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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건축과 공간에서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는 책!
당인리발전소에서 대공분실, 아현고가도로를 거쳐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건축과 공간을 통해 시대의 징후를 읽는『건축 멜랑콜리아』. 이 책은 삶의 물리적 배경으로 말없이 존재하는 공간의 심층을 들여다보며, 깊이 있는 읽기와 비평을 시도했다. 저자의 시선에 포착된 공간의 의미는 다층적이다. 건물의 외형, 용도와 기능에서부터 건축과 공간의 기획과 설계 과정, 그것에 투사된 설계자의 의도, 정치적 기획과 상품으로서의 특징, 경제적 고려, 공간 이용자들의 실천을 중심으로 공간이 거쳐온 역사 등 다양한 요소와 이야기를 엮어내었다.
저자소개
저자 : 이세영
연세대 신학과와 같은 대학 사회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2년 《서울신문》에 입사해 사회부, 국제부, 정치부를 거쳤다. 2008년 《한겨레》로 옮긴 뒤에는 문화부 학술담당과 한겨레21부 사회팀장을 지내며 사상, 문학, 건축 등으로 관심 영역을 넓혀왔다. 현재 『한겨레』 정치부 기자로 야당을 출입하고 있다. 노동정치의 위기와 노동계급 2세들의 악마화 메커니즘을 고발한 『차브』를 공역했다.
목차
1. 건축 읽기
서산부인과의원 풍화의 운명 견뎌온 콘크리트 모성
당인리발전소 땅 밑으로 유배 가는 늙은 프로메테우스
남산 자유센터 반공의 이념 앞에 헌정된 정치적 신전
연세대 학생회관 신이여, 혁명이여, 이 도저한 멜랑콜리여
아현고가도로 잠시 서 있는 모든 것을 추모함
세운상가 하늘 아래 새로운 욕망은 없다
성 니콜라스 성당 마르크스가 예견 못한 성과 속의 변증법
용산 국방부 구관 군림하되 한곳만 바라보다
국회의사당 과장된 위엄이 비치는 무능의 석실묘
제주 소라의 성 순치된 스펙터클을 욕망하다
유진상가 비루하고 데데한 유신 건축물의 비애
여의도순복음교회 거룩한 천상의 빵, 신의 이름으로 약속된 세속적 번영
광주시민회관 패배하라, 포에틱 자스티스를 위하여
남영동 대공분실 살인 기계 빚어낸 애국적 판단 중지
고속버스터미널 불균등 발전의 기념비적 표상
마포 도원빌딩 주류 세계를 향한 미완의 인정투쟁
2. 공간 읽기
광화문 지하도 우리는 모두 노숙인이다
종묘공원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노을캠핑장 21세기의 가족로망스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청계천 천변풍경, 견유주의자의 시선
가리봉동 톨레랑스의 윤리학을 넘어서
서울 강남 강남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책을 펴내며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
출판사 서평
당인리발전소에서 대공분실, 아현고가도로를 거쳐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건축과 공간에서 시대의 징후를 읽다!
한국 근현대 건축과 공간을 애도하기
우리는 오늘 하루를 보내며 어떤 건축물과 공간들을 이용하였을까. 일상적으로 수많은 공간을 접하지만, 공간의 의미나 의도, 효과 등을 생각해볼 기회는 많지 않다. 이 책은 삶의 물리적 배경으로 말없이 존재하는 공간의 심층을 들여다보며, 깊이 있는 읽기와 비평을 시도한다. 저자의 시선에 포착된 공간의 의미는 다층적이다. 건물의 외형, 용도와 기능에서부터 건축과 공간의 기획과 설계 과정, 그것에 투사된 설계자의 의도, 정치적 기획과 상품으로서의 특징, 경제적 고려, 공간 이용자들의 실천을 중심으로 공간이 거쳐온 역사 등 다양한 요소와 이야기를 엮어낸다.
