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주에 최저운임 강제않고, ‘번호판 장사’ 화물 지입제 손본다
화물차 안전운임제 개편 방안
18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대회의실에서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 주최로 열린 화물운송시장 정상화 방안 공청회에서 화물연대 관계자들이 ‘안전운임제 지속 법안 즉각 통과’ 등의 피켓을 들고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일부 참석자는 고성을 지르거나 욕설을 하면서 토론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안철민 기자
“화물운송시장 정상화 안전운임제가 답이다. 경청 없는 공청회를 규탄한다!”
18일 오후 3시 서울 중구에서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 주최로 열린 ‘화물운송시장 정상화 방안’ 공청회장.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이 같은 내용이 쓰인 팻말을 들고 정부가 제시한 표준운임제 도입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의 강도 높은 발언이 쏟아지며 토론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일부 운송사업자도 “운송사가 봉이냐?”는 팻말을 들고 반대했다.
이날 공청회의 핵심은 지난해 12월 말 일몰된 화물차 안전운임제 개편 방안이었다. 지난해 16일간 이어진 화물연대 총파업에서 화물운송 구조의 문제점이 드러난 만큼 이를 근본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기사에게 적정 수준의 임금을 보장해 과로·과속·과적을 방지하기 위해 2020년 3년 일몰제로 도입됐지만, 정부는 안전운임제 성과가 불분명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표준운임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공청회에서는 표준운임제를 2025년까지 3년 일몰로 한시 시행해보고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안전운임제처럼 컨테이너와 시멘트에 한해 적용한다. 표준운임제는 운송사가 화물차 기사에게 지급하는 운임은 기존대로 표준운임을 정해 강제한다. 다만 기사 소득이 적정 수준에 도달하면 강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화주가 운송사업자에게 지급하는 운임은 ‘가이드라인’을 주되 협의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했다.
처벌 조항도 완화된다. 표준운임제에서는 운송사나 화주가 화물차 기사에게 줘야 할 강제 운임 규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 후 단계적으로 제재한다. 특히 화주가 운송사에 내는 운임은 강제성이 없어 차주가 기사들과 직접 계약하지 않는 한 화주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현재는 화주가 운송사에 주는 운임과 운송사가 화물차 기사에게 지급하는 운임 모두 규정과 다르면 화주와 운송사 모두 500만 원 이하 과태료 등 처벌 대상이 됐다.
소위 ‘번호판 장사’로 불리는 화물 위·수탁제(지입제) 개선 방안도 나왔다. 지입제는 운송사에 개인 소유 차량을 등록해 일감을 받아 일한 뒤 보수를 지급받는 제도다. 화물차 운송면허 신규 발급이 제한돼 지입 전문 회사들이 화물차 기사들에게 번호판만 빌려주고 사용료를 챙기거나 지입 계약 체결 시 기사가 지급한 1000만∼2000만 원 수준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다단계 화물운송 단계를 개선하면 화물차 기사의 소득이 더 보장될 거라는 게 정부 판단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국가가 조장한 불로소득의 끝판왕이 화물차 번호판”이라며 “민노총 간부들이 100개씩 갖고 장사하는 상황을 끝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동시에 정부가 면허를 제한하는 화물차 수급을 유연하게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운송사가 차량이나 운전자를 직접 관리하면 신규 증차를 허용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번 안에 화물차 기사는 물론 운송사들도 반발해 정부안이 도입될지는 미지수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박연수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은 “(공청회 안에는) 화물운송 산업에서 가장 큰 이윤을 얻는 대기업 화주의 책임이 삭제됐다”며 “정부가 대기업 화주는 놔두고 운송사와 차주에게만 칼날을 돌렸다”고 했다. 최진하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상무는 “안전운임제는 대기업 화주의 우월적 지위로 불거진 무한경쟁으로 저가 운임이 고착화되며 도입된 것”이라며 “안전운임제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 개편안은 기업과 기업 간 거래는 규제하지 않고 기업과 화물차 기사 간 거래만 규제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명예교수는 “표준운임제를 도입하려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화물연대와 일부 운송사의 반발이 크고 더불어민주당도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라 진통이 클 것”이라고 했다.
송진호 기자, 정순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