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마가복음 11:12~25
찬송가 292장(주 없이 살 수 없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시에 있었던 한 가지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베다니 성밖에 있는 베다니 마을에서 묵으시고 아침 일찍 예루살렘 성으로 오시다가 시장하신 나머지 길가에 서 있던 큰 무화과나무에게서 열매를 구하였다가 열매를 얻지 못하였는데, 그것을 저주하였더니 그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갈 때에 그 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린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 중간에 성전에 들어가셔서 예수님께서 성전 바깥 뜰을 차지하고 장사를 하는 장사치들을 성전에서 내쫓고 성전을 청결하게 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그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와 진정한 예배가 실종된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 및 부패한 선민 유다 백성의 모습을 하나로 보시고 예수님께서 심판하신 것을 말해줍니다.
성경을 보면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과 유다를 포도원, 포도나무, 감람나무로 비유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오셔서 가나안 땅에 심었는데, 그들에게서 단 맛을 내는 꿀포도를 기대했으나 시디 시고 쓰디 쓴 들포도를 맺었다고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서 제 5장에서도 노래한 바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이르신 말씀을 보면, 포도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은 것은 딱 한 가지, 열매를 맺는 것인데,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더 이상 가치가 없어 아궁이에 던져지는 땔 나무밖에 되지 못한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가운데 불러냄을 입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영광과 특권을 누리게 된 우리는 오직 딱 한 가지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마땅히 맺어야 할 신앙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면, 맺어야 할 열매는 바로 진실하고 참된 예배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바깥 뜰에서 장사치들 때문에 예배가 흐트러지고 소란스럽고 차분하고 거룩한 예배가 드려지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주님께서 분노하셔서 그 장사꾼들을 다 내쫓았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힘써 추구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 곧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한 예배를 하나님께 바치고자 늘 힘쓰는 이 예배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드리기를 늘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예배를 어지럽히는 것들을 없애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열매 없고 이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예배는 어떤 것일까요?
먼저, 순종 없는 예배입니다.
사울 왕이 제사를 드린다고 아말렉 족속과 그들의 모든 양과 소의 가축을 진멸하고 오라고 했지만 사울 왕이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가축 중에 좋은 것은 끌고 와서 그 일부를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노하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어 사울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사무엘상 15:22)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즐겁게 받으시는 신앙의 열매는 순종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과 성령의 감동에 대하여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순종의 열매를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불순종하면서 드리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아니고 이파리만 무성한 예배입니다.
또한 용서와 화목 없는 예배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25절에 보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첨부하기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용서를 가르치시곤 했습니다. 또 한 마태복음 5:23,24 말씀을 보면 이르기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용서해야 할 사람에게 용서하지 않고 앙심을 품고 있거나 화목해야 하는 사람에게 원수 관계를 지속하면서 예배 드리는 것은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와 같아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되지 못합니다.
또한 참회 없는 예배가 열매 없는 이파리만 있는 무화과나무와 같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고의로 죽게 하고서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아 왕비로 삼고서도 부끄러움 없이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국가 의식도 집전하고 국정을 돌아보았습니다. 많은 죄악들을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배 생활은 꾸준히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이파리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보다 못하신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그의 죄를 날카롭게 지적하셨습니다. 그 때서야 다윗은 양심이 찔려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깊이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 후에 다윗이 지은 시편 51편 16,17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그렇습니다. 참회의 진실을 담아서 기도하며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깨어진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예배만이 열매 맺은 무화과나무처럼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죄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시편 66:18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죄를 품고 드리는 기도, 죄악을 회개치 아니한 가운데 드리는 예배 역시 이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참회하고 죄를 버릴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와 기도가 될 것입니다.
또한 감사함 없는 예배입니다.
시편 50편 8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이르기를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9,14~15,23)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마음을 담은 감사가 빠지고 겉만 무성한 예배는 본질이 빠진 껍데기 예배라는 것입니다. 이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담아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뢰하며 그의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 드리는 자가 됩시다.
주님이 저주하신 이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겉만 그럴듯한 모양만 기독교인,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하는 예배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적인 이파리만 번듯한 쭉정이 신자가 되지 맙시다. 도리어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신앙의 열매가 주렁 주렁 있는 참 신자, 참 예배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순종과 용서와 화목과 참회와 마음을 담은 참된 감사가 충만한 알곡 신자가 되고 쭉정이 신자가 되지 맙시다. 한평생 세월이 갈수록 고요하고 참되고 진실하고 거룩하고 주님을 진실하게 뜨겁게 사랑하여 섬김으로써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만족하시고 더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도록 더 많은 은혜를 받아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