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연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
오전에 내린 봄비로 촉촉해진
땅 위에 오후의 햇살이 내린다.
금세 갠하늘에 구름이 흐른다.
그 운치가 그만이다. 간만에 서성이는
구름을 보니 괜찮은 하루구나 싶다.
우리네 생과 사도 저리 오면
좋으련만.느릿하지만 자유로이
파란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을 보며 잠시 생각한다.
한껏 다가온 죽음도
햇살 머금은 생의 기운으로 주춤
멈출 수 있으면 좋으리라.
구름을 보면서 환자들에게 발길을
돌린다. 함께 고통을 이기던 이들이
하나.둘 생을 마감하면
우리도 기운이 달린다.
어제는 간암 환자가, 오늘 새벽
에는 폐암 환자가 세상을 떠나시더니,
이내 그니마저 가시려나 보다.
백육십 센티미터의 키에 고작 삼십
칠 킬로그램밖에 안 나가는
몸에 위암으로 이 년여를 투병해온
그니는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그럼에도 딸과 남편을 위해
어떻게든 견디겠다는 의지로 지금
여기까지 와 있다. 그러나
환자는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다.
오늘 아침, 병실이 너무 조용해서
들여다보니 남편이
그니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마르다 못해 뼈와 가죽만 남은 아내를
뒤에서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니는 죽은 듯 눈을 감고
남편 품에 온전히 기대었다.
한 조각 연기처럼 사라질 것 같은
생명의 불꽃이 불쌍해서 너무
불쌍해서 그니의 남편이 울고 있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다. 그래서 오전 내내 기도했다.
기도 중에 번개처럼 스쳐가는 단어가
있었으니, '삼! 장뇌삼 한 뿌리' 였다.
며칠 전 소중히 쓸 데가 있어
장뇌삼 네 뿌리를 샀다. 세 뿌리는
사용하고 한 뿌리를 남겨두었다.
꼭 필요할 때가 있으리라 생각하여
이끼에 싸서 저온 보관해두었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우짜던지 삼 삶은 물이라도
목으로 넘어가게 해주세요'
삼을 넣은 약탕기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도 처음이다. 잘다려진
약물을 부처님 전에 올렸다
''한방울의 물이 타들어가는 목에
감로수가 되게 하여주시고
죽음이 올 때까지 고통을 덜어주소서."
과연 부처님께서 간절한 기도를
들으셨는지 흩어지던 사대가
약간의 기운을 얻는 듯했다.
말라버렸던 눈물샘이 잠시 열려 한
줄기 빗물처럼 그니를 적셨다 그리고
그니가 웃었다. 나는 웃는
그니를 끌어안고 다시 기도를 올렸다
''아. 장뇌삼이여! 토하지 않고
목구멍으로 넘어가 메마른 육신에
봄비가 되어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맑은 의식으로
머물 수 있도록 지켜주오."
임종 사흘 전
신기하다. 비쩍 마른
가지 끝에 작은 봉오리 하나.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삽짝 밖
작은 대문 곁에 옮겨 심은 창꽃나무
두 그루에서 오늘 아침 빠알간
꽃잎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었다.
수많은 봉오리 가운데 두 개가
얼굴을 내밀고 섰다. 참 붉다. 창꽃이.
그니가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웃는다. 나도 함께 웃으며
겨울 내내 떠나신 분들을 생각했다.
"창꽃이 피었네요. 저승에 계신
우리 님들, 모두 다녀가세요.
창꽃 필 때까지만, 하셨는데
창꽃 피었습니다. 그곳에는
더 아름답고 고운 꽃들이 만개하여
화엄세계를 이루겠지만
이곳 사바에서 피는 창꽃도 참 곱지라.
화무십일홍이라고 하니
때와 시절 놓치지 말고 다녀가세요."
그니가 살 것 같다는 모습으로
창꽃을 보며 웃는다.
뼈와 가죽만 남은 앙상한 몸에 걸치는
옷이 버거워 얇디얇은
속옷만 걸치고 누워 봄꽃을 즐긴다.
