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 - 220. 정치체제 어떻게 흘러왔나? ②
▶엘벡도르지, 몽골 현대 정치에 큰 기여
여기서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제5대와 제6대 몽골 대통령을 역임한 엘벡도르지의 이야기를 해본다.
2009년 대통령 선거에서 인민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엘벡도르지는 몽골 현대 정치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정치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서구 일각에서는 그를 ‘몽골의 토마스 제퍼슨’으로 부르면서 몽골의 민주화 체제 전환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또한 재선으로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서
민주적 체제 구축과 부패 척결, 언론 자유 신장,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도 큰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탈북자 문제에 대한 인도적인 접근으로 많은 탈북자가 몽골을 거쳐 한국으로 오도록 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최초의 민주당 대통령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고 민주당 출신으로 재선에 성공한 첫 대통령이기도 하다,
▶언론인 출신 30대 중반에 첫 총리
올해 예순한 살(1963년생)인 그는 몽골 서부 유목민의 여덟 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80년대 말 소련으로 유학가 우크라이나 리보프에서 공부하면서 고르바초프가 주도한
개혁과 개방의 물결을 목격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몽골로 돌아와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몽골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게 된다.
몽골이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이 혼란 없이 진행된 데는 그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그는 몽골 최초의 독립 언론 ‘아르드 칠달’이란 신문을 창간했다.
여기서 본인이 편집장을 맡으면서 몽골의 원활한 체제 전환에 힘을 보탰다.
1990년 의회에 진출한 그는 민주 연합의 원내대표와 국회부의장을 거쳐 1998년 30대 중반에 총리로 선출된다.
하지만 몽골인민당의 불신임으로 이내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후 그는 민주 연합 세력을 한데로 모아 2000년에 몽골 민주당을 출범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해 총선에 참가하지 않은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콜로라도와 하버드에서 정치학과 행정학 학위를 얻어 돌아오게 된다.
舊 소련과 미국에서 폭넓게 공부한 몽골에서는 귀한 정치 인재인 셈이다.
▶총리 거쳐 첫 민주당 대통령 당선
2004년 몽골 민주당을 이끌고 총선에 나선 그는 몽골 민주당을 상대로 선전하면서 민주당의 의석을 늘리는 데 기여했다.
그래서 인민당이 36석, 민주당이 34석으로서 대연정을 구성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여기서 엘벡도르지는 총리직을 맡게 된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총리로 선임돼 행정부 수반 역할을 하면서
그는 특히 부패 척결과 개혁 정책 추진으로 몽골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몽골인민당의 반대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2008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의석수가 28석으로 줄어들고 몽골인민당의 의석이 45석으로 늘어나면서
몽골인민당이 더 많은 의석수로 집권 다수당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수로 선거를 이끌었던 엘벡도르지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선거 결과에 대해 부정선거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에 따라 몽골 정국이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여 한동안 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이듬해 2009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선 엘벡도르지는 당시 현역 대통령인 잉흐바야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결과적으로 몽골 국민이 엘벡도르지와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다.
그래서 최초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등장했다.
▶연임에 성공한 첫 민주당 대통령
대통령이 된 엘벡도르지는 경제적 여건을 호전시키는 데 집중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역점을 두고 국정을 운영했다.
이를 위해 해외투자 유치와 자원개발 등을 적극 추진하고 철도건설을 비롯한
인프라 향상에도 힘을 쏟았다.
이와 함께 국정운영에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언론 자유를 신장시키는 등 열린 정책들을 펼쳐 나갔다.
그래서 첫 임기 중인 2012년에 실시된 총선에서 민주당은 인민당보다 다 많은 의석을 확보해
민주당 주도로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2013년 대통령 선거에 나서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민주당 출신 대통령으로 연임을 하게 되는 최초의 기록도 세웠다.
▶‘독재는 영원할 수 없다’, 김일성대학 연설
엘벡도르지는 재선에 성공한 뒤 2013년 12월 북한을 방문하게 된다.
그는 무엇보다 몽골의 비핵화지대 선포와 민주화 체제 전환의 경험을 북한에게 알려주고
북한도 몽골처럼 변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거부로 김정은과의 만남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김정은이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후 처음 북한을 방문한 외국 지도자가 북한에 호의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상회담조차 거부당한 것이다.
엘벡도르지는 북한 방문 전에 노동수용소 방문과 지하 핵시설 방문, 일반 가정집 방문 등을 통한
북한 주민과 대화 등을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그런 요청 때문에 김정은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엘벡도르지는 나중에 밝히기도 했다.
다만 북한은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김일성대학 강연만 허용했다.
그래서 엘벡도르지는 강연에서 북한이 지적한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강연 제목은 ‘독재는 영원할 수 없다’였다.
평양 한복판에서 독재를 비판하는 그의 강연은 관심을 끌고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어떠한 폭정도 독재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자유롭게 사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며 이는 영원한 힘입니다.’
당시 엘벡도르지의 김일성대학 강연의 한 대목이다.
▶탈북민 송환 막는 데 크게 기여
메렉도르지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탈북민 이야기이다.
엘벡도르지는 2천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엘벡도르지 인스티튜트’라는 비정부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이 기구가 2003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는 가장 중요한 활동이 바로 ‘탈북민 송환 반대’ 켐페인이다.
2003년 이전에는 북한의 탈북민 송환 요구에 몽골이 응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3년부터 송환 반대 켐페인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몽골에서 북한으로 송환되는 사례는 사라졌다.
대신 수천 명의 탈북민들이 몽골을 거쳐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특히 엘벡도르지가 총리 재직하는 동안에 탈북민의 송환을 적극 반대해 단 한 명의 송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들은 ‘지옥’을 탈출해 한국, 몽골 등 더 살기 좋은 곳에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몽골 국경에 도착하면 매우 아프고 지친 상태입니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 몽골에 들어오려고 한다면 그들을 돕는 것은 단지 정부의 의무일 뿐 아니라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엘벡도르지 前 대통령의 지난해 2023년 6월 VOA 화상 인터뷰 내용이다.
엘벡도르지는 8년 재임을 끝내고 2017년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당선된 같은 당 출신의 후보 바툴가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다.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이 이루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