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늦잠을 잤다.
전날 후배랑 술자리가 길어졌는데,그게 조금 무리가 갔나보다.
어젯밤 후배의 차 시동이 꺼져버린 관계로 우리는 남이섬까지
기차로 가기로 했다,
검색해 본 결과 11시35분 기차가 있었고, 11시40분 시외버스가 있었다,
청량리역에서 열한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나보다 한발 먼저 청량리역에
도착한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시각 가평가는 열차는 좌석과 입석 모두
매진됐다는 것, 그래서 나는 전철 노선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상봉터미널로
가는 노선을 찾아 길을 바꿨다.
아무리 계산해도 11시40분 차를 타기는 무리일 것 같아
후배한테 먼저 떠나라고 했더니 다음 버스가 12시10분에 있으니 그것 타게
빨리 오라는 것이다.
남이섬에서 열리는 아줌마 문화축제 프로그램 중 코스프레 행사가 있었는데
후배는 그 심사위원으로 위촉됐고, 난 그 덕에 생각지도 않게 남이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가평에서 버스를 내리니 남이섬 가는 길엔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냥
서 있었다.
처음엔 가평에서 내려 선착장까지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길을 제대로 모르는 우리는 가게에 들어가 남이섬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그냥 걸어서 가라고 했다,
걷는게 더 빠르다고....에휴, 그래 걷자.
사실 행사가 두시부터 시작되니 그때까진 행사 현장에 도착해야 하는데
시간은 오후 한시 삼십오분, 아무리 빨리 간다해도 두시까진 무리다,
행사 진행요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가평에 도착했다고 알린 후
우리는 남이섬 선착장으로 가는 사잇길로 접어들었다,
가을날 오후의 햇살은 살랑거리는 바람과 함께 다정하게 우리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골목길 양 옆으론 옹기종기 정감어린 집들이 우리 곁을 지나친다.
집집마다 정원이 있었고, 나무가 있었다.
더러는 장독대가 보이기도 하고, 잔디가 심어져 있기도 했다,
골목 어귀를 지키는 은행나무가 먼저 우리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다.
그 우아하면서도 살가운 노란 손짓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듯 멈춰서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길은 다감하게 연결되고 있었고,햇살도 따스했지만
마음은 더없이 달아오른다. 내가 걱정을 연발하자 후배가 진정시킨다.
인삿말이나 그런걸 하면 두시반은 돼야 코스프레가 시작되겠지?
내가 짐짓 태연을 가장하면서, 빠른 걸음 덕분에 조금 가빠지기 시작한 숨결을
고르며 후배한테 말한다, 그녀는 말없이 웃으며 내 손을 잡아 흔들며 걸음을
재촉한다.
남이섬 선착장 가는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
처음 할아버지가 15분 정도 가면 될거라고 얘기했을 때부터 한 삼십분은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삼십분은 족히 걸었다,
45분 후, 남이섬 선착장에 도착했다.
보통 걸음보다 더 빨리했으니 평소라면 아마 한시간 이상 걸어야 할 거리다.
장하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선착장에 늘어선 줄을 보면서 우리는 또 한번 놀랐다,
줄이 한없이 늘어져 있었고, 차례를 기다리기에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 바빴다,
편법을 사용했다, 행사 때문에 간다고 하고 먼저 배에 올랐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남이섬에 온 것이 아마 이십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대학시절, 남이섬에 가보기 위해 기를 쓰고 서울로 왔었던 것하며,
그 후로도 친구들이랑 경춘선을 타고 남이섬과 강촌, 춘천 등지로
여행을 하기도 했는데....기실 남이섬의 추억이라고는 나한테 그다지
정겨운 것도 없었고, 아른거리는 것도 없었다,
그저 '남이섬' 이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 때문에 가고 싶었던 곳,
초등학교 때, 만화를 보면서-그것은 축구를 소재로 한 것이었는데 뭐 주인공으로
나오는 선수 이름이 당시 대표(?) 선수들의 이름자 하나만 바꾼, 예를 들면
이화택이라든지 그렇게 명명해 선수들의 지옥 훈련을 하는 곳으로 남이섬이
자주 나오곤 했는데- 그때부터 나의 머릿속에는 '남이섬'은 내가 꼭 가봐야 하는
섬이라는 생각이 자리잡은 듯하다.
