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승보다 아쉬운 건 이별… 평생 베트남 잊지 못할 것”
새로운 베트남 축구역사 쓴 박항서
5년 4개월 대장정 마치고 감독 퇴임
“1년만 버티려다 여기까지 오게 돼… 베트남-한국서 감독 맡을 계획 없어”
베트남 축구팬들이 13일 태국과의 동남아시아축구선수권(미쓰비시컵) 결승 1차전에서 박항서 감독의 사진과 ‘THANK YOU(고맙습니다)’가 적힌 피켓을 들고 응원하고 있다. 사진 출처 베트남축구협회 페이스북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64)이 16일 태국과의 동남아시아축구선수권(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 경기를 끝으로 베트남 축구와 5년 4개월간의 동행을 마쳤다.
베트남은 16일 태국 빠툼타니주 클롱루앙군의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태국과의 미쓰비시컵 결승 2차전 방문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안방 1차전에서 2-2로 비겼던 베트남은 1, 2차전 합계 2-3으로 준우승을 했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17일 화상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화상 기자회견 캡처
박 감독은 17일 화상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아쉽게 준우승을 했지만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며 “결승전을 끝으로 5년간 맡았던 베트남과 이별해야 하는 것이 마음 아프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항서 감독이 2018년 동남아시아축구선수권(당시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뒤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 출처 미쓰비시컵 트위터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바꿨다. 2017년 10월 베트남 축구대표팀과 23세 이하(U-23)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첫 대회부터 성과를 냈다. 201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동남아시아 국가 최초로 4강에 오른 뒤 결승까지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1-2로 졌지만 베트남 축구 역사상 AFC 주관 대회 첫 준우승을 일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는 최고 성적인 4강까지 진출해 4위로 대회를 마쳤다. 2018년 동남아시아축구선수권(당시 스즈키컵)에서는 10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박항서 감독이 2019년 23세 이하(U-23) 베트남 축구대표팀과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오며 베트남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9년 AFC 아시안컵 8강에 오르며 역대 최고 성적(2007년 8강)과 타이를 이뤘다. 같은해 12월 동남아시아경기에서는 베트남에 처음으로 축구 금메달을 안겼다.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박 감독은 베트남을 사상 첫 최종예선 진출로 이끌었다. 박 감독은 “이렇게 오래 베트남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1년만 버티자고 한 게 5년까지 왔다. 대회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부족한 면도 많이 있다. 하지만 후회 없이 했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박 감독 부임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0위였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베트남은 96위로 순위가 34계단 올랐다. 베트남 매체 베트남넷은 17일 ‘박항서 감독, 베트남 대표팀과 결별: 특별한 감사’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 감독이 5년간 베트남 축구에 가져다준 영광에 감사하다. 박 감독은 그동안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것을 해냈다. 박 감독 후임은 이를 극복해야 하는 큰 과제를 안게 됐다”고 보도했다.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도 박 감독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태국 축구대표팀의 누안판 람삼 단장(57·여)은 최근 “박 감독은 베트남을 넘어 동남아시아 축구 판도를 바꿨다. 베트남 선수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베트남 공격수 응우옌꽁프엉(28)이 일본 J리그1 요코하마FC, 미드필더 응우옌꽝하이(26)는 프랑스 2부 리그 포FC에서 뛰고 있다.
박 감독은 앞으로의 거취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박 감독은 “베트남과 한국에서는 감독을 하지 않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축구이기 때문에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할 것”이라며 “베트남에서 유소년 지도나 프로축구 팀 기술위원 등을 맡아 달라는 몇 가지 제안에 대해 고민한 뒤 결정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