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9. 주일 큐티
마가복음 12:1 ~ 12
포도원 농부의 비유
관찰 :
1) 포도원을 맡기고 간 주인
- 1절.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 주님은 다시금 비유를 통하여 설명해 주셨습니다. 전에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의 권위에 대하여 물으신 것에 대하여 답하셨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권위를 질문하는 것을 통하여 그들의 질문을 무위로 만드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등의 종교지도자들이 지금 권위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를 이 비유를 통해서 알려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농부가 아니었습니다. 농부들은 단지 포도원을 맡은 사람들이었을 뿐입니다.
- 2절.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든 이유는 소득을 얻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농부들에게 소출을 받고자 한 행위는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한 종을 보낸 것도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들은 주인의 권위와 주인의 권위를 가지고 그들에게 온 종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게 약속한 소출을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2) 종을 보내는 포도원 주인과 그 종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농부들
- 3절.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 포도원의 농부들은 주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 보낸 종을 심히 때리고 빈 손으로 보내버린 것입니다.
- 4절.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 주인이 다른 종을 보내자 치명적인 상처, 즉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했습니다. 완전히 권위를 무시하고 악독한 짓을 하고 있는 포도원의 농부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 5절.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 포도원의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인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그가 자신들에게 약속된 소출을 원하는 것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고자 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에 대해서 이렇게 악독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개와 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능욕을 당하고, 매 맞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사정과 사실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3) 아들을 보내는 주인과 그 아들을 죽이는 농부들
- 6절.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 포도원의 주인은 이제 아들을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종들에 대해서야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어쩔 수 없다 치고 참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은 자신의 권위와 같은 권위를 가진 존재이기에 아들을 보내면, 농부들이 그의 말은 들을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해 주시고 있습니다.
- 7절.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 포도원 주인의 아들의 권위에 대해서 농부들이 인정해 줄 것에 대한 생각과는 달리 농부들은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그 유산인 포도원을 차지하고자 했습니다. 그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땅의 일부분이 어떤 기간 내에 상속에 대한 요구가 없는, 주인 없는 재산이 될 때에는 그것을 먼저 주장하는 자가 합법적으로 그 땅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작인들은 만약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여 버린다면 포도원을 자기네들이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악독한 간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 8절.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 포도원 농부들은 그러한 악한 의도를 가지고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여서 포도원 밖에 내던져버렸습니다.
4)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 9절.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여 포도원을 차지하고자 하는 농부들에 대해서 주인이 그 농부들을 진멸해 버리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 농부들조차도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농부들의 행위가 명명백백하게 악독한 것이고, 불의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10절.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불의한 농부들이 있는 포도원에 대한 비유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열방의 구원을 위해서 선택하고 말씀을 맡기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거역하고, 거역하자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이 의미를 이 비유를 통해서 이해하자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유업, 곧 자신들만이 선민이 되기 위해서, 이제까지의 종교적인 관습과 행동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흥과 변혁을 거부하고 그 모든 것의 핵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죽이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 11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 주님은 시편 118:22~23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의 완악한 행위를 매우 적나라하게 꼬집어서 지적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결론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곧 교회이고, 교회는 그렇게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곳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12절.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미련하지만 감정은 있고, 자신들의 유익에는 눈을 크게 뜬 자들이기에 무리의 눈을 무서워하여 예수님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밤에 몰래 예수님께 군병들을 동원하여 고발자 가룟 유다를 앞세워서 잡는 치사하고 졸렬한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가르침 :
1) 이 비유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선택, 이스라엘의 예언자 박해, 예수님의 처형, 이스라엘의 멸망과 이방인의 구원 등의 역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과정, 특별히 자신이 말씀하시는 비유대로 이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실 것을 분명히 아시면서도 처연하게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주님은 자신이 포도원 주인의 아들이심을 알았고, 이들이 자신을 잡아 죽일 것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두려워하시지 않은 채 담담히 그 일이 일어날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3) 주님은 예루살렘에 오셔서는 이제 거칠 것 없이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 유대종교지도자들의 잘못을 비유를 통해 적나라하게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뒤에서 숨어서가 아니라 대놓고 그들의 면전에서, 예수님을 책잡으러 온 이들 앞에서 그렇게 행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잡아가지 못하는 이들이 나중에 재판을 통해 더럽고 거짓된 증거를 통해 주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이들은 이렇듯 겁쟁이들이었고,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담대하지 못할 정도로 비겁한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자신을 결코 숨기시지 않으셨으며, 제자들 앞에서 의연하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시기를 두려워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도 종교지도자가 자신의 영리와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거나 주님의 자녀들을 호도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주님이 혹독하게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4)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은 결국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지, 맏아들도 종교지도자도 아닙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는 포지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되, 자신의 유익이 아닌 주님의 결정에 따르는 자입니다.
5) 모퉁이 돌이 되시는 주님. 그렇게 버려졌지만 가장 중요한 삶을 살게 되시는 주님. 우리가 본받아야 할 주님의 모습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지고 버려져서 가장 중요한 것을 떠 바치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에 대한 모범을 주님이 보여주셨습니다.
적용 :
1)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빌미로 이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반응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내 소리만 듣고,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소리도, 어떤 충고나 권면도 듣지 못하고 나의 의견, 나의 판단에만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가장 심각한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소리를 도통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나만 잘났고, 나만 진리라고 생각하는 아집에서 벗어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 이러한 아집이 가득한 것에 대해서 안타깝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대부분의 문제의 본질입니다.
2) 주님이 본을 보이신 모퉁잇돌로서의 삶.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그 건물의 가장 중요한 머릿돌이 된 형식이 주님이 하시는 일이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 언제 어느 상황보다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3) 최수영 선교사님 교회에서 김종구 선교사님 일행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가득한 귀한 예배를 드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