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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1월 29일
반달곰 17년 만에 지리산에서 발견 어미 반달가슴곰이 사육장을 벗어나 새끼를 낳은 뒤 지리산에서 어린 곰과 함께 나무를 타고 있다.
국내에서 야생 반달곰의 실체가 확인된 것은 1983년 설악산에서 총에 맞은 상태
로 발견된 뒤 처음이다.
진주MBC는 이날 “지리산에 설치한 무인 카메라에 야생으로 추정되는 반달가슴곰이 샘에서 물을 마시는 장면이 3차례에 걸쳐 약 30초간 촬영됐다”고 밝혔다.
진주MBC는 “지리산에서 곰을 봤다는 주민 제보를 받고 1998년부터 센서를 장착한 무인 디지털 카메라를 등산로에서 떨어진 숲속에 설치, 촬영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국립환경연구원은 “머리와 몸통, 행동
거지로 미뤄 10~15살쯤 된 야생 반달
가슴곰으로 추정된다”며 “몸 길이는 1m
50cm, 체중은 180kg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밀렵꾼들로부터 반달곰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단속에 나섰다.
▶2010년 미국 하원 아태(亞太)소위원장
출신 스티븐 솔라즈 전 의원 별세
▶2004년 김춘수 시인 별세
‘꽃의 시인’이자 ‘무의미(無意味)의 시인’으로 불려온 대여(大餘) 김춘수(金春洙·향년 82세) 시인은 광복과 함께 경남 충무에서 유치환·윤이상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어 문화운동을 전개했다. 1946년 동인지 ‘노만파’를 발간했으며,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간행하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구름과 장미’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남천’ ‘비에 젖은 달’ ‘처용 단장’ ‘서서 잠자는 숲’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의자와 계단’ ‘거울 속의 천사’ ‘쉰한 편의 비가’ 등, 시론집으로 ‘한국 근대시형태론’ ‘의미와 무의미’ ‘시의 위상’ 등이 있다.
▶2001년‘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 사망
세상을 뒤흔들었던 영국 출신의 팝 그룹 ‘비틀즈’ 멤버 조지 해리슨이 2001년 11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친구 집에서 사망했다. 영원히 청년으로 기억될 그의 나이는 58세. 후두암 투병 끝의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모국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큰 슬픔을 표했다. 1943년 영국 리버풀에서 선원의 아들로 태어난 해리슨은 1958년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첫 그룹인 ‘더 쿼리 멘’에 합류하면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1960년 ‘비틀즈’ 창립 멤버가 됐다. 그는 개성강한 ‘비틀즈’ 멤버 가운데서도 가장 선량한 인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0년 경주 역사유적 지구와 고창-
화순-강화 고인돌유적,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
▶1996년 한국-멕시코,
범죄인인도협정 체결
▶ 1996년 오늘,한국 상징 10개 선정! 한글, 한복, 김치, 불고기 등
▶1995년 전두환 전대통령, 합천서
검찰수사관에 의해 구속 집행.
.. 안양교도소 수감
▶1995년 임권택 감독의
. ‘서편제’ 프랑스 개봉
서편제의 한 장면
임권택 감독의 히트작 서편제가 1995년 11월 29일 프랑스 파리의 상업 영화관 2곳에서 처음으로 개봉돼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서편제는 프랑스 영화배급업체인 필름 드 파라독스사가 수입했으며 ‘판소리의 여가수’ 란 제목으로 번역됐다.
르 '피가로지'는 ‘눈먼 목소리’ 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주인공이 장님이 되는 과정과 그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한국 영화의 거장 임권택은 전통 오페라를 부르는 젊은 여가수의 비극적 인생을 그리면서 자신을 서방세계에 알리고 있다” 고 평했다. 또 “미학적 스타일, 강력한 언어, 자연에 기초한 주제 등을 가진 임 감독이 국경 밖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영화의 대가가 되고자 자임했다” 고 평했다.
서편제는 2대에 걸친 소리꾼의 애환을 그린 한국영화로 제31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작품상·감독상·촬영상·남우주연상 등 6개 부분을 수상했고, 1993년 제1회 상하이영화제에서 감독상·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95년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구속
▶1994년 서울천년 타임캡슐,
남산골 공원에 매설
조선조 태조 이성계가 1394년 서울을 수도로 정한지 꼭 6백년째 되는 1994년 11월 29일, 타임캡슐이 서울 남산골공원에 매설됐다. 타임캡슐에는 4백년뒤 후손들에게 서울의 현재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볍씨, 버스토큰, 우황청심환, 조선일보 등 6백점의 수장품이 담겨졌다. 보신각종을 본 뜬 타임캡슐은 1천여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영삼 대통령, 최병렬 시장, 모범근로자 등 10명이 하강버튼을 누르자, 3분여에 걸쳐 묻히며 4백년간의 긴 시간여행에 들어갔다.
