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하신다.
세상에 대한 집착을 잘라 내고 오로지 주님께만 마음을 바치라는 뜻이다.
당신을 믿고 따르려면 가족이나 자기 목숨보다도
당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참된 평화는 세상에 대한 온갖 집착과 욕망을 잘라 내고
거기서 해방되어야 누릴 수 있다 (마태 10,34─11,1).
오늘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깊이 새기고자
『성경』에서 칼이 뜻하는 의미를 살펴봅시다.
첫 번째로 아브라함의 칼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명령 때문에 외아들 이사악을
모리야 산에서 칼을 들어 찌르려고 하였습니다.
이때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사랑하는 이를 포기하는 하나의 ‘결단’을 상징합니다.
두 번째로 할례의 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민족들과 구분하려고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칼로 할례를 합니다.
곧 깨끗하지 못한 것을 잘라 내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겠다는 다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때의 칼도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하느님의 참백성이 되려는 하나의 ‘결단’입니다.
세 번째로 성모님의 칼입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실 때 시메온은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게’ 된다고 예언합니다(루카 2,35 참조).
곧 예수님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을 견뎌 내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칼의 의미를 아우르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칼이 하느님의 말씀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입에서는 날카로운 쌍날칼이 나왔습니다”(묵시 1,16).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7).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요컨대, 『성경』에서 칼이란
고통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하나의 결단이며,
그 결단의 원인이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려고 오셨으니,
결단력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을 지연이나 학연,
더 나아가 혈연보다도 우선시하라는 뜻입니다
가족만을 위하여 악착같이 재물을 모으고 있다면
이 말씀을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자식 사랑에 내몰려 정신없이 살고 있다면
이 말씀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가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입니다.
내 자식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모두를 사랑하라는 교훈입니다.
그러한 애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