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못 주신/
사람 하나를/
하늘 눈 감기고 탐낸 죄/
사랑은 이 천벌
어저께(2014년 2월) 신문에서 읽은 김남조의 '사랑의 초서' 중에서 한 꼭지(44편)다.
팔십 어름의 인권 변호사 한승헌이 자칫 시인이 될 뻔 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올린 그의 애송시다. 그럼 내가 감동했다고? 아니다, 감동을 넘어,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벼락이 머리를 후려치고 난 다음 멍해지는 거 알아?
그랬다. 사랑을 천벌이라고 고백하는 시인, 바로 김남조였다.
오래 잊고 살아온 사랑이란 단어를 새삼 떠올려본다. 하기사, 세상 노래마다 사랑 들어가지 않은 게 없더라만. 사실 진지하게 사랑이야말로 내게 가당치도 않는 단어가 아닌가 말이다. 그럴까, 사랑은 이제 먼 이야기란 말인가? 사랑이란 남녀 간의 상열지사에 불과한 뜻인가? 헛살았네 헛살아. 그동안 뭐하고 살았단 말인가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 시 한 꼭지가 주는 충격은 대단했다.
김연아가 그랬다.
금메달을 잃고서 담담하게 “난 괜찮다고” 했다. “간절히 바라던 사람이 받았다면 된 거지 뭐”.고 했다. 고작 스무 살 겨우 넘긴 처녀가 할 말이냐고? 하지만 그 애는 얼음판에서 2만 번이나 넘어졌다, 그만하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람. 나이가 말해주는 게 아니다.
한번 따져보자. 당신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가?
이 말이야말로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를 가늠하는 잣대가 아닐까?
나이를 이렇게 먹도록 무얼 두고서 치열하게 살았던가? 할 말이 없다. 없어. 세상은 나날이 변해 가는데 나는 뭐냐고. 몸 사리고 삼식이 팔자가 되어서 내 배부르다고 그냥그냥 사는 게 내 인생에 대한 예의냐고? 부끄러웠다 한 없이.
김남조, 근자에 신문에선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리도 아름답던 시인이, 곱게 늙었다지만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한 때 시인의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두근거리던 내 마음의 연인이었는데.
부랴부랴 ‘사랑 초서’를 구해 읽어보지 않았겠어. 분명 이 시를 읽고 또 읽었을 텐데 낯설다. 세상의 때가 묻어서겠지.
단숨에 102 편이나 되는 시를 일별해 보니 아니, 이건 하느님에게 고백하는 사랑의 연시가 아닌가. 시인이 주님을 향해 고백하는 천 갈래 만 갈래의 눈물 안에, 일어서고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도 주님만은 놓치지 않겠다고 허우적이며 끝끝내 당신 손잡고 말리라는 절절한 사랑고백이 아니고 무엇이냐 말이다.
이걸 놓치고 살았네.
어쩌지, 햇 갈리는 일상의 게으름을 떨치게 만드는 신비한 사랑의 묘약을 두고 뭘 했단 말인가.
김남조 시인을 사모했던 추억으로 돌아가 볼까.
시인이 우리 가톨릭 교우라는 게 자랑스럽지 않은가. 시를 찾다가 보니 선생의 이력을 보게 되었다. 어라~ 27년생, 내 아버지랑 나이가 같은 게 아닌가. 그럼 올해가 미수, 여든여덟의 할머니란 말이다. 이것도 충격적이다. 선생은, 에이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할게. 그녀는 언제나 젊은 여인으로 남아 있을 줄 알았다.(애석하게도 2023년에 선종하셨다)
내 젊은 시절, 김남조는 내 또래의 청년들 사이에서 만인의 연인이었다.
우연찮게 김남조 시인의 수필집을 읽어보고선 단박에 뿅 갔다. 이제야 무슨 기억이 나겠는가만 그녀의 글이 참 맛깔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찮게 숙명여대 문학의 밤에 간 적이 있었다. 문학 지망생들이 시도 낭송하고 분위기가 좋더라고. 마지막이었을 거야, 지도교수라고 김남조 시인이 나왔다.
깡총한 치마에 저고리가 와~ 말 못해,. 분위기 잡는다고 촛불을 켜놓았거든. 일렁이는 촛불에 비친 그녀가 마치 선녀 같더라고. 한복을 입은 시인은 참 곱다는 표현 밖에 할 수가 없다. 나지막하게 깔리는 시인의 목소리는 알토였을 거야. 시를 읊는 목소리조차.... 얼이 빠진 게야. 차분하고 곱다, 아니 시인의 눈이 그윽했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도록 깊었다.
시인을 처음 본 그날, 난 시인한테 빠진 거야. 어쩌겠나, 여학교에 강의를 들으러 갈 순 없고. 외부 강의가 있는 걸 노리는 수밖에. 나 같이 멍청한 놈들이 많더구먼.
남자란 참 어처구니없는 동물인가 봐.
시를 좋아해서 그랬을까? 몰라 내 마음을.