▶ 1994년 서울천도 600주년
"1994년 11월 29일은 서울로 수도를 옮긴지 6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조선조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1394년 9월 27일(음력 8월 24일)도평의사사의 상신(上申)에 따라 한양을 수도로 정하였고, 1394년 11월 29일 (음력 10월 28일)한양에 입성하였습니다.
오늘날 서울은 우리나라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중심도시로서 자리잡기 위한 기능과 역할을 재점검하고 21세기의 국제도시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서울천도 600주년을 맞아 서울특별시에서는 10월 28일을 서울 시민의 날로 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탄생'이라는 주제하에 시민정신, 환경, 문화 기반을 다져 나가는 서울600년 사업을 계획하여 '서울뿌리찾기', '서울모습다듬기', '문화진흥과 시민화합', '국제화ㆍ미래화의' 4개 실천적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1994년 서봉수 9단, 국내 첫 1000승
▶1994년 최명길, 프랑스 낭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수상
▶1990년 제1차 남북체육회담 개최
▶1989년 한국-소련 영사관계 수립 합의
▶1989년 루마니아의 체조요정 코마네치
헝가리로 망명
▶1987년 KAL 858기 폭파사건
1987년 오늘,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KAL) 858기가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비행기에는 중동 지역에서 일하던 한국 근로자 등 승객과 승무원 115명이 타고 있었다.
실종 며칠 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이를 북한특수 공작원 '김현희'에 의한 '폭탄테러'라고 발표했다. 바그다드에서 탑승한 김현희가 공범과 함께 기내에 시한 장치가 설치된 ‘라디오 폭탄’을 두고 아부다비에서 내렸다는 것이었다.
국가안전기획부는 김현희를 체포, 12월15일 국내로 압송해 왔다. 김현희는 이듬해 1월 중순 TV에 나타나 “북한의 지령을 받고 88올림픽을 방해하고 남한 내 계급투쟁을 촉발할 목적으로 KAL기를 폭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이 같은 정부의 발표에 대해 유가족 등은 지금껏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고기 잔해에서 화약 잔재 등 폭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모든 수사 결과는 김현희의 자백에 의해 이뤄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김현희가 제14대 대통령 선거 전날 서울에와 선거에 크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의혹이 더욱 커졌다.<노태우 승리>
이에 대해 당시 수사진은 “김현희의 진술로 일본어 교사였던 일본인 이은혜 납치 사건이 확인되는 등 사건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여러 가지 의문점을 밝히기 위해 이 사건을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상규명 사안’의 하나로 선정, 현재 재조사하고 있다.
32년간 논란을 빚어 온 이 사건의 새로운 진실이 밝혀질지 주목된다.밝혀질 수 있을까?
▶1983년 88서울올림픽 휘장-
마스코트 확정
▶1981년 미국 영화배우 나탈리 우드 43세로 사망
내털리 우드(1938 ~ 1981)는 러시아계 미국의 배우이다. 1943년에 활동을 시작했고, 성탄절 영화(1947년)인 《34번가의 기적》(Miracle on 34th Street)에서 성공적인 소녀 배우가되었다. 《이유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과의 열연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그 영화로 최우수 여우 아카데미 수상 후보가 되면서 성인 연기자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집시》에 출연하였고, 《잔디》와 《적절한 낯선자와의 사랑》(Love with the Proper Stranger)에 출연하여 아카데미 최우수 여배우 상을 받았다.
▶1980년 전남일보-전남매일신문 종간
▶1979년 수원성곽 복원
▶ 1975년 오늘,
전국 전화가입자 100만 돌파!
