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뵙지 못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었습니다. 멀리서 공(公)의 모습을 생각하며 어느 날이고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을에 접어든 이때 건강이 좋으신지요? 엊그제 제 아들이 돌아오는 편에 공의 답서(答書)와 아울러 깊은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지금까지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흠은 처음 여기에 와서는 두어 칸 집만 있었으므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하는 일이라곤 아이들을 가르치고 땔감이나 마련할 뿐이었는데, 지금 비로소 조그만 집을 짓고 나니 다리를 펴고 살 만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책을 보기도 합니다만, 돌이켜 생각건대 ‘힘들여 읽고 외우는 것도 다사(多事)하기만 하니, 오직 문을 닫고 고요히 앉아 생각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성스러운 세상에 착한 백성이나 되자. 재앙(災殃)이 오는 것이야 내 스스로 잘못을 저질러서 온 것이 아니므로 사실 반성할 까닭이 없다. 성현(聖賢)이 이런 환경을 당하더라도 이렇게 하는 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고 여기었기 때문에 외간(外間)에서 공갈 협박을 하더라도 익숙해진 지 오래여서 마음에 큰 충격을 받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습니다. 이 역시 익히다 보면 본래 타고난 성품처럼 되는가 보지요?
삼가 듣건대, 공께서 한가하게 되시면서부터 학문하시는 즐거움이 더욱 있다 하는데 찾아뵙고 한두 가지의 서론(緖論)을 들을 기회가 없으니 잊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고금(古今)의 예가(禮家)들 말을 모아 한 질(帙)의 책을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가을에 상공(相公.백사를 말함)의 답장을 받았는데 가르치심이 정성스러운지라 저 같은 게으름뱅이도 말씀마다 깨우쳐졌습니다. 겨울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책하고 접하게 되니, 이른바 “천 리 타향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千里他鄕見故人者].”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반평생 동안 허겁지겁 돌아다니다가 백수(白首)가 되어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환경에 처하게 되었으니, 지조를 굳건히 지킨 옛날 군자(君子)들을 볼 때 부끄러울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쳐 도(道)를 깨우치는 사람이 된다면 공께서 주신 은혜라 할 것입니다. 다만 서로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비록 한 가지 알고 반쯤이나 터득한 것이 있다 할지라도 공에게 가 정리할 길이 없는 게 한스럽습니다. 학문하시는 가운데 가르쳐 주실 만한 것이 있으면 동벽(東壁.책을 비치한곳)의 남은 빛을 남에게 빌려 주시기를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어떤 고기잡이하는 사람이 말린 물고기를 우연히 가지고 왔기에 반으로 쪼개어 보내 드리니 주방 사람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오직 계절에 순응하여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삼가 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