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목욕탕의 남탕은 그들 어른 둘에 아이 둘, 네 사람뿐이었다. 이른바 아무도 없는 그들만의 가족탕이었다. 윤호와 중근이, 두 아이는 탕 밖에서 장난치고 있었고 두 어른은 탕 안에 있었다. 거기서 양수가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콧노래가 아니라 가사를 나직나직하게 소리내어 불렀는데 목욕탕 공간이 공명을 이루어서 매우 서정적인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그야말로 청아하게.
두 아이도 장난을 멈추고 양수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윤호에게 그 곡을 알 리 없지만 그 음조를 확실하게 잠재의식 속에 각인되었다. 그래서 그 때로부터 7년 가량 지나 중학생이 되었을 때 그 곡을 회상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아들 중근이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
나의 마음 슬퍼 눈물이 흘렀네.
… …
그런데 한 곡이 끝나는 순간 여탕 쪽에서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숨 죽여 쿡쿡거리면서 억지로 참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거였다. 그 바람에 현준도 눈을 뜨고 손뼉을 치면서 앙코르 하고 소리쳤다. 양수는 얼굴이 벌개지면서 무안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 목욕탕은 남탕과 여탕이 벽을 사이로 하여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 벽은 천정에 닿아 있지 않았었다. 어른 손으로 한 뼘 가량 떨어져 있어서 양쪽 탕에서 솟아오르는 김이 천정에서 서로 어울리고 있었다.
그런데 윤호는 그 노래의 이미지와는 별개로 그 제목으로 인하여 참 우스운 기억을 한꺼번에 떠올려야 했다.
그때 그 시간 여탕에서 목욕한 사람 중에 왜옥 동네에 사는 처녀선생 조귀백이 있었다. 이듬해 가을에 윤호가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담임선생이 되었던 이다. 그런데 그 선생이 무슨 일로 윤호와 두어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 곁에 남아 있었은데 조 선생이 윤호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었다.
“너이 집 옆방에 사는 아저씨가 여학교 음악 선생이라지?”
“우리 옆방에예? 우리 옆방에는 큰집 식구들이 사는 데예?”
“큰집 식구들이 사신다고?”
그랬다. 노래 부른 그해 가을 십일폭동이 있었고, 그때 양수네 가족은 부랴부랴 이사가버렸었다. 조 선생이 묻는 것은 그때로부터도 1년이 지났으니 목욕탕 독창 사건은 1년 반도 더 지난 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