이 책은 16개의 건축과 6개의 공간을 다룬다. 그중에는 김중업의 ‘서산부인과의원’, 김수근의 ‘세운상가’처럼 걸출한 건축가의 대표작이나 시대를 대표하는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도 있지만,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름 없는 생활공간, 또는 발전소, 지하도, 도로 등 도시 설비와 인프라에 해당하는 곳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일상 공간들은 저자 특유의 관점과 읽기 방식을 통과해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그 공간들의 목록은 ‘자유센터’, ‘국방부 구관’, ‘국회의사당’, ‘광주시민회관’ 같은 국가ㆍ공공기관의 건축물에서 ‘세운상가’, ‘유진상가’ 등의 상업ㆍ주거 공간, ‘당인리발전소’, ‘아현고가도로’, ‘고속버스터미널’ 등의 현대적 시설, ‘성 니콜라스 성당’, ‘여의도순복음교회’, ‘도원빌딩’ 등의 종교적 건축뿐만 아니라 ‘종묘공원’, ‘가리봉동’, ‘노을캠핑장’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한국의 도시 공간들은 쉴 틈 없이 반복되는 파괴와 건설을 통해 빠르게 변화한다. 그 과정에서 건축물과 장소들은 충분히 기억되지도, 적절한 의미를 획득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망각되지도 못한 어정쩡한 상태로 무너지고, 재개발되어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공간들은 곧잘 시간의 무서운 파괴력과 무상함을 상기시키고, 멜랑콜리의 정조를 발산하며 신경증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 또 건축물과 공간은 특히 한국 근대의 착종적인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데, 이질적인 욕구와 기획의 충돌과 경합, 그리고 빈번한 좌절이 멜랑콜리를 낳았다. 이 책은 이렇게 좌절된 채 남아 있는 도시 공간을 때론 비판적으로, 때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공력을 들여 바라봄으로써 압축적 근대화와 성장 제일주의에 밀려 많은 것을 잃고도 대부분이 슬퍼하지 않았던 도시에 대한 애도 작업을 시도한다.
공간에 새겨진 정치적 무의식
한국에서 가장 정치적인 공간을 만나다!
대개의 건축이나 공간 관련 책들이 통상 건축물의 설계 의도와 설계 과정에 주목하는 것과 달리, 『건축 멜랑콜리아』는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통해 병의 기원을 탐지하듯 건축과 공간을 ‘징후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건축물은 부의 증식을 위한 투자 대상이거나 건축가 고유의 조형 언어로 완성된 예술 작품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풍부한 의미를 담지한 채 능동적 해석을 기다리는 문화 텍스트이자 국가와 자본의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적 매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건축과 공간을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로 꼼꼼히 읽고 분석한다.
국가와 자본의 지배 전략 │ 건축과 장소에서 그것을 기획한 국가와 자본의 의도, 공간에 투영된 권력의 통치 전략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박정희 정권이 세운 여러 정치적 기념비와 유신 시대를 상징하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먼저 건설된 남산의 자유센터를, 저자는 반공주의란 동시대의 이데올로기 그 자체를 기념하는 독특한 ‘정치적 신전’이라 이름 붙인다. 여기에는 위엄과 숭고미가 강조된 건축물을 이용하여 독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국가권력의 전략이 자리하고 있었다. 국가의 이름으로 잔인한 고문이 자행된 남영동 ‘대공분실’의 사례에서는 건물의 내부 구조와 설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사받는 사람에게 공포를 유발하고, 복종하는 신체를 만드는 데 기여했는지를 분석한다.
