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61]아, 백릉 채만식
지난 수요일, 군산 하제마을의 팽나무를 참배한 후, 금강 하구둑에 있는 <채만식 문학관>을 찾았다. <탁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태평천하> 등을 쓴, 군산이 낳은 소설가 채만식(1902-1950) 선생을 기억하시리라.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름 석 자는 들어보셨으리라. 문학관이 있다는 말을 들은 지 석삼 년, 진즉 가보고 싶었다.
채만식 작가를 평할 때 흔히 ‘풍자문학의 정점’이라고 말한다. 풍은 어떤 사물에 빗대 간하다, 자는 꾸짖다의 뜻이니, 풍자(諷刺. Satire)는 남의 결점을 무엇에 빗대어 재치있게 비판하거나 경계하는 것을 말한다. ‘풍자’하면 맨먼저 떠오르는 게 시인 김지하가 1970년 <사상계>에 발표한 평론 ‘풍자냐, 자살이냐’이다. 그는 문학인들에게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다”며 올바른 저항적 풍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당시 재벌과 권력층을 비판한 담시(譚詩) <오적>(五賊)을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훗날 그는 어찌된 영문인지 변절, 배신자 논란의 주인공이 됐지만 말이다. <사상계>는 <오적>을 빌미로 1970년 5월호(205호)로 폐간이 됐으나, 지난해 극적으로 복간호를 냈으며 올해부터는 ‘문명전환지’를 표방하며 격월지로 전환했다.
내가 풍자소설가 채만식을 주목한 이유는, 일제강점기 친일문학을 한 그가 광복이후 1948년 <민족의 죄인>이란 자전적 참회소설을 써 친일활동을 뉘우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0여편의 작품을 일본어로 쓰기도 했다.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붓을 꺾겠다”고 흰소리를 한 춘원 이광수 “일제가 그렇게 빨리 망할 줄 몰랐다”는 미당 서정주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민족대표 33인 최린은 ‘반민특위’에서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소에 묶어 거열형(擧裂刑)을 집행해 민족의 본보기로 삼아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칠십년이 더 지난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른바 '토착왜구'(친일 3세대)들이 설쳐대는 꼴불견을 우리가 보고 있지 아니한가. 그들은 대대로 기득권층이자 무슨무슨 카르텔로 똘똘 뭉쳐진 귀태(태어나서는 안될 인종)들이 아니던가. 매국극우가 따로 없다. 미제국주의의 '깡패대통령'이 한밤중에 이웃나라 대통령궁을 침입하여 대통령부부를 잡아와도, 어느 야당 의원은 '우리나라도 언제든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막말을 지껄이지 않은가. 심지어 국민의 49% 선택을 받은 대통령이 국회에 시정연설을 하러 오는데 "꺼져라"를 외쳐대는 몰상식, 몰염치의 야당 금뱃지들은 또 무엇인가. 한심하고 또 한심한 일인저. 대구에서 올라온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단식을 그만두는 현 야당대표는 또 무엇인가. 목불인견, 가관의 극치가 아니던가.
풍자문학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조 <춘향전>과 판소리나 봉산탈춤 등이 해당될 터이나,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 <양반전>이 압권일 것이다. <양반전>에 실린 ‘호질’(虎叱)이나 ‘허생전’의 내용을 다 알고 계실 터. 연암의 풍자는 매서웠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 등이 해당되겠다.
채 작가의 호 ‘백릉’(白菱. 흰 마름. 마름은 연못이나 늪에 사는 수생식물)은 결백과 지조 그리고 민중적 정서에 천착해 소설을 쓰겠다는 의지를 담은 듯하다. '채옹'이라는 호도 썼는데, '채씨 성을 가진 노인'이라는 뜻으로 그의 소탈하고 해학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듯하다. 백릉은 일제 침탈의 상징적 항구 군산에서 벌어지는 무자비한 미곡 방출을 보면서 민족적 울분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채 작가가 고향을 그리워해 말년(불과 48년을 향유)에 귀향한 것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 20일 전에 지병으로 숨졌으나, 살아 있었다면 어떤 작품을 남겼을까 궁금하다. 문호 조정래의 <아리랑>을 보시라. 조 문호는 <아리랑>에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죄는 잊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자고 말했다.
아무튼, 군산이 낳은 소설가 채만식의 작품세계는 재조명돼야 할 것이며, 문학관을 찾는 독자들은 우리 근현대사에 걸친 민족적 아픔과 수난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비교적 근대유산들을 잘 간직하고 보전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군산에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하나 더 부기할 것은, 군산은 시선(詩仙) 고은(高銀)의 고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