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이란 무엇입니까 / 김대호
올 봄에 핀 명자꽃은 작년에 피었던 명자꽃의
유언을 실천합니다
내년에 올 명자꽃은 올 봄에 피었던 명자꽃의 유언을 이어받아
명자꽃 무리의 집성촌에서 또 실천될 겁니다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점심엔 국수를 삶아 먹었습니다
혼자 끼니를 때우는 일이 심심해서
창밖 푸른 잎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벚나무를 보았습니다
저 벚나무는 십 년 넘게 푸른 잎을 실천 중입니다
나는 다 먹고 남은 국수 국물을 들고 나가 벚나무 근처에 흩뿌렸습니다
그곳에서 국수 국물도 실천 됩니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칼자루 없는 칼을 쥐고 그를 미워합니다
하루를 실천하기 위해 누우면 어디선가 피비릿내가 납니다
실천이란 무엇이고 실천은 어떤 냄새를 가졌을까요
실천에게 배후가 있을까요
나는 방금 태어난 햇살을 실천하기 위해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시집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2023. 시인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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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식 시인 해설
이 시집의 표제시인 <실천이란 무엇입니까는 가시적인 세계로서의 자연과 자연을 역입해 들어가서 보는 세계의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다.
명자꽃이 다시 명자꽃으로 피어나는 현상을 자연이라 할 수 있다. 그랬을 때 내년에 올 명자꽃은 올봄에 피었던 명자꽃의 유언을 이어받아/명자꽃 무리의 집성촌에서 또 실천될 겁니다"라는 시적 발화는 별반 특이할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질문은 읽는 이를 매우 난처하게 만든다 "실친이란 부였ㅣㅣ무엇입니까'라는 감작스러운 질문은 기왕에 읽어오던 시를 처음부터 다시 읽게 만든다. 시적 맥락을 따라 읽다 보면 시적 화자의 회의를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있다. 하나는 명자꽃이 다시 명지꽃으로 실천되는 자연 에 대해 그 현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연의 방식이 진정한 실천이냐 하는 몰음이 그것이다.
시적 화자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벗나무는 십 년 넘게 푸튼 잎을 실천중"이라고 진술하고 "빛나무 근처에" 훝뿌려진 국수 국물도 실천"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극히 자연스러운 반복과 연속의 과정으로서의 실천의 의미를 보여준다. 이 시에서 문제적 발화는"하루를 실천하기 위해 누우면 어디선가 피비린내가 납니다"라는 문장이다. 오늘 하루를 실천한다는 것이 어제와 같은 형식을 취한다는 의미라면 "피비린내"의 출처는 도대치 어디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없다/모든 사물의 존재란 투철한 생존의 몸짓이라고 읽으면 시적 화자가 말하는 실천과 자연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실 천이란 무엇이고 실천은 어떤 냄새를 가졌을까요/실천에게 배후가 있을까요"라는 물음은 존재 근원에 대한 탐색이라는 점에서 철학적 질의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가령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수 있는 감정 하나 얻으려고 우리는 이토록 치욕을 견디고 있잖은가 모든 걸 내주고 훗날 그 고요 한 줄 얻어서 무엇에 쓰겠는가마는 내 몸을 이끄는 중력을 어찌 배반하겠는가"([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 위해 아무거나 한다])와 같은 진술에서 우리로 하여금 중력으로 이끄는 거대한 힘에 맞서 치욕을 견디는 힘이 실천의 구체적 실체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보이는 것의 배후에 가로놓인 보이지 않는 것의 움직임이 실천이며 그 움직임을 감각하고자 할 때 매개가 되는 것이 '당신'이라는 추상적 실체라 할 수 있다. "안 보이는 당신을 보고 모르는 당신을 알아간다"(헤어진 다음날 )는 시적 진술은 시적 화자가 사유하는 사물의 존재와 바탕 그리고 실천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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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1. 시적 화두와 구조
시는 제목에서 곧바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실천이란 무엇입니까”는 도덕, 행위, 신념의 실현 등 전통적인 정의를 떠올리게 하지만, 시인은 명자꽃, 벚나무, 국수 국물, 미움, 햇살과 같은 감각적·일상적 이미지들을 병렬적으로 제시하여 개념을 해체합니다.
구조상,
① 자연의 순환 속 실천(명자꽃, 벚나무)
② 인간의 소소한 행위 속 실천(국수 삶기, 국물 뿌리기)
③ 감정과 폭력의 은유 속 실천(칼자루 없는 칼, 미움)
④ 의문과 초월적 감각(실천의 냄새, 배후, 햇살)
로 흐름이 전개됩니다.
2. 주요 이미지와 의미망
(1) 명자꽃의 유언
> "올 봄에 핀 명자꽃은 작년에 피었던 명자꽃의 유언을 실천합니다"
실천이란 인간의 의식적 노력만이 아니라, 자연의 반복과 계승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유언”이라는 단어는 자연의 순환을 죽음과 탄생이 연결된 계보로 인식하게 하며, 실천을 단순한 반복이 아닌 전승의 윤리로 격상시킵니다.
(2) 벚나무와 국수 국물
벚나무가 10년 넘게 푸른 잎을 실천한다는 구절은 지속성과 무위(無爲)의 실천을 보여줍니다. 벚나무는 목적이나 결심 없이, 그러나 매년 성실히 잎을 낳습니다.
화자가 먹고 남은 국수 국물을 나무 근처에 뿌리는 장면은, 인간의 잔여물조차 다른 생태적 실천의 일부가 됨을 드러냅니다.
→ “실천”이 선·악의 도덕 범주를 넘어, 생태적 연결망으로 확장됩니다.
(3) 칼자루 없는 칼과 미움
물리적 폭력(칼)에서 칼자루를 제거한 이미지는, 무형의 폭력—즉 말, 시선, 마음속 증오—를 상징합니다.
여기서도 “미워하는 행위”는 실천으로 분류됩니다. 즉, 실천은 긍정적 가치만을 포함하지 않음을 시인은 냉정하게 드러냅니다.
(4) 실천의 냄새와 배후
“피비릿내”는 생명 파괴나 폭력의 기운을 암시하며, 실천의 어두운 면을 감각화합니다.
“배후”라는 단어는 실천이 결코 표면적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원인·동기·권력 구조 같은 보이지 않는 층위와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5) 햇살과 두 손
마지막 장면은 부드럽고 환합니다. 방금 태어난 햇살을 실천하기 위해 두 손을 내미는 행위는 순수하고 즉각적인 수용과 나눔의 실천을 상징합니다.
시의 어두운 냄새에서 밝은 햇살로 전환되며, 결말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3. 시적 특징
1. 개념의 해체와 재구성
‘실천’을 도덕 교과서적 정의에서 끌어내어, 생물학적·생태적·심리적·폭력적·순수한 층위로 확장.
2. 병렬적 이미지 나열
명자꽃 → 벚나무 → 국수 국물 → 칼자루 없는 칼 → 피비릿내 → 햇살
각 장면은 서로 직접 연결되지 않지만, “실천”이라는 축 위에 놓여 있어 의미가 응축됨.
3. 아이러니와 긴장
실천이 국수 국물처럼 소소하고, 피비릿내처럼 폭력적이며, 햇살처럼 순수할 수 있다는 역설.
4. 감각적 언어
시각(푸른 잎, 명자꽃), 촉각(두 손 내밀기), 후각(피비릿내), 미각(국수) 등이 동원되어 실천의 다면성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