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지휘아래 대장님과 총무님이 바쁩니다. 지리산행 계획입니다. 1차 관문은 치밭목 산장 1박 예약입니다. 지난달 설악산 산장 예약에 실패했지요 그래서 이번엔 더 간절하기도 하고 동시에 마음도 절반 쯤 비웁니다. 제가 보기에 그했다는 겁니다. 사실 저는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드디어 대장님과 총무님이 예약하는데 성공합니다. 왠지 일이 풀려나가는 느낌입니다. 이제 두 번째 관문은 산행경로입니다. 다시 희용형, 알대장, 뜬총무 바쁘게 메시지를 주고 받습니다. 산바람형도 원공도 합세합니다. 저는 또 멀찌감치 서있는 상태입니다. 또 미안한 마음이지요. 대원사—치받목대피소—중봉—천왕봉—장터목산장—백무동코스로 정해집니다. 다만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하느냐 혹은 촛대봉, 세석평전, 그리고 한신계곡을 거쳐 백무동으로 내려오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시간 많으니 산에서 계속 싸우자고 알대장이 제안합니다. 이제 준비물 점검 및 배분이 3차 관문입니다. 침낭, 버너, 코펠, 후라이팬, 소주, 복분자, 위스키, 간식, 과일, 비누, 채약, 키친타올, 트리오, 소금, 참기름, 등등입니다. 모두 배분이 끝납니다. 6월 18일 오전 8시 50분 남부터미널 4번 탑승장에 모입니다. 모두들 눈은 빛나고 얼굴은 밝으며 마음은 들뜹니다. 일상을 벗어나는 첫걸음이지요. 그도 육순을 넘어 이제 그윽한 지리를 만나러 가니까요. 산청행 버스에 몸을 싣고 창가에 몸을 기댑니다. 지친 마음은 자꾸 나에게 말을 겁니다. 고맙다고 자기도 좀 쉬고 싶었는데 얼마만인지 모르겠다고요. 흐르는 풍경들도 자기 좀 봐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관찰자로 바라보니 그도 좋습니다. 귀로 들리는 것이 이해된다더니 눈에 보이는 것도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웬걸 어느새 잠에 빠져들고 맙니다. 산청군 원지면 버스터미널에 내립니다. 낯선 거리와 6월의 햇살이 이방인들을 반깁니다. 알대장님과 뜬총무님은 또 바삐 공용물품 구매에 나섭니다. 필요 경비를 지출하는 모든 곳에 총무님이 있습니다. 기록물을 보관하고 정리를 합니다. 지리산행의 기둥이지요. 국수나무 식당에서 국수정식으로 점심을 해결합니다. 이제 공용 물품들 까지 나누어 배낭을 꾸립니다. 저의 30리터 배낭이 터질 듯 하지만 다른 대원들은 40리터 배낭이 팽팽합니다. 원지 버스터미널에서 대원사행 버스에 오릅니다. 20여분 달리는데 경호강변의 낯익은 풍경들이 보입니다. 지나온 세월의 흔적같아 숙연해집니다. 대원사 주차장에서 하차하고 우리는 대원사 경내로 들어섭니다. 548년 연기가 창건한 비구니 선원입니다. 한없는 위로를 느낍니다. 삶이 결코 가볍지 않음도 배웁니다. 수행자의 경건함에 고개 숙입니다. 게시판에 걸린 어느 스님의 기도문입니다.
언제나 내가 누구를 만나든 나를 가장 낮은 존재로 여기며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그들을 더 나은 사람으로 받들게 하소서
....
누군가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나를 욕하고 비난하며 부당하게 대할 떼
나는 스스로 패배를 떠안으며
승리는 그들의 것이 되게 하소서
....
