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2(마12:9-13)
사도 바울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한다(갈4:4-5).
이는 마태복음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말씀이다.
마태복음은 율법 아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께 나아와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 후반부에서 예수께서는 율법 아래에 있는 유대인들을 초청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진 유대인들에게 자신에게 나아오라고 초대하신다.
이는 모세의 말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말을 따르라는 초대이다.
유대인들에게 지워진 짐은 모세가 지운 율법의 짐이다.
율법의 짐은 죄와 사망의 짐이기도 하다.
율법은 죄 아래에서 시행된 여호와의 뜻과 경륜이기 때문이다.
율법으로는 죄를 없이하지 못하고 그 아래에 있는 자를 온전케 하지 못한다.
따라서 율법의 짐은 참으로 수고스럽고 무거운 짐이다.
만일 율법의 짐을 벗고자 한다면,
율법이 없이하지 못하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에게 나아와야 한다.
아들에게 나아오면 율법과는 다른 새로운 통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가 종말의 천국이다.
율법 통치는 여호와께서 사람 중보자를 통해서 시행하신 통치이다.
그러나 새로운 통치는 아들을 통해서 시행하는 통치이다.
따라서 종말에서는 이전의 율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계시의 시대가 열린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온전하고 참된 계시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유대인들에게 자신에게 나아오라고 초대하신다.
율법을 버리고 자신에게 나아와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생명을 얻으라고 초청하신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참된 구원과 생명을 누리라고 초대하신다.
예수께서는 종말에 하나님 아버지를 알려면 자신에게 나아와야 함을 말씀하신다(마11:25-27).
이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백성들을 초대하신 후에(마11:28-30),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먹은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주장하신다(마12:1-8).
예수께서는 두 안식일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성전보다 크며 안식일 주인이신 하나님이라고 알리신다.
여호와로서 자기 백성에게 들판의 이삭을 안식일 양식으로 허락하시며(마12:1-8)
손이 마른 백성에게 참된 안식을 선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신다(마12:9-13).
이는 휘장의 장벽이 없이 사람으로 유대 사회에 오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심으로
모세의 말이 시행되던 구약시대는 종결되고
예수의 말이 시행되는 새 시대가 시작된다.
이러한 구원역사의 전환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혼인 잔치 비유와(마9:14-15),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비유(마9:16),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 비유로 설명하신다(마9:17).
이 세 개의 비유는 모세율법과 그리스도의 복음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옛 시대의 주인은 모세이나 새 시대의 주인은 예수이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는 모세의 말을 따라야 하였으나 종말에는 예수의 말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신약시대에서는 모세율법이 설 자리가 없다.
모세가 명한 성전제사나, 제사장제도, 십일조가 설 자리가 없다.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율법을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예수께서도 세례요한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신다(마11:11-12).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함이,
모세와 모세의 권위 아래에서 사역한 선지자들의 외침은 요한까지라고 못을 박으신다(마11:13).
세례요한은 율법으로 경영되었던 옛 시대의 마지막 주자이다.
따라서 세례요한의 퇴장은 모세율법의 종결을 의미하고
예수의 등장은 새 시대의 시작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새 시대는 모세율법(구약성경)이 아니라 예수의 말이 시행되는 때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성전보다 큰 이가 여기 있으며(마12:6),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다(마12:8).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자 회당 사람들이 송사하고자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
라고 물었다(마12:10).
이에 예수께서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는데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고 말씀하신다(마12:11-12).
이처럼 회당 사람들은 안식일에 관련된 문제를 묻고
예수께서는 그들이 소유한 율법을 따라 답변하신다.
이러한 예수의 질문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이다.
이는 마태복음만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를 통해서 마태는 예수께서 율법의 완성자이심을 강조한다.
예수께서는
“너희 율법에서도 이렇게 하지 않느냐”
라고 답변하신다.
그런데 모세율법에는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졌으면 건져내라는 규례가 없다.
그러므로 송사하는 자들의 질문은 단순히 안식일 계명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안식일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제정된 시행세칙들,
곧 장로들의 유전과 규범에 관한 질문 내용이다(마15:2).
회당 사람들의 질문 내용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을 건져내야 하는지에 관한 것에 있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기 위한 노동 범위의 문제,
어디까지가 일한 행동이고 어디까지가 일하지 않은 행동인지를 묻는 내용이다.
이는 안식일 계명을 위한 세부적인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율법을 위한 세부적인 가이드 라인 모음집이 장로들의 유전이나 전통, 규범들이다.