종로 일대의 슬럼을 2개월 만에 쓸어내고 건설된 대규모 주상복합건물인 세운상가는 네 개의 건물군이 일렬로 늘어서 당시 주변 풍경과 대비를 이루는 압도적 수직성과 육중한 몸체를 구현했다. 개발독재 정권은 근대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집권 명분과 스스로의 치적을 효과적으로 전시하는 매체이자 스펙터클로 이를 이용했다. 한편으로 ‘도시 안의 도시’를 꿈꾼 설계자의 구상과 이상이 애초부터 이윤 논리에 밀리면서 세운상가가 실제 완성된 모습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건축에서 읽어낸 역사의 층위 │ 역사와 시대의 영향 아래 건축물은 지어졌고, 건축물 역시 자신의 역사를 쌓아오며 주변 공간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국회의사당에 애초 계획에 없던 돔 지붕이 의원들의 요구로 추가되는 동안 입법부와 의회민주주의는 군부독재에 의해 그 어느 때보다 무력화되었고, 유진상가는 상가아파트로서는 이례적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서울 요새화 계획’의 일환으로 군사 시설로서의 역할을 떠안게 되었다. 통일교회는 순복음교회가 한국 사회의 경제적 발전 정도에 발맞춰 기복적 신비주의에서 세속적 성공주의로 신앙 담론을 이동한 것과 같은 변화를 감행하지 못했고, 순복음교회가 여의도에 입성하여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하는 동안 마포대교의 바로 입구에서 인정투쟁을 위한 행진을 멈추어야 했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역사적 사건과 흐름을 단순한 배경지식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주 구조에 억지스레 돔을 얹어 권위나 위엄을 과장한 의사당의 외관에서, 보통 상가보다 높은 유진상가의 1층 필로티 공간과 상가 전체의 견고한 철근콘크리트에서,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형상과 풍경에서 그 너머의 맥락과 시대의 열망을 독해하고 있다.
공간 이용자의 욕망, 심성과 실천 │ 저자가 공간을 읽어나가며 주요하게 살피는 것 중 하나가 공간을 실제로 점유하고 이용했던 사람들이 그 속에서 원하고, 느끼고, 상호작용했던 바다. 공간 이용자들의 실천은 공간을 기획한 건축가의 의도나 국가와 자본의 이해를 벗어나 공간의 정체성과 의미, 공간을 지배하는 분위기를 전유하고 바꾸어낸다.
가령 연세대 학생회관은 애초 건축가와 건축주에 의해 종교적 ‘신실성’을 구현하는 곳으로 기획되었지만 학생운동의 성장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졌다. 열사들의 죽음이 사건화되는 현장이었던 학생회관은 실제 공간을 점유하고 사용했던 학생들의 실천에 의해 ‘진정성’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후 학생운동이 쇠퇴한 사이 대학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었고, 학생회관이 상징하는 가치와 정서는 학생들의 욕망과 심성 구조의 변화를 반영, 다시 ‘속물성’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이념의 기념비를 꿈꿨던 자유센터가 냉전 해체와 이념 대결의 쇠퇴를 겪으면서 여러 업체에 임대되고, 과거의 위세를 잃어버린 상황 역시 공간의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이용자들의 활동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이 책은 건축가의 기획을 주로 분석하는 다른 건축 서적들과 달리, 공간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다양한 개인들의 미시적 활동과 집단 무의식을 함께 읽고자 한다. 또한 이런 시도는 이론서, 신문 잡지, 국가기록물, 구술 기록 등 다양한 문헌의 활용, 직접 취재한 내용 등으로 뒷받침돼 책의 서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러한 공간비평의 방식은 곧 문화비평이자 사회비평으로 이어지며, 빙산의 일각처럼 건축의 보이는 것 아래에 존재하는 더 많은 내용들, 공간과 역사를 이해하는 유용한 방식을 제안한다.
김중업이 서산부인과의원 설계에 착수한 1960년대 초는 ‘정치 산술’ 성격의 인구 담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내에서 처음 산아제한에 중점을 둔 ‘가족계획’이 국가 시책으로 도입된 시기였다. 가족계획은 성교와 임신, 출산 같은 개인의 생식 활동에 국가권력을 삼투시키는 통치 테크놀로지라는 점에서, 그것의 국가 시책화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근대 생명관리권력의 특징으로 꼽은 ‘생명 현상의 국유화’가 본격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의미했다. (18쪽)
