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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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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28.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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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탄신일
나라가 바람 앞에 등불처럼 분초를 다투는 때에, 하늘이 보내주신 이순신 장군을 통하여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건져 내신 해전사(海戰史)를 당신의 피눈물로 쓰신 기록물을 접하고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려 읽을 수 없으니 애통하고 절통하구나.
지금으로부터 471년 전에 이 위대한 성웅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성웅을 통하여 이룩한 업적을 세계사 중에 해전에 전무후무한 전공을 남겼으니 자손만대 후손들에게는 자긍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성웅은 죽어서 나라를 구하였고, 사후에는 애국 애족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매년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忠武公 李舜臣誕辰日)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하는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제정한 기념일이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대 목숨을 바쳐 왜병과 싸워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기념하는 각종행사가 열린다. 1967년 1월 6일 공보부가 4월 28일을 “이충무공 탄신기념일”로 고시(告示)했다. 1973년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으며, 주관부처는 공보부의 후신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다. 이전에는 명칭이 충무공 탄신일이었으나, 2013년에 현재의 명칭인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로 변경되었다.
충무공의 애국 위훈을 길이 전승하고 민족자주정신을 선양할 목적으로 충무공 이순신의 탄신일인 1545년 4월28일을 기념해서 제정하였으며, 대한민국 기념일 중에 위인들의 생일에서 따온 두 기념일 중 하나이다.
공식적인 충무공의 충의를 기리는 행사는 조선 정조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충무공을 기리는 기념행사는 일제 강점기는 물론 8.15광복 후에도 민간차원서 간간히 이어졌다. 대한민국정부는 196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서 공식적인 기념일로 거행하였다. 1968년에는 서울 광화문에 충무공 동상을 세우고, 현충사(顯忠祠)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는 등 충무공 추모, 현양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국가적 관심이 떨어지고 국민적 관심도 이전 같지 않자 행사규모가 작아져서 기념일 성격만 유지해 왔다. 그 뒤 1998년 충무공 순국 400돌을 맞으면서 다시 기념사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날 행사는 충무공의 높은 충의를 길이 빛내고, 후손들에게 자주자립. 정의. 애국. 애민. 창조 정신을 심어주기 위한 각종행사가 열린다. 본 행사는 대한민국 국방부가 주관하지만, 주요행사는 해군을 주축으로 이루어진다. 해군은 행사 당일 기항중인 함정마다 만항식을 거행해 성웅(聖雄)의 탄생을 경축하는 한편, 부대별로 충무공 유적지 참배, 부대 개방행사, 초빙 강연, 마라톤이나 행군 등을 실시하고, 해군본부 장성 및 주요 참모들은 아산 현충사 참배를 통해 충무공의 우국충절을 기리며 현충사 측에서도 이날은 무료 개방을 실시한다.
영국의 해전사연구가(海戰史硏究家)인 발라드(G. A. Ballard)제독은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여 평하기를 “이순신 제독은 서양학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그로 하여금 넉넉히 위대한 해군 사령관 가운데서도 뛰어난 위치를 차지하게 하였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 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정신인 불굴의 공격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정신을 겸비하고 있었다. 어떠한 전투에도 그가 참가하기만 하면 승리는 항상 결정된 것과 같았다. 그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 그는 싸움이 벌어지면 강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나, 승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신중을 기하는 점에 있어서는 넬슨(Nelson)과 공통점이 있었다..... 중략..... 영국 사람으로서는 넬슨과 어깨를 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란 항상 어렵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인정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그는 한 번도 패배한 일이 없고 전투 중에 전사한 이 위대한 동양의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라고 평하였다.
성웅 이순신은 전쟁 중에도 틈틈이 난중일기(亂中日記)를 기록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게 하였고, 시조(時調) 등의 뛰어난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전사소식이 조정에 전해지자 선조는 관원을 보내 조상하고 우의정에 추증하였다.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녹훈되고, 덕풍부원군(德風府院君)에 추봉되었으며, 좌의정에 추증, 1793년(정조 17)다시 영의정이 더해졌다. 묘는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어라산(於羅山)에 있으며, 왕이 친히 지은 비문과 충신문(忠臣門)이 건립되었다. 충무의 충렬사(忠烈祠), 여수의 충민사(忠愍祠), 아산의 현충사(顯忠祠) 등에 제향 하였는데, 이 중에 현충사규모가 가장 크다.
현충사는 조선 숙종연간에 이 고장 유생들이 그의 사당을 세울 것을 상소하여 1707년(숙종 33)에 사액(賜額), 현충사가 입사(立祠)되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하여 현충사의 경역을 확대하고 성역화 하였으며 새로운 전시관을 설치하여 종가에 보존되어 오던 <난중일기>와 그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일생과 중요한 해전을 그린 십경도(十景圖)가 전시되어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저서로는 <이충무공전서>가 전한다. 또 그를 대상으로 삼은 작품으로는 신채호(申采浩)의 이순신전(李舜臣傳) 등이 있으며, <성웅 이순신> 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제작되어 그의 행적과 공로를 일반에 널리 알리기도 했다.
오늘 471돌을 맞이한 성웅 이순신의 탄신일 맞이하여 행적을 돌아보고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리고 오늘같이 얽히고설킨 내외의 어려운 문제들이 왜 해결되지 못하는가에 대하여 회의감마저 들기도 한 날이다. 정치하는 모든 분들이 현충사 참배라도 했으면 좋겠다. 끝
2016년 04월 28일(목요일)
夢室에서 김광수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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