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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8. 귀신 들린 자 29.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6. 귀신 들린 두 사람을 고치시다 ( 8: 28-34. 막 5:1-20. 눅 8: 26-39. )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8: 28. 귀신 들린 자 -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
1]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마가(막 5: 1-20)와 누가(눅 8: 26-39)의 기록에는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표기되고 있다. '가다라'는 게네사렛 호수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데가볼리(Decapolis, 팔레스타인에 있는 헬라 도시의 연합체로서 10개의 도시를 의미함)중의 한 도시였다.
거라사는 가다라에서 남동쪽으로 약 12마일 떨어진 곳이다. 본문의 가다라 지방이란 표현은 마가와 누가의 기록과 상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다라'는 베레아 지역의 수도(首都)였으므로 그곳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거라사'까지 가다라 지방으로 호칭했을 것이기 때문이다(Carr).
복음서 기자들은 이 지역에 대해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명칭을 통일시키지 않아도 무방하였을 것이다. 한편 이 지역은 이방인들의 거주 지역이었다(4: 25). 이는 돼지 떼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로(30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돼지를 부정한 짐승으로 생각했으므로 유대인들이 사는 곳에서는 돼지를 거의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2] 귀신들린 자 둘이
마가와 누가는 예수 앞에 등장한 귀신들린 자를 한 사람만 언급하고 있다.
* 막 5: 2 -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 눅 8: 27 -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이들이 다른 한 삶은 제쳐두고 증세(症勢)가 심각한 한사람에게만 주의를 집중시켜 초점을 맞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Augustine, Calvin).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귀신 들린 자'들은 정신적 결함이나 자폐적 환자로서가 아니라 악한 영의 지배 아래 놓인 자로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귀신 들린 자들이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 특별히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대항키 위한 사탄의 극렬한 저항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Homer A. Kent. Jr).
3] 무덤 사이에서 나와
마가와 누가는 이들이 무덤 안에 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다라 지방에는 석회암으로 이뤄진 언덕이 있고 그 언덕 위에는 고대 무덤들이 있는데 그 무덤들은 조그만 방이나 굴 식(式)으로 되어 있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유대인의 무덤은 동굴처럼 되어 있으며 성벽 바깥에 흔히 만들어져 있었다.
귀신 들린 자에게는 이처럼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동굴 같은 무덤이 거처하기에 더 좋았던 것 같다. 이러한 곳에 사람들이 가까이 갈 경우 그 사람은 의식적으로 더럽힘을 입었다고 간주 되었다.
4]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본 절과 평행구인 막 5: 2-6과 눅 8: 27에서는 귀신 들린 자의 난폭한 성격과 행동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 이들은 군대 귀신들의 지배 아래 있었기 때문에 광적인 힘을 과시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인격이 파괴된 채 오직 마귀의 파괴적 성향만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아무도 그들이 거하는 곳을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거친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던 그 주께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이곳을 친히 찾아오셨다.
8: 29.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 이에 저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
1]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이는 그리스도 곧 메시아를 지칭할 때, 특히 신성을 지닌 자로서의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칭호이다(3: 17). 이 말을 통해서 살펴볼 때 귀신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았다. 그들은 예수의 권위 있는 말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영적 감지력(感知力)으로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예수의 제자들은 아직도 이 진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 행 19: 15 -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2]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티 헤민 카이 소이)
이 말을 직역하면 '우리와 당신(사이)은 무엇이냐?'란 말로서 그 뜻은 '왜 우리와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당신이 우리를 괴롭히며 방해하느냐?' '제발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느냐?'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은 구약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관용어다.
* 삼하 16: 10 -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 왕하 9: 18 -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 스 4: 3 –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여하튼 사탄의 세력들은 영원한 심판의 때가 이르기 전까지 상대적이며, 제한적인 자유가 허락되어 있다.
* 엡 2: 2 -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엡 6: 12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3] 때가 이르기 전에
'때'(appointed time)란 것은 마귀의 최후 운명의 날이요 세상의 종말, 곧 대 심판의 날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이 악령들을 미혹하고 괴롭히도록 허용되지만, 심판 날에는 모든 악인들과 함께 영벌에 처해질 것이다.(Enoch 16:1. Jub 10:8,9).
* 벧후 2: 4 -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 유 1: 6 -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본문의 이 말은 그들이 예수가 그 심판주이심을 알았음을 시사하며 더욱이 지금, 즉 그 때가 이르지도 전에 혹시 무저갱에 던져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계 20: 3 -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이 '때'가 이르기 전에 예수께서 귀신들의 활동을 억제하시고, 추방하셨다는 것은 종말의 순간에 예수께서 귀신들을 모두 심판하실 것에 대한 전조적 행동인 동시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이신 것이다.
* 마 12: 28 -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4]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귀신 들린 자의 '여기'란 말은 온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심판할 종말 개념과 연관된 '때 가 이르기 전에'란 말과 결부시켜 볼 때 미혹과 파괴를 일삼는 귀신들의 활동이 자유로운 이 땅 전체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여하튼 예수께서는 종말의 날이 이르기 전에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임하셨다.
