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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이상민 시조집)
성찰을 통한 꾸준한 정진의 자세
김 석 철
(한국문인협회 이사)
나는 시조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작품해설을 쓴다는 것은 선뜻 내키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다 문우의 간곡한 권유에 못 이겨 결국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인데, 이는 냉정하게 거절 못하는 나의 타고난 성격 탓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전에도 몇 차례 시조월평이나 계간 시조평을 쓰기는 했지만 본래의 내 전공은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이 글은 논리적 학문적인 측면보다는 독자로서의 작품 감상 수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주지하다시피 시조는 신라의 향가에 그 뿌리를 두고 고려 중엽에 발생하여 고려 말에 완성된 우리 민족 고유의 시가로서 우리 문학 양식 가운데 가장 정통성을 지닌 전통시다. 일본엔 하이쿠가 있고, 중국에 한시가 있으며 서양엔 소네트가 있듯이 우리에겐 시조가 있는 것이다.
개화기에 자유시가 서구 문명과 함께 유입되었을 때 우리 시조는 고시조에서 현대시조로 발전하면서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하게 되었다. 고시조는 창사(唱詞)로 쓰였지만 현대시조는 우리 민족의 전통시, 한국시로서의 문학의 한 갈래가 된 것이다.
시조는 우리말의 토양에서 자생한 시의 형태이기에 우리의 정신이나 혼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 표현의 그릇이다. 사실 자유시는 수입종이지만 시조는 순수한 토종인 것이다.
시조는 시이기에 시의 특성인 음악성, 의미성, 회화성을 지니면서도 가장 간결하게 정제된 의미 구조를 보여 주는 묘미가 있는 문학형태다.
1. 삶의 시적 형상화
이미 시집 『가을 그리움』을 펴낸 바 있는 이상민 시인이 이번엔 첫 시조집을 상재하게 된다. 모두 90여 편의 시조작품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등단 시인으로서 시조에 애정을 쏟는 바른 자세에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이상민 시인의 작품은 땀내 나는 생활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진솔한 감정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그 삶의 향기가 이 시인의 사람 됨됨이를 짐작하게 한다.
시인은 하나의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 많은 정신적 고뇌와 자기 성찰의 터널을 건너야 한다. 이 시인은 삶의 고단함과 희로애락을 주체하기 힘들 때 문학으로 위로를 삼고, 또 문학을 통하여 희망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윈스턴 처칠의「시는 피와 땀과 눈물의 결실」이라는 말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때 마치 피로 쓰듯 혼신의 힘으로 쓰라」는 말이 생각된다.
보일러 귀뚤귀뚤 배고픈 울음소리
칼바람 많이 섧다 애닯게 울지 마라
글 짓던 작은 선비도 붓끝 잡고 서럽다
백지를 펼쳐놓고 하늘만 바라보니
흔들린 붓 대롱은 혼자서 우쭐우쭐
귀뚜리 먹을 밥값은 이웃집에 꿔왔네
고적한 울음소리 선배도 울었건만
애틋한 먹이 주니 해맑은 노래 소리
둥지 속 귀뚜리 무리 옹기종기 정답다.
- 「보일러 귀뚤귀뚤」 전문
위의 작품은 시조의 율격을 잘 지킨 정격시조다. 운율이 어색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우며 시상의 전개가 점층적으로 이루어져 연시조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 보일러의 귀뚜라미 소리를 의인화하여 현실의 삶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비유는 어떤 사물이나 의미에 유추하여 표현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특히 시나 시조에 있어서는 그 쓰임이 다양하다. 우리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언제나 주위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서 감정의 기폭이 확연히 달라지기 마련인데, 귀뚜리의 소리도 듣는 자의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울음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혹은 노래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바위도 옮길 만큼 아직은 젊었는데
이 몸을 반겨주는 일터는 한 곳 없네
오늘도 텅 빈 방에서 뒤척이는 내 모습
스무 해 지난 세월 무던히 가꾸었던
내 뜰 안 텃밭에는 어느 새 잡초들만
세상 속 굽이진 자리 어느 곳에 머물까
언제쯤 내 텃밭에 알곡을 다시 뿌려
내 아이 뒷바라지 무사히 끝마치고
행복한 무지개 꿈도 설계하며 살을까
- 「삶」전문
행복한 삶의 포부를 내비친 작품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사회적 모순을 개탄하고 새로운 자세로 출발하려는 꿈을 노래하고 있다.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다 보면 즐겁고 기쁠 때도 있을 것이고 슬플 때나 괴로울 때도 있기 마련이다. 다만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즐거움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슬픔도 슬픔으로 생각하지 않고 초연하게 대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 시인의 시조를 감상하다 보면 삶의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꿈과 용기를 갖고 굳건하게 삶을 헤쳐 나가려는 그 바른 정신과 성실한 태도에 감동을 받게 된다. 이 시인은 의지의 시인이라고 생각된다. 자기 성찰을 통한 꾸준한 정진의 자세를 견지하며, 젊음과 패기(覇氣)로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고 있는 진실한 시인의 모습인 것이다.