말간 저 눈을 어찌 감고 가야 할까.
환자는 물을 삼킬 수 없어 더욱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정신은 또렷하다.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휘감긴다
서로의 그림자였던 비둘기 같은
그니와 남편은 지난 늦은 가을에
정토마을 식구가 됐다.
남편에게는 그니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밖에 없었고. 그니는 이런 남편을 홀로
두고 갈 수 없어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한 몸처럼 겨울을 보냈다.어쩜
저리도 서로에게 지극할 수 있을까.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생각했고 너무
아름다워서 슬픔이 번지기도 했다.
매화 향기가 가득한 창문 너머 저만치
피어 있는 대문지기 창꽃
두 그루를 보며 환자가 행복하단다.
야원 모습이지만 그래도 아름답다.
기운 없어 처지는 두 손을 힘들게 모아
"스님~!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
인사하는 그니의 모습이 너무도 곱다.
오늘 그니의 남편은 어머니 제사
때문에 외출 중이다. 혹여나 싶은
불안감에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오는
남편에게 그니는 젖먹던 힘까지
짜내며 "잘 있으니 제사 지내고
오라" 고 씩씩하게 답해준다.
그러고는 내게 말한다
"저 절대로 안 울어요."
뼈와 가죽만 남은 몸뚱이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멈추지 않고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내내 "스님 저 절대로
울지 않아요, 울지 않을 거예요."
스스로에거 당부하는 것이다.
눈물이 그니의 앞섶을 흠뻑 적셨다.
그렇다. 아름답다고 하여
이생에 오래 머무는 건 아니다.
정토마을을 가득 메운 창꽃이
제아무리 예뻐도 열흘을 갈 수 없는데
우리네 인생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결혼생활 이십 몇 년,
나 자신의 삶은 없었습니다.
딸아이도 믿습니다. 남편도
잘살 것이라고 믿고 가렵니다.
그렇게 해도 되겠지요?
요즘 꿈만 꾸고 나면 웃으면서 일어
납니다. 잠들면 정말 행복하답니다.
꿈속에서 고맙게도 세 사람의 고운
소녀가 그녀의 시중을 들어주었단다.
걸어 다니는 자욱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너무나 친절히 맞아주니 행복하단다.
육신은 나뭇잎처럼 가볍고 정신은
물처럼 맑으니. 이게 웬 행복인지
모르겠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 아마도 이곳을 떠나면
그런 곳으로 갈 것 같아요."
나는 그니에게 부디 맑게 깨어 있다가
그 몸 두고 떠날 때, 내가 하는 말
잘 알아듣고 '아미타불'
일념하라고 당부한다.
임종 이틀 전
그니가 날 애타게 찾는다.
그니의 몸은 수분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는 상태다
"스님. 등이 아파오고요, 창자가
쓰리고 너무 아파요.
지금보다 약을 더 많이 주세요''
아내의 호소에 남편은 밤새도록 운다.
그가 내쉬는 한숨에 땅이 꺼질듯하다.
''아이가 힘든가 봐요. 저를 보는
것이 힘들어서 못 찾아오는 게예요.
제가 빨리 가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과 아이가 고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어요. 갈랍니다, 이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중에도
아이를 생각하는 그니가 애처롭다.
오늘따라 새들의 종종거림이 생기롭다.
꽃들은 하늘 가득 웃고 있다. 따뜻한
햇살도 변함없이 창 뜰에 내린다.
화사한 이 봄, 그렇게 살려고, 살려보
려고 한 점 티끌을 붙잡고 몸부림치는
두사람을 지켜보려니 가슴이 아프다
"스님! 우리는 꼭 살아서 나갈 거예요.
보세요, 꼭 지켜보세요.
살아서 돌아갈 테니까요., 살아서!"
지난 가을 입원할 때 했던 그 소리가
허공에 부서진다. 남편은 가지 말라고
실낱같은 목숨을 붙잡고 몸부림치고,
아내는 보내달라고 애원한다. 작별의
시간이 가까워진 것을 모두가 안다.
아내를 보내려고 마음먹은 것 같다.
