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시어터를 보며]
ㅡ외출ㅡ
전용한 작가와 동반 외출하는 날이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로 쌀쌀한 날씨다. 워커힐호텔 지하 1층 홀에서 빛의 시어터가 연일 펼쳐지고 있다. 3월 5일에 막을 내린다고 해서 서둘러 나선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작을 주제로 구성한 작품이다.
홀 내부의 벽에 비치는 빛은 환상적이다. 내 눈을 의심할 만큼 영상 기술이 고차원적이다. 20미터 높이와 1천여 평의 공간에 그림을 빛으로 채우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무궁무진한 색채의 거대함을 발견하게 된다. 암흑의 역할 비중을 새삼 느낀다. 3D 영상 기법이 한 단계 발전하는 모습을 본다. 영상이 펼쳐지면서 음악과 함께 흐를 때 조화로움은 금상첨화다. 웅장하다.
ㅡ화가의 특성ㅡ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에 태어난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그는 황금빛 화가로 불린다. 대표적인 작품은 1907년에 완성한 '키스'이다. 금 세공 기술자인 아버지의 직업을 의식한 듯한 화가이다.
7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그는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14세에 학업을 중단할 만큼 가정이 어려웠다. 그의 재능을 눈치챈 친척의 도움으로 국립 응용미술학교에 다니게 된다.
서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이어서 동생 '에른스트'가 사망한다. 시련 속에서도 위기를 극복해 '사랑'이란 작품으로 세간에 사랑을 받는다. 그의 최초 걸작으로 꼽힌다. 현실과 추상이 그림속에 등장한다.
'유디트'에서는 여성에 대한 이분법적 모습을 본다. 성녀와 요부, 관능적이고 외설적인 표현의 포즈이다. 그가 41세에 그린 '희망'은 임산부의 모습을 가차없이 표현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사생아를 낳은 여성들이 14명이나 된다고 한다. 여성 편력이 강한 화가이면서 정신적 동반자이기도 하다. 독특한 예술인이다.
그는 평생 네 번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화를 그린다. 세상을 떠난 동생인 '에른스트' 아내의 여동생이다. 플뢰게는 클림트가 떠난 후 열네 명의 사생아에게 재산을 분배하며 가족으로 챙긴 여성이다.
ㅡ만년의 클림트ㅡ
클림트가 플뢰게에게 400여 통의 엽서를 보낸다. 클림트가 임종 때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를만큼 마음에 새겨둔 여성이라고 한다.
히틀러가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을 비롯해 몇점을 소장할만큼 인지도가 있는 화가다. 황금 바탕의 '생명의 나무' '기대' '성취' 등 스토클레 저택의 벽화가 무대에 장식된다. 추상적이고 특이한 스타일인 클림트의 소질이 담겨있다.
20세기 유럽은 비관주의가 성행할 때이다. 1908년의 대지진으로 8만여 명이 숨지고, 1912년에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사건을 목격한다. 이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후 고전적인 금빛 바탕 그림을 포기하고 다양한 색채의 그림으로 선보인다.
클림트는 1918년 56세에 뇌출혈과 이후 합병증으로 그해 숨을 거둔다. 클림트는 단 한 편의 자화상을 남기지 않았다. 그가 남긴 그림으로 그를 대신한다.
클림트의 채취가 서린 1.8m의 '키스'는 공개되자마자 1908년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에 바로 팔린 대작이다. 빛이 사라져도 환상으로 남은 빛의 시어터가 뇌리에서 어른거린다.
2023.02.28.
첫댓글 작년에 제주도에 여행 가서 , 클레드 모네, 르노아르, 샤걀, 작품을 빛의 시어터로 본적이 있습니다. 바닥과 벽을 기어오르는 빛을 따라 펼쳐지던 환상의 그림들을 한 시간 넘게 감상하면서 가슴이 뭉클 했습니다. 클림트 그림도 몇 년전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 할 때 본적이 있습니다. 그림은 글을 쓰는작가들에게 깊고 신비한 영감을 줍니다. 작품 감상하고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워커힐에서 이런 전시회를 하였군요.
저는 몇 년 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크림트의 미술관을 방문하였던 추억이 있으니
가면 더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