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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반겨준 로키
오종락
로키의 첫눈, 그대는 “새 하얀 눈꽃 트리 천사!” 눈부시게 아름답구나.
먼 하늘나라에서 이곳까지 그 순백한 마음으로 “나를 위로해주려고 왔는가?”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황홀한 눈의 비경, 세상을 온통 눈꽃 트리로 장식하여 나를 반겨 주고 있었다. 그 광경을 하루 온종일 바라보며 달리고 또 달렸다. 나는 동화의 나라에 온 착각마저 들었다. 설경에 취하여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차창 밖 로키의 설경에 빠져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로키는 이렇게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대는 때맞추어 잘 왔소!” “이 순간은 즐기는 자의 몫이요!”라고. 그러면서 눈에 양껏 담아 가라고 넌지시 윙크를 해주는 것만 같았다.
작년 11월, 나는 순백의 첫눈을 이국땅 로키 산맥 입구에서 만났다. 첫눈으로 쌓인 로키의 산하를 며칠간 여기저기 마음껏 누비는 행운을 가졌다. 그로 인해, 난 무한한 위로를 받으며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삼나무 등 다양한 침엽수 군락이 눈을 뒤집어쓴 채 줄지어 서서 끝없이 펼쳐진 그 광경은 나의 뼛속까지 힐링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작년은, 10월 말까지 바쁜 일정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한 번도 가지 못한 채 보내고 있었다. 11월로 접어들자 단골 여행사에서 비수기 프로모션으로 진행하는 캐나다 여행 상품이 나왔다며 전화가 왔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갈망하던 로키 마운틴 상품이었다. 쾌히 승낙하고 5박 7일 일정으로 캐나다 로키 마운틴 여행길에 올랐다. 미국 시애틀 공항에 내려 시내 관광을 하며 몇 시간 머문 뒤 캐나다 국경을 통과하여 1박을 하였다.
2일 차, 캐나다 로키 마운틴 입구에 들어서자 첫눈 소식이 날아왔다. 가이드는 첫눈 치고는 꽤 많이 내리고 있다는 전갈을 받고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날씨가 맑고 쾌청하여 빙판길은 아닐테니 크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도로 상황을 지켜보며 안전 운행하겠노라고 했다. 가이드의 그런 염려와는 달리, 여행객인 나에겐 첫눈을 만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로키 산맥 만년설에다, 첫눈까지 만나게 되다니. 교통만 두절되지 않는다면 금상첨화의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첫눈 소식을 접하는 순간, 아내와 나는 동화나라에 온 소년, 소녀의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로키 산맥의 도로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눈 덮인 도로의 소통은 대체로 원활한 편이었다. 간혹 소형차들이 미끄러져 도로 배수구에 처박힌 모습은 더러 눈에 띄웠다. 버스가 고갯마루 휴게소에 정차할 때마다 차에서 내려 눈 장난을 치기도 하고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며 로키의 설경에 매료되었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나 된 듯이. 부끄러움 같은 것은 오는 길에 푸른 호수에 던져버렸다는 듯이.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눈꽃세상의 환희에 빠지곤 했다. 로키의 청정한 공기를 심호흡하며 가슴 깊이 들이켜 보기도 했다. 예사로운 공기가 아니기에 가슴에 가득 담아 넣고 싶어서였다.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계곡의 눈바람이 내 ‘눈(眼)’속으로 날아들었다. 나는 눈이 시려 눈을 깜빡거렸더니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나는 아내를 불렀다. “내 눈 좀 봐!” 지금 내 눈에서 흐르는 물은, “로키의 눈(雪)물 인가? 아님 감동으로 흐르는 눈(眼)물인가?” 또 눈물은 “무슨 색깔을 띠고 있지?”라고. 아내는 잠시 머뭇거리며 대답이 없었다. 얼마 후, 아내는 아까 가이드가 일러주지 않았어요? 라며 지각 답변을 했다.
가이드는 산맥 초입에서 로키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설명했다. 로키가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띠는 여행 성수기 6월경, 여행을 와서 그 아름다움에 취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저 눈물만 흘릴 때도 있다고 했다. 가령, 버스가 천천히 계곡 달리다 보면, 운이 좋은 날은 에메랄드 작은 호수를 가로질러 엄마 사슴을 따라 힘겹게 헤엄치는 아기 사슴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아름다운 광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말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눈물이 난다고 했다.