이쁘다고, 천만에, 시인을 그렇게 묘사할 순 없다. 곱다는 게 어울릴 거야.
김남조 시인 이야기하니까 뭐 그럴 듯한 에피소드라도 있었던가, 궁금해 했다면 죄송.
그랬다, 시인과 나와 인연은 시낭송회에서 객석에 앉은 청중이었고, 가슴 절절 끓어오르는 열망으로 시를 읽을 땐 시인은 화자였고 나는 독자에 불과했다. 아니, 나와 시인은 시를 통해 공간을 넘나들면서 인생을, 사랑을 이야기하던 두 사람만 남은 화자였는지 모른다.
시인의 남편을 미워했던 적도 있었던 꼭지 덜 떨어진 철부지를 어떡할까.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을 조각한 김세중이 그녀의 배우자였다. 그런데 시인이 내 아버지랑 동갑인 걸 이제야 알다니. 내 기억에 남은 그녀는 언제나 삼십 초반의 사려 깊고 그윽한 눈매를 가진 모든 청년들의 로망이었는데.
‘사랑 초서’, 草書라 한자로 보니 풀초에 글 서네.
서법에 초서란 흘려서 쓴 한자가 아니던가? 흘림체 말이야. 사랑을 전서나 예서로 또박또박 찬찬히 쓰기에 너무 애달파서 덜 아프라고 흘려 쓴 건 아닐까?
숨은 뜻을 알 순 없지만 두고두고 시를 음미해 봐야겠다.
‘사랑 초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목 메이는 거로 알아듣는다면 그건 사춘기 철부지겠지. 찬찬히 되풀이 읽어봐도 이 시는 주님을 향한 절절한 사랑 고백임에 틀림이 없다. 숱한 나날을 밤을 지세우고 묵상과 기도로 잣아 올린 한 바가지 샘물 같은 명징한 울림이 가득한 기도이고 찬미가 아닌가.
그럴까? 정말 평생을 두고서 기다려 온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고백록으로 한정하기에 뭔가 아쉽다.
사랑, 그 치명적인 열병에 걸린 젊은이가 그 사람이 머무는 창가에 멀찍이 서서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라고 생각할 순 없을까 말이다.
어쩌면 우린 매사에 성급하게 모든 것을 주님께 빗대어 이해하려고 하진 않은가?
오늘은 그저 모든 걸 내려놓고 젊은 날의 한 조각 붉은 마음, 사랑으로만 이 시를 읽어보자.
사랑했기에 애달프고 목이 멘 사랑을 한 적이 그대 없었던가? 노래라고 부르기에 이 사랑 너무 아프다. 시인은 ‘천벌’이라 했고 사랑을 ‘천형의 벽돌’이라고 했다. 그래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물곁에 목말라 죽으리라’는 이 갈증을 어쩔 거냐? 이 사랑 너무 아프다.
“더 아파야만이 사랑이래/ 더 외로와야만이 사랑이래/ 쌓을수록 남아도는/ 천형의 벽돌”(32편)
“피 흘리지 마라/ 그대 날 사랑하지 마라/사랑은 내 안에 가득하여/둘이 먹어야만 하리”(31편)
누구에게나 사랑은 이리도 안타깝다고 목마르다.
다가가고 싶지만 시인은 그 사랑이 아플까 사랑하지 말라 한다. 그래서 하늘이 보내 주지 않은 사람을 하늘 눈 가리고 탐했다고 죄책감에 빠진다. 그건 천벌을 받더라도 그 사랑과 같이 있겠다는 처연하고 그 아픔 감당하리라는 결심이 아닌가.
“저무는 날 해 어스름/박명의 아름다움을 안다/안개 너머 벙그는 /별들을 안다/ 사랑하기 전엔 몰랐던 빛을” (20편)
저무는 날 해 어스름 박명의 아름다움을 안다는 것은 찰라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인생의 귀중한 순간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아~ 애달픈 내 사랑이여,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나의 마음에 자라거늘.....”.
시인이 피 흘리며 쓴 시는 모두 큰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아프고 절절하다.
ㅎㅎㅎ 제가 어깃장을 놨습니다.
매사를 주님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오히려 주님을 향한 내 사랑이 가벼웠고 타성에 젖었더랬지요. 타성이란 게 묘해서 맹물처럼 밍밍한 게 성이 차질 않았습니다.
오늘은 주님을 떠나 가슴을 태우고, 할키고 밤새워 앓던 내 젊은 날의 사랑을 끄집어내봤습니다.
벗님들의 사랑도 조용히 음미해 보시길 바라며.....
검색창을 열어서 김남조 시인의 '사랑의 초서' 전부를 읽었습니다.
102편이라 겁먹지 말고 짤막짤막해서 금새 읽을 수 있고요. 굳이 권하는 거는 우리 믿음의 길에 들어선 우리의 묵상 재료로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제가 어깃장을 놔서 그렇지 이 노랜, 다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에 있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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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년 전 2014년에 써본 것을 찾아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