시장에 취임한 김현옥은 행정의 우선순위를 건설에 두었다. 1966년 시 예산의 10퍼센트에 불과하던 건설 예산을 50퍼센트로 확대했고, 이듬해에는 그 비율을 75퍼센트까지 높였다. 이런 김현옥의 방침은 박정희를 만족시켰다. 1967년 재선을 노리는 박정희에게 수도 서울의 변화된 모습이야말로 자신이 내건 ‘근대화’의 성과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현옥의 눈이 고가도로에 꽂힌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대지 위로 떠올라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뻗어나가는 고가도로야말로 20세기 인류가 꿈꿔온 미래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70쪽)
가동 중인 4, 5호기 서쪽 부지에선 2013년 10월부터 지중화 공사가 한창이다. 새 발전설비를 지하에 묻고, 기존 시설은 화력발전소에서 갤러리로 변신한 영국 테이트모던의 선례를 따라 문화창작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정부 쪽 복안에 따른 것이다. 리모델링안이 발표되자 주변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주민들은 압력단체를 결성해 발전 시설 전체를 서울 밖으로 내보내라는 청원을 냈고, 인접한 아파트 주민들은 발전소 담장을 허물어 아파트 단지와 직접 연결해달라는 민원을 관공서에 제출하기도 했다. 공공시설물을 사실상의 안마당으로 사유화하려는 ‘욕망의 연대’였다. (32쪽)
공중데크와 함께 세운상가의 좌절된 이상주의를 가장 극적으로 표상하는 장치가 ‘공중정원’이다. A지구 5층에 설치된 300~400평 규모의 이 개방 공간에서 김수근은 르코르뷔지에가 위니테의 옥상에서 시도했던 휴식과 놀이, 교류가 공존하는 공동체적 공간을 꿈꿨다. 하지만 이곳은 중심을 욕망한 모더니스트의 이상과 비루한 반주변부적 현실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거리만을 증언할 뿐이다. (89쪽)
전망대에서 식당, 도보여행 사무국으로 용도를 갈음해온 이 건물의 생애사엔 섬이라는 ‘외부’를 전유해온 육지 권력의 욕망과, 제주라는 이질적 공간을 소비해온 패턴의 변천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그것은 이국적 풍광 자체를 소박하게 조망하는 방식에서, 패키지로 먹고 즐기는 포드주의적 위락 관광을 거쳐, 다양화된 취향과 기호에 맞춘 유연화된 스펙터클 소비 형태로의 변화다. (147~149쪽)
통일교의 여의도 진출 좌절기는 유사한 ‘이단’ 시비에 시달렸던 순복음교회가 여의도 입성 뒤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한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 종교학자들은 그 이유를 두 세력의 상반된 시민권 확보 전략에서 찾는다. 순복음교회가 주류 개신교의 교리적 경계를 넘지 않고 19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초기의 기복적 신비주의 대신 세속적 성공주의로 신앙 담론의 중심 이동을 결행한 것과 달리, 통일교는 해외에서의 성공과 안정된 사회경제적 기반에 대한 자신감을 토대로 초기의 종말론적 심령주의 기조를 유지한 채 개신교 교권 세력과 대결적 인정투쟁을 지속한 것이 한국 사회 주류 동맹의 집요하고 강력한 비토를 불렀다는 것이다. (229~230쪽)
첨두아치에 구현됐던 신의 존엄성은 ‘혁명’이란 이상의 지고함으로 간단없이 대체됐다. 수평 결속된 연속 아치에 담아내려 한 인간의 상호의존성은 추상적 인간이 아닌 노동자, 농민이라는 현실 속 인간(민중)과의 연대로 구체화됐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한 건축물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건립 주체의 의지나 의도가 아닌, 그곳을 점유하고 이용하는 자들의 ‘공간적 실천’이란 사실을 건축가와 건축주는 간과했던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식으로 말하면 ‘공간의 의미’는 그것의 ‘용법’과 다름없었다. (58쪽)
‘자유’와 ‘반공’이란 기표의 의미론적 연결 고리가 취약해지고 건축물의 쓰임새마저 바뀌어 버린 지금, 이 건물에서 ‘반공’이란 기표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 건축물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그곳을 점유하고 이용하는 자들의 ‘공간적 실천’이라는 진리가 ‘이념의 기념비’를 욕망했던 콘크리트 관제 건축물에도 고스란히 관철되고 있는 셈이다. (48~49쪽)
일상의 공간들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낯선 공간으로 다가온다!
