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람지 소래
한국 교회의 발생지가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소래)라는 사실은 기독교인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소래마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소래교회>라고 하면 경기도의 어느 어촌에 있는 교회로 오인하는 신학교 교수가 있는가 하면, 송천리(松川里)와 구미포리(九美浦里)를 동일시하여 [松川- 九美浦]로 표기한 글도 볼 수 있다. 또 소래교회의 소재지를 기록할 때 黃海道 長淵郡 松川里라고만 기록하고 "大救面"을 누락시키고 있는 것도 종종 눈에 띈다.
이상의 사례들은 소래교회에 대하여 막연히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소래라는 마을의 정확한 위치나, 환경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물론 정확성만 보장된다면 소래마을이 보유하고 있는 여타의 정보는 무시해도 무방할 것이나 그렇지 못한 것이 한국교회사의 현실이다.
본 장에서는 <소래>에 대하여 보다 더 자세하게 소개하려 한다.
1) 소래의 지형
소래는 황해도의 명산 구월산 줄기를 이어받아 뻗어 내려온 불타산맥의 높고 낮은 봉우리가 허룡산에 이르러 병풍처럼 둘러 쳐지고, 앞으로는 넓은 평야와 시원하게 펼쳐진 황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고을은 여러 취락 마을이 모여 형성된 곳으로, 마을의 가장 깊은 곳은 "선 바위골"이다. 이 곳은 산맥의 기세가 한데 응어리진 듯한 기암괴석(奇岩怪石)이 튕겨나와 "선 바위"를 이루어 놓은 바로 밑에, 화전민들로 구성된 마을이며, 여기서부터 소래는 시작한다. 이 마을 다음으로 형성된 마을이 [구석 몰]이다. 이 곳은 중앙의 높은 벼슬자리를 사임하고 낙향, 황해도 중에서도 구석진 이 마을에 이주하여 마을 개척에 심혈을 기울인 개척자 광산 김씨가 사는 곳이다. 이 마을은 이름과는 달리 듬직한 기와집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명칭은 구석 몰이지만 소래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구석 몰 밑으로 "밭뜸", "중뜸", "산막 골" 등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무래도 소래의 대동맥, 중심지는 "장거리"이다. 이 곳은 국도보다 2배나 넓게 닦은 신작로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상가와 집들이 널려 있으며, 일제의 파수병, 경찰 주재소와 금융조합 등 관청들도 자리하고 있다. 신작로를 넘으면 야촌, 덕촌, 아랫 소래 등의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중 영적 개척자 서상륜·서경조가 살던 곳은 [아랫 소래]라는 곳으로 소래 마을의 서남쪽에 위치한 변두리 지역이다. 서상륜은 아랫 소래 중앙부에 큼직한 기와집에서, 동생 서경조는 마을입구의 초가집에서 생활하였다.
소래를 소개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당골"이다. 아래 소래에서 나와 폭넓은 신작로를 건너 구석 몰 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소래의 성역이며 한국 교회의 진원지인 당골이 나온다. 이 곳은 소래교회가 건축되기 전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노송들이 하늘을 덮어 낮에도 태양빛을 볼 수 없었던 곳으로, 대대로 무당들이 살면서 마을의 공동제사를 비롯하여 당제를 지내던 곳이다. 당골에서 다시 산 속으로 올라가면 양지바른 잔디밭이 있고, 이 곳에 어학연수차 소래에 내려왔던 청년 선교사 매켄지의 무덤이 있다. 이 무덤에서 좀 더 산 속으로 깊이 올라가면 한국 최초의 초가집 교회가 세워졌던 곳이 나온다. 이 곳은 후에 소래 교인들이 기도처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2) 소래의 명칭
이 고장 이름은 본래 [솔샘](松泉)이다. 불타산맥의 허리부분에 속하는 소래의 뒷산에는 송림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고, 소나무 우거진 사이사이에 옹기종기 초가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 더욱이 광산 김씨의 선산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어 이 마을 이름의 첫 자로 소나무를 가리키는 [솔]을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을 곳곳에는 맑은 물이 넘쳐흐르는 샘들이 있다. 이 샘들은 칠년대한(七年大旱)에도 마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사시사철 분출하는 샘물은 소래의 주민들의 생활용수와 넓은 농토에 생명수를 공급하기에 충분하였다. 따라서 이 고장의 두 번째 글자로 [샘]을 사용한 것도 마땅한 일이다.