재개발 건축 날이 눈앞에 닥쳤는데
이삿짐 꾸러미는 싸지도 못 했으니
어쩌누 빛바랜 문서만 눈물짓고 있다오
바랑 속 비워가며 네 둥지 신세거늘
이사할 둥지 찾아 주인을 만나보니
내 곁을 떠난 사람이 자리 깔고 있구나
전기도 눈을 감고 수돗물 잠을 잔다
물 길어 밥을 짓고 촛불로 불 밝히니
달빛이 뜨락에 앉아 섧다 하지 말라네
- 「보증금」 전문
위 시조는 서민의 삶의 애환이 서린 작품이다. 미처 대비책을 마련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재개발로 인해 생활의 터전을 잃게 되었는데도 시의 화자는 당황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전기와 수도가 끊긴 상황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자연 현상인 달빛으로 위안을 삼으며 자족(自足)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수에선 작자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세속의 삶에 초연한 선비적 자세가 아니겠는가.
이 작품에서는 제목붙이기에 대한 문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시조에 있어서 제목은 작품의 얼굴로서 매우 중요한 인상을 주게 되는데, 이 작품의 경우 제목 「보증금」이 상징하는 의미가 전체 내용과 어우러져 함축적으로 주제를 암시하고 있으니, 단연 핵심어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 선정이 비교적 잘 된 작품 중의 한 편이라고 본다.
풀벌레 길손 친구 외로움 달래건만
삐거덕 발걸음은 야망을 외치누나
둥지서 반기는 소리 어깨춤이 절로 난다.
- 「야망(野望)」 셋째 수
작품「야망(野望)」중에서 셋째 수를 뽑은 것이다. 이 시인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이 초장, 중장, 종장을 각 행으로 구별하여 3행 표기의 장별 배행법을 취하고 있다. 시행을 배치하는 문제는 일반적으로 운율을 고려하고 또 작품에 나타난 이미지나 의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짜임새를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현대시조에 있어서는 이러한 장별배행의 3행 시조 이외에도, 운율에 따른 음보나 의미전달의 효과 및 시각적인 이미지를 단위로 하여 구별배행 또는 음보별배행 등 다양한 배행 표기의 시도가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도 하지만, 이 시인은 단시조든 연시조든 3행으로 된 시조형태를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배행법은 초, 중, 종장이 각 장마다 하나의 의미 단위로 이루어져 있음을 나타내 주기도 하지만, 시조 한 수의 전체적 흐름에서 시상을 한꺼번에 조감할 수 있는 좋은 효과가 있는 것이다.
첫수에서 소슬한 계절적 배경, 둘째 수에서 고단한 삶의 현실적 배경을 전제로 한 부분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제외했지만, 위의 보기 시조와 같이 마지막 수인 셋째 수에서 야망과 자신감을 노래하고 있다. 누구든 패기와 야망을 품고 있을 때 성공도 기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시인의 자신감 있는 야망의 발걸음은 힘이 있고 당당하기만 하다.
여명이 밝아 오니 해님이 웃는구나
작업모 눌러쓰고 마당에 내려서니
넓죽이 점박이 놈이 꼬리 들고 절한다
따르릉 자전거길 실바람 시원해라
저만치 햇살 떨며 까치도 날아오니
콧노래 휘파람소리 절로 불며 달린다
신호등 빨간 불빛 발아래 드리우고
청하늘 하얀 구름 우러른 마흔 인생
알토란 24시의 꿈 가슴 깊이 새긴다
- 「아침 출근길」전문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시인의 시조작품은 대부분이 한 수 3행의 장별배행과 세 수의 연시조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배행 표기 및 구성법은 내용상으로나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형태의 세 수 연시조에서는 시상을 전개하는데 있어 대개 첫수에선 시작, 둘째 수에선 전개, 셋째 수에서 결말로 되어 있거나, 서두-본문-결미 등 3단 구성법을 취하고 있어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데 그만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게 사실인 것이다.