5] 가다라 지방의 귀신 들린 자
8장과 9장은 예수님께서 5-7장에서 산상수훈을 내리신 후 행하신 많은 이적에 괸한 기사로 가득 차 있다. 특별히 본문은 그러한 여러 이적 중 흉악한 귀신에 들린 가다라 지방의 사람에 관한 기사다. 우리는 여기에서 더러운 귀신이 인간에 관한 일과 귀신도 예수님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 귀신의 일
① 인간을 무덤 사이에 붙잡아 두는 일을 한다.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귀신 들린 두 사람이 무덤 사이에 거주할 뿐만 아니라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귀신이 하는 일이 이러한 일이다. 귀신은 모든 사람에게 죽음 가운데 거하게 하며 거기서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한 귀신의 역사는 예수님조차도 무덤에 머물게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치고 부활하였으며, 그 권세로써 죽음 가운데 매여 있는 모든 인생들을 구원하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② 인간을 심히 사납게 한다.
'그들은 몹시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귀신이 하는 일은 인간들로 하여금 죽음 가운데 헤매는 일뿐 아니라 귀신이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은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매우 사납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게 할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교제하는 것을 방해하고 그 관계를 단절시켜 놓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거칠어지고 다른 사람과 분쟁이 자주 일어날 때는 귀신이 우리 가운데 역사한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귀신에게 속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할 것이다.
(2) 귀신의 증거
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다.
'그들이 소리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는 확실히 귀신이 인간보다 뛰어난 영안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많은 기사와 이적을 보고서도 인간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지만, 귀신은 예수를 보는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꿰뚫어 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탄생할 당시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메시야가 태어날 것을 알면서도 가서 경배하지 않았던 것처럼 탁월한 영안이 사람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탁월한 영안이나 지식에 앞서 진실된 신앙을 가져야 한다.
② 마지막 날의 메시야 심판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이 말씀은 확실히 귀신들이 마지막 날의 심판을 알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 심판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한 자들뿐만 아니라 인간들을 타락시키고 인간들에게 사악한 마음을 불어넣는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귀신들까지도 포함된다.
* 계 20: 7-10 –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미혹하던 마귀
ⓐ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진다.
* 마 25: 41 -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대적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불에 의해서 소멸된다. 사탄은 본 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심판을 받는다. 사탄은 대적자들과는 달리 '불과 유황 못', 즉 '불못'에 던져져 영원한 파멸을 맞이하게 된다.
* 렘 5: 14 -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을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을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르리라.
불못은 거짓 진리의 덫이요 함정이며, 유황이란 쇠뇌를 당한 굳어진 신앙을 말하며 표면적인 어린아이의 신앙이요 잠깐 동안 유행하는 거짓 진리와 은사에 사로잡힌 자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을 말한다.
* 유 1: 10-13 – 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 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12 그 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 악의 삼위일체가 받을 고통을 상징
ⓒ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다.
* 막 9: 48 -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 사 66: 24 -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불과 유황 못'에는 사탄이 던져지기 이전에 이미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있었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계 19장에 나타난 바와 같이 그리스도 재림 때에 사탄의 조종을 받아 하나님을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키다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패망하여 '유황 불붙는 못'에 던져졌다(계 19: 19-20).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는 사탄의 멸망이 단순히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으로 영원한 멸망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Morris, Ladd, Mounce).
이렇게 사악한 모든 세력이 마지막 날에 메시야의 심판 아래 놓일 것이란 사실은 결국 오늘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선이 승리할 것이란 소망을 우리에게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이 아무리 요란스럽게 역사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거나 낙망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역사는 자신들의 멸망을 알고 발악하는 최후의 발악이기 때문이다.
(3) 귀신의 복종
① 예수님께 나아왔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가다라 지방에 가셨을 때 귀신 들린 자가 무덤 사이에서 나온 것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수님 권위에 복종하여 스스로 걸어나온 것이다.
이처럼 귀신의 일당은 마지막 날 메시야의 심판에서 뿐 아니라 현재에 있어서도 도저히 예수님께 직접 대적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후사가 된 우리도 결코 귀신에게 농락당하는 어리석은 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② 스스로 자백하였다.
보다 큰 권위에의 복종은 스스로의 자백으로 나타난다. 본문에서 보면 예수님은 무덤 사이에 있는 귀신을 불러내지도 않으셨으며, 그에게 무엇을 묻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이 묻기 전에 그는 스스로 나아왔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입을 벌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하고 자기들이 마지막날 메시야의 심판 아래 놓일 것을 이야기 하였다.
이처럼 마지막 날에는 비단 귀신의 무리뿐만 아니라 메시야의 심판대 앞에서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지 않을 존재는 아무도 없다.
* 계 20: 11–15 –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경우와 같이 메시야의 심판대 앞에 놓이기 전에 메시야의 은혜의 제단 앞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다.
* 행 9: 1-9 –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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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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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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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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