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 – 221. 정치체제 어떻게 흘러왔나? ③
▶IMF 구제금융, 몽골 경제위기 모면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7년 몽골의 분위기는 1997년 한국의 IMF 사태때와 비슷했다.
세계 원자재 가격 급락으로 2016년 몽골은 7년 동안에 최저인 1%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독한 경제 한파를 만난 몽골인들은 과거 한국인들이 IMF 사태를 맞아 그랬던 것처럼
곳곳에 숨겨둔 금붙이와 외화는 물론 가장 큰 재산인 말까지 내놓으면서 경제적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대선을 눈앞에 둔 2017년 5월 14일 IMF는 드디어 몽골 정부에 4억 3,400만 달러의 장기 차관을 승인하며 숨통을 틔워주었다.
1990년 이래 무려 여섯 번째 구제금융이었다.
한국과 일본 중국도 때맞춰 몽골 지원에 나섰다.
그런 뒤에 치러지는 6월의 대통령 선거는 우선 급한 불을 껐지만 뼈 아픈 경제개혁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판가름하는 국민투표 성격의 선거이기도 했다.
▶바툴가, 결선 투표로 대통령 당선
경제를 망쳐 놓는 데 우선적인 책임이 있는 정치인을 보는 몽골인들의 눈이 곱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세 명의 후보 모두 당선에 이르는 표심을 얻는 데 실패했다.
민주당의 바툴가 후보와 인민당의 엥흐볼드 후보 인민혁명당의 간자타르 후보 가운데
누구도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민주 체제 전환 이후 최초로 결선 투표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차례로 50만 표와 41만 표, 40만 9천 표를 얻으면서 바툴가와 엥흐볼드가
결선 투표에 나서 결국 바툴가 후보가 50,6%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다.
▶10만 표 이상 백지투표, 촤악의 선거
대선 한해 전인 2016년 총선에서 몽골인민당은 76석의 의석 가운데 65석을 가져가는 압승을 거두었다.
민주당은 단 9석만 차지했고 나중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되는 3선의 바툴가도 이 선거에서 낙선했다.
특히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대통령 엘벡도르지의 인기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상황이라
대통령 선거는 엥흐벌드 인민당 후보의 낙승이 예측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결과가 빚어진 것은 어느 당을 가릴 것 없이 몽골 국민이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어느 후보에게도 표를 찍지 않은 백지투표가 10만 표 이상 무더기로 쏟아진 최악의 선거였다,
당선이 예상되던 인민당 후보는 1차 투표에서 3위를 한 인민혁명당 후보보다
겨우 천 표를 더 얻은 2위를 차지해 자칫 결선 투표에 나가지도 못할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바툴가 후보는 결선 투표에서 흔들리고 헷갈리는 유권자의 표심을 파고드는 전략으로
대통령직을 가져오게 된다.
▶국가주의와 포퓰리즘 결합 선거 전략 주효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쳐 스포츠 스타로, 사업가로 성공해 정치인으로 변신한
입지전적인 인물인 바툴가는 몽골인의 애국주의를 자극하고 경제난 해결사로 자처하면서 표심을 흔들었다.
그가 내세운 ‘몽골리아 퍼스트’(Mongolia First)는 바로 미국 트럼프의 선거 전략인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흉내 낸 슬로건이었다.
그 슬로건이 경제문제 등으로 불안하고 마음이 상해 있는 몽골인들에게 먹혀들어 갔다.
몽골 전통의상인 델을 입고 몽골의 자주권을 외치며 외국기업에 대한 규제의 부활을 외치는 그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기득권층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며 이를 청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여기에 상대 후보를 중국 혼혈이라는 쪽으로 몰아붙이는 홍보전략까지 동원해 국가주의와 포퓰리즘을
교묘히 결합하는 선거 전략을 구사했다.
바툴가는 그렇게 대통령직을 차지하며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을 이뤘다.
하지만 그에게는 소수당 출신 대통령으로서 어렵고 힘든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툴가, 불우환경 딛고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
바툴가는 흔히 ‘개천에서 용 났다’고 말할 정도로 나름대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바툴가는 1963년 울란바타르에서 몽골의 전통 씨름인 브흐 사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세 살 때 홍수로 집과 재산을 모두 잃고 빈민가에서 천막을 치고 살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우한 상황에도 학교를 마치고 그림을 그려 관객들에게 팔아 돈을 버는 일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스포츠쪽으로 눈을 돌려 레슬링 선수로 나서게 된다.
브흐로 단련된 몸으로 단기간에 에이스로 부상하면서 16세 때 몽골레슬링 대표선수가 되고
1989년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몽골의 레슬링 영웅이 됐다.
곧바로 사업에 뛰어들어 의류와 호텔 요식업 등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2004년 마흔한 살로 국회의원이 된 그는 몽골 유도협회장을 맡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몽골 최초로 유도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면서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가 높아졌다.
엘벡도르지 대통령 시절 그는 도로건설교통부장관을 맡는 등 집권 여당의 의원과 장관으로 일하면서
중량감 있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개헌으로 재선 도전 길 막힌 바툴가
바툴가는 대통령 재임 내내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의회 다수당인 몽골인민당이 총리 선출권과 내각 구성권을 쥐고 있어서 동거 정부 상태로 국정을 운영했다,
하지만 권한 행사에 많은 제약을 받으면서 뜻대로 국정을 운영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몽골인민당 소속 총리와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대통령 선거에서 내세운 공약을 거의 실천에 옮기지를 못했다.