내륙에만 살았던 나는 '섬' 이라고 하면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혹은 강줄기를 따라 하염없이 달려가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 상당히 생경하면서도
가슴설레게 하는 것의 대명사나 다름없었는데,
처음 간 남이섬은 그 점에서 이미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배를 타자마자 돌아서서 내려야 했던, 상당히 난감한 만남이었지만
그 숲길이며 바람과 우리들의 웃음소리만은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런 곳이었다.
나의 이런 남이섬에 대한 기억들과는 달리 후배는 기실 남이섬이 처음이라고 했다,
언니, 평생을 연극판에서만 사느라 이런 곳 한번 못왔는데, 난 참 바보였나봐.
그래, 넌 바보야, 이제부턴 주변도 좀 살피고, 여행도 좀 하고 해.
알았어.하하하, 호호호.
분주하게 발길을 옮기면서도 가차없이 코끝으로 밀려드는 소나무 향을 맡으며
그녀와 나는 그렇게 깔깔거리면서 행사장을 향했다,
섬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일자 드디어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녀도 나도, 점심은 물론 아침까지 굶은 판에 그렇게 결사적으로 걸어왔으니
배가, 뱃속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나 어쩌랴. 먹을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후배의 배낭 안에서 이것저것 과자부스러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씩 정성스레 포장된 과자들이었지만 이미 그녀 가방에서 며칠을 구르는 바람에
과자는 조각조각 부숴져 있었다. 과자 부스러기가 입가에 묻어나 조심스러웠지만
먹을 것을 달라는 뱃속 시위를 막기에는 충분했다,
꼬르륵 소리가 멈출 때쯤 우리는 심사위원석에 함께 앉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 가을 나들이는 가벼운 주머니를 더욱 가볍게 하지 않고도 가을 정취를
맛볼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으니 흐뭇하기까지 했다,
아줌마가 키우는 아줌마 연대-아키아에서 마련한 제 5회 아줌마 문화축제는
'아줌마, 꿈을 펼치다!'를 주제로 아줌마가 단순한 문화의 소비자가 아닌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확산시키는 문화생산자로 거듭나 문화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이 행사를 통해 생활과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아
내재된 끼와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아줌마 댄스대회에는 아줌마들이 밸리댄스, 자이브,댄스스포츠, 힙합댄스 등을
선보였는데,무대에 오른 아줌마들의 흔들리는 뱃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나는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뭐....약간의 민망함까지도.
전문 무용수들의 절제되고도 탄력있는 근육보다,
아줌마들의 올록볼록한 뱃살과 어깨살이 더 정겹게 느껴졌다.
밸리 댄스의 의상이나 힙합 댄스의 배꼽티를 저리도 당당하게 입을 수 있다니,
팔을 들어 흔들면 어깨와 팔의 살들이,
다리를 들면 통통하고도 뽀얀 허벅지 살이 나를 향해 깔깔대며 웃는다.
이것은 아줌마들만의 훈장이라고, 삶의 자리테라고 환호성을 지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옆자리에 앉은 후배는 여러 항목에 해당하는 점수를 매기기에 여념이 없었고,
나는 어느새 민망함도 잃고 그네들의 춤 속으로 빠져들었다,
오늘은 아줌마들의 문화축제가 아닌가.
함께 즐기자.
단지 행사가 너무 외향적으로 흐른 듯한 것에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지만,
그다지 깊게 생각지 않으려고 마음 먹었다,
비판보다는 이제 다섯돌 걸음마 밖에 떼지 못한 행사에 우선은 박수를 보내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행사가 길어졌다. 어느새 남이섬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초대 가수로 테프콘과 김도향씨가 초대됐다.
무대위엔 조명이 켜졌고, 노래하는 가수들 위로 비누방울이
퍼져나갔다,
비누방울을 쫒아 눈길을 보내던 나는 무대 저편 하늘 위로
희미하게 걸린 조각달을 보고 가슴이 막혀버렸다,
차오르는 조각달이 희미한 웃음을 보낸다.
행복으로 가슴이 메인다.
밤이 오자 추워졌다.배고픔과 추위가 감정을 마비시켰지만
섬의 차가운 바람에 내 몸을 적응시키려 애썼다.
