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섬을 담다
김정순
밭 한가운데
검은 화산암 돌무덤이 낮게 누워 있다
햇살에 달궈진 돌은 숨을 고르며 식는다
흙먼지와 바람이 그 위를 덮고 지나간다
동백나무 그림자가 돌위에 기웃거린다
이끼는 틈새마다 초록의 숨을 심고
꽃씨 바람결에 실려
돌의 이마에 닿는다
흙을 덮던 손은 사라지고
남은 건 바람의 손길뿐이다
상여의 발자국이 밭의 골로 흘러 들었다
돌은 오래도록 말을 아낀다
그 침묵이 이 섬의 오래된 위로다
비가 오면 돌은 물을 품고
해가 뜨면 그 물을 흘려보낸다
그건 울음이 아니라
흙이 숨을 쉬는 법이다
무덤 가장자리에는
돌담처럼 쌓인 돌 몇 개와
허리를 굽힌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누군가 매듭을 짓고 간 흰천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린다
바람 잔잔한 밤
마지막 해녀의 곡조는 멈췄어도
절의 풍경소리엔 잔향만 울린다
대신 돌들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바람이 남는다.”
해 질 무렵
붉게 익은 흙이 돌을 물들이면
무덤은 잠시 눈을 감는다
그 순간
돌과 흙과 나무의 그림자가 한몸이 된다
돌무덤이 천천히 숨을 쉰다
2025년 김포글샘 27페이지
[작가소개]
김정순 시인은, 김포문인협회 회원, 현김포문인협회 사무국장, 김포문예대학 26기수료, 켈리그라피로도 활동 중이다
[시향]
처음 제주도를 찾았을 때, 밭 한가운데 자리한 무덤들이 낯설고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생각해보니,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채 함께 머무는 풍경 또한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시 「쉼, 섬을 담다」는 제주의 돌무덤을 통해 죽음 이후의 세계를 소멸이 아닌 순환으로 그려낸다. 돌·흙·바람 같은 자연물에 생명성을 부여하며 인간의 부재를 고요히 받아들이고, “침묵”과 “호흡”의 이미지로 오래된 위로를 빚어낸다. 특히 눈물마저 자연의 숨결로 스며들게 하는 표현은 애도를 한층 부드러운 감각으로 이끈다. 결국 이 시는 사라짐 이후에도 이어지는 존재의 흐름을, 자연의 리듬 속에서 잔잔하게 전하고 있다.
글: 신혜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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