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주장의
허구성과 치명적 함정
李東馥(前 국회의원) 페이스북
전시작전통제권’은 이미 양국이 50대 50으로 ‘공유’하고 있기에 어느 일방에 의한 ‘환수’나 ‘전환’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李在明) 정권이 출범하기 무섭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우려의 대상이 되었던 심각한 문제가 공론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소위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이다. 이 문제는 엉뚱하게도 ‘작전통제권’이 아니라 ‘작전지휘권’이라는 터무니없게 왜곡된 어휘(語彙)로 포장되어서 급기야 마치 ‘국가주권’ 차원의 문제나 되는 것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한미(韓美) 양국간에 실제로 ‘현안’이 되어 있는 문제는 ‘전시(戰時)’ 한국군의 ‘작전통제권(Operational Control)’ 문제이지 ‘작전지휘권(Operational Command)’ 문제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주권’과는 전혀 무관한 순수한 군사작전상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혼선은 크게 두 가지의 엉뚱한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다.
첫 번째의 ‘오해’는 ‘작전지휘권’과 ‘작전통제권’이라는 전혀 상이한 군사용어가 혼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작전지휘권’은 인사, 정보, 작전, 군수, 예산 등 군 통수권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여 군 전반에 대한 ‘통수권’을 의미한다. 따라서 ‘작전지휘권’은 당연히 ‘국가주권’ 차원의 문제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작전통제권’은 ‘전시’의 군사작전 수행에 관한 전술적 차원의 권한을 의미한다. ‘작전통제권’은 ‘국가주권’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한미간에는 1950년 6월25일 북한의 6·25 남침 직후 ‘작전지휘권’ 문제가 야기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6·25 개전(開戰) 초기 한국군이 전면적으로 붕괴되는 상황 속에서 7월4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4호에 의거하여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되자 이승만(李承晩) 댱시 대통령이 극동지역 미군 사령관을 겸하고 있던 맥아더(Douglas MacArthur) <유엔군> 사령관에게 공한(公翰)을 보내서 그에게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일시 ‘이양’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양’되었던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은 1953년 7월27일의 휴전 이후인 1954년 11월 ‘작전통제권’으로 축소하는 내용으로 수정되었고 이같은 수정은 1961년 5월 <국가재건최고회의>와 <유엔군사령부>간에 합의된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군에 대한 유엔군 사령관의 ‘작전통제권’은 공산침략으로부터 한국을 방위하는 데만 행사한다”고 명문화(明文化)되었다.
두 번째의 ‘오해’는 오늘날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작동시키고 있는 ‘한미연합작전(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체제에 대한 터무니없는 몰이해(沒理解)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금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를 거론하여 시비하고 있는 좌파 세력과 이들에 동조하는 종북·반미 세력은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뿐 아니라 ‘전시작전지휘권’을 지금 미군이 장악하고 있다”는 허위 주장을 하면서 이를 근거로 “‘전시작전지휘권’의 ‘환수(Widthdrawal)’ 또는 ‘전환(Transition)’”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같은 주장은 지금 기능하고 있는 ‘한미연합작전’ 체제에 대한 완벽한 무지(無知)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선 우리가 확인해야 할 기초적 사실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가운데서도 ‘전시(戰時)’가 아닌 ‘평시(平時)’의 ‘작전통제권’은 김영삼(金泳三) 정권 때인 1994년 한국에 의해 이미 환수되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한반도에서 ‘전시’가 아닌 ‘평시’에 발생하는 모든 군사 상황에 대해서는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로써 한미간의 현안으로 남아 있는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문제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로 국한되어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 시의 한미 양국군에 대한 ‘작전통제’ 문제는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변화와 진화를 거듭해 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1974년 베트남 전쟁이 월맹의 승리로 종결되고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 카터(Jimmy Carter)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한미 양국 정부는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ROK-US Combined Forces Command)’를 창설하는 과정에서 한미 양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유엔군사령관’으로부터 ‘한미연합사령관’에게로 이양했다.
