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든 싫든 내 그림자와 동행하는 때가 많다. 아무 말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따라나선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좀은 까탈스럽다. 아주 용감한 듯 겁이 많고 핑계가 많다. 앞에 서서 가다가 옆에 붙고 아예 뒷전에서 따라오는가 하면 어느새 삐쳤는지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는 신출귀몰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어떤 경우든 혼자서 삭이는지 불평불만이 없고 특별한 요구사항이 없는 것이다.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마치 권리를 주장하듯 뭐가 어떻고 제 주장만 늘어놓으며 말썽이라도 피우면 정말 곤혹스럽고 골칫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고우나 미우나 그래도 내 그림자다. 엄밀하게 말하면 나를 가장 많이 닮고 항상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동행하며 외롭지 말라고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만큼의 노고는 인정해 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지 싶다.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이 오히려 초라해지고 염치없는 일이다. 어두워 무섭다고 안 나타나고, 가는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삐쳐 숨어버리거나, 잽싸게 각도를 아예 틀어버린다. 그렇다고 나무랄 수 없다. 그림자와 수없이 다녔어도 똑바로 마주 보며 진지하게 물어보거나 답한 일이 없다. 내가 아무리 밝고 화려하게 꾸미고 나서도 그림자는 무관심한 듯이 항상 검은 망토 한 벌로 변화가 없다. 간혹 매무새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섭섭할 때도 있다. 검소한 것인지 고집인지 알 수 없어 그러려니 한다. 우리 앞에 수많은 사람이 살다 갔다. 그들이 누구인지 직접은 몰라도 마치 흉내라도 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열심히 배우고 익히며 나름대로 조금씩 보태고 뺀다. 어찌 보면 그들의 그림자 역할을 톡톡히 하며 따라가는 것 같다. 어쩌다 아무도 가보거나 해보지 못한 것을 독창적으로 그들을 앞지르면서 놀라게 한다. 사람은 같은 듯 다르며 누군가 닮아가고 따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대를 이어가듯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숨에 일정 수준에서 출발할 수 있어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