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예찬
숲에 둘러싸여 있다. 그들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들의 지혜를 누리고 싶다,
1. 초록의 숲
숲은 왜 진초록 색조일까. 생명체와 사물의 물감은 반사된 빛의 색깔이다. 나뭇잎은 엽록소로 인해 빛이 바뀐다.
다행히 나무는 모든 빛을 흡수하지 못해 깜깜하지 않다. 엽록소에는 '초록의 틈'이 있어 그대로 반사한다.
운 좋게 우리 눈은 모든 식물을 진초록으로 본다. 초록은 나무가 버린 '빛의 폐기물'이지만 우리에게 아름다운 숲을 만들어 준다. 자연의 지혜로운 섭리이다,
2. 나무의 언어
이른 아침 숲에 닿으면 움트는 내음이 반긴다. 살아 숨 쉬는 방향(芳香)이다.
문득 그들의 언어를 배워 말을 걸어보고 싶다. 한여름 무더위와 한파, 한밤의 외로움은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들에도 오관(五官)이 있을까. 말하는 입과 듣는 귀는 어디일까. 나중에 알았다. 나무의 언어가 향기임을 온몸으로 내뿜는 절규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과 서로에게 위험을 알리는 황급한 신호라는 것을. 피톤치드도 그러하니 생명은 참으로 신비하다.
난 어떤 말과 몸짓으로 향기를 드러낼 수 있을까.
3. 나무의 시간 감각
우리에게는 달력을 넘기면 계절이 바뀌지만 나무와 풀들은 그 변화를 어찌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저 엄청난 기적에 불과한 것일까.
나무는 낮의 길이와 기온의 차이에서 봄을 눈치챈다고 한다. 그들에게도 기억력이 있는 모양이다.
들풀은 따뜻한 날이면 겨울에도 꽃을 피우나 나무 싹은 지난겨울의 추위 강도에 따라 더 빨리, 더 늦게 고개를 내민다. 나무의 시간 감각은 들풀과 우리와도 다르다. 나뭇잎을 떨어뜨리거나 새로 피움도 낮의 길이에 따라 달라진다.
나무의 시간 감각은 자손의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때가 아니면 참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4. 나무 수업
어느 현자의 책으로 나무 수업을 받았다. "숲은 우리집 대문 앞에 남은 마지막 자연이다. 아직 모험을 경험할 수 있고, 비밀을 밝혀낼 수 있는 그런 자연이다."
스위스 연방 헌법에는 "동물, 식물, 다른 유기체를 대할 때는 생명의 존엄성을 유념해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이 땅에서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자연과 생명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 어리석게도 인간은 눈앞의 가치만 우선하기에 스스로 멸망의 길로 재촉하고 있다.
숲을 헐어 길을 내고, 아파트 짓고 온갖 편의시설을 만들며 도시개발사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철학 부재의 어찌할 수 없는 슬픈 풍경이다.
5. 나무 공동체
홀로 서 있는 나무는 그리 오래 살지 못한다. 외로워서일까.
그들은 떼를 이룬다. 서로 맞닿는 우듬지는 혼자 뻗지 않는다. 나란히 자란다. 다른 나무 곁에 있는 가지는 하늘 높이 솟는다.
누군가 위험에 처했을 때 뿌리를 통해 서로 영양분을 주고받는다. 숲을 이루는 공동체의 지혜다. 그들의 뿌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곳은 종족의 역사이자 문화이고 생명 줄이다.
나무로부터 배워야 한다. 아무도 관계의 울타리를 떠나 혼자 푸르게 살 수 없기에.
독일의 저명한 숲 전문가인 페터 볼러벤(Peter Wohlleben)이 쓴 《나무 수업》에는 “활엽수들이 꽃을 피우기 전에 먼저 숲 전체 회의를 거쳐 서로의 뜻을 조율한다. 이듬해 봄에 꽃을 피우려는지, 아니면 1~2년 더 기다리는 것이 나을까? 만일 해마다 꽃을 피우지 않으면 멧돼지와 노루들도 그에 맞추어 새끼의 숫자(출생률)를 조절할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개체 조절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너도밤나무나 도토리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동물들이 이를 너무 많이 먹고 살이 쪄, 더 많은 새끼를 낳게 된다. 악순환이다. 나무들은 자손을 번식할 기회가 없어진다. 이처럼 나무들도 서로 소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무의 언어와 시간 감각 그리고 나무 공동체의 살아가는 모습을 수업받았다. 그들 나름의 개체 조절의 지혜를 예찬(禮讚)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의 개체수에 관한 창조주의 입장은 어떠할까. 그들이 꽃피워내는 대로 열매 맺고 번식한다면 이 땅은 나무들로 인해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창조주는 나무들에 평생 한 그루의 자손만을 허락한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꽃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즐거움을 그들에게 물려 주었을 법하다.
자연의 질서는 이처럼 흐트러짐이 없이, 모든 생명에 공평한 기회를 나누어주는 뜻으로 보인다. 결국, 모든 피조물이 서로 도우며, 서로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며 사는 것이 창조주의 뜻이고 우주와 자연을 조화롭게 순항시키는 섭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