위의 작품은 일터로 향하는 아침 출근길의 경쾌함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화자의 긍정적 생각 속에 즐거운 하루가 열려지고 있다. 사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 일이 즐겁게 잘 풀리기 마련이다. 콧노래 휘파람소리 절로 불며 신바람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아 달리는 시인의 아침 출근길은 즐거운 삶의 길인 것이다.
꽃바람 등 기대어 여태껏 살았건만
이제사 꿈을 찾는 엉겅퀴 인생이라
오늘도 푸른 학원서 세월먼지 닦고요
쇠뿔도 녹인다는 중복이 덤비어도
성질난 소나기가 머리를 구박해도
가슴속 붉은 불덩이 묻고 사는 인생길
햇살이 격려하니 의지가 소생하여
바늘귀 구멍만한 희망이 보이나니
언젠가 오뚝이처럼 반석 위에 우뚝 서리
- 「인생수업」전문
사람은 죽을 때까지 노력하며 배우면서 산다는 말이 있다. 이상민 시인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여 살지라도 좌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을 견지하여 희망의 꿈을 놓지 않고 ‘언젠가 오뚝이처럼 반석 위에 우뚝 서리’라고 다짐한다. 사실 어떤 일이든 기어코 이루려는 불굴의 의지 앞에서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이 작품에선 주로 은유의 표현수법을 적용하여 시적 효과를 높이고 있는데, 이러한 비유는 주로 시나 시조와 같은 운문에서, 주로 쓰이는 표현의 기교(수사법)로서, 특히 복잡 미묘한 사상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시키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2. 그리움의 영토
우리나라에서도 자급자족을 주로 하던 예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난 곳에서 성장하며 생활하고 또 늙어 갔다. 허나 문명사회가 된 오늘날에 와서는 학업이나 직장 관계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향을 떠나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 많아졌다. 고향은 어머님의 품처럼 아늑하고 그립기만 한 곳이다. 특히 고향은 천진무구한 유년 시절의 추억과도 잇닿아 있어 마냥 그리울 수밖에 없다.
월미산 진달래가 방긋이 꽃 피는 날
울 어매 머물던 곳 지금도 가고 싶네
훈훈한 정든 내 고향 그림 같이 보인다
흐르는 세월에도 산천은 의구한데
그리운 고향하늘 한갓진 텃밭에는
청아한 보름 달빛만 찬바람에 맴돈다
고향을 떠나 온지 어느덧 몇 해인가
향수를 달래지만 주름만 깊어간다
중년의 야윈 마음은 고향 찾아 가잖다.
- 「월미산 (月尾山)」 전문
이 시인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작품을 많이 쓰고 있다. 위 시조는 이 시인이 타향살이하는 마을 주변의 ‘월미산(月尾山 )’을 바라보며 고향을 연상하고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꽃을 보아도 고향 생각, 하늘을 쳐다보아도 고향 생각이다. 향수를 노래한 이 시인의 시조들을 음미하다 보면, 그의 시적 사유의 깊이와 넓이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한함을 인지하게 된다. 향수에 젖은 중년 시인의 마음이 은연 중 야위어만 간다.
그리운 고향에서 보내온 딸기상자
눈앞에 받아두고 숨죽여 눈물짓네
따스한 부모님 정은 그리움만 더하네
따스한 봄 햇살이 모여든 딸기밭에
가족들 땀방울로 빨갛게 물들이면
가까운 친지들 모여 애쓴 기쁨 있겠지
애틋한 마음이야 고향 길 달리는데
슬프다 고향 두고 못가는 이 내 신세
입안에 맴도는 노래 고향의 봄 읊는다
- 「고향의 봄」 전문
이 또한 정격시조의 묘미를 갖춘 작품이다. 고향에서 보내 온 딸기상자에 부모님의 따스한 정이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이웃 친지들의 애써 가꾼 노고의 기쁨이 붉게 스며있기도 하다. 그리운 고향! 가고 싶은 고향이지만 실상 이런저런 사유로 쉽사리 가기도 힘든 고향이 아니던가. 시인의 입가에선 ‘고향의 봄’ 노래가 맴돈다.
