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를 담은 질그릇
고린도후서 4:7~18
찬송가 585장(내 주는 강한 성이요)
오늘 본문 말씀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이 고린도후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거짓 사도들의 꾐을 받아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는 가운데 사도 바울이 자기의 사도권을 주장하는 의도를 갖고 편지를 쓰는 맥락입니다.
당시 거짓 사도들은 화려한 언변과 출신 성분과 그들의 인맥을 자랑함으로써 자기들의 권위를 주장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미혹하였습니다. 그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은 세상적 성공을 좋은 신앙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오늘날의 성공 신학의 원조 격에 해당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세상적으로도 잘 나가고 부자가 되어야 하고 세상의 권세도 얻고 좋은 지위를 차지하고 건강하고 모든 일이 형통하여야 한다고 설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박해를 받고 쫓겨다니고 돌을 맞아 얼굴에 상처가 있고 눈에 안질이 나고 한번씩 고통스러운 간질병 비슷한 질병으로 시달리고 여러번 체포되어 매를 맞는 것이 여러 차례였고, 감옥도 갇히고 거의 쫓겨다니듯 전도 여행을 다니곤 했습니다. 바울에 대한 온갖 악담과 비방도 유대인과 이방 도시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래서 그 거짓 교사들은 고린도교회에 와서 그들의 가짜 신학, 성공 신학을 가르침으로써 사도 바울을 실패자요 사도권이 없는 사칭 교사, 가짜 교사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정통성이 없는 교훈이라고 비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일부는 그들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이 증거한 십자가 복음의 정신을 해치는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고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안정되고 세상적으로 인정받고 복을 받는다는 말을 퍼뜨리면서, 자기들은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라고 홍보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마귀와 죄와 사망을 쳐부수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연약함과 낮아짐과 고난을 통하여 영혼을 살리고 사람들을 영적으로 부요해지고 참된 생명에 이르게 하시곤 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대단하고 지혜롭고 존귀하고 권세 있는 자들을 통하여 일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지극히 약하고 못나고 어리석고 비천한 자들을 통하여 자기의 일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비유적으로 표현한 바대로 하나님은 가장 값진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어디에 담아주셨는가 하면 질그릇 같은 존재인 부족하여 연약한 자들에게 맡겨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그 전도자 일행은 늘 인간적으로 보면 약하여 쫓겨다니고 박해를 받고 감옥에 갇히고 폭동자들에게 돌에 맞아 죽기도 하는 등 지극히 연약한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위대한 복음의 보배,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질그릇같이 연약한 자들에게 맡겨두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7절 말씀에 그 해답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은혜가 그 통로가 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 같은 경우에도 복음을 전하는 중에 그렇게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였고 박해를 받고 실제로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붙잡혀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혀 발이 차꼬에 차여져 갇혀 있기도 하였던 일들이 많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병을 수없이 고치고 예언도 해주고 방언 통역도 해주고 놀라운 설교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비밀들을 풀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사도 바울 자신은 병에 시달리며 약한 몸으로 인하여 힘들게 지냈으며 전도하여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만 본인과 그 일행들은 늘 박해를 피하여 도망치듯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떠돌아 다니곤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기를 포함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핍박과 질병과 곤경 등 연약함에 있는 이유가 도리어 예수님의 능력과 생명이 나타나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동일한 뜻으로 고린도후서 12장 7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한 바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12:7~9)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생명은 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능력과 생명은 도리어 그의 종들인 우리들이 연약함과 비천함과 무능력함과 시련에 처해 힘이 없을 때에 도리어 더 크게 역사하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종종 인간적으로 볼 때 약해지고 병들고 세상적인 실패와 고통 속에 떨어지도록 허락하시곤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과 생명이 더 온전해지고 충만하게 나타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공 신학의 거짓된 가르침에 속지 말고, 우리 인간적인 판단에 흔들리지 말고, 믿음 생활하는 중에 겪는 고난과 연약함과 시련 속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말고 더욱 보배이신 주님을 더욱 꼭 붙들고 더욱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소망의 불을 더욱 환히 피고 간절히 기도하며 주어진 사명의 길을 힘을 내어 전진해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16절 이하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주시는 바 격려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함께 봉독합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후서 4:16~18)
우리의 겉 사람이 병들고 약해지고 고난 가운데 처할지라도 절대로 낙심하지 맙시다. 그런 경우에도 우리 속 사람은 날로 강건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생명이 더욱 충만하여지고 그 연약함과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바 그의 일들을 이루어가시는 계기가 되기에 더욱 힘을 내고 믿음과 소망 중에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연약한 중에도 흔들림없이 주님을 믿고 사명의 길에 더욱 충성할진대, 하나님께서 훗날 우리에게 크고 중하고 영원한 영광의 상으로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