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절 이종 사촌오빠를 꼭 죽을 만큼 짝사랑한 적이 있었다 .
친척 오빠가 아닌 이성으로 사모하며 애면글면 마음을 쥐어뜯고 있을 적에
미남인데다 인기 많은 이 오빠는 자신에게 보내진 연애편지를 내게 읽으라고
한 뭉텅이 던져주곤 자신은 기타만 댕강거리느라 내 작은 가슴 시커멓게 타는걸
알 턱이나 있었겠는가 ,
우리 집과 이모 집은 국 퍼 놓고 부르러 가면 식기 전에 도착하는 거리라
나는 수시로 이모 집을 들락거리며 자랐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모네 오빠가
이성으로 다가왔으니 ,
그 때부터 이모 집 출입도 자제하고 내가 오빠에게 어떻게 하면 여자로서
관심을 끌 수 있을까 그 문제에만 매달렸지 ..
허지만 열다섯에서 여섯으로 넘어가는 그 시절 나의 용모는 내가 봐도
참으로 한심했으니,
발육이 지지부진한지 마르고 길기만 한 팔다리에 아버지 심부름으로 늘
바깥으로 도느라 새까매진 얼굴은 나를 세상을 하직하고픈 마음으로까지
먹게 만들었다
지금 같은 여름이었지 아마,
저녁나절 어른들이 동네 모임에 가시고 혼자 어둑한 마루에 남폿불 밝히고
앉아 있노라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인지 자전거를 우리 집 마당에 세우더니
"내 밥 좀 도고 여기서 먹고 갈란다",
마음이 콩닥거리며 정신이 없는 와중에 희미한 호롱불 부엌에서 무얼 어떻게
차렸는지 저녁상을 차려 마루에 내다 주고 난 멀찍이 앉아서
오빠의 먹는 모습을 홀린 듯 사랑스런 듯 바라보는데, 숟가락질 바쁘던 오빠가
"자야, 이 정구지 김치 되게 맛있네 니가 담갔나?" 하여서 내 가슴을 더욱 뛰게
했던, 그 여름 저녁밥과 심지가 타느라 연기가 나던 남포 불빛에 비친 오빠의
하얀 얼굴, 가슴이 할랑거려서 두 손으로 가슴을 싸안던 내 여리고
맑았던 영혼의 날들이여...
삼일 전 첫째 이모의 장례식 장
이제 오십을 넘긴, 목 뒤로 살이 붙고 전체적으로
풍성한 모습을 하신 나의 첫사랑 사촌오빠가 올케와 함께
내 앞에서 손을 내민다.
마주 잡고 웃음 짓는 그 눈길에 갑자기 가슴이 싸아 ~ 하니 아파 오는 것은
왜일까?
모를레라 정녕 모를레라
나 혼자 간직한 체 잊혀진 듯 없었던 듯 살아왔는데
나를 향해 웃음 짓는 그 모습에서 난 어느 새 열여섯으로 돌아가
가슴 콩닥거림을 지긋이 눌러대다니 ...
나 또한 희어진 머리칼을 한 중년의 나이를 안고 말이다
단 한번 뿐 인 첫사랑을 당치도 않게 사촌 오빠를 사랑한 나의
소녀 시절은.. 그렇게 말못하고 자랑 한번 못해보고 작은 가슴 쥐어뜯다
말았으니...
어둑한 창 밖으로 비가 내린다.
빗속으로 오빠의 웃는 모습이 보일 듯 하니 이 몹쓸 감상 부스러기는
평생에 도움 안될레라 진정.......
첫댓글 소녀의 첫사랑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담아야지요.빗속의 어둑한 창넘어 사촌 오빠를 연상이 된다면.....내생에 인연이 되는것 밖에......ㅎㅎㅎ
명숙님, 보석처럼 귀한 님의 아름다운 추억을 잔잔히 적어놓으셨네요. 즐감하고 갑니다.
소녀감정은 소년감정과 같지요^^ 저도 사촌누이를 그렇게 사랑한적이 있어요 그래서 쓰께또를 태워주고 그랬는데 문디가스나 지금은 어디가서 사는지 오빠를 찾지도 않더라구요 키키키^^ 밥무씨유?
아름다운 추억이군요 그런 추억하나쯤 있는 명숙님이 부럽군요 전 너무 일찍 남편을 만나 다른 남자와의 애틋한 감정은 커녕 그런마음도 안생겼으니 비 정상이었었나봐요
명숙님 아름답고 멋진 추억의 편지네요 저도 사춘기 시절에 비슷한추억이 생각 나네요. 호호호~~~~
한번쯤은 있음직한....남에게 이야기 할 수 없었던 .. 고이 접어 간직한 이야기네요.
참이슬님 아이디보니 반갑군요 안뇽^^
마음속 깊이 간직하여둔 예쁜 그림한점 내놓으셨군요..때묻지않은 잔잔한 그 모습을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