하늘의 조각달은 어느새 희뿌연 제 빛을 내고 있다,
처음 계획은 코스프레 행사 심사만 끝나면 우린 일어나 남이섬 구경을
하자는 것이었는데, 어찌하다보니 자리를 뜰 수가 없어 어둠 속에서도
박수를 치며, 사회자가 시키는 것을 따라하고 있었다.참 착한 심사위원과 옵저버란
생각에 약간 쓴웃음이 나기도 했다,
모든게 끝난 후, 가려는데 심사위원 중 제일 연장자가 우리를 붙든다.
화가 이인하 선생은 주최 측과 각별한 듯 싶었다, 그녀가 우리를 붙들어
저녁을 먹고 가라는 것이었다.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워낙 줄을 길게 늘어서 지금 가도 배도 못타니
그 시간에 식사를 하잔다, 텅빈 속은 어서 그리 하자고 조른다.
우리는 행사장을 떠나 밀려 나오는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섬 깊숙한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워낙 캄캄해서 남이섬 구경은 할 수도 없었다.
밤눈이 어두운 내가 투덜거렸다, 가로등도 없고, 이렇게 캄캄해서야, 원-,
저녁 식사 공간은 또 야외였다. 모두 덜덜 떨면서 드러내지도 못한 불평을 쏟는다.
고기를 굽는 불이 있는 곳에 가서 잠깐 몸을 녹히고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배가 부르니 추위도 좀 가셨다.
숲의 향기가 나를 간지럽힌다.
단풍나무가 내 어깨까지 가지를 늘어뜨린 곳에 앉아
우리는 저녁을 먹었고,
남이섬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솔향기가 진하냐는 물음에 남이섬 강우현 사장은 이리 말했다,
"남이섬에선 나무에 농약을 치지 않아요.
농약을 안치니 벌레가 많아요, 벌레가 많으니 그것을 잡아먹으려고
새들이 날아와요. 새들이 새똥을 싸죠? 거기서 야생화의 씨앗들이 나와
야생화 군락이 생겨요. 습지가 생기고,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복원되죠.
우린 3년째 농약을 안쳐요. 섬이니까 새벽에 나가면 물안개가 자욱하죠.
허리까지 빠지는 물안개를 헤치고, 꽃사슴들이 유유히 걸어다녀요.
그런 것 보셨어요? "
아, 남이섬에서 이대로 밤을 보내고 싶다.
밤세워 남이섬 얘기를 듣다가 새벽 안개 속에서 꽃사슴들과 그렇게 만나보고 싶다.
남이섬의 푸른 숲 속에서, 그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을 받아 안고 싶다.
강우현 사장과 남이섬 주인장은 너무 추워하는 우리를 사랑방으로 데려간다.
그 곳에 발을 들이면서 나는 또하나 경이로운 세상을 만났다,
입구쪽에 진열된 도자기들,작은 나무가지를 토막토막 내어 깍아놓은 나무토막들,
유리와 도자기로 만든 여러 형태의 물건들....
주는 커피를 마시는둥 마는둥 후배와 나는 그 안을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가끔 우리는 영혼으로 연결돼 있다고 농담을 하는 그녀와 나의
감성이 이때 비슷한 감동으로 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먼 곳까지 왔음을 감사하는 의미에서 그동안 만들어 놓은 영상물을 보여줬다,
남이섬은 '나미나라 공화국' 으로 이미 개국했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강우현사장이 그동안 만들어온 남이섬 이야기가 전개됐다,
여기저기 버려진 건물의 외관을 수리해 유니세프를 비롯해 환경 단체 등에
건물을 기증한 것,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 즉흥 음악회 등등...
거기다 겨울연가 특수까지.
남이섬 공동체에서는 그렇게 자연과 함께 사람사는 이야기들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고, 추억이 있고,볼꺼리 느낄꺼리 그리고 나눌꺼리가 있는
건강한 섬나라가 이미 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그저 막연하게 남이섬이라는 이름의 느낌이 좋은 곳이었던 그곳, 남이섬이
상상과 역발상으로 그리고 후손들에게 좋은 자연을 남기고 싶은 사람에 의해
남이섬은 잃어버린 꿈을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5년전 남이섬 경영을 맡아 지금의 남이섬을 만들어낸 강우현 사장,
그는 남이섬이 좋아서 남이섬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그의 글을 보면서
나는 내 꿈에 한발 다가서는 것을 느꼈고, 희망과 용기를 다시 움켜 쥘 수 있었다,
하느님은 참 묘한 곳에서 묘하게 응답을 해주신다.