사람도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목도할 때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사실을, 로키의 대자연을 통하여 배우게 되었다. 또 그곳 사람들은 곰이 행운을 상징한다고 하여 길에서 마주치면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운이 좋은 날에는 길에서 곰까지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도 그날 아기 사슴 무리는 볼 수 없었으나, 운 좋게도 지나가는 곰은 만날 수 있었다. 잠시 버스를 멈추고 사진을 찍으며 곰을 관찰하기 위해 창밖을 내다보며 좋아하는 사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눈 덮인 산을 내려와 겨울잠을 자기 전 마지막으로 먹이를 찾아 나선 길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우리에게 행운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나온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았다. 계절에 따라 도로에 출몰하는 동물의 종류도 각기 다르다고 했다.
아까 질문에 대한 아내의 답변은, 결국 로키의 첫눈 물과 감동의 눈물이 혼합된 대자연이 선사하는 감동의 눈물이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눈물의 색깔은 말하지는 않았지만, 에메랄드 호수와 눈 덮인 파인트리에서 불어 온 눈바람이므로 연푸른 빛깔일 거라고 나는 상상을 했다.
3.4일 차는, 로키의 보물이라고 불리며 세계 10대 절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그 풍경이 아름다운 레이크 루이스와 에메랄드 호숫가에 내린 첫눈의 광경을 눈에 담아보는 날이었다. 그날 내 눈에다, 얼마나 많은 순백의 눈을 가득 담아 놓았는지, 벌써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그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다. 눈으로 살짝 덮인 레이크 루이스의 푸른 빛깔 호수와 에메랄드 호숫가 첫눈이 덮인 원두막의 풍경, 처마 끝에 기다랗게 주렁주렁 매달린 그 고드름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토록 로키 마운틴과 레이크 루이스, 에메랄드 호수를 생생하게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까닭은 두어 가지 이유가 있다. 그냥 스쳐가면서 구경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보다 입체적인 여행을 하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 아닐까 한다. 이름난 명소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진 포즈를 취해 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그 순간을 즐기기도 했다. 모든 걸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이다. 또 한 가지 다른 이유는, 그곳에 사는 동포가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느낀 바를 시로 쓴 것을 종종 읽은 탓도 있는 것 같다. 시집을 통하여 시인의 심정을 헤아려 보는 시간을 가지며 로키의 풍광도 함께 떠올리곤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로키 밴프로 이동하는 중, 로키 동쪽 기슭의 한 식당에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갔다. 한인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주인은 K시인이었다. K시인은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하여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 주었다. 그 식당의 전문 메뉴는 된장 전골이었다. 많이 드시라며 다정히 대해 주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에 생생하다. 메주는 가깝게 사는 우리 동포가 공급해 준다는 설명도 해 주시며 고국의 음식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된장국 맛이 아주 구수하고 좋다며 격려해 주었다. 카운터에 전시된 시집 한 권을 구입한 후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녀는 고향이 대구 출신이라 더욱 정감이 갔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이곳 캐나다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작은 시집에는 그녀가 그동안 힘들게 살아온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고국의 친지,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저 세상으로 간 부모님과 오빠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또 대자연 로키 마운틴의 아름다움을 한 자 한 자 노래하고 있었다.
레이크 루이스 첫눈의 정취에 넋을 잃은 나는, 즉흥적으로 시 한 소절을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로키와 첫눈의 사랑이 빚여 놓은
수많은 화이트 크리스마스트리들
누군가 촛불 하나만 들고 오면
온 세상은 성탄의 물결로 평화롭네.
레이크 루이스 북쪽 빅토리아 빙하는
병풍처럼 호수 둘레를 감싸고
그대를 고요히 맞이하여 위로하네.
하늘에서 내리는 새 하얀 눈꽃 천사들
밤새도록 소복소복 쌓여만 가네.
K시인의 시집에는 나와 흡사한 느낌을 주는 구절도 있었다. 나는 공감대를 느낀 때문인지, '레이크 루이스' 란 시를 읽으면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레이크 루이스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레이크 루이스》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을 듯
연두색이 신비한 레이크 루이스에
하얀 눈이 내렸습니다.
- 중략 -
수많은 하얀 크리스마스트리들
동화 속에서 보았던
하얀색 왕국이 세워졌습니다.
눈 내리는 하얀 밤에
눈처럼 하얀 그리움이
밤이 새도록 소복소복 쌓입니다.
한 이틀, 설국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설경 속에 묻혀 살았다. 설경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다소 무디어 가는 것만 같았다. 그럴 무렵, 4일 차 아침이 밝았다.