아버지 기일이라 고향 역에 내리어서
집으로 가는 길에 우시장을 바라보니
오늘이 옥천장인지 사람들로 북적이네
소들을 중개하던 아버지가 보이는 듯
노오란 완장 두른 그 모습이 얼비치고
고삐를 잡고 집 오던 기억 절로 스치네
몇 해 전 멀리 있는 자식들 집 둘러보고
갑자기 먼 길 떠나 내 그리움 된 아버지
오일장 옥천장 서면 눈물 자꾸 납니다.
- 「옥천장」 전문
시골에선 오래 전부터 오일장이 서고 있었다. 5일 마다 열리는 장날이면 갖가지 물건과 가축 등을 팔고 사는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평상시에 매일같이 계속 열리고 있는 농어촌형 시장은 흔히 ‘재래시장’이라고 하지만, 이 ‘오일장’은 ‘민속시장’, ‘전통시장’ 등으로 불려 지지기도 한다. 요즈음 도시에 백화점이나 쇼핑센터가 많이 생겨났지만, 예전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이 오일장이 중요한 구실을 하는 장터였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은 많은 시골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볼거리 먹거리도 풍성하였다. 오일장의 한쪽에는 ‘우시장’도 함께 열렸었는데 이제 중년이 된 이 시인은 그 우시장의 광경을 다시 보면서 소의 매매를 중개하시던 선친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떠 올리며 가슴 아파한다. 이렇듯 삶과 생활 속에서 겪는 아픔이나 그리움은 시인의 자아를 흔들고 사유하게 하는 원천이 되어 작품을 탄생시키게 히는 것이다.
푸른 물 철썩철썩 반기는 오이도에
송아지 동무 모여 웃음꽃 활짝 피니
뚝방길 날던 물새도 깃을 접고 앉았네
술잔에 띄운 추억 고향역 달려가고
몸으로 요란 방정 부르는 노랫가락
흥겨워 동인천 발길 날아갈 듯 가볍구나
검 머리 흰 꽃피고 꽃댕기 색바래도
언제나 추억으로 만나면 마음 편한
와! 54 초등 동창회 영원해라 벗이여
- 「초등동창회」 전문
동창회 중에서도 초등학교동창회는 나이를 뛰어넘어 그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동창모임의 즐거움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철부지이면서 때묻지 않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니 만나면 반갑고 즐거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 동창모임은 직접 졸업한 학교에서 모이는 게 아니라 푸른 물 철썩이는 오이도의 바닷가에서 베풀어지고 있다. 위 시조의 구성 역시 기-서-결의 3단 구성법을 취하고 있으며, 첫수는 동창회 시작의 분위기를 제시했고, 둘째 수에선 추억담과 흥겨운 놀이를 묘사했으며, 셋째 수에서는 전체의 마무리로 동창회의 발전을 기원하고 있다.
푸른 빛 일렁이는 내 고향 그곳에는
어릴 적 소꿉친구 풀각시 닮았었지
수십 년 지나고 보니 어린 시절 그립네
초록 풀 예쁜 각시 인형을 만들어서
너와 나 두 손 잡고 추억을 만들었지
그립다. 어여쁜 소녀 그 미소가 아련하네
- 「풀각시 추억」 전문
어린 시절 고향에서 소꿉놀이하며 함께 놀던 소녀에 대한 그리움이 그려져 있다. 첫수와 둘째 수에서 그 의미를 반복과 점층으로 병렬 배치함으로써 주제를 심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시인은 시어사용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위 시조의 첫수 초장에서 ‘푸른 빛’이 함유하는 의미는 다분히 상징적이다. 생동감, 어린, 젊음, 희망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시어로 쓰인 것이다. 또 ‘일렁이는’, ‘아련하게’와 같은 시어의 사용도 좋았다. 시어는 주로 다의적, 상징적, 내포적인 의미를 지니면서도 곱고 예쁜 언어를 취택하고 있어야 한다. 시의 언어는 문학적 언어로서 일상적 지시적 사전적 언어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시는 흔히 언어의 예술이라고도 말하는데, 그 만큼 시에 쓰이는 언어의 선택과 사용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3. 허전함을 달래며
문학은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예술로서 인생을 탐닉(耽溺)하고 표현하는 창조의 세계라고 했다. 그러기에 시인은 어려운 처지에서도 소망을 노래하고 절망에서도 꿈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시련과 아픔의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아름다운 미래의 꿈을 찾아 순례의 길을 떠날 수 있는 게 시인이다.