남이섬의 꿈은 신기하게도 내 꿈에 불을 지폈다. 의기소침까진 아니지만
새롭게 나타난 움쩍하지도 않을 것 같은 걸림돌 주위만 서성이던 내게,
넘어 뛰어가야 한다는 울림을 준다.
꿈꾸는 사람은 꿈을 이룬다지 않는가?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고 그 잔향을 음미하면서
나는 남이섬이 던져준 메시지를 마음 깊이 갈무리한다,
이만하면 제법 큰 가을나들이 선물이 아닌가?
남이섬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배를 타려면 일어나야 한다. 우리 일행들은 아쉬운 발길을 떼야했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팔당에 있다는 이인하 선생 작업실에도 한번 가기로 약조를 했다.
남이섬은 분명 다시 나를 부를 것이다.
돌아서 나오는 길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저 발끝에 전해지는 느낌으로 우리는 천천히 섬 입구 쪽으로 걸어나갔다,
어둠 속에서 섬은 내밀하게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보라고 일부러 조명을 하지 않았다는
강사장의 말이 귓가를 울린다. 행사 직후 섬 안쪽으로 들어갈 때와는
정반대의 기분이다. 어두우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나가면 된다,
어둠에 손을 먼저 내밀면 내 손을 잡아줄 것이야.
선착장 입구에서 배를 기다리며 모닥불을 쬐며 아주 긴, 길고도 고소했던
가을나들이를 되돌아본다,
어느새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남이섬에 가자고 꼬득일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날을 받아 시작과 같은 마무리 나들이의 행선지는 남이섬으로 정했다,
도시락을 싸서, 기차를 타고 그렇게 나는 지인들과 남이섬으로 다시 가고 싶다.
남이섬은 그렇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전해줄 듯 하다.
나와 가을나들이에 동행해준 후배에게 고마운 마음을 다시 전하며....
-하지만 이건 분명 주객전도의 표현이다. 고마운 마음만 빼고, 하하하-
2006년 나의 가을나들이는 계속될 것이다.
첫나들이의 감동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여기에
강우현씨의 단상들을 전해본다,
'함께'하는 아름다움은 마음을 나누기 대문입니다^^.........하'함께'라.....그곳에서 내 발자국 못보았습니까. 오래된 것과 아직 온기가 마르지 않은 것까지....그러나 이제는 안가려고요. 좋은 기억을 가진 곳은 인하러 가면 망해서요. 그런데 아줌마 문화행사의 내용은 춤인가요 아고....함께라고 했지요 재미있어요. 가을냄새 많이 맡았어요.
+, 후후 ...이상하게 저도 섬이라는것은 동경의 대상이에요 아직도 저에게는...여행을 스무살 무렵부터 시작했었는데 물론 그 안에 수십년의 공백기간도 있었지만...이런저런 이유로 섬을 가보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더 그리움으로 자리잡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요즈음은 또 가지게 되네요...윗지방에 놀러가면 한번 가보고 싶네요...마음따라 여행 잘했습니다...
첫댓글 남이섬에 다녀오셨네요. 나중에 다시 읽지요. 답을 하고 싶고 늦게 집에와서 읽을 것은 많고 행복한 고민입니더
'함께'하는 아름다움은 마음을 나누기 대문입니다^^.........하'함께'라.....그곳에서 내 발자국 못보았습니까. 오래된 것과 아직 온기가 마르지 않은 것까지....그러나 이제는 안가려고요. 좋은 기억을 가진 곳은 인하러 가면 망해서요. 그런데 아줌마 문화행사의 내용은 춤인가요 아고....함께라고 했지요 재미있어요. 가을냄새 많이 맡았어요.
꼬득임을 받지 않아도 두분곁에 바짝 붙어서 숨가쁘게 걷고, 배고프고, 떨며, 박수치며, 어둠을 더듬으며 감동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남이섬엔 안 갈겁니다. 이 감동 깨질것 같아서요. 고맙습니다.
+, 후후 ...이상하게 저도 섬이라는것은 동경의 대상이에요 아직도 저에게는...여행을 스무살 무렵부터 시작했었는데 물론 그 안에 수십년의 공백기간도 있었지만...이런저런 이유로 섬을 가보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더 그리움으로 자리잡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요즈음은 또 가지게 되네요...윗지방에 놀러가면 한번 가보고 싶네요...마음따라 여행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