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치지않는 계절[장석천 작가]
요즘 젊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밝게 웃고, 가볍게 말을 건네고,
사소한 일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들.
그들 사이에 잠시 섞여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그들 곁에 머무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의 하루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생기가 있다.
서로를 향해 웃고,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순간을 온전히 소비하는 태도. 그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어느새 그들의 시간 속으로
잠시 걸어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상하게도 나는 더 조용해진다.
대화는 이어지고 웃음도 어색하지 않은데,
마음 한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간격이 남는다.
마치 같은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계절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 어긋남이 있다.
그 간격은 크지 않다. 오히려 아주 미세하다.
말을 건네고, 대답을 나누고, 함께 웃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완전히 같은 온도로
머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스친다.
그것은 누가 만들어낸 거리라기보다,
이미 지나온 시간들이 조용히 쌓아올린 결의 차이 같은 것이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어땠을까.
그들과 같은 속도로 웃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었을까?
조금 더 가볍게 다가가고, 덜 망설이며 말을 건넬 수 있었을까?
그 ‘조금’이라는 간격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이 차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말하지만,
그 숫자는 때때로 사람을 조용히 물러서게 만든다.
아무도 선을 긋지 않았는데, 스스로 선을 긋고 그 안에 서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선은, 생각보다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시간을 지나왔다.
가볍게 웃고, 별것 아닌 일에도 마음을 쏟으며,
관계를 시작하는 데에 큰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던 시절.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덜 생각했고, 덜 계산했고,
그래서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하게 되었다.
말 한마디를 꺼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고,
관계의 온도를 스스로 조절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조용히 멈춰 세우는 힘이 되기도 했다.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잘 통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편안해지는 관계.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가 관계를 만든다고
느끼게 해주는 순간들이다.
그런 관계 속에서는, 나이도, 배경도,
지나온 시간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믿게 된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관계를 이어가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같은 자리에서 웃고 또 머문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우리가 나눈 말들보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간격이 더 크게 느껴지는 순간.
그 간격은 누가 의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저 각자가 살아온 시간의 방향이 달랐기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거리였다.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조금만 덜 생각했더라면,
조금만 더 가볍게 웃을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이다가, 문득 알게 된다.
그 ‘조금’은 결국 닿을 수 없는 거리라는 것을.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계절은 서로를 기다리지 않는다.
봄은 봄의 자리에서 피고, 여름은 여름의 열기로 지나가며,
가을은 조용히 깊어지고, 겨울은 다시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각각의 계절은 서로를 대신할 수 없고, 서로를 건너뛸 수도 없다.
우리는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같은 계절을 지나고 있지는 않다.
누군가는 막 피어나는 봄의 한가운데에 있고,
누군가는 이미 여러 번의 계절을 지나온 자리에서 서 있다.
그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붙잡지 않으려 한다.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지금의 자리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가볍게 웃지 못한다면, 대신 깊게 웃고,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면, 대신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순간의 반짝임 대신, 오래 남는 온기를 선택하는 것.
겹치지 않는 계절 속에서도,
우리는 잠시 같은 바람을 맞을 수는 있다.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공기를 나누는 순간들.
그 짧은 겹침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방식인지도 모른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 흐르고 있는 이 계절을 지나가는 법을 배우면서.
나는 오늘도,
나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