▶1972년 한국-요르단, 무역협정 체결
▶1969년 제5회 아시아남자농구
선수권대회(ABC) 우승
▶1968년 신동아 필화사건
▶1968년 국문학자 가람 이병기 사망
국문학자 가람 이병기 선생이 1968년 11월 29일 별세했다. 가람은 학자로서 초창기 국문학 연구의 올과 날을 세웠으며, 시인으로서 쇠퇴 일로에 있던 시조를 부흥, 발전시켰다. 일제시대 국문학 연구에 매진하면서 쇠퇴 일로에 있던 시조를 부흥 발전시킨 가람은 교육자, 한글운동가, 난초를 좋아하는 애란가로서도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했다. 가람은 일제시대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창씨개명도 거부했다. 이런 까닭으로 `일제시대에 쓴 시와 수필의 어느 한 편에서도 친일문장을 남기지 않은 영광된 얼굴`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1968년 서울시, 69년 6개월 12일 만에 전차 퇴역
서울의 전차는 고종황제 때인 1898년 1월 18일 미국인 믈브란씨와 보스트 웍씨가 한미합작으로 총75만원을 투자, 한성전기주식회사를 발족하면서 시작됐다. 그 해 12월 25일부터 40인승 시민용전차 8대와 황실 귀빈차 1대로 청량리~서대문간에 첫 운행을 했다. 오전8시부터 오후6시까지 `땡땡`거리며 운행한 전차는 어느 골목에서나 승객이 손만 들면 태워주었다. 물론 청량리까지 엽전 닷돈 등 구간에 따라 요금의 차등이 있었고 차장도 있었다. 전차는 개통순간부터 대인기였다. 그러나 전차는 해방 후 언제나 적자를 면치 못해 결국 이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 1968년 오늘,
페니실린을 발명한 영국의 세균학자 '플레밍' 사망 플레밍은 포도상 구균의 곰팡이가 박테리아를 파괴하는 것을 알고 그 곰팡이를 분리
배양하여 페니실린을 발명,1945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
▶1967년 신민당 당선의원 44명,
여당의 부정선거 항의 6개월만에 등원
▶1963년 캐나다, 여객기추락으로 118명
.. 사망
▶1962년 한국일보, `가칭 사회노동당
준비설` 기사로 필화. 장기영사장
등 4명 구속
▶1962년 알제리정부,
`알제리아`공산당을 불법화
▶1961년 미국, 침팬지 태운 로케트 발사
▶1960년 제4차 개헌
(소급혁명입법) 공포
▶1957년 유엔총회, 통한결의안
채택(유엔감시하의 자유선거)
▶1954년 제2차 개헌(4사5입 개헌) 통과
사사오입 통과 사건이 있던 날 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중에 발췌개헌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개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대통령, 부통령의 임기와 2회 연임으로 정한 헌법을 개헌하려 한 것 입니다..
그것 또한 수정헌법을 통해 "초대 대통령은 연임의 제한 조항의 적용을 안받는다" 정규조항이 아닌 부칙으로 끼워 넣으려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은 이 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1954년 5월 20일 시행되는 민의원 선거에서 개헌에 대해 찬동 혹은 추진한다는 서명을 하는 후보자만을 공천하여 지지자들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유당은 개헌 정족수 136석에 못미치는 114석 이어서 매수, 협박, 회유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137석의 찬성자를 확보하고 예의 초대 대통령 연임제한 폐지 개헌안을 상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1954년 11월 27일 개헌 의결 투표 결과는 재적의원 203명 중 찬성 135명 반대 60평 기권 7명 무효 1명으로 자유당이 확보한 의원 중 2표 이상의 반란표가 나오게되 부결이 되게 됩니다..
1954년 11월 28일 자유당은 긴급총회를 열어 개헌안 부결에 따른 대책을 논의 하던 중.. 조용순 법무부 장관은 0.333.....이라는 숫자는 독립된 주체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사사오입의 논리로 135표만으로도 개헌 정족수 2/3에 도달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1954년 11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당은 인하공과대학 학장, 서울대학교 현직 수학교수를 대동하며 최순주 국회부의장의 사회로 개헌 정족수는 135.333...이 아닌 135표라 주장하며 개헌안을 통과시킨 사건 입니다..
▶1951년 태국에 쿠데타 발생
▶1948년 유고 티토수상, 독자적인
. 공산주의 노선 선언
▶1947년 유엔총회, 팔레스타인 분할안 채택
1차대전 당시 영국은 오스만 투르크와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유대인과 아랍인 양쪽 모두에 추파를 던졌다.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 국가를 세우려는 유대인과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독립을 원하던 아랍인 모두를 이용하려 했다. 2차대전에서 이후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에서 이도저도 못하게 된 영국은 이 문제를 유엔에 회부했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총회가 찬성 33, 반대 13, 기권 10으로 팔레스타인 분할안(案)을 가결했으나 이는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분쟁의 시작이었다. 1900년 만에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설립하게 된 유대인들에게 이 결정은 감격이었지만 오랜 삶의 터전으로부터 떠나야 하는 아랍인들에게는 깊은 슬픔이었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선포
▶1944년 알바니아, 독일로부터 독립
▶1940년 광복군총사령부,
서안으로 이전. 소규모 유격전 전개
▶1932년 프랑스-소련 불가침조약 조인
▶1924년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 사망
▶1920년 강우규 의사 일제에 의해 사형
- 내가 죽어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강우규
강우규의사, 총독 암살미수로 사형당하다.
