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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심문
지방노동위원회 심판위원회는 다섯 명으로 구성돼 있다. 가운데 공익위원 세 명, 양옆에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한 명씩. 실제 의결권은 공익위원 세 명에게 있다는 걸 강범은 알고 있었지만, 다섯 쌍의 눈이 동시에 이쪽을 향하는 자리는 언제 앉아도 긴장되었다.
신청인석과 피신청인석은 마주 보지 않는다. 법정과 비슷하게, 다섯 위원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왼쪽에 신청인과 대리인, 오른쪽에 피신청인과 대리인이 나란히 앉게 된다. 이에 따라 그 날의 심문회의는 최서윤과 강범이 왼쪽에, 팀장과 장태주가 오른쪽에 자리했다. 강범은 서류뭉치를 책상 위에 올려둔 후, 고개를 살짝 돌려 오른쪽에 앉은 장태주를 흘깃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장태주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목례했다.
"지금부터 2026부해1044, <브랜뉴미디어> 부당해고구제신청 사건 심문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위원장의 심문회의 개시를 알렸고, 조사관이 위원들 앞에서 사건의 브리핑을 했다. 이어 각 위원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신청인과 피신청인 측은 각자의 논리와 증거를 내세워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함을 피력해 나갔다.
강범은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침착하게 진행했다. 직장내괴롭힘 조사위원회 미구성, 이해충돌 소지가 다분한 인사평가서, 신고와 해고 사이의 시간적 근접성, 노동청의 기소의견 송치 결과까지. 위원장 격인 공익위원이 몇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도 고개를 갸웃하며 메모를 이어갔다. 나쁘지 않은 흐름이었다.
문제는 후반부였다.
"사용자측, 어제 오후에 추가로 제출하신 자료가 있는데, 지금 소명해주시죠." 위원장이 말했다.
"위원장님, 잠시만요."
강범은 그 말에 바로 손을 들었다.
"해당 서류는 심문회의 전날 급작스레 제출되는 바람에, 저는 이 자료를 오늘 아침에야 확인했습니다. 검토하고 반박할 시간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위원장이 장태주를 바라봤다.
"사용자 측, 이 부분 설명하시죠."
장태주가 책상 위의 회의용 마이크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위원장님, 신청인 측에 불편을 드린 점은 사과드립니다. 다만 이 자료는 저희도 어제 늦은 오후에야 최종 확보한 것이라, 부득이하게 임박하여 제출하게 됐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위원장이 잠시 위원들과 짧게 의견을 나눴다.
"이례적인 경우이긴 합니다만,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오늘 함께 다루겠습니다. 신청인 측에는 양해를 구합니다."
강범은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의를 제기해봐야 뒤집힐 가능성은 낮았고, 오히려 위원회 앞에서 불필요하게 날을 세우는 인상만 남길 수 있었다.
장태주는 살짝 심호흡을 한 후 가방에서 몇 장의 서류들을 가방에서 꺼냈다. 전날 제출한 서류들의 사본이었다. 조사관은 이 서류들을 받아, 각 위원들에게 배포했다. 강범도 한 부씩 받았다.
첫 번째는 최서윤의 전 직장, <블룸마케팅>에서의 사내 고충 접수 기록과 퇴직 합의서였다. 2년 전, 유사한 형태의 문제제기 후 거액의 위로금을 받고 퇴사한다는 내용이었다.
강범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이 자료의 존재 가능성은 이미 며칠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소문으로만 짐작했던 걸 회사가 실제 문서로 손에 쥐고 있었다는 사실에 심기가 다소 불편했다.
"위원장님, 이건 정황자료 하나일 뿐입니다. 과거에 유사한 사안을 겪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신고의 허위성을 뒷받침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복해서 이런 상황에 놓였다는 건 신청인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직장내괴롭힘 조사위원회 미구성, 이해충돌 소지가 다분한 평가에 이은 해고라는 명백한 내용적, 절차적 하자가 치유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강범의 반박에는 무리가 없었다. 위원장도 그 점을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태주는 강범의 반박에 크게 반응하지 않고, 대신 두 번째 서류에 관한 진술을 이어나갔다.
