諱 元發은 元朝에서 賢良한 선비를 招賓(초빈)하였을 때에 賢良貢擧(현량공거) 及第하여 忠肅玉(충숙왕)二年 乙卯(1315年) 元朝에 入國하여 또 元朝에서 壯元(장원)하니 벼슬이 榮綠大夫(영록대부) 兵部尙書(병부상서) 兼 集賢殿太學士(집현전태학사)에 이르렀다. 그 후 元朝에서 致仕歸國(치사귀국) 할 무렵에 元帝가 公에게 所願을 下問할 때에 오직 高麗의 歲貢이 過多함을 아뢰고 이를 蕩滅(탕감)하여 달라고 歎願(탄원)하니 元帝는 이에 感動하여 金 銀 駿馬 絹帛 등의 歲貢을 大幅 減額하게 하고 公服一襲을 下賜(하사)하니 公께서는 公服이 臣에게 不當하다고 辭讓(사양)하시다 恭愍王 三年(1354年) 十月에 元나라에서의 在任 三十九年만에 歸國하게 되니 恭愍王이 元朝에서 在任중 過多한 歲貢을 減除(감제)케한 勳業(훈업)을 嘉賞(가상)하여 선생이 竺山府院君 의 封號(봉호)를 받음에 축산으로 貫鄉(관향)을 奉하고 省火川一區를 下賜하니 鑑護故事(감호고사)처럼 敬老케 하였다. (竺山은 곧 龍宮의 別號다.)
諱는 元發이요 號는 菊城시니 生沒(생몰) 年度 未詳이다. 出生地 縣西(聞慶市 永順面 達地里 110番地)시다. 公께서는 晚年(만년)을 休老할 곳으로 省火川(지금 소천) 東쪽 언덕에 亭子를 세우고 宋나라 때 周濂溪(주염계)의 愛蓮詞(애연사)에 그 향이 清而 遠之하다는 것과 같이 清遠亭(청원정)이라 扁額하고 清遠亭에 걸어져 있는 扁額(편액)은 退陶 李滉(퇴도 이황) 先生이 菊坡 全元發先生을 攢揚(찬양)한 親筆 二首가 있다. (清遠亭 :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33호 西紀 2008年 2月 18日 指定) 清遠亭 境内 蓮塘池(연당지)가 대홍수로 埋沒(매물)되었다 西記 2021年度 錦川生態河川 復元事業으로 環境部(환경부)에서 蓮塘池 復元(복원)하다.
歷代 우리나라에서 推薦(추천)받아 元에 들어간 분들이 많았지만, 文章이나 官爵(관작)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 나라의 어려운 弊端(폐단)을 바로 잡아 힘을 쓴 분은 거의 없다. 선생은 一身의 安寧을 폐리와 같이 버리고 忠國愛民하신 사심 없는 愛國心의 발로야말로 우리 겨레 萬代의 龜鑑(귀감)이 아닐 수없다. 우리나라가 世界적인 碩學(석학) 退陶 李先生도 此爺(차야)는 間世 名賢(명현)이니 立嗣崇報함이 可하다 하였으니 道内 士林의 公論으로 壬申(1692年) 十二月 에 士林의 追慕(추모)하는 與望(여망)에 따라 崇德詞와 典敎堂을 刱建(창건)하니 곧 蘇川書院이다 蘇川書院 수립(竪立) 九年 뒤 肅宗 27年 辛巳(1701年) 八月에 賜額(사액) 書院으로 내려졌으며 高宗 八年 辛未(1871年) 國禁으로 毁撤(훼철)하였다가 1968年 戊申에 士林의 公論과 後孫들이 重建하여 每年 陰曆 三月 中丁에 享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