이상민 시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면 이 시인은 의지의 시인이며 감성의 시인임이 분명하다. 아울러 시상을 진솔하게 표현할 뿐더러 기교를 부리지 않는 소박성도 갖추고 있다. 이는 이 시인만의 개성임과 동시에 문학적 성실성으로 보인다.
불고기 석식이라 포만감 가득하니
행복이 뱃속 가득 세상사 즐겁구나
삼복에 지친 육신이 불끈불끈 힘이 솟네
형광등 불빛 아래 자식놈 밝은 미소
잔잔히 윤기 흘러 아비마음 흐뭇하고
석쇠에 가는 손길아 부지런히 먹으려마
된장국 상추쌈에 풋고추 쌈장 없이
흰쌀밥 총각김치 부자가 먹는 저녁
허허허 오붓한 사랑노래 웃음으로 즐기자.
- 「만찬」 전문
아들과 함께하는 만찬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가족 사랑의 노래이다. 첫수에선 영탄형 문장으로 종결하였고, 둘째, 셋째 수에선 청유형 문장으로 종결함으로써 부자간에 더욱 친밀감 느끼게 하고 있다. 이렇듯 부자간의 오붓하고도 정다운 만찬의 자리에 다양한 소재를 동원하여 배치하는 방법은 더욱 풍성하고 즐거운 장면연출에 한껏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시나 시조에서의 소재는 체험이나 시정신에 의해 여과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쓰여서, 주제를 잘 드러내 주며 심화시키는데 보탬을 주는 것이다.
시부모 곁을 떠나 분가한 어느 아침
네 아빈 종자돈을 놀음에 모두 잃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빈 손 되어 왔었지
갑자기 먹구름이 눈앞을 가리워서
삶의 끈 놓으려고 의식을 잃었는데
희미한 부르짖음이 네 아비 목소리라
며칠 후 친정부모 그 소식을 접하고서
논배미 몇 마지기 나누어 주셨는데
때늦은 눈물 흘리며 감사하던 네 아비
- 「어머니 ‧ 1」 전문
낮에는 호미 들고 논밭에서 땀을 쏟고
밤에는 화투쟁이 지아비 기다림에
호롱불 끼고 앉아서 고개 숙인 눈물 삶
- 「어머니 . 2」 둘째 수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삶의 한 단면을 짐작케 하는 간절한 사모곡이다.
위의「어머니 ‧ 1」에서는 ‘어머니’의 말씀을 그대로 직접화법으로 인용하여 시상을 전개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어머니 . 2」는 다섯 수의 연시조인데 그 중에서 둘째 수를 가려 뽑은 것이다.
우리들 부모님 세대에서는 가부장적 가정에서 어머니의 존재는 항상 남편의 그늘에 가려 시집살이와 고생살이를 도맡아 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한 가정의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1인 3역의 역할은 물론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 안팎의 힘든 농사일까지 해내신 자랑스러운 어머니의 모습인 것이다. 그 시절엔 남편들의 외도와 도박까지 유행처럼 번지기도 해서 가정 파탄의 위기를 당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이제는 다 지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충주라 이천리길 혼자만 보내놓고
송아지 눈망울이 삼삼한 우중의 밤
이 아비 얼룩진 사진 두 손잡고 우노라
- 「부녀별곡(父女別曲)」셋째 수
부녀간엔 서로 말이 없어도 마음은 통하게 되어 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 아닌가. 특히 우리나라 남자들의 특성은 말의 표현에 많이 서툰 편이다. 서로 간 애틋한 정이 있지만 실제 표현을 못하고 만다. 하물며 부녀간에도 서로 떨어져 살다가 오랜만에라도 상면하게 되면 그 서먹서먹한 감정은 한층 더할 것이다.
