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30분 정시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이 복잡하다. 쓰는 것도 많고 입구에서 스탬프도 받아야 되고, 사진 찍고 지문 채취하고 한참을 힘든 절차 속에 보내고 나서야 출국장에 나왔다.
인도는 데칸 지역을 기준으로 남부와 북부로 구분된다. 데칸은 남쪽 나라를 뜻한다. 나르마다 강 이남의 고원 지대를 말다. 그런데 데칸이라는 말은 실제는 아리인이 사는 북인도에서 그들의 높은 문화에 비해 드라비다인이 사는 남인도의 문화가 낮다는 데서 붙여졌다. 원래 데칸 지역은 통행이 불가능한 밀림 지역이어서 이를 기준으로 남부와 북부는 문화와 관습 및 생활상이 현저하게 달라진다. 북부 아리아인의 문화는 아소카 왕의 남부 진출로 남인도의 맨 끝 타밀 지역까지 늦게나마 알려졌다. 남인도는 데칸 중심지역과 이남의 타밀 지역으로 구분한다. 마우리아 왕조의 통일국가 전까지는 북인도가 아리아인 문화일 때, 남인도는 드라비다인 문화였다. 남인도 타밀 지역은 마우리아와 굽타 왕조 시대에도 독립적이었다. 그들의 문명은 북인도와는 조금 달라도 높은 수준었다. 또한 북인도가 이방인의 유입으로 문화가 변질될 때, 남인도는 선사 시대부터 시작된 드라비다족의 문명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아 고유의 문명을 간직했다. 그리고 드라비다 문명의 남인도 지역은 기원전 1200년경부터 바다를 통해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팔레스타인 지역과 접촉했고 페르시아 만, 홍해, 그리고 인도의 서해안을 연결하는 해상무역을 했다. 남인도는 또한 바다를 통해 태평양의 여러 섬들과도 교류했다. 그로인해 기원 전후로 인도의 문명이 이들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기원전 1세기경에는 남인도와 로마 제국의 해상무역이 매우 왕성했다. 로마 제국은 인도의 향료, 면화, 진주 등을 수입했다. 폰디체리와 케랄라 지역에서 발굴된 유적을 통해 이 지역이 로마 제국이나 지중해 지역과 해상 무역을 하던 기지였음을 알 수 있다. 출토된 화폐와 유물들은 남인도 지역이 높은 수준의 문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인도의 가장 남쪽 타밀 지역에는 촐라, 체라, 판드야의 세 왕국이 존재했다. 그들은 안으로는 드라비다적인 정치 체제를 이룩하고 밖으로는 지중해나 태평양의 여러 섬들과 무역을 통하여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따라서 이 지역은 매우 높은 수준의 경제적인 부를 이루고 있었다. 남인도 지역의 주민은 대부분 아리아인이 아닌 드라비다(타밀)인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 역시 드라비다적인 요소를 강하게 드러냈다. 드라비다인은 주로 토템적인 씨족체제를 구성하고 토템의 상징을 숭배했다. 오늘날에도 나야르족의 뱀 신앙이 있다. 그러나 마우리아 왕조의 통일제국 이후 북인도 아리아인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아소카 왕의 불교 전파 정책으로 힌두이즘보다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늦게서야 힌두교 영향을 받았다. 남인도는 언어와 문화에서 드라비다인의 땅으로 구분되지만, 다른 민족 사람들도 거주하고 현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드라비다 사람도 인도의 다른 지역과 스리랑카, 오세아니아, 동남 아시아, 마다가스카르 등에 널리 거주하고있다. 북인도에는 타지마할, 아그라성, 바라나시 등이 있다. 남인도에도 명소가 많다. 남인도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고, 경제와 교육 수준이 높다. 우리는 남인도를 탐방하며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