물론 ‘한미연합사령부’는 미군만의 편제가 아니다. ‘한미연합사령부’ 출범 이후 한미 양국 간에는 양국 국방부장관이 수석대표로 참가하는 ‘안보협력회의(Security Consultative Meetings)’를 중심으로 독특한 ‘연합작전’ 체제가 진화를 거듭해 왔다. ‘한미연합작전’ 체제는 이제 더 이상 한미 양국 중 어느 한 나라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연합작전’ 체제는 동수의 양국 장성급 장교들로 구성되는 ‘군사위원회(Military Commission)’와 양국 국방부장관 중심의 연례 ‘안보협의회’가 ‘이사회(Board Meeting)’ 역할을 수행하고 양국 대통령이 동등한 권한을 공유하는 ‘공동 회장’ 역할을 담당하는 ‘합작회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한미연합작전’ 체제의 집행기관인 ‘한미연합사령부’가 한미 양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은 엄격하게 ‘전시’에 국한되어 있다. 여기서 ‘전시’는 한미 양국 대통령이 한반도의 군사 상황을 5단계의 ’데프콘(DEFCON·방어태세)’ 중 3단계로 격상시킨 이후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데프콘 3단계’로의 격상 여부도 양국 대통령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느 한 대통령이 거부하면 실행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은 이미 이처럼 양국이 50대 50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어느 일방에 의한 ‘환수’나 ‘전환’의 대상이 아니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미연합사’의 사령관이 고정적으로 미군 4성 장군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가 인식해야 할 특이한 상황이 있다. 그것은 한반도에서 본격적인 전쟁 상황이 발발하여 ‘데프콘’이 3단계로 격상된 이후의 군사 상황이다. 이 경우 한미 양국군은 ‘작전계획 5027’에 의거하여 통합된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물론 ‘작계 5027’의 내용은 그동안 상황에 대한 재평가를 통하여 계속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에 의하면, 한미 양국군은 전쟁이 재발할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전술적 후퇴를 통하여 북한군의 지상 공간으로의 노출을 유도한 뒤 한미 양국의 기존 육해공군 화력으로 북한군 병력과 장비의 철저한 소모를 강요하고 그동안에 미국 본토로부터 추가로 투입되는 대대적인 병력과 장비를 이용하여 북한 지역으로의 역공(逆攻)을 전개하게 되어 있다.
‘작계 5027’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 신형 첨단 무기체제로 무장된 69만 명의 지상 병력과 5척 이상의 항공모함 전단, 그리고 160여 척의 해군 함정 및 1,600여 대의 각종 전폭기(戰爆機)와 미사일 등 유도무기를 비롯한 첨단적 군사자산을 한반도로 투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이같이 한반도에 투입되는 미군의 군사자산 가운데는 한국군에게 생소한 첨단장비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한국군 지휘관에게는 이에 대한 지휘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이 발발하면, 통합작전상의 필요 때문에, 그것이 ‘유엔군’의 형태가 될 것인지 아니면 ‘한미연합군’의 형태가 될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한국군을 포함하여 한미 연합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미군 장성이 장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지금, 세계 도처에서 유엔 깃발을 사용하거나 아니거나를 불문하고 미군이 참가하여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국제연합군’의 사령관은 미군 장성이 맡는 것이 국제적으로 관례화되어 있는 사실이다. 미군 4성 장군이 사령관직을 맡고 있는 것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경우는 그 대표적 사례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될 때 한미 양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사령관을 한국군 장성으로 임명하겠다는 것은 바꾸어 말한다면 미군의 참전을 거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이재명 정권에서 통일부 등 대북정책 부서를 맡는 인사들은 물론 정치권의 <더불어민주당>쪽 인사들이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 또는 ‘전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북한 김정은(金正恩)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서 북한과 중국의 전통적 '주한미군 철수' 요구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이적행위(利敵行爲)를 자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부터 80년이 지난 오늘날의 국제안보정세는 유럽의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사이에 두고 미소(美蘇)가 대결했던 양극적(兩極的) 냉전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지금은 중국이 새로이 초강대국의 반열에 참여하고 중동(中東)의 정세가 복잡다단해지는 가운데 지구의 전역(戰域)이 다역화(多域化)되고 있어서 주한미군의 임무에도 종래의 북한 일변도(一邊倒)에 가변성(可變性)을 추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변화의 시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시기에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 행사를 고집한다는 것은 비록 북한과 중국의 일관된 한미 이간 전략에 농락당하는 데 이르지는 않을지라도 작전 수행에 필수적인 한미 양국군에 대한 통합적 ‘작전통제’를 거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의 의도가 미군의 참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치명적 함정을 설치하는데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원래, 1953년 6·25 전쟁의 휴전을 앞두고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누적된 전쟁 피로로 전장(戰場) 이탈을 서두르는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유도하면서 “유사시 미군 자동 개입” 조항이 누락된 조약의 취약점을 “주한미군 2개 사단 무기한 잔류”와 유사시 미군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주한미군의 ‘인계철선(Trip-wire)’ 배치”로 보완하는 뛰어난 외교 역량을 발휘했다는 것이 역사가 가르치는 귀중한 교훈이다.
이때 미군의 “전시 자동개입”을 확보한 “‘인계철선’ 배치” 개념이 뒷날 ‘한미연합작전’ 체제의 진화를 통하여 ‘평시’ 한국군 ‘작전통제권’의 ‘환수’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전시’ 한국군 ‘작전통제권’도 ‘한미연합사령부’를 통하여 한미 양국이 동등하게 ‘공유’하게 되는 내용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또는 작전지휘권) 환수”라는 조작된 허구(虛構)를 가지고 북한과 중국 공산주의자들의 ‘주구(走狗)’와 ‘전위(前衛)’ 노릇을 자임하는 자들의 선전·선동에 농락되어서 이같은 소중한 역사적 성취를 박살내는 일이 없도록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내는 것이 오늘날 현명한 국민들 앞에 제기되어 있는 국가적 당면 과제이다. [艮齋 李東馥]
2025-08-08, 1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