위 작품은 연시조 세 수 중에서 시상을 마무리하는 끝수로서 주제의식을 심화시켜주고 있는 부분이다. ‘송아지 눈망울이 삼삼한 우중의 밤’ 같은 진술은 시적허용에 해당되는 부분이라고 본다. 가족의 무량한 사랑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행복이 조각나서 뿔뿔이 떠난 집에
호올로 적막 앉아 귀뚜리 울음 울 적
그 누가 피붙이에게 이 소식을 전했나
밤사이 정성들이 속속히 도착하여
황급히 갯마을에 둥지를 틀고 나니
뜨거운 혈육의 정을 분수처럼 솟던 밤
아들이 찾아오니 이불에 온기 돌고
마음은 훈훈하나 양육이 걱정이라
밤새껏 작심한 각오 열어가는 인생길
낮에는 꿈을 따고 밤에는 창작하니
몇 해가 지나고서 아들은 청년 되고
이 몸은 ‘가을 그리움’ 원작자가 되었네
그리고 귀뚤귀뚤 시조로 등단해서
언젠가 연시조를 상재해 빛내볼까
오늘도 소크라테스인 양 고개 꺾고 있노라
- 「가난한 시인의 노래」 전문
시상을 길게 이끌어가는 기량을 이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이 시인의 진정성과 대면을 하게 되는데 ‘문학은 구원이다’란 말이 생각된다. 이는 인간이 가장 진실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신의 모습을 구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지는 말이지만, 문학에서 삶의 위안을 얻고 문학에서 희망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이상의 구원이 어디 있겠는가?
이상민 시인은 첫 시집「가을 그리움」에서 ‘가난한 행복에 돌탑처럼 층층이 쌓인 고독과 슬픔을 녹이고자 눈물로 습작을 하였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또 임수홍 수필가는 역시 첫 시집 발간의 축사에서 ‘언제나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따뜻한 시선의 시인’이라고 했고, 지소영 시인은 작품해설에서 ‘시의 가슴으로 살고자 고뇌하는 몸부림의 글쟁이’라는 찬사를 곁들이고 있다. 이 시인의 ‘가난한 시인의 노래’가 새삼 정겹게 느껴진다.
4. 꿈과 서정의 공간
시조는 한국 서정시의 고향이다. 시조는 민족의 얼과 말과 글이 어우러진 우리의 문학 양식인 것이다. 시조는 형식 문학이기 때문에 율격에 따른 형식을 지키면서 참신한 이미지에 시상의 깊이를 더하여 정서를 심화시켜야 좋은 작품이 된다. 따라서 시조의 형식이 내용을 구속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 흐르듯이 유연하고도 쉽게 읽히는 시조가 좋은 시조라는 생각을 해본다.
천상과 지상에도 머무를 길이 없어
천년송 가지 밟고 창공을 바라보네
끝없는 하늘 어딘가 꿈의 낙원 있을까
외로이 날개 접고 목 꺾는 서러운 맘
눈물로 흘러흘러 바람에 흩어지니
지나는 외기러기도 눈물짓고 가누나
흐르는 흰 구름아 하늘문 열어다오
두 날개 활짝 펴고 천국에 올라가서
영원한 천상의 새로 자유롭게 살고파
- 「천상의 새」 전문
시인이 시의 영감과 만나는 순간 천상을 향해 날 수 있는 천사의 날개옷을 얻음과 같으리라. 이 시조에서 ‘새’는 곧 시적 화자인 ‘나’의 화신이다. ‘내가 나에게서 벗어나려는 것’이 곧 이 시조의 심층에서 감지할 수 있는 의미인 것이다. 여기서 현실에 처한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려는 욕망은 새의 비상으로 나타난다. 그러기에 ‘새’는 ‘비상(飛翔)’을 상징하는 메타포이다.
이 시인의 대부분의 작품이 희망적이며 미래지향적 경향임에 비추어볼 때 이 시조는 좀 색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보고픈 내 사랑아 그 어디서 머무는가
울 넘고 바람 타고 그대 찾는 눈물 걸음
저녁놀 은빛 적시며 무릎 꿇어 우노라
사랑아 내 사랑아 그 어디서 헤매는가
그리움 품에 안고 잠 못 이룬 이 내 가슴
여명의 첫새벽이면 너를 찾아 떠나리
사랑아 내 사랑아,보고 싶은 내 사랑아
그대를 다시 만나 고운 눈길 주고받고
어여쁜 사랑 그리며 알콩달콩 살고파
- 「나팔꽃 사랑」 전문
나팔꽃은 한해살이풀의 꽃이지만 상징성이 짙은 이름의 꽃으로, 시나 시조에서는 사랑, 심장, 정열, 견우(牽牛) 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 꽃의 줄기는 높이가 2〜3m이고 넝쿨져 감아 올라가며 잎은 심장 모양이다. 여름에 나팔 모양의 보라색, 붉은색, 흰색 등의 꽃이 피고 대개 관상용으로 재배되는데 일명 ‘견우’라고도 일컫는다.
