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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마26:31-75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신 말씀입니다. 이때는 예수님의 생애중에 가장 힘들고 절망적인 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먼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각하게 고민하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할 것인가? 아버지의 원대로 할 것인가? 우리도 이런 심각한 선택 앞에서 고민할 수 있습니다. 나의원대로 할 것인가? 아버지의 원대로 할 것인가?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이런 고민앞에서 과감하게 자기의 원을 버리고 아버지의 원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수태고지를 받았을 때 과감하게 주의 여종이오니 주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길 원한다고 하며 아버지의 원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과감하게 아버지의 원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처절한 기도의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나의 원대로 하는 신앙생활의 결과와 아버지의 원대로 하는 신앙생활의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통하여 우리성도님들은 나의 원을 선택하기보다 아버지의 원을 선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나의 원대로 하는 신앙생활은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39b).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인생철학이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병원으로부터 폐결핵을 진단받았습니다. 그는 기침을 하고 미열이 있고 식은땀을 흘립니다. 방사선 촬영결과 심한 결핵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 결핵 환자는 자기의 원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농구도 하고 싶습니다. 술도 마시고 싶습니다. 담배도 피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하고 싶은 것을 거부하고 해야 하는 것을 하고자 분명하게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는 자기의 원대로 하고자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는 이제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친구들이 맥주를 마신다고 자신도 마시고 싶어서 마시고, 농구를 하고 싶다해서 농구를 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면 폐결핵이 악화되어 분명히 망하게 됩니다. 써서 먹기 싫지만 많은 약을 규칙적으로 1년 이상 먹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심한 고통이 있지만 수술을 참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건강한 생명을 찾습니다. 그가 만약 이런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을 고집한다면 그는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의 원대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거기에는 맛있는 과일도 나게 하시며 각종 과일을 임의로 따먹을 수 있는 무한대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단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자기의 뜻을 따를 것인가 하는 귀로에서 그만 자기의 원대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눈은 밝아졌습니다. 선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재앙이 오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이 죽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할 수 없고 숨고 피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육적으로는 몸이 병들어서 흙으로 돌아 가야하는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환경적으로는 땅이 저주를 받아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뜻을 선택함으로서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 살고 있었지만 더 이상 에덴이 아니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우리의 뜻을 따르면 반드시 거기에는 그에 상응하는 형벌이 따릅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역사입니다. 내 뜻대로, 내원대로, 내 하고 싶은대로 살다가 노아시대 사람들은 홍수심판을 당하였습니다. 아브라함시대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성이 불의 심판을 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왕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욕심을 따르다가 결국 길보아산상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도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이 내원대로 살고 내 하고 싶은대로 사는 삶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동성애가 심각합니다. 동성애로 생겨난 에이즈병은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입니다. 백혈구의 혈소판을 완전히 깨뜨려 버리는 병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하고 싶은대로 내원대로 동성연애를 하고 무절제한 성생활로 인하여 인간에게 내려진 대표적인 심판입니다. 에이즈는 중세기 흑사병이라할만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서 창궐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도 감염에 의한 사망률 1위가 에이즈라고 합니다. 내 원대로 살면 당장은 좋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 거역하는 것이므로 각종 질병에 쉽게 노출됩니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각종 심인성 질병에 걸립니다. 불면의 밤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복을 내리시지만 내 하고 싶은대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며 거역하는 자에게는 삼사대까지 형벌을 내리시겠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우리들도 처음에는 자기의 뜻을 고집하였습니다. 기도를 함께 하자고 했을 때도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자고 했을 때도 혼자 성경을 열심히 읽겠다며 자기의 뜻대로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바뀌어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기도도 받고 성경공부도 하자 놀랍게 달라졌습니다. 건강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단잠을 잡니다. 건강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눈물 콧물흘리며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꿀맛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선택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뜻대로 하고자 하는 분들은 자녀들이 잘 안됩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시험에 자주 들리게 됩니다. 자주 옮겨다니게 됩니다. 건강은 나빠집니다.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둘째로 아버지의 원대로 하는 것을 선택하는 신앙생활은 결국 형통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몸을 입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의 원이 아닌 아버지의 원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처음에는 자신의 욕망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갈등하셨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자유롭게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를 것인가 고민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진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도 실제 삶가운데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을 해야 할 경우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육신의 욕망이 하나님의 뜻에 거슬릴 때가 문제가 됩니다. 