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특수입무 수행자였다
1973년 내 나이 열여덟. 그 시퍼런 나이에 나는 조국이 무엇인지 군대가 무엇인진 줄도 모르고 해병대에 지원 입대하였습니다. 4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시절 훈련소 동기들과 군 시절의 힘들고 아름답던 추억을 새기며 지내고 있습니다. 예비군을 지난 민방위를 넘어, 이제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노병이란 계급을 달고 말입니다. 45년 전 저는 해병대 263기로 바다를 누볐습니다. 지금이야 귀신 잡는 해병대라고 말하지만, 그때 보통 사람들은 해병대를 “개병대”라고 불렀습니다. 소위 말해 “뭣”처럼 힘들게 훈련을 받는다고 해서 생긴 말이었습니다.
우린 거기서 진짜로 낮에는 헉헉거리며 지독한 훈련을 받았고, 밤에는 선임들에게 맞으며 정말 개처럼 끙끙거리며 살았습니다. 한데 이상한 건 그렇게 험하게 훈련을 받으면서도, 왜 이토록 훈련을 시키냐고 대드는 병사나 엉덩이 맞았다고 아프다고 날뛰며 고발하겠다는 병사가 하나 없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신기하고 기막힌 집단이었지요. 훈련할 때는 고무보트를 머리에 메고, 바다가 아닌 산으로 기어 올라가며 “우리는 멋쟁이~ 바다의 사나이 ~ 조국이 부르면 어디든 달려가는~ 사랑에 살고 의리에 죽는 우리는 해병대~ 헤이 빠빠를 악 익” 하며 자랑스럽게 우리만의 군가를 부르고 다녔으니, 45년 전 그 때 그 시절에은 그런 일들이 통했습니다.
죽었던 사람도 일어나고, 산천초목도 무서워 벌벌 떤다는 훈련소 순검 시간에는 너무 긴장해 여기저기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꼴깍꼴깍 박자를 맞추듯 내무실 천정에 울려 퍼졌고, 정말 눈동자가 돌아가는 소리가 “사각사각”고요의 적막을 흔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비슷한 경험을 함께 겪었던 동기들이 매달 동기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추억의 꽃을 피웁니다. 대부분 3년의 군 생활을 30년 이상 근무한 주임상사처럼 잔뜩 부풀려 그 시절의 군 생활을 뽐내곤 합니다.
어쩐 선배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베트남 부대 식당에서 밥이나 하던 것을 부풀려 청룡 작전에 나가 비 오듯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베트콩을 양손에 잡아 돌아왔다는 등. 어쩐 동기는 공수낙하를 하는데 작시 부대는 특수부대라 육지 위300미터 상공에서만 낙하산을 펴야 하는 특별한 규칙이 있다는 등, 허세를 부렸고, 또 어떤 동기는 한술 더 떠 침투 명령을 박고 야간에 폭우가 쏟아지는데 보트를 타고 적진에 침투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거기가 평양 대동강 근처였던 거 같다며 영회에서 본 것을 누구 하나 본 사람이 없다고 뻥에 뻥을 보태서 미필자들이 민망한 거짓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토해냅니다.
그런데 그 화려한 거짓말들이 말을 타고 날아다니는 와중에도 어떤 동기 한 명은 자기 군대 상활에 대해 한 마디 말도 안했습니다. 저희들이 “군대에서 너는 무슨 훈련을 받았냐? 고 물으면, 그 동기는 대청도에서 특수임무을 수행했다고, 더 알면 다치니 거기까지만 알고 있으라고 침묵하며 입을 꾹 닫습니다. 대청도! 남파한 무장공비 김신조가 있던 124군부대가 바로 코앞에 있는 그 무시무시한 곳 말입니다. 거기서 특수임무를 수행했다면, 이놈 정말 죽을 때가지 입을 닫고 살아야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말없던 다른 동기들도 이 동기 앞에서
만은 늘 주눅이 들었습니다. 헌병대고, 보안대고, 공수부대고, 수색대 출신이고 간에 한가닥 하는 부대일지라도 여기 특수 북파부대 출신 동기가 있으니 “우리 모두 침묵을 지켜 광명 찾자”라는 묵언의 흐름이 동기들 간에 형성되어 있었던 거죠.
