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리그사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큰 경기에 해당하는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앤필드 대결에서 승부의 명암을 가른 것은 골키퍼의 실책이었다. 불행의 주인공 예르지 두덱(은 경기 후 팀 동료들에게 사과하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그 실책이 여느 때와는 달리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두덱 자신이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두덱의 실책 문제를 떠나 본격적인 골사냥을 시작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디에고 포를란은 새로운 스타로서의 실력 발휘를 거듭하고 있는 상태.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현재 주전들이 대거 결장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히어로' 포를란은 더 빛을 발하고 있다.
리버풀의 제라르 훌리에 감독은 자신과 리버풀 선수들이 두덱을 결코 원망하지 않으며 한결같이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덱에 대한 그러한 심정적 동정에도 불구하고, 이제 훌리에 감독은 '넘버 원급 넘버 투' 골키퍼 크리스 커클랜드를 내일 벌어질 워딩턴컵(잉글랜드 리그컵) 입스위치 타운 전부터 시작, 일련의 경기들에 가동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스벤 요란 에릭슨 잉글랜드 감독의 오른팔인 스웨덴 출신의 토드 그립 코치로부터 '잉글랜드에서 가장 재능을 타고난 골키퍼'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던 U-21 스타 커클랜드는 마침내 장기간의 벤치 신세로부터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게 되는 것. 물론 이것은 잠정적인 의미의 조치이고 따라서 리버풀의 '넘버 원'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 조치의 기간과 정도는 커클랜드의 앞으로의 활약상 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사실상 훌리에 감독의 이번 조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패배 이전부터 구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리버풀의 수호신'으로서 언제나 팀을 실점의 위기로부터 구해내며 찬사를 받아왔던 날으는 수문장 두덱이 어찌된 일인지 올 시즌에는 불안한 장면들을 곧잘 연출, 커클랜드의 존재로 인해 더욱 가중되는 '압박감' 속에 두덱 본인의 자신감은 점차 퇴색해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리버풀은 최근 대 미들스브루 전에서 두덱의 실책성에 의해 상대 수비수 개럿 사우스게이트에게 뜻밖의 실점을 당하며 패했으며, 풀햄 전에서도 두덱은 '그의 통상적인 실력을 감안한다면' 더 나은 처리를 기대할 수 있는 슈팅을 막아내지 못하며 파쿤도 사바의 리바운드 골을 허용했다. 역시 리버풀은 패전.
훌리에 감독의 커클랜드 가동 계획은 예상했던 대로 두 갈래의 반응을 낳고 있다. 그 첫번째는 우선 두덱에 대한 여전한 지지론이다. 최근의 불안한 컨디션과 심리 상태에도 불구하고 두덱은 리버풀을 위해 정말로 많은 것을 공헌해 왔고 그 실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 지난 시즌 초 훌리에 감독은 당시 리버풀의 수문장이었던 네덜란드 대표 산더 베스터벨트(현 레알 소시에다드)가 프리미어쉽에 갓 올라온 팀 볼튼 전에서 평범한 각도의 중거리 슈팅을 어이없이 빠뜨리며 거의 자책골과 다름없이 허무한 결승골을 내주자, 이전부터 노리고 있던 두명의 골키퍼를 도합 1100만 파운드 이상을 소비하며 전격적으로 동시에 팀에 안착시키는 이례적인 영입을 감행했다. 그 주인공들이 바로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서 이미 유럽의 유명 수문장으로 발돋움, 해외 클럽들의 강한 관심을 받아왔던 예르지 두덱이요, 또다른 한명은 코벤트리 시티에서 스웨덴의 스타 골키퍼 마그누스 헤드만을 앞질러버렸던 젊은 재능 크리스 커클랜드였다.
리버풀은 '주전급 골키퍼 3명'을 보유한 이채로운 클럽이 되어버렸고 결국 베스터벨트는 '넘버 3'으로 전락, 후일 스페인 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주전 수문장 두덱은 즉각적으로 훌리에 감독의 결단이 옳았음을 실력으로써 입증해 나아갔다. 두덱의 맹활약에 감명받은 많은 리버풀의 팬들은 날렵한 순발력에도 불구하고 판단 등의 부문에 있어 두덱보다 불안한 스타일이었던 베스터벨트를 결코 그리워하지 않았으며, 다만 졸지에 출장 기회가 거의 없어져 잉글랜드 성인 국가대표로 올라설 가능성이 낮아진 커클랜드의 처지를 안쓰러워할 뿐이었다.
따라서 두덱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고든 뱅크스(잉글랜드), 디노 조프(이탈리아), 피터 슈마이켈(덴마크)과 같은 전설들도 커리어에서 실수가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탁월한 활약을 펼친 골키퍼에게도 실수들이 존재하는 법.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능력을 놓고 볼때 두덱은 여전히 주전의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결국 훌리에 감독이 커클랜드를 써보기로 한 것은 실로 올바른 결정이며 리버풀에게 궁극적으로 유익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요지는 사실상 커클랜드가 '두덱의 실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재능'이고 따라서 그가 의당 받아야 할 기회를 이제야 받게되는 것이라는 이야기. 커클랜드는 코벤트리 시절과 U-21 유럽선수권, 그리고 보기 드물게 찾아온 기회였던 리버풀의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갈라타사라이 전에서도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펼쳐보인 바 있다.
그러나 커클랜드가 아스날, 첼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과 우승을 놓고 살얼음판 승부를 매주 이어가야 하는 리버풀의 주전으로서 과연 두덱이 이제껏 해온것 만큼의 활약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 만약 커클랜드가 앞으로 주어진 몇 경기들에서 두덱과는 또 다른 의미로 '긴장'하게 된다면, 훌리에 감독은 진정으로 '골키퍼 딜레마'에 빠지게 될 공산이 크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라면 그래도 두덱이 '넘버 원' 자리에 조기 복귀하게 될 듯.
한편, 두덱과 같은 날 묘하게도 대 바르셀로나 전에서 실책성이 결부된 실점을 했으나 같은 이적생 동료 다르코 코바체비치의 연속골 세례로 인해 팀이 승리, 가슴을 쓸어내렸던 라 리가 1위 클럽 레알 소시에다드의 주전 수문장 산더 베스터벨트(사진)는 자신을 순식간에 내쳤던 과거의 보스 제라르 훌리에 감독을 향해 '감정적인 측면과 논리적인 측면이 뒤섞인' 공격의 화살을 퍼부었다. 베스터벨트는,
"나는 두덱에게 실로 안됐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만 지난 시즌 정말로 잘했다"
"그는 미들스브루 전에서 실수를 하면서 엄청난 중압감에 놓였었다. 어쩌면 감독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매주 실수를 하고 있다"
"훌리에는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지 않는다"
"감독은 '네가 나의 넘버 원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것은 '조심해라. 한번 더 실수하면 너를 교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베스터벨트는 두덱의 상황을 지난 시즌 중요한 경기들에서의 일련의 경솔한 플레이들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의 지지를 잃지 않은 결과, 바로 리버풀 전 디트마 하만의 탁월한 슈팅을 믿기 어렵게 막아낸 것을 비롯, 올 시즌에는 곧잘 중요한 선방들로써 자신의 '괴팍한 스타일의 천재성'을 다시금 드러내고 있는 파비앙 바르테즈의 상황과 비교했다. 베스터벨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상황을 보라. 바르테즈는 지난 시즌 많은 실책들을 저질러 왔다"
"하지만 퍼거슨은 '바르테즈가 나의 넘버 원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지금 바르테즈는 그가 맨체스터의 넘버 원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