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누워서 돈 번다’는 철밥통 직장인도 보따리 싸는 이유

[스프링]

‘한 번 입사하면 나오는 일이 거의 없다’ ‘누워서 돈 버는 직업이다’ 중국에서도 대표적인 ‘철밥통’ 직업으로 통하는 은행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해야 하는 업무는 많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이고 고소득에다 복지혜택도 많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금리를 자유화하는 정책을 발표한 이후 상황이 확 달라지고 있다. 금리 제한을 폐지하자 기다렸다는 듯 인터넷 등 새로운 금융 플랫폼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금융권에도 이른바 경쟁원리가 도입되면서 높은 보수와 좋은 대우를 제시하는 새로운 인력시장도 형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철밥통’ 금융권에 때 아닌 이직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광다(光大)은행 자원관리부분 총경리(사장)였던 장쉬양(张旭阳)이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업체인 바이두로 자리를 옮겨 뉴스가 됐다. 이에 앞서 중국 건설은행 인터넷금융부문 총경리였던 황하오(黄浩)도 알리바바 계열 금융회사인 마이진푸(蚂蚁金服)그룹으로 옮겨 갔다.

중국 공식 발표 자료인 은행공고에 따르면 금리자유화가 있었던 지난해 하반기 이후 올 6월 말까지 이른바 은행장 부행장 이사 감사 등 고위직에 있다가 이직한 인사가 60명에 달중간 관리자급으로 내려 가면 이직 바람은 더 심하다. 한 국영은행 자회사 부 지점장인 우리(吴丽)씨는 “올 들어 철밥통을 깨고 나가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며 자기가 근무하는 지점의 경우에도 30명 직원 가운데 거의 절반이 떠났다고 말한다.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즈진부추(只进不出)’라는 별명을 가진 중국 은행권의 이직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고위층의 경우는 더 좋은 대우를 해 주는 직장을 찾아가는 케이스. 반면 중하위층은 관치로 얼룩진 기존 은행의 발전 가능성이 높지 않은 데다 최근 경기부진으로 부실채권이 많아지면서 업무 스트레스도 높아진 데 따른 이직이 많다.

쩡강(曾刚) 사회과학원 은행연구실 주임은 “은행원 이직 열기는 중국 금리자유화가 진행되면서 극심해진 경쟁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진단한다. 중국에서는 기업이 부도가 나면 바로 은행 부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달 중순에는 산시(山西)성 창즈(长治)에 있는 장쩌(漳泽)농상은행이 공개적으로 직원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일이 언론에 보도됐다. 사건 배경은 최근 몇 년 간 농상은행의 업무 실적이 나빠지면서 가중된 부실 압력을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기업 부실이 은행으로 전가되면 은행은 일단 직원들에게 부실을 전가시키기 마련이다.

한 주식제 은행의 저장(浙江)성 지역의 지점에서 법무담당으로 일하는 왕하오보(王浩博)씨에 따르면 2013년에 7-8건에 불과했던 불량 대출이 그 이듬해는 60-70건으로 늘더니 2015년에는 100건으로 늘었다고 한다. 그는 “지점 차원에서 법무 팀을 보강하고 늘어나는 소송을 감당해나가고 있다”고 밝힌다.

중국기업의 불량 채권 문제가 은행의 부실로 이어질 만큼 심각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중국의 은행감독기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현재 중국은행들의 불량채권은 2조1000억 위안(약 357조 원) 규모다. 불량 대출 비율은 2.04%로 위험 수위라고 일컬어지는 2%선을 이미 넘어섰다.

이 가운데서도 상업 은행의 불량 채권 비율은 11분기 째 상승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또 4대 국유은행 가운데 농업은행은 지난해 불량비율이 2.29%이다. 불량률 증가 속도는 전년 대비 70% 이상이다.

농업은행 외에 나머지 3개 은행도 불량채권이 전년에 비해 30%이상 늘었다. 중국의 국유은행이나 주식제 은행의 불량 채권 비율은 1.4%에서 1.7% 사이다. 문제는 증가율인데 중신(中信)은행의 경우 10%나 증가했고 자오상(招商)은행이나 광다(光大)은행의 증가율은 30%를 넘는다.

은행 불량채권의 발생지는 기업의 과잉 생산이다. 최근 중국정부가 공급 측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은행의 불량채권은 갈수록 늘어나는 형국이다.

불량채권 비율이 높아지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이 은행 내부에서도 수신을 담당하는 부서다. 저장(浙江)성에 있는 은행 지점의 예금부장인 리우니(刘妮)씨는 “담당하는 14곳 거래업체 가운데 5곳이 불량 채권으로 어려움에 처했다”며 이 중 3개는 법원에서 청산절차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나머지 2 곳은 3개월 마다 이자를 내도록 조치한 상태인데 한 달에 한 번씩 이자를 내는 은행에서 3개월에도 결재 못하면 바로 불량채권이 된다는 말이다. 그는 “기업들로서도 열심히 타개해나가려 애쓰고 있지만 은행지점 차원의 불량률은 매년 10%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쉰다.