"위원장님,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청인 측이 증인으로 세운 회식 참석자 진술서 관련해서입니다."
강범의 신경이 곤두섰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카드였다.
"해당 증인은 신청인과 대학 동문이자, 현재도 사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입니다.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두 사람이 신청인의 신고 시점 전후로 수차례 사적 연락을 주고받았고, 그 내용 중 일부는 진술 내용을 사전에 조율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뭐?'
장태주가 메시지 캡처 화면을 배포했다. 강범이 미처 확보하지 못한 자료였다.
"서윤아. 네가 얘기한대로만 진술하면 되지?"
"응, 그대로만 얘기해주면 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강범은 그 메시지를 읽으며 속으로 침착하려 애썼다.
"위원장님. 이 메시지는 진술 조작의 증거가 아니라, 증인에게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달라고 부탁한 정황으로도 해석 가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적 대화를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에 대한 소명이 없습니다." 강범이 반박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 사건의 쟁점인 '해고의 정당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자료들이었다. 문제는 세 번째였다.
"마지막으로, 이겁니다." 순간 장태주의 목소리의 톤이 다소 낮아졌다.
마지막 자료는 협업 부서 담당자가 작성한 이메일 출력물이었다. 발신인은 팀장이 아니라, 최서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타 부서 매니저였다. 날짜는 지난해 인 2025년 11월. 내용은 프로젝트 일정 지연에 대한 우려와, 향후 협업 시 커뮤니케이션 개선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이 이메일은 신청인의 신고 이전, 작년 11월에 작성된 것입니다. 신고 대상이었던 팀장이 아니라 제3의 부서 담당자가, 신고와 무관한 시점에 신청인의 업무 처리에 우려를 표한 기록입니다. 이는 5월 인사평가서가 신고에 대한 보복으로 사후 조작된 것이 아니라, 신고 이전부터 존재했던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강범은 그 서류를 다시 읽었다. 대질조사에서 강범이 짚었던 지점—'신고 이전 평가 자료가 없다'는 그 허점을, 회사가 정확히 겨냥해서 메워온 것이었다.
"위원장님, 이 이메일은 단순한 협업 과정의 의견 교환으로 보입니다. 공식 평가 문서가 아니고, 징계나 경고로 이어진 기록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이메일 발신자와 신청인 신고 사이의 관계, 발신 경위에 대해서도 검토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중요한 자료들을 왜 이제와서...!"
"신청인 측 대리인, 추가로 소명하실 내용 있습니까."
위원장이 강범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강범은 잠시 숨을 골랐다. 세 개의 자료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들어왔다. 하나는 '신고의 신빙성'을, 하나는 '증인의 신빙성'을,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해고 사유 자체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려는 시도였다. 따로 보면 허술했지만, 세 개가 겹치면 다른 무게가 됐다.
"... 오늘 자리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반박하기 어려운 자료들입니다."
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측 주장, 오늘 다 확인했습니다. 자료의 제출 경위와 출처 문제는 저희가 별도로 검토하겠습니다. 다만 오늘 제시된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하겠습니다. 오늘 심문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판정 결과는 오늘 20시 경 문자로 우선 통지해드리고, 정식 판정서는 추후 송달됩니다."
심문회의가 끝난 뒤 최서윤이 강범을 붙잡았다.
"노무사님! 그 메시지, 정말 그런 뜻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 회사 이메일도, 그냥 일정 조율하다가 나온 얘기였어요. 제 해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압니다. 근데 오늘 자리에서는 그 설명을 뒷받침할 게 없었어요."
강범은 그렇게 답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른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장태주가 이 세 가지를 어떻게 한꺼번에 입수했을까. 그리고 왜 하필 어제 오후, 그 아슬아슬한 시점에야 제출했을까.
강범은 그 날 저녁 8시, 심문 결과 문자가 올 때까지 그 질문들을 안은 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했다.
- 8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