어는 라 저는 그 동기와 둘이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45년 전의 얘기를 술판에 안주로 꺼내 놓고, 지금도 현역인 듯 그날들 얘기를 했습니다. “동기야. 나는 강화 말도라는 곳에서 민간인 얼굴도 못 보고 3년을 보냈는데, 너는 그 무시무시한 대청도에서 군 생활을 어떻게 버텄냐?” 하고 물으니 한잔 술에 취한 동기는 껄껄 웃으며 자네만 알고 있으라는 묵언의 비밀신호를 보내며 그 특수임무의 비밀을 조심스럽게 공개해줬습니다. 저는 그가 털어놓는 특수임무의 고백을 듣고 술잔을 떨어뜨리며 “악!”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 세상에 이런 일도! 참, 이 녀석은 대단한 놈이었구나”하는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45년 전, 그가 배치 받은 곳은 대청도의 어느 소초였다고 합니다. 부대원도 소대 병력밖에 없고, 아무리 계급이 높아도 소대장이 제일 높고 중대장도 배 타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순찰을 올까 말까 하는 작은 섬이었으며 하물며 대대장은 이름도 모르고, 본 적도 없고, 선임들 얘기로는 여기 있다가 본대 들어가 제대중 받을 때나 대대장하고 악수 한 번 한다고 하니, 그 동기가 배정받은 소초는 그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대청도가 인심은 졸아 가끔 이장님이 숭어에 소주 한 짝씩을 소대에 갖다 줘서 그것을 위문품으로 생각하며 위안 삼고 지냈다는군요. 그날도 숭어회에 낮술을 한잔하고, 소초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무전기가 울리더라는 것입니다. 동기는 한껏 취한 목소리로 “감 잡았다. 일병 김윤석!” 하고 답을 했답니다. 그런데 무전기 반대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지글대고 반말 비슷하게 들리니 영 비위가 상하더라는 겁니다. 취한 김에 언뜻 들으니 그 목소리가 꼭 옆 섬 소청도에 근무하던 동기 녀석 목소리 같더랍니다. “소청도 이놈. 휴가 다녀왔다더니 장난으로 무전 치는구먼” 생각하고 “딸꾹! 어이, 할 말 있으면 얼른 하시오. 동기생 오버!” 하고 답했는데 갑자기 “야, 나 대대장이다. 소대장 바꿔!” 하더랍니다. 대대장이란 호칭은 훈련소에서나 들어보았고, 이 외진 곳까지 신경 쓴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던 동기는 “야, 나 소대장인데! 너 인마, 계급을 올려도 너무 올렸어”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쪽에서 호통을 치며 “뭐? 인마? 너 누구야? 진짜 소대장이야?” 하며 악을 쓰더랍니다. 그래서 동기도 성질이 나서 “내가 누구냐고? 그렇게 궁금해? 그래, 네가 대대장이면 난 사단장이다! 이 자식이 휴가 갔다 오더니 기합이 싹 빠져 사단장 목소리도 모르는구먼. 하며 술도 한잔했겠다 속풀이를 시원하게 했다는 겁니다.
그날이 폭풍전야가 될 줄 그는 몰랐겠지요. 다음 날 아침 사색이 된 소대장이 하얀 얼굴로 뛰어 들어와 외쳤답니다. “어제 대대장님한테 무전 받은 놈 누구냐?” 사건은 이랬습니다. 어제 대대에서 통신보안 점검을 하는데, 도서부대는 대대장님이 직접 하겠다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통신보안 점검을 하시던 중, 대청도에서 엄청난 사건이 벌어져 대대가 발칵 뒤집혔다며 이제 대청도 부대원들 다 죽게 생겼다며 오들오들 떨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청도 동기는 그 소리를 들으니 어제 먹었던 숭어가 입으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 같앗고, 어제 마신 술부터 입재 전 마셨던 소주까지 죄다 토할 것 같더랍니다. “동네에서 그 힘든 해병대 간다고 친구들과 송별회 뻑적지근하게 하고 제대하며 부모님께 죽도록 충성하겠노라고 엊그제 정성스럽게 편지까지 보냈는데, 아, 난 여기서 생을 마감하나 보다” 싶다가도 “아니지 아냐, 그래. 난 조국을 지키다 간 거야” 이런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침착해지더랍니다.
복잡한 심경 속에 하루를 보내고 나서, 다음 날 친구는 드디어 소대장의 호출을 받게 됐답니다. 크게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소대장님이 하시는 말씀. “너 대대장님께서 특별히 용서해주셨다. 대신 너에게 절대 위험한 무기나 무전기 만지지 못하게 하고, 제대할 때까지 부대 뒷산에서 도서 부대원들에게 공급할 돼지하고 염소나 키우라고 명령하셨다.” 드디어 그에게 특수임무가 떨어졌으니 그것은 바로 “특수 축산 사육 관리병.” 이러니 낙하산 타고 보트 타며 산악을 누비던 다른 전우들 틈에 끼어 무슨 할 말이 있었을까요. 3년을 목동처럼 돼지와 염소를 이끌며 외딴섬 산속을 누비며 살았으니, 그가 늘 무게 잡고 말하던 특수임무의 비밀은 바로 이것이었던 겁니다. 이제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도 나이 따라 함께 익어가고 있습니다. 대대장님에게 “인마, 네가 대대장이면 나는 사단장이다! 하고 배포 있게 외친 나의 동기에게 큰 박수와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전방에서 수고하는 우리 장한 군인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함께요. 동기들아, 후배들아! 우리는 브라보 해병이다!
이강민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첫댓글 재미있는 군복무 때의 애피소드 입니다.들의 축제 가운데
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맹호
오늘도 생활 속에서, 만발하는
1973년이란 첫 글의 그 시절이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나도 그해 9월에 입대를 했기에...
저마다의 군 생활에서의 에피소드를 다 말 하려면
3년의 군 생활이지만,30년을 말 해도 다 하지 못 할겁니다.
용연지킴이 님하세요.
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인연으로 근처에만 있어도 마음이 열리시는 용연지킴이 님이십니다.
한 주간의 일을 마무리하며 좀 쉴 수 있는 주말
추억의 글, 삶의 현장에서의 글. 모두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맹호
선배님 멎집니다...
역시해병대 추억은 길고도 험하내요...
한참 선배님 말씀 감사합니다...해병
연일 봄의 향연을 느끼며 보는 따뜻한 주말입니다.
아마 해병대에서 복무한 우리 친구님들은 늘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남다른 힘든 훈련과 군 복무로 인한 추억의 현역 친구들과 선 후배 용사들까지
제가 입대 할 때만 해도 영내에 무슨 작물을 키우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