남편이 비로소 잡고 있던 아내의 손을
놓아주겠다고 말한다
"그래, 편히 가그라. 먼저 가 있으면,
나도 때 되면 당신 곁으로 갈게.
우짜든지 정토에 가서 태어나라.
나 잘 살꾸마. 건강히 애랑
살다가 당신 간 곳으로 나도 갈게.
아무 걱정 말그래."
임종
''남편이 아파할까봐 마음대로 앓지도
못하고 신음소리도 내지못했습니다.
나를 돌보는 것이 남편의 유일한
일이자 삶의 의미였는데...
이제 어쩌지요., 스님?
고맙습니다. 이 소중한 시간에 스님이
곁에 있어주셔서 너무나 평화롭습니다."
그니는 이내 자기 가족
좀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 바라밀다
를 행할 적에 오온이 공함을
비춰 일체 고액을 건너느니라.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아..."
나는 (반야심경)을 천천히 읽으며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말간 영혼 한 분을 당신께
보내드리려 합니다. 지지 않는
연꽃으로 정토에 피어나게 하소서.
자비의 어머니시여, 홀로 가시는
저승길 외롭거나 두렵지 않게
손잡아주시고 동행하여 주옵소서
이별 앞에 슬퍼하는 가족들을
위로해주시고, 제행무상의 법을
깨달아 생사의 밝은
도리를 알도록 도와주소서.
부처님. 오직 당신만을 믿습니다 .
그리고 의지합니다. 새털같이 가벼운
영혼이 당신 품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가만히 내 기도 소리를 들으며 뼈만
남은 그니의 얼굴을
비비던 남편이 탄식한다
"허망합니다''
진정 알고 싶은 삶의 의미여서 더욱
절박해진 남편의 목소리가
그니의 숨결처럼 힘겹게 진동한다
그니의 친구가 수화기 저편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짐짓 태연한 척 "친구야, 친구야!
이제는 간다. 잘 살아라" 말하며
그니가 전화를 끊으면 또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보내기 싫은
마음처럼 전화가 울고 있다.
딸아이가 집에서 혼자
맴맴 돌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엄마와 작별하러 왔다.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일까.
딸아이를 만나자
그니는 서둘러 길을 나선다.
평소에 기도 생활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온 그니였다
정토에 오고부터 더욱 치밀하게
준비하여.이제껏 살아온 흔적과
인연을 온전히 갈무리하였고,
사후의 삶에 대해서도 준비된 터였다.
그래서인지 임종시 마지막
호흡이 아주 평안하고 고요했다.
"엄마, 엄마'' 곱게 누운 엄마 곁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엄마를 부르던
어린자식은 밖에 나가서 붉은
창꽃을 꺾어다가 엄마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엄마가 덮고 있던
이불 속으로 들어가 가슴팍에
온몸을 묻고 눕는다.
싸늘히 식어가는 시신 곁에
어린자식이 함께 눕는다. 어린자식이
죽어가는 어미의 마른 가슴팍에
몸을 묻고 나란이
누위 있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들은 종종거리고,
풍경은 땡그렁, 땡그렁..
이놈의 세상 와 이리 슬프노.
불꽃이 만개한 봄날의 햇살 좋은
아침에 그니는 떠났다. 좋은가보다.
마른 얼굴에 평안이 감돈다.
살아 있을 때보다 얼굴빛이 좋은 것을
보니 이승보다 저승이 더 나은가.
그니는 창꽃처럼 붉은 사랑 속에서
사랑으로 머물다가 고향으로 떠났다.
파리하게 식어가는
모습에 평온이 깃든다.
대나무 속살처럼 부드러운 평화가
병실에 봄 햇살과 함께 내린다.
죽음을 지나 만나지는 저세상은
참으로 평화롭고 좋은 곳인가
공산空山에 달이 뜨니
공수空水에 만滿 달이로다.
한 생각 일어나니 만 꽃이 피고
한 생각 사라지니 만 ~ 꽃이 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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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자유게시판
지지 않는 연꽃으로 피어나게 하소서---능행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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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3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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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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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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