이때 세상 사람들은 과감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것을 택합니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이런 선택문제에 부딪혔을 때에 쾌락선택본능에 의해서 선택합니다. 자신이 원하고 기뻐하는 것을 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고귀한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동물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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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 위기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피땀 흘리시며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셨고 기도를 통해 놀라운 힘을 덧입었습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극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자기의 뜻을 택하든가 아니면 조용히 소주 한병 들고 한강다리로 향합니다. 요즘은 번개탄 한 장과 소주병두병을 들고 차안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의 싸움을 싸우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혈과 육의 싸움을 싸우지 아니하시고 기도로 영적 싸움을 싸우자 하나님의 뜻을 따를 힘이 생기셨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한 인간으로서 선택문제로 고뇌하시는 예수님의 진실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으신 한 인간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문제로 인해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고민도 안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놓고는 고통스럽고 괴로워하셨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고민하셨던지 죽음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한 인간으로서 이렇게 무서운 고민을 해보셨기 때문에 우리인생들의 모든 고뇌와 고통을 이해하시고 도와주십니다. 히4;15절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내가 겪는 슬픔과 마음의 번민과 고통, 나의 연약함 실패를 잘 아시고 공감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히4;16)
39절을 보면 예수님은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바닥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땅에 얼굴을 대었다는 것은 그만큼 절박했다는 것이요 간절히 매달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내 아버지여” 하며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말씀은 아버지께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잔을 마시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의 고통과 번민을 진실되게 아뢰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고통과 수치와 멸시의 십자가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큰 교회에가서 십자가없이 묻혀서 신앙생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에서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저주스럽게 죽으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뜻을 놓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문제로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가운데서도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기쁘게 하고자 자기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기도를 잘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힘들면 무조건 내 생각대로 합니다. 회피하고자 합니다.
저가 얼마 전에 어떤 분을 보았는데 “내 뜻대로” 해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신앙을 멀리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이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것이요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겠다는 것이 됩니다. 우리 성도님은 그런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원대로 안되었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인본적이요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우리성도님들은 늘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되도 아버지의 뜻이요 안되도 우리가 기도하였기때문에 아버지의 뜻가운데서 이루어졌다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성전의 문지기 같은 자가 되더라도 주님만 존귀하게 되면 기뻐하고 감사하는 신앙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이런 문제 앞에서 강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반드시 시험듭니다. (41)
예수님은 내뜻을 굽히고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어달라고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강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험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시험이 옵니다. 예수님은 얼만큼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와보니 그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깨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간 동안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41)
우리성도님들은 자신이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인정하시고 피땀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자신이 연약한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도를 게을리하였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할 절대적인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마귀의 시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강하고 또 간교합니다. 사단의 시험은 유혹입니다. 이 유혹은 달콤하고 힘이 있어 우리의 힘과 지혜로 이길 수 없습니다. 사단은 으르렁거리는 사자와 같이 사냥할 자를 찾습니다. (벧전5;8) 우리가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사단의 시험에 들어 영적 분별력과 영력을 잃고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둘째로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강하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깨어 기도하게 되면 연약한 육신도 이길 수 있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건강한 사람도 자기 하나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나중에 이 말씀을 깨닫고 기도의 사람이 되었고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
우리성도님들은 신앙생활을 하되 나의 원대로 내 생각대로 내 편한대로 신앙생활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분들은 결국이 안 좋아지게 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해도 나의 원대로 하고 싶은 것을 거부하시고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렵고 괴롭더라도 이 길은 생명의 길이요 형통의 길입니다. 이 고난주간에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본받아 아버지의 뜻이라면 기꺼이 아픔의 길, 고난의 길을 선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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