이때 가냘픈 한 소년이 단상에 올라 “내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 헌신,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는 나의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충실한 아들이 될 것을 저세상에 계시는 아버지께 약속드린다”고 연설했다. 소년의 연설이 끝났을 때 참석한 사람들과 메나헴 베긴 수상까지도 눈물을 글썽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 소년의 아버지가 이스라엘 모사드의 스파이 영웅 엘리 코헨이다.
코헨은 1924년 이집트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특수 정보 훈련인 사보타주 훈련을 마치고 정식 정보요원이 됐다.
그 후 코헨은 카말 아민 타베드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이력을 모두 교묘하게 조작했다. 특히 국제적인 스파이 도시인 아르헨티나에서 구미 각국, 공산권, 나치, 아랍 정보원들과의 교류 경험은 그가 유명 정보 요원으로 명성을 날리는 계기가 됐다.
코헨은 국영방송의 대남미 지역 방송 담당자로 활약하면서 틈틈이 사귀어 온 군 작전 장교를 앞세워 전선의 진지를 시찰하고 뛰어난 기억력으로 모두 암기하고 정리, 종합해 텔아비브로 송신했다. 이스라엘군은 시리아군의 장비에 대해서도 상세한 정보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도 코헨이 제공한 정보였다.
코헨이 입수한 정보에는 소련 고문단이 작성한 이스라엘 공격 계획, 소련이 시리아에 제공한 무기 사진, 골란 고원의 시리아군 배치도 등이 포함돼 있었다. 특히 골란 고원 시리아군 배치도는 6일 전쟁시 이스라엘군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6일 전쟁 승리의 신화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기만을 하더라도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라는 세계적 정보 기관 모사드의 조직적 개입과 적지에 뛰어들어 목숨을 건 첩보 활동을 통해 얻은 고급 정보로 조국에 승리를 안겨 주고 자신은 적에게 잡혀 교수형으로 숨진 코헨의 살신성인이 이룬 합작품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