4일 차는, 하늘나라에서 설경을 내려다보는 날이었다. 즉, 헬기를 타고 로키 마운틴을 한 바퀴 돌아보는 코스였다. 아침 일찍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눈 구경을 하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서명부에 사인을 한 것이다. 가이드는, 부부가 헬기 한 대에 같이 탑승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헬기에 나누어 탈 것인지를 물었다. 우리 세 커플은 모두 함께 타기로 결정했다. 우리 헬기는 6인승이었다. 두 커플은 이번 여행에서 만난 우리 동네와 가까운 아파트에 사시는 P선생과 S선생 내외분들이다.
헬기 탑승을 위해 셋집 부부가 나란히 줄을 섰다. 안내원은 헬기에 선탑할 사람을 정하라고 했다.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이신 P선생이 여성분들에게 양보하자고 했다. 나와 S선생도 좋다며 동의했다. 여성이 셋 사람이라 서로 눈치를 살피는 사이, P선생 부인이 자기는 앞좌석에 타는 것이 무섭다며 선탑을 양보하였다. 선탑자로는 선탑을 하고 싶어 하던 두 사람. 아내와 S선생 부인으로 결정되었다.
헬기는 이륙 후 잠깐 사이 눈 덮인 로키의 영봉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하늘에서 사방에 펼쳐진 장엄한 설경을 내려다보며, 한 손으로 동영상을 찍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헬기가 산 정상 부근 암벽 주위를 바짝 붙어 회전할 때는 혹시 프로펠러가 바위에 부딪치기라도 할까 봐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 조종사 옆에 앉은 아내는 콩글리시로 서로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종사도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셀카를 촬영할 때는 다정히 포즈까지 취해 주었다. 헬기가 왔던 길로 고도를 낮추었다. 하늘에서 로키의 설경까지 만끽했으니 이제 더 이상은 눈 구경은 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헬기는 무사히 착륙했다. 우리가 비행한 로키가 저 구름 속에 아련히 보인다. 그 모습은 실로 장엄하고 아름답기가 그지없었다.
여행은 축복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로키의 첫눈과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은 더할 나위 없는 큰 축복이 아닐까 한다. 로키를 떠나온 지도 벌써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12월로 접어들면서 다른 지역의 눈 소식을 들으니, 순백의 로키 첫눈이 다시금 내 가슴에도 쌓이기 시작하는 것만 같다. (17.12.3)
첫댓글 와! 멋진 여행을 하셨습니다. 로키 마운틴의 신비한 설경, 시인이 아니어도 시가 줄줄 나올 것 같은 로키의 아름다운 설경을 리얼하게 전개해가는 선생님의 필치에 함께 여행하는 듯한 환상에 빠집니다. 부럽고 가보고 싶은 좋은 여행지 인것 같습니다.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며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카나다에서 가족과 함께 록키산맥의 멋진 설경을 만끽하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셨군요! 상세한 설명으로 제가 마치 캐나다에 있는 듯합니다. 언제 한번 저도 가보고 싶습니다.
카나다를 갔지만 로키산맥은 일정상 가지 못했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억지로 시간을 쪼개어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천섬, 퀘백주캠벨튼시, 나이가라폭포, 토론토대학,오타와의 국회의사당, 몬트리올에서 노트르담성당,영국과 프랑스가 공존하는 나라라고 설명을 들었습니다.영국이지배한뒤 프랑스는 물러갔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아물합니다.2002년 월드컵 경기를 여행지에서 보았답니다. 외국인들은 경기를 보러오는데 우리는 여행을나갔답니다. 로키의 아름다움을 글로 감상했습니다.
톡키산맥의 아름다운 설경을 잘 묘사해주엇습니다. 덕택에 간접적인 여행을 한 샘입니다. 좋은 여행과 새로운 세계의 알찬 경험을 축하드립니다. 그 감동을 시로 표현했으니 글쓰기 역량이 많이 늘었습니다. 문학수업을 하고 왔군요. 좋은 글 잘 감상 햤습니다.
보지 않아도 보이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누군가 촛불 하나만 들면 온 세상이 성탄의 물결로 평화로운 풍경,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설경은 느끼는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입니다. 순백에서 많은걸 떠올리고 감탄하여 글을읽는독자들도 로키로 안내하고 함께 여행하게 하였습니다. 기회란 언제나 준비된 사람의 것, 고요히 간직하다 글제에 삽입하여 좋은글로 탄생하였습니다. 덕분에 헬기를 타고 설경을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경치. 참 좋은곳. 눈 이야기.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축복 받은 겁니다. 눈 쌓인 록키....더구나 첫눈 내린 록키라니...".누군가 촛불 하나만 들고 오면 " 명시입니다.
서명을 하면서까지 목숨을 걸고 바라보는 설경 스릴이 전해옵니다. 즐겁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