세속적인 관심에 물들지 않아 모든 것이 때묻지 않게 하시고
또한 이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깨달은 나는
집착을 떨쳐버리고 모든 얽매임에서 자유롭게 하소서
이제 치밭목 산장을 향한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됩니다. 단단히 매기는 마음의 끈입니다. 지리산이 내미는 손길을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부르는 난만한 봄노래를 감상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지나온 세월을 그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마음껏 웃고 마음껏 아프고 마음껏 편할 것입니다. 그의 품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서서히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숨은 차오르고 땀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치밭목 산장까지 10km입니다. 올라야하는 높이는 대략 1000m입니다. 걷고 또 걷습니다. 회장님과 알 대장님은 벌써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산바람 형과 뜬 총무님 그리고 나는 체력의 범위 안에서 오릅니다. 사실 별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오르느라 그냥 시선은 발 앞에 고정시킵니다. 체력의 소모를 최소화하고 마음을 붙들기 위해서입니다. 오르고 돌고 내리고 또 오르기를 세 시간여 무제치기폭포 50미터라는 푯말이 있습니다. 제 눈에는 50km로 보입니다. 그 멋진 폭포를 곁에 두고 발길을 돌리니 이 골짜기 저 나무들이 체력 길러서 다시 오라는 듯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치밭목 산장에 도착하니 알대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마중나옵니다. 회장님과 알대장님은 7시 이전에 산장에 도착해서 저녁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금겹살은 구워지고 이바구는 피어오릅니다. 라면은 끓고 위스키와 복분자가 박자를 맞춥니다. 치밭목 산장의 밤은 깊어갑니다. 숙소는 난방이 되어 따뜻합니다. 옷을 갈아 입고 자리에 누우니 바로 꿈나라입니다. 만석형이 깨워서 일어나니 새벽 5시입니다. 짐을 꾸려 밖으로 나오니 저녁 먹었던 야외식탁과 코펠 그리고 쓰레기들이 말끔히 치워져 있습니다. 알대장이 했다고요. 4시에 일어나서 말입니다. 새벽 4시 기상과 써리봉에서의 일출 감상은 알대장의 계획대로 진행됩니다. 각자 배낭을 꾸리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날이 밝아 옵니다. 참 신기합니다. 어제의 피로는 기억에만 있을 뿐 몸은 다시 가볍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새벽공기를 가르며 오릅니다. 써리봉 부근의 봉우리에 자리잡고 일출을 봅니다. 붉은 덩어리가 지평선위로 떠오릅니다. 힘을 얻습니다. 그 기운으로 걸어 갈 것입니다. 회장님이 버너를 켜 누룽지를 만듭니다. 우리 모두 그 누룽지에 힘을 얻습니다. 회장님의 계획과 실행으로 걸어 갈 것입니다. 다시 중봉을 향해 걷습니다. 이제 1600여 미터 능선이 지리산의 위용을 보여줍니다. 보이느니 푸른 하늘과 맞닿은 봉우리들이며 그들을 품고 무심히 흐르는 구름입니다. 나지막한 탄성이 나옵니다. 거기엔 판단도 없고 구속도 없으며 인습도 없습니다. 그저 있느니 무위의 자유만이 충만합니다. 이걸 보자고 이걸 함께 하자고 회장님은 구상하고 알대장은 말없이 구체화 시키고 총무님은 수입과 지출을 꼼꼼히 챙깁니다. 어느덧 찬왕봉에 다가갑니다. 저는 20년만입니다. 청춘은 흘러가고 백발(?)이 되어 만납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세월은 또 흘러 갈 것입니다. 천왕봉은 이제 쉬이 허락지 않던 비경을 내어줍니다. 세상은 이렇게 화려한 우주임을 깨우쳐줍니다. 삶은 때론 이렇게 모두가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느 한 순간 천왕봉에 선 기억을 안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싸움은 치밭목 산장에서도 중봉의 쉼터에서도 천왕봉에서도 그침이 없습니다. 그것도 치열하게 말입니다. 장터목 산장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경로에 대한 의견교환 말입니다. 물론 자연스럽게 백무동으로 직접 하산하는 것으로 수렴되었지요. 그런데 관전의 묘미가 있습니다. 의견의 다름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최선의 여정을 찾으려는 절충의 과정입니다. 서로의 공유의 깊이에서 피어나는 멋진 싸움입니다. 언제라도 하고 싶은.... 장터목 산장에서 육개장을 끓여 먹습니다. 지리산이 요리사인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먹는 음식마다 꿀 맛일 수 있겠어요. 마침내 백무동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오르고, 내리고 또 내렸습니다. 소맥 반주에 백숙을 함께 하며 우리의 웃음소리는 더 커지고 오가는 이야기는 더 고소해졌습니다. 다음 달 셋째 주말을 기다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우와. 이건 완전 다른 종류의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산행기 쓰시면 산행하실 때 마다 형이 쓰셔야 하는데요 ㅋㅋ.
구름 위 인생 샷도 멋있고 산행기 또한 멋있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그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산에 가는 이유를 잘 이야기해서 좋구만
산행기가 인생을 이야기하네, 잘 읽었네!
새로운 작가가 등장했네~~잘 읽었수
지리산을 만나는 마음, 그속에서 보내는 시간, 돌아와 다시 마음에 새기는 장면 등
오래 잊지 못할 산행이 되었음을 축하!!
와우! 앞으로 산행기 쓰는 사람들이 큰 부담을 느끼겠네요. 달공! 잘 읽었소. 그대와 함께해서 더욱 행복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