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도시락을 먹어 본지 너무나 오래되었지만 그게 학창시절 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상에서 흔히 대 할 수 있었던 도시락을 요즘은 보기 드물다. 요즈음은 학교 구내식당이나 단체급식이 도시락 문화를 떠밀었고, 때맞춰 불어온 패스트푸드 열풍이 가세해 아예 벼랑 끝으로 밀어냈다. 사랑을 배달하던 도시락은 한낮 소용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로 변해 그릇장 어느 한 구석에 밀쳐져 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하교 시에 책 보따리에 도시락을 넣고서 어깨에 둘러매고서 집으로 향해 뛰어가면 덜커덩 덜커덩 소리가 나는 것이다. 이 소리는 배고픔의 시절에 너무나 듣기 좋았을 지도 모른다. 쌀이 부족한 시절이라 혼식을 강요하기 위한 일종의 고육지책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하여튼 그때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담은 도시락이 나에게 생겼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나와 늘 함께했다. 꽁보리밥에 반찬 이라고는 무김치에 ,콩 자반,깻잎을 주로 싸고 했지만 내 어머니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김이 솟구쳐 오르는 밥솥에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이밥이 섞인 도시락을 싸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도시락을 먹기 위해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학교로 향하던 시절이다. 도시락은 먹는 재미부터 다르다. 도시락을 중앙에 두고 오순도순 둘러앉아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의 반찬을 나눠 먹는 게 재미있다. 밤늦게 까지 학원을 다니는 고등학생들이나 어쩔 수 없이 도시락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은 혼자 앉아서 시간에 쫓기듯 허겁지겁 식사를 한 다 급하게 먹는 도시락에서 식사의 즐거움과 밥알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사랑의 향기를 어찌 느낄 수 있으리. 도시락을 바라보며 시간을 조금만 뒤로 돌리면 어머니의 사랑과 애틋한 추억이란 게 떠오르는 것을. 내가 태어난 곳은 산골의 작은 마을이다.
1975년에야 전기가 들어왔으니 오지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져 있어 고개를 들면 산봉우리와 하늘만 보일 뿐이다. 외지로 통하는 교통수단이란, 하루에 두 세 차례 털털거리며 희부연 흙먼지를 일으키는 버스가 고작이다. 어린 아이들은 책가방도 없이 보자기에 책과 도시락을 그냥 포개서 다녔지만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책보라고 불렀다. 우리 마을에서 오리가 넘게 떨어진 곳에 학교가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도시락을 챙겨주셨다. 요즘처럼 가볍고 멋진 디자인이 아니라 누런 동(銅)으로 만든 볼품없는 도시락이다 게다가 반찬 통은 뚜껑도 없이 도시락 가장자리에 밥을 짓누르고 앉아있다. 책보를 허리에 두르고 논길을 달리다 보면 반찬 국물이 흘러나와 책보를 볼썽사납게 만들기 일쑤였다. 책이며 공책 군데군데 흔적을 남기는 것은 물론이 퀴퀴한 냄새까지 풍겨냈다. 빈 도시락 통은 다용도 도구다. 하교 길엔 늘 엇박자의 행진곡이 숲길에 울려 퍼진다. 발걸음의 지휘에 따라 도시락과 수저와 반찬 통이 서로 달그락 거리며 연주를 한다. 이름 모를 새들은 지저귀며, 길섶의 들꽃들은 바람에 어깨춤을 추며 장단을 맞춘다.
빈 도시락의 용도가 또 있다. 개울에서 피라미나 가재를 잡아서 담는 고기망태가 되기도 했었고, 머루나 다래를 담는 바구니로 쓰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느 하루도 떨어지지 않는 절친한 친구 같던 도시락이 별안간 싫어진 적도 있었다. 어느 친구가 새로운 도시락을 사가지고 올때 면 내 도시락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멋진 모양에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어서 망가져야 나도 저런 것을 가질 수 있겠지 하는 마음에 죄 없는 도시락을 집어던지기도 했었다. 찌그러진 도시락에 밥을 담는 어머니의 심정을 어떠했을까. 도시락 속에 담긴 깊은 사랑은 느끼지 못하고 외형에만 눈이 멀었던 당시를 생각하면 어머니에게 송구스러울 뿐이다.
아주 오래전에 추억의 도시락을 본 것은 TV를 통해 .난타(亂打)’ 공연장에서 악기로 연주 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러나 공연장의 도시락에서 그 옛날의 정취를 느낄 수가 없었다. 몽둥이에 수 없이 얻어 맞으며 소리 지르는 모습이 안쓰럽다. 쨍쨍거리는 소리는 자신의 소임이 아니라고 울부짖는 듯 했다. 어쩌면 그들도, 몸 안 가득 담고 있던 사랑을 배달하고 난 후 수저와 화음을 맞추어 내던 자신의 옛 소리를 찾고 싶었을지 모른다. 현대사회에서의 시간은 무척 빠르다. 바삐 움직이고 여러 곳으로 이동하여야 하는 현실에서 도시락은 거추장스러운 물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도시락은 추억과 사랑을 가득 담을 수 있는 무한의 가슴이다. 모양이야 많이 변했지만 도시락 속에 담긴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으리. 어머니와 자식간을 분주히 오가며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전해주는 도시락인 것이다.
어느 어머니는 자녀의 도시락을 준비할 때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요즈음 아이들은 학교에서 급식을 시작하며 도시락을 못 싸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도시락은 그녀의 마음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것이다. 학생들은 새벽에 집에서 나가 저녁에야 볼 수 있으니 부모로서 따뜻한 손길 한번 제대로 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도시락은 단순한 한 끼의 먹을거리가 아니라 새록새록 다른 모습으로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메신저였던 것이다.
요즈음은 학교에서 급식을 해주니 좋은 세상에 살고 있을지 몰라도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간 모습이 사라지니 아쉽다 한 달이 금 새 지나가는 것도 모른 채 부모는 이렇게 세월을 보낸다. 아무리 좋은 세상에 살아간다 해도 먼 훗날 내 아이들도 도시락에 깃든 애틋한 정(情)을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며. .. 南 周 熙
첫댓글 도시락은 부모님의 사랑이 뜸북 담긴 종합세트입니다
앳 추억이 새로워 지는군요 잘일고 갑니다
지금 엄마들은 너무 편한것 같아요. 저희는 도시락 반찬걱정이 대단하였지요.
도시락 안싸가는날은 할일이 없는듯할 정도 이었으니까요. 옛 추억이 남에 웃음과
학교 친구들이 그리워집니다. 웃어가며 즐겁게 잘 읽고 갑니다.
엄마가 만든 음식을 자식이 맛있게 먹는것만큼 흐믓한게 또 있을까요~~
옛 시절에 그립던 옛 친구의 모습이 떠 오르게 하네요, 고운글 잘 읽고 갑니다.^^*
도시락의 표현을 겸험을 하지 않은 사람은 표현을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옛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도시락 이야기에 우리들에 지난 추억이 떠오릅니다,
무궁무진한 글에 자주 흔적을 둘 것 같아
글 동행이 감사합니다
도시락 사건은 제게도 좀 있답니다
점심 시간 되기 전에 먹어서
먹다 만 도시락을 들고 운동장 스탠드에 죽 ㅅ서 벌 서던 기억요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다복한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