‘사랑’은 신비의 미로 속으로 몸을 숨기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랑이 되기도 한다. 이 ‘사랑’이라는 말은 흔히 쓰는 말이면서도 대단히 귀중한 단어다.
사랑을 주면 줄수록 샘물처럼 계속 솟아나기 마련이며, 자기가 준 사랑은 넘치는 사랑이 되어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게 사랑의 진리라고 했다.
각 수마다 반복법, 점층법, 영탄법, 돈호법 등의 다양한 표현수법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시상을 전개함으로써 공감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교적 고운 시어들이 율격을 갖추어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다음은 이 시인의 작품 중 경향이 비슷한 세 편에서 한 수씩을 골라 살펴보고자 한다.
해질녘 주막에는 술꾼이 왁자지껄
얼큰한 매운탕은 탁배기를 들게 하고
네온불 청포 나루에 추억으로 남으리.
- 「청풍호반에서」셋째 수
뽀오얀 둥근 달도 그리운 저녁 하늘
저만치 산비둘기 노을과 입맞추나
깡마른 꼬마장승이 적막 안고 두 눈 감네
- 「겨울나목 앞에서」 둘째 수
낚싯대 드리우면 망둥이 가득 잡고
고깃배 바라보면 시어도 절로 낚는
바람과 파도와 해가 노래하는 쉼터라
- 「화수 부두」 둘째 수
이 시인은 순수한 우리말의 시어를 취사선택하여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알맞게 사용함으로써 시적 효과를 극대화 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 시조에서 「청풍호반에서」의 셋째 수는 현실서사의 시화이고, 「겨울나목 앞에서」의 둘째 수는 이 시인이 표현하는 시적 대상을 주관적으로 변용시키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화수 부두」 둘째 수를 살펴보면, 이 시인은 시조다운 태깔을 잘 지키는 가운데 서정적 유장한 가락을 표출해 내는 솜씨가 유연하기만 하다. 댓구의 표현 효과를 거두고 있다. 위의 세 편 모두 요즘 난해시조가 판을 치는 우리 시조문단에 쉽게 읽히는 시조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이라고 하겠다.
주점 앞 감나무에 백설 꽃 피는 한밤
술잔에 띄운 소망 몇 잔을 마셨건만
어이 타 손목시계는 자정 넘어 우는가
- 「화평동 블루스」 둘째 수
연시조「화평동 블루스」세 수 중에서 둘째 수만을 뽑은 것이다. 이 시인의 시혼은 뜨겁기만 하다. 짧은 시조 속에 세상이 담겨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눈꽃을 보며 마음의 꽃을 피우는 시인은 술잔에 띄운 소망을 마시고 있다. 이미지의 형상화가 선명하여 공감을 더해 준다.
5. 민들레 연가
작품은 작자가 만든 제품이 아니라 작자의 정신이 깃든 생명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인의 푸른 시혼에 감성의 물줄기를 공급해 주는 그 원천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이상민 시인은 직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출하여 진솔한 설득력과 만나게 한다.
너 떠난 빈자리엔 찬 기운 숭숭하고
까만 눈 꼭 감아도 떠오르는 너의 얼굴
새벽녘 꿈길에라도 만나보고 싶구나
- 「그리움」 둘째 수
그리움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싹이 튼다. 그리움! 그리움의 감정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인 것이다. 삼장 형식에 시상을 펼치는 솜씨가 익숙하기만 하다. 그리운 마음을 안으로 다스려 참고 기다리는 시의 화자는 꿈길에서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하고 기원해 본다. 간절한 그리움의 경지이다.