평안남도 덕천에서 출생한 '강우규'는 어려서부터 한의학을 공부하여 1884년부터는 함경남도 홍원으로 이주하여 한의사로 인술을 베푸는 한편, 아이들에게는 성리학 학문을 가르쳤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국운이 기울어짐을 보고 만주 북간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가 세력들과 연계하여 조선의 독립을 의논했고 4년 후 랴오허 현으로 이사하여 독립운동을 모의하였다.
1915년 요동의 랴오허 현(饒河縣)으로 옮겨가 거주하면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을 꾀했으며, 요하 주변의 농토를 개간하여 한인촌인 신흥촌(新興村)을 건설했다. 1917년 지린 성 동화 현에 광동중학교를 세워 동포 교육에 전력하며 독립정신 고취에 힘썼다.
그 뒤 광동중학교와 신흥촌을 다른 한인 교포에게 넘긴 뒤 그는 국내에 잠입한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가입해 있던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노인단 지린 성 지부장이 되어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해 러시아인으로부터 수류탄을 구입하고, 허형과 함께 원산부를 거쳐서 경성부로 잠입했다.
1919년 9월 2일, 내외 정세와 총독의 동정을 살피던 중, 하세가와 요시미치의 후임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임명되어 부임한다는 것을 알고, 사이토의 내한 당일 현재의 서울역인 남대문역에서 조선 총독으로 신임된 사이토 마코토를 폭살하기 위해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터졌으나 빗나갔고, 빗나간 폭탄으로 인해 수명의 구경꾼들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현장에서는 몸을 피했으며 거사 뒤 현장에서 빠져나와 오태영(吳泰泳)의 소개로 장익규(張翊奎), 임승화(林昇華) 등의 집에 숨어다니다가, 도피 중 독립운동 탄압으로 악명높은 총독부 고등계 형사인 친일파 김태석(金泰錫)에게 붙잡혀 9월 17일 수감되었다. 이후 총독부 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최종 판결에서 총독 암살미수혐의와 민간인 사상 혐의로 사형 구형,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그는 체포되어 재판받고, 교수형 당하기까지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않고 당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1907년 김윤식 유길준 등 흥사단 설립
▶1898년 스페인 작가 가니베트
이 가르시아 사망
▶1874년 전두엽절제술을 개발한 포루
투갈의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 출생
▶1835년 중국 청나라 함풍제(咸豊帝)
의 황후 서태후 출생
▶1832년`작은아씨들` 작가 올컷 출생
▶1607년 하버드대학의 설립자
존하버드 출생
▶1529년 유학자 왕양명 사망
왕양명(王陽明, 1472 ~ 1529)은 중국 명나라의 정치인·교육자·사상가이다. 본명은 왕수인(王守仁)으로 양명학의 창시자, 심학(心學)의 대성자로 꼽힌다. 양명학파의 시초로 각처에 학교를 설치하여 후진 교육에 진력하였다. 이에《양명문록(陽明文錄)》이 간행되었고 양명서원이 건립되었다. 양명학파로서 명대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기초가 확립되었다.
▶ 1394년 한양천도
조선 태조2년 한양으로 천도 (음력 10월28일)
조선조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1394년 9월 27일(음력 8월 24일)도평의사사의 상신(上申)에 따라 한양을 수도로 정하였고, 1394년 11월 29일 (음력 10월 28일)한양에 입성하였습니다.
1392년 7월 조선왕조를 개창한 이성계는 왕조의 면목과 인심을 일신할 목적으로 승려인 무학국사와 하륜 등 중신들의 의견에 따라 1393년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하고 종묘·사직·궁궐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11월 한양천도를 단행하였다. 1395년 한양부를 한성부로 개칭하고 경복궁을 준공하였으며, 1396년 4월 한성부의 행정구역을 설정하고 같은 해 9월 도성과 문루를 완성하였다.
▶1378년 독일 왕 및 보헤미아 왕
(1346-78)이며, 신성 로마 황제
(1355-78) 카를4세 사망
▶1268년 교황 클레멘트4세 사망
https://youtu.be/nYYA4GwsDlg
출처 네이버지식백과,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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