그 총리가 바로 현직 몽골 대통령인 후렐수흐다
그의 임기 후반기인 2020년에 실시된 총선에서도 몽골인민당이 76석 가운데 62석을 가져가고
몽골 민주당은 겨우 11석을 차지하면서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찾아오지 못했다.
오히려 개헌선을 넘어 압승한 몽골인민당이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연임에서 6년 단임으로 하는 개헌안을 통과시키면서
재선에 도전하는 길마저 막혀 버렸다.
바툴가는 당연히 반발하며 해당 개헌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인민당을 해산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결국 법정 소송까지 갔지만 헌법재판소가 몽골인민당의 손을 들어주면서 재선 도전이 무산됐다,
▶소수당 출신 대통령, 국정운영 어려움
바툴가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때 5천 Km에 이르는 중국과의 국경을 폐쇄하고
학교 휴학과 설날인 차강사르의 왕래 금지 등으로 초기에 코로나 환자가 거의 생기지 않도록 조치했다.
대통령으로서 통치력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다수당인 몽골인민당이 동의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그랬지만 경제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다수당과 대립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바툴가 재임 당시의 몽골은 소수당 출신의 대통령과 다수당 출신의 총리, 장관이 대립하는 양상을 빚으면서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가 어려웠다.
원활한 정책 추진 역시 쉽지 않았다.
대통령중심제의 국가에서도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이어 나가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이원집정부제를 택한 몽골의 경우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제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바툴가 재임 시절에 여실히 보여줬다.
소모적인 정쟁으로 국정운영에 지장을 주거나 심할 경우 정치가 마비되는 상황까지 생길 수 있었다.
이원집정부제는 권력의 상호 견제와 감시가 쉬워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제도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간접선거로 선출된 총리와 장관이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하는 것이 민주적으로 옳은 것이냐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이 제도의 단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원집정부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들은 대통령중심제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의원내각제 쪽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대체적인 추세다.
▶후렐수흐, 6년 단임 대통령 취임
2020년 총선에서 몽골인민당에 의석을 몰아준 몽골 국민은 2021년 6년 단임으로 바뀐 대통령 선거에서도
몽골인민당 후보인 후렐수흐에게 표를 몰아줘
1차 투표에서 70%가 넘는 높은 지지를 받아 당선되도록 만들어줬다.
민주당 후보로 나선 에르덴은 겨우 6.7%의 득표율로 후렐수흐 득표에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회에서 1석을 보유한 군소정당인 민족 노동당의 엥흐바트 후보에게도 3배 이상 격차로 패하면서
민주당은 처참하게 야당으로 전락했다.
민주당의 총선과 대선의 잇단 참패는 무엇보다 경제적 요인이 컸다.
2020년 몽골은 경제 성장률 –4.4%를 기록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래서 선거의 결과는 민주당의 경제적 실정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했다
여기에 대통령과 내각의 대립과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으로 국정운영이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는 것보다
아예 안정적으로 몽골인민당 한쪽으로 권력을 몰아주는 것이 좋겠다고 몽골인들이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여기에는 민주당의 내부가 분열된 것도 한 요인이 됐을 것이다.
▶몽골인민당, 정국 전반 장악
바툴가 아래서 총리를 지냈던 후렐수흐는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전 총리직을 사임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산모와 아기를 혹한에 노출시켜 국민의 분노를 초래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면서 화랴하게 복귀했다,
특히 압도적인 의회 다수당인 몽골인민당이 받치고 있어 50대 초반의 젊은 대통령으로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됐다.
의회의 압도적인 다수당이 6년으로 임기가 늘어난 대통령 자리까지 가져가면서 이원집정부제를 선택한 취지가
무색할 정도의 상황이 됐다.
사회주의 시절 몽골을 장악했던 일당 집권당이었던 인민당은 체제 전환 후에도 중도 좌파 정당으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며
몽골의 국정 전반을 장악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대만의 국민당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정당인 몽골인민당은 1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셈이다.
이에 비해 민주화 주체 세력으로 자유 보수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내세워
몽골의 민주화에 기여한 중도우파 민주당은 존재감이 미약한 야당으로 전락했다.
▶6월 大후랄 총선 결과에 촉각
2024년은 세계 선거의 해라고 가히 말할만하다.
세계 40개국 이상에서 중요한 선거가 치러지는 해이다.
한국도 4월 10일에 있는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총선정국이 열기를 더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븍한에도 올해 선거가 있다.
한국의 총선과 같은 해에 치러지는 몽골의 총선, 大후랄 선거는 오는 6월 28일에 실시된다,
몽골 최대 축제인 나담을 열흘 남짓 앞두고 실시되는 몽골의 총선에서 인민당이 압도적 다수당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바툴가 前대통령이 이끄는 야당인 민주당이 선전할 수 있을 것인지가 최대 관심 사안이다.
선거 때마다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마음이 상해 있던 몽골인들이 올해는 그래도 다소 느긋한 상태다,
지난해 6% 전후의 성장을 기록하고 올해도 그 정도의 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경제적 여건이 나아졌다.
마이너스 성장으로 유권자가 화가 나 있던 지난 총선과 대선을 실시하던 때와는 다소 달라진 상황이다.
몽골 국민이 총선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몽골 정국의 앞날은 물론 이원집정부제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