이는 십계명이나 모세율법의 613개 항목은
백성들 삶의 모든 영역을 세세하게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회당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는데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고 말씀하시고(마12:11-12)
손 마른 자를 치료하셔서 온전케 하신다(마12:13).
만일 예수께서 모세율법과 장로들의 유전과 규례를 따라 병자를 고쳤다면
모세율법을 온전케 한 율법의 완성자가 아니다.
모세율법이 주지 못하는 참된 구원과 생명의 구원자가 아니다.
이는 모세의 말을 온전히 지킨 모세의 제자로서 행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또 율법을 온전히 지키더라도 죄를 없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하나님을 아는 온전한 생명과 안식을 얻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들이다.
하나님과 가장 가깝고 친밀하며 하나가 되신 하늘의 상속자이다.
예수의 말은 아버지의 음성이며 예수의 사역은 아버지께서 그의 영으로 행하신 일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세율법이나 장로들의 유전과 규범을 따라 행하지 않으신다.
인간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예수께서 온전히 지켰다는 개혁신학 내용은
성경과는 상관없는 철학적인 사고 결과물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은 아버지의 뜻에 의한 것이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에 의한 일이다(갈4:5).
따라서 예수께서는 모세의 하나님으로서 율법의 완성자로 오셨다.
이는 율법이 주지 못하는 참된 구원과 안식을 주시려고 오신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께서 참된 양식을 주시는 여호와이시며(마12:1-8),
손 마른 자에게는 참된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 아들임을 말한다(마12:9-13).
이처럼 마태는 안식일의 두 사건을 통해서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이심을 강조한다(히10:8-9).
이는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율법의 짐을 벗어버리고 예수께 나아오도록 하기 위함이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안식일에 불만 피워도 죽이도록 명하셨고,
광야에서는 하늘에서 내린 만나까지라도 안식일에 거두러 나오면 죽이라고 하셨다(출16:27-28).
이처럼 구약에서는 안식일에 일을 금하셔서 자신과의 교제에 집중하도록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에 참여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누렸던 생명과 안식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들판의 이삭을 양식으로 주시고(마12:1-8),
유대인 회당에서 손이 마른 병자를 고치신 것은(마12:9-13)
단순히 양식을 공급하시고 마른 손을 고치신 정도가 아니다.
이는 그들 가운데 오신 여호와를 직접 대면하는 일이다.
율법 아래에서는 아무나 언제든지 여호와께 나아갈 수도 없었고,
여호와를 직접 대면하여 교제할 수도 없었으나,
종말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유대 땅에 오셔서 나아온 백성들을 직접 접견하신다.
성전보다 크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직접 백성들을 만나신 것이다.
따라서 제자들과 손 마른 자는 하나님을 직접 보고 손을 내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이처럼 마태는 예수께서 자기 백성을 직접 대면하고 교제하는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분으로 소개한다.
여호와께서 사람으로 오신 것은 언약에 신실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역할에 충실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아버지의 신실하심을 따라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베푸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다(마12:12).
그래서 예수를 통해서 제자들과 손 마른 백성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미친다.
율법에서는 금한 안식일에 굶주린 제자에게 양식을 공급하시고(마12:1-8),
손이 말라서 고통 중에 있는 백성을 치료하셔서 참된 안식을 선물하신다(마12:9-13).
이처럼 마태는 예수께 나아오면 생명의 결핍이 없다는 사실을
예수께서 양식을 공급하시고 손 마른 자를 치료하신 일을 통해서 강조한다(사65:24-26, 계21:3-4).
제자들과 손 마른 사람은 믿음으로 예수에게 나아와서 천국 왕의 권세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회당 사람들과 율법사는 하나님 말씀의 권세를 보고도 거절하고 죽이려고 궤계를 꾸민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신다(마12:14-15).
예수께서 떠나심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떠나심이다.
이는 종말에 보내신 아들을 거절하는 자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
첫댓글 그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것이지요
적어도 2005년전까지는 안식일은 하루동안 거룩하게 지냈지요,
아침 해뜨는 시각부터 해지는 저녁 7시 예배시간까지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았었죠,
그리고 안식일은 절대로 일을 안했고 오직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날이었는데 목사들 때문에 그런 안식일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냐면 목사들이 자기들 밥줄때문에 예베시간을 뒤집어 버린것입니다.
한마디로 삯꾼 마귀가 되어버린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