기업의 불량채권 비율은 직원 월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리우씨는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경기가 좋았을 당시에는 연봉이 40만 위안(6800만원)이었지만 작년의 경우 세전 2만 위안으로 절반이나 깎였다. 여기에다 은행 내규에 따라 불량채권 심사 후에 벌금도 부과된다. 지난해 불량채권으로 부과 받은 벌금은 4만 위안 인데 그나마 대출 책임자는 아니어서 적게 받은 경우다

내규에 따르면 불량채권으로 법원에서 판결이 나면 공매를 거쳐 보전을 받는데 이 과정에서 중간 간부들이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 했는지도 판단한다. 책임에 따라서는 천분의 일에서 백분의 얼마 사이의 벌금을 물 수도 있다. 직원들이 퇴직을 바로 하고 싶어도 이처럼 사후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늦어지기도 한다.

주택을 구입하면 보조를 해주고 명절에는 두둑한 상여금을 주는 등 복지 혜택이 말도 못하게 많아서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몇 년 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업적이 곤두박질치면서 복지 혜택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연 5일 휴가 때 3000-4000위안 씩 주던 휴가비는 1000위안 수준으로 줄었다.

불량 채권으로 은행 순익이 줄어드는 데다 경기 침체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여기에다 금리 자유화로 경쟁은 치열해진 상황을 맞으면서 은행의 좋은 시절은 끝이 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올 법 하다. 

내로라하는 대형 은행들도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는 마찬가지다. A주 시장과 홍콩 H주 시장에 상장된 18개 대형은행 가운데 4개 국유은행의 순익증가율은 지난해 1% 이하에 머물렀다. 순익 증가 속도를 보면 전년에 비해 마이너스 90% 이상이다. 교통은행의 경우 순익 증가율이 1.03% 이지만 전년과 비교하면 80%나 감소한 수치다.

6개 주식제 은행의 평균 순익증가율은 4.21%인데 2014년의 9.74%에 비해 반 토막 난 상태다. 다만 7개 도시 상업은행은 여전히 26.6%라는 양호한 순익 증가율을 자랑하고 있다.

순익은 불량채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오시쥔(赵锡军) 인민은행 재정금융대학 부학장은 “일반적으로 불량채권은 은행내부에서 대손 상각하는데 이는 순익 감소를 의미한다”며 불량채권이 증가하면 할수록 중국은행의 순익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관치의 그늘에서 성장한 전통적인 국유은행의 경우 영업기반이 약화된 것은 물론 2015년에는 중앙기업의 고위층 연봉 상한제로 타격을 받는다.

이후이만(易会满)공상은행장의 경우 연봉이 108만9000 위안에서 54만6800위안으로 반 토막 났고 전스칭(陈四清) 중국은행장도 108만3200위안 받다가 61만3300위안으로 43.48%나 줄어들었다. 펑춘(彭纯) 교통은행장은 2014년 세전 순보수가 100만7600위안이었는데 지난해에는 52만5700만 위안으로 47.83%나 깎였다. 금융권 고위층이 무더기로 은행을 떠나도록 한 원인인 셈이다.

이들을 받아 준 곳은 다름 아닌 인터넷 은행과 민영 은행이다. 알리바바 바이두 텅쉰등 중국 대표 인터넷 기업들이 인터넷 금융에 뛰어들면서 기존 은행의 수익기반을 송두리 채 바꿔놓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알리바바 출신들이 세운 마이진푸(蚂蚁金服)를 비롯해서 바이두진룽(百度金融) 징둥진룽(京东金融) 수닝진룽(和苏宁金融) 등 이다.중국의 인터넷 금융은 미국의 금융과기공사에서 하는 핀테크(FinTech) 와는 달리 대형화가 특징이다. 규모가 크다 보니 금융 전문가도 필요하고 위험을 막아 줄 고위층 영입에도 적극 나서는 형국이다.

흥업은행 행장이었던 리런제(李仁杰)는 루진수어(陆金所)라는 금융회사 회장으로 옮겼고 중국은행 전 부행장인 왕융리(王永利)는 인터넷TV인 러스(乐视)에 부총재로 갔다. 

또 화샤(华夏)은행 부행장 출신 황진라오(黄金老)는 쑤닝윈상(苏宁云商) 부총재로 자리를 옮겼고 스탠더드차타드 중국본부 부행장을 지낸 뤄룽샹(罗龙翔)이나 HSBC 은행의 법률 고문이었던 저우리리(周莉莉)등도 인터넷 은행으로 옮겨갔다.

중국증권일보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 자리를 옮긴 은행권 고위층 49명 가운데 12명은 인터넷은행으로 갔고 12명은 인터넷 금융플랫폼에 둥지를 튼다. 나머지 23명은 P2P 플랫폼으로 갔고 기타 인터넷금융회사로 간 사람은 2명이다.

금리자유화와 인터넷 은행의 출현에 따른 치열한 영업 경쟁 등으로 중국 금융업 상황이 예전과는 확 달라지고 있다. 중국 은행들도 이제 앉아서 장사하던 좋은 시절이 지나간 듯 한 느낌이다.

현문학 매일경제 영남 취재 본부장 m_hy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