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전역 최초의 공중파 방송이 시작 됩니다.
여러 스포츠 경기와 더블어 골프도 방송망을 타고 인기가 더윽 폭발합니다.
신문에서만 보던 골프 스타들이 티비에 등장 합니다.
1953년 페블피치에 [빈 크로스비 골프 토너먼트]가 공중파를 타고 최초의
골프 경기로 골프사에 기록 됩니다.
빈 크로스비 골프 토너먼트가 명성을 얻게된 계기는 영화배우, 가수, 탈렌트,
운동 선수등 방송 올스타가 참가하는 친선 골프 경기였습니다.
사진은 크로스비 토너먼트에서 물 웅덩이 벙커에 빠진 공을 치기위해
샘 스니드가 바지를 벗고 있는 장면 입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이 웃고 있네요.
( 박세리가 10년전 양말을 벗고 워터 헤저드에서 공을 친 장면과 비슷하군
요 박세리는 양말을 샘 스니드는 바지를...ㅎㅎ )
1950년대 초 골프 방송을 타고 꽃미남 외모의 섹시한 한 남자가 등장 합니다.
그가 1960년~1970년대 골프계를 주릅잡던 [아놀드 파머]입니다.
아놀드 파머는 프로 골퍼인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웠으며 그의 샷은 간결하면
서도 정확했습니다.
그의 스윙을 지켜본 사람들은 " 파머는 공을 후려패듯 친다" 했습니다.
1958년 마스터즈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1960년 US오픈 우승, 그 이후로 여러
메이져 대회에서 20년을 스타급 골퍼로 군림을 합니다.
섹시한 외모의 아놀드 파머는 당시 미국 중산층과 여성들의 골프 시작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국은 박세리의 10년전 맨달의 투혼 헤져드샷 이후 폭발적 증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20년을 정상의 선수로 대단한 선수임은 맞지만 골프사를 써 보니~ 아놀드
파머의 유명세 만큼은 적을 기록이 없다는게 좀 아쉽습니다.
(골프를 모르는 사람도 아놀드 파머가 골프 선수라는건 다 아는데 말이죠...)
1950년대 말에 아놀드 파머의 독주를 막을 위대한 골프 선수가 또 한명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골든 베어로 유명한 전설의 [잭 니클로스] 입니다.
잭 니클로스는 14세에 프로 아버지의 캐디로 일하면서 골프를 배웠습니다.
어린 니클로스는 아놀드 파머를 우상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골프를 배웠습니다 .
아무도 뚱뚱한 잭 니클로스가 전설의 골프왕이 될지 몰랐습니다.
그는 19세인 1959년 US오픈에서 우승하며 아놀드 파머의 천적으로 등장 합니다.

1962년 US오픈에서 18홀 동점타로 파머와 니클로스는 연장전에 들어 갑니다.
결국 청소년기의 우상이였던 기함의 아놀드 파머를 3타차 71일타로 잭 니클
로스가 우승을 합니다.
1962년 US오픈을 시작으로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두 사람은 영원한 라이벌이
되고 있습니다.
1966년 미국 골프의 아버지 바비존스가 지켜보는 앞에서 마스터스 오픈에서
우승하며 니클로스는 대망의 4대 그랜드 슬램의 왕좌에 오르게 됩니다.
그의 명언중에...
" 나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일년 365일 언제나 필드위에 있었다 "
( 그의 기록은 그냥 나온게 아닌듯 합니다..대가의 명언 답습니다 )
역사가들은 아놀드 파머는 잭 니클로스가 없었다면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되었을 거라 합니다.
500년 골프사에 그랜드 슬램은 현재까지 총 5명인데 그 중 4대 그랜드 슬램의
왕좌에 오른 사람이고 최다 우승 3위에 올라있으며 20번의 메이져 대회의
준우승까지 합하면 통합 랭킹 1위는 잭 니클로스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동 시대의 선수로 생활하며 송대관 태진아 같은 영원한 라이벌로 미국 골프의
원로로 생존하는 전설의 골퍼들 입니다.
( 라이벌이지만 업적과 기록으로 비교 해 본다면 잭 니클로스가 아놀드 파머
보다는 한 수 위가 아닐까 생각 됩니다. )
1971년 아폴로 14호 우주 비행사 엘런스 포로드가 이이언 6번으로 달에서
골프공을 쳤습니다.
최초의 달에서의 골프샷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폭발적인 골프 인기를 반영한 듯 합니다.
1970년대에 들어 서면서 신소재 골프채가 등장 합니다.
과거의 나무와 스틸의 골프채에서 티타늄과 그라파이터로 진화를 하게 됩니다.
그라파이터 샤프트는 현재 대부분 초급자 중급자용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합성 섬유의 그라파이터 소재에 철심을 심어 만들어져 탄성이 매우 좋고 원상
복원력 또한 뛰어 났습니다.
또한 그라파이터는 충격 흡수도 좋아 엘보 현상이 현저히 줄어 듭니다.
(과거 스틸 샤프트는 매우 무거우며 미스샷이 났을때는 망치로 팔꿈치를 때리
는 통증이 왔다 하니 과거 골프는 매우 위험한 운동이였습니다 )
1980년 이전의 아마추어는 비거리 200야드도 힘들었지만 신소재 골프채가
만들어지며 아마추어도 300야드 장타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백인들의 전유물이 였던 골프가 1975년 대 변화가 일어 났습니다.
1975년 흑인 출신의 [리 엘더]프로 골퍼가 마스터즈 대회에 참가 합니다.
인종 차별이 심한 미 남부 에서는 큰 이변 이였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 나온 리 엘더의 기사 입니다.
리 엘더는 1975년을 이렇게 회상 했습니다.
" 흑인 따위가 골프 대회에 나온다니 세상 말세군 확~~총으로 쏴 죽이겠어~!
백인들의 모진 협박으로 나는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 었습니다 "
그로 부터 20년 후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즈 대회에서 우승할때 리 엘더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첫댓글 네
좋은 정보네요
그림이 배꼽이라서 못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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