끝없는 기다림이 포말로 울다 지쳐
남겨둔 흔적으로 바다로 젖어드니
고독한 생의 언덕엔 눈물 꽃만 피누나
수평선 아득히 그리운 그대모습
이맘은 오늘도 날으는 갈매기라
그리워 숨이 막힌다 가슴에서 턱까지
아침 해 이슬 젖어 검붉은 그대 잎에
하늘은 아린 마음 가시손 잡아주니
간절한 선홍빛 사랑 너를 안고 우노라
- 「해당화」 전문
비유와 상징의 표현법이 적용되어 함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작품이다. 해당화를 바라보며 사랑을 희원하는 시조다. 해당화의 속성을 알고 보면 이 작품의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해당화’는 관상용으로 주로 바닷가의 모래땅이나 산기슭에 자생하는데 5〜8월에 붉은 자주색 꽃이 가지 끝에 피고, 열매는 기장과로 8월경에 붉게 읽는다. 꽃은 주로 향수의 원료로 쓰인다. 흔히 ‘간절한 사랑’을 비유하는 뜻으로 ‘해당화 사랑’이라는 말도 있다.
외로운 내 가슴에 웃음꽃을 피워주고
흩어진 기억 속에 노란 꿈을 심어주며
뜨거운 사랑의 정을 듬뿍 주던 사람아
까만 밤 말도 없이 별이 되어 떠났는가
두고 간 스란치마 쓸어안고 누운 이 몸
천장에 그대 모습만 저녁달로 보이네
야속히 떠난 임아 목석같은 나의 임아
눈물진 나의 노래 천상에서 듣거들랑
동 트는 이른 아침에 서광(瑞光) 타고 오려무나.
- 「민들레 연가」 전문
정을 주고 떠난 임을 그리는 애절한 사랑의 노래다. ‘웃음꽃을 피워 주고/ 노란 꿈을 심어 주며/ 사랑의 정을 듬뿍 주던 사람’, 그런 사랑하는 사람에게 띄우는 사랑의 연가인 것이다.
‘민들레’는 특히 문학작품에서 상징적 의미의 소재와 주제로 많이 쓰이며 대중가요에도 그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민들레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인데 원 줄기는 없고 이른 봄에 뿌리에서 깃모양으로 깊이 갈라진 잎이 나온다. 높이 30cm 정도의 꽃줄기 끝에 누런 꽃이 4〜5월에 피는데 밤에는 오므라든다고 한다. 씨는 깃털이 있어 바람에 날려 멀리까지 퍼지는 걸 우리도 흔히 보아왔다. 잎을 먹기도 하지만, 꽃피기 전의 뿌리와 줄기는 한방의 약재로도 쓰인다.
인연의 매듭 엮어 사랑한 꽃잎아
어느새 여름 가고 가을이 왔는데도
여태껏 꽃잎 한 장도 넘어오질 않느냐
저 높은 하늘 아래 첫 동네 머물더냐
너 가고 없는 자리 바람만 쓸쓸하니
내 뼛속 깊이 묻어둔 일편단심 춤춘다
네 얼굴 너울거려 잠 못 든 삼경이면
귀뚜리 울음 따라 속눈썹 매달리고
내 맘도 절로 목메여 고개 숙여 우노라
- 「꽃잎아」 전문
「꽃잎아」는 사랑하는 사람을 의인화하여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떤 꽃이든 꽃잎은 곱고 아름답다. 그러기에 ‘꽃잎’은 ‘그리운 임’이 되기도 하고 ‘일편단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만나면 그리운 정 저 멀리 달아나고
떠나면 눈물의 정 손수건 적시우는
영원한 안개꽃 당신 나의 천사 사랑아
- 「안개꽃 당신」셋째 수
연시조 「안개꽃 당신」세 수 중에서 맨 끝수이다. 이 시조는 시상 전개에 있어서 전체적인 짜임새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안정감을 주고 있는 작품이다.
시와 시조 작품에서 시행의 어미나 시련(詩聯)의 맨 마지막이 되는 어미처리는 매우 중요하다. 종결어미가 없는 명사나 명사형 어미로 끝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시적인 어미로 끝나거나 조사를 붙여 종결하는 경우도 있는데, 시조에서도 이 종결 어미의 쓰임에 따라서 작품의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 시조에서는 호격조사 ‘〜아’를 사용한 돈호법 표현으로 시조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상으로 이상민 시인의 시세계를 살펴보았지만 결국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이 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 시인은 분명 이 시대에 보기 드문 때 묻지 않은 의지의 시인이요 감성의 시인이다.
이 시인은 평소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작품의 소재와 주제로 삼아 거침없이 창작을 시도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로 삶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사랑, 그리움, 가족애, 기다림, 고향, 바다, 꿈과 이상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시인은 자기 성찰을 통한 꾸준한 정진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개성적인 시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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