[솔샘]이란 이름은 이 고장이 하나님께 받은 천연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이다. 소나무와 샘물이 풍부한 고장 솔샘의 한문 표기는 물론 송천(松泉)이다. 이렇게 황토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유한 한글 이름은 사람들의 손질이 오가면서 이그러지기 시작하는데, 일본 사람들이 마을 이름을 한문으로 기입할 때 松泉으로 기입하는 것보다 松川으로 기입하는 것이 더 쉽고 편리하다 하여 표기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 그 사례이다. 그리하여 솔샘은 하루아침에 솔내(松川)가 되었고 솔내는 다시 음운현상에 의하여 "소래"로 변천하게 된 것이다.
솔샘, [소래]
듣기에 따라,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솔샘이 가지고 있었던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소박함, 그리고 천연의 모습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훼손된 자연의 삭막함 같은 한(恨)이 서려 있는 이름이 [소래]이다.
이 고장 이름과 연관하여 한 가지 더 부연할 것은, 한국교회사에서 대구면 (大救面)이란 면(面) 소재지 이름이 누락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매우 큰 실수를 범하는 것이란 점이다. 왜냐하면 이 곳을 대구면이라고 칭하게 된 것은 이 곳이 기독교의 발상지요, 민족 교회의 출발지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즉 이 곳에서 발생한 기독교의 [큰 구원] (大救)이 온 삼천리에 퍼져 나갔다는 뜻에서 이 고장 이름을 대구면(大救面)이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소래를 표기할 때 대구면(大救面)도 누락시키지 말고 반드시 기입해야 한다.
3) 소래의 물산
소래는 결코 번화한 곳은 아니다. 그러나 평화로우면서 풍요로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소래 출신으로 광복 후 월남한 송병서씨는 다음과 같이 고향 소래를 회상하였다.
"내 고향 [소래]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곳이라 자부한다.
월남 후 30여년 동안 남한 방방곡곡을 돌아보았지만 소래만큼 인심 좋고, 경치 좋고, 살기 좋아 슬기로운 역사와 문화를 지닌 곳은 별로 찾아보지 못하였다"
어느 누구인들 어려서 자란 고향을 자랑치 않으리요 마는 객관적 입장에서도 이 곳은 확실히 하나님의 은총이 풍성히 임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장연군에서 유명하게 손꼽히는 곡창지대는 "첫 번째는 태탄이고, 두 번째는 용정이며, 세 번째는 소래"였으니, 이처럼 소래는 실로 군내의 곡창지대로 꼽히는 고장이다. 더욱 특기할 만한 일은 소래 앞 30여만 평의 넓은 들에 풍부한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용수원(用水源)은 인위적으로 높이 쌓아 올린 저수지 둑이 아니라 태초부터 이 고장에 은혜로 주신 풍부한 샘물이라는 사실이다. 이 샘물만으로도 소래 평야를 전천후 수리 안전지대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창조주의 솜씨인가? 여리고의 엘리사샘은 만 평 정도의 여리고 평야밖에 적시지 못하는데, 소래는 그 것 이상으로 풍성한 수자원을 가지고 있으니 복받은 고장이라고 일컫지 않을 수 없다.
넓은 들을 지나면 해산물의 보고(寶庫)인 해안이 펼쳐진다. 조기, 숭어, 농어, 홍어, 갈치, 멸치, 해파리 등과 썰물 때 해상(海床)에서 풍부하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어패류와 해조류(海藻類)는 서민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며,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 주는 식품의 공급원이 수평선과 함께 전개된다.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선택하여 선민 이스라엘을 이주시키고 그 곳에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살도록 하신 것 같이, 한국에서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소래를 선택하여 민족 교회의 요람지로 삼으신 것이다.
4) 소래의 개척자
이 곳이 언제부터 개발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한 때 다 찌그러져 가는 모옥(茅屋) 몇 채로 명맥을 이어오던 벽촌인 소래가 세인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촌중 유지 김윤방의 증조부가 중앙정부의 판서(判書) 벼슬을 사임하고 이 곳으로 낙향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김윤방의 조부 김성첨(金聖瞻)도 좌수 벼슬을 사임하고 부친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하여 소래로 내려왔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윤방의 가문은 판서 댁 혹은 좌수 댁으로 호칭되었다.소래가 이들로 말미암아 활기를 얻게 되자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금의 소래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이 고장은 단일씨족 마을이 아니라 잡성이 모여 사는 곳이다. 소래에서 월남한 분들의 성씨를 조사해 보니 대략 다음과 같았다.
강(姜) 공(孔) 곽(郭) 길(吉) 김해김(金) 광산 김(金) ? 김(金) 백(白) 서(徐) 손(孫) 송(宋) 안(安) 윤(尹) 이(李) 장(張) 정(鄭) 정(丁) 조(趙) 최(崔) 한(韓) 호(胡) 홍(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