1960~1970년대의 압축 성장을 추진한 박정희와 불도저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행정가 김현옥의 만남은 아현고가도로, 광화문 지하도 등 여러 입체적인 교통 시설들을 건설함으로써 도시의 이동 속도를 높이고, 발전과 개발을 상징하는 도시경관을 창조했다. 과거 고속버스터미널 호남선의 왜소한 모습과 대규모 상업 시설을 갖춘 경부선 터미널의 화려한 외관의 격차는 지역 차별을 표상하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복개와 복원을 거쳐 오늘날 대표적인 도심 하천으로 자리 잡은 ‘청계천’의 역사, 구체적인 풍경과 여러 구성물에서 집단적 소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여전히 남아 있는 청계고가의 교각은 개발 시대의 영광을 희미하게 상기시키며, 현재의 복원된 청계천을 만든 도시재생의 논리가 패배하게 될 때 청계천이 맞닥뜨릴 미래를 암시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직접 청계천에 대한 추억이나 소망을 그린 타일 벽화는 청계천의 벽면에 걸린 채 사람들이 청계천이라는 인공 자연에 기대하고 소망한 것이 무엇인지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익숙하고 특별할 것 없어 주목하지 못했던 건축물과 공간들은 정치사회적 관점과 역사적 맥락, 건축가와 행정가, 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엮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은 곳이 된다. 일상의 공간을 문득 낯설게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다. 이 낯설게 보기는 결국 지금 이곳을 다시 돌아보고, 현재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건축의 공공성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는 요즘 우리는 긴 시간을 버틴 근대 건축이나 자본의 논리에 따라 선택의 기로에 선 삶의 공간들을 더 많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먹고 자고 살아가는 공간의 운명을 바꾸고 결정짓기 전에 건축과 공간에 중첩된 이야기에 귀기울여보기를 요청한다.
세운상가는 건축물에 반영된 당대의 축적체제와 국가, 자본, 시민사회의 역학 관계 등 역사적 현상태를 ‘온몸으로’ 발언한다. 그 발언의 속기록엔 자기과시, 억압, 무책임성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국가권력의 헤게모니 부재 상황, 근시안적 이윤 추구를 속성으로 하는 동시대 자본의 천민성, 관변 예술가의 좌절된 기술 이상, 시민사회의 불임성 같은 우울한 목록들로 가득하다. 세운상가는 한국 모더니티의 알레고리이자 자서전이다. (97쪽)
건립 주체들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3년의 시차로 들어선 두 고속버스터미널의 극단적 대비는 1970~1980년대 한국 사회의 시공간 압축과 불균등 발전이 그려낸 ‘두 폭 제단화(Diptych)’였다. [……] 그러나 경부선 터미널의 화려했던 시절도 오래가지 못했다. 기념비성이 필요와 기능을 압도한 과시적 건축물의 숙명이었다. (214~215쪽)
오늘날 광화문 지하도는 신자유주의 소비사회에서 작동하는 배제와 추방의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일상화된 배제와 추방의 위험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청소돼야 할 ‘쓰레기들’의 목록에는, 노숙인뿐 아니라 소비사회의 규준과 척도에 미달하는 불행한 개인 누구라도 기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244쪽)
이러한 파괴와 건설의 순환적 반복을 청계천만큼 극명한 형태로 드러내는 공간도 드물다. 천변의 슬럼을 쓸어낸 자리에 들어섰던, 지금은 파괴되어 폐허가 되어버린 청계고가도로와 삼일아파트는 한때 이 변방 국가의 성장 기적과 현대성의 위대한 성취를 드러내는 기념비였다. 그러나 기념비가 탄생한 지 30년도 되기 전, 삼일아파트가 서 있던 황학동엔 33층짜리 초대형 주상복합 여섯 동이 들어섰다. 헌책방과 옷가게, 골동품상이 있던 8~9가에 우후죽순 생겨난 부동산 중개업소는 새로워진 청계천의 영광을 끝장낼 파괴의 씨앗들이기도 했다. (290쪽)
도시는 하나의 기념비다. 그것은 인간에 의한 자연의 정복을 기념하고 과시한다. 기념비로서의 청계천은 이렇듯 자신의 영토 곳곳에 왕조시대의 영락한 기념비와 자본의 시대가 낳은 첨단의 기념비들을 열주처럼 거느리고 있다. 청계천은 기념비에 둘러싸인, 기념비 속의 기념비이자, 기념비들이 상기시키는 다양한 의미들을 관통하면서 그 안에 어떤 일관성을 부여하는 ‘초기념비’인 것이다. (2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