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을 뚫었다.
중국 미술에서 블교 조각이 중요한 분야를 차지한다.
불교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길목에 석굴을 뚫고, 불상을 안치하였다.
서역불교가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점차 중국화 되어 간다. 불상 조각도 점차 중국화되어 갔다.
중국에서 실크로드로 가는 길은 서안에서 시작하여 천수-난주-돈황으로 가는 서쪽 길이다. 반대로 서역(인도)에서 중국으로 올 때는 아프가니스탄에 산맥을 넘어, 카슈가르에 닿는다.
카슈가르--> 쿠자 --> 투르판 __> 돈황 — 난주의 병령사와 천수의 맥적산을 거쳐 장안에 닿는다. 쿠차의 키질 석굴에서 시작해보자.
쿠차의 키질 석굴에는 서역 미술의 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 돈황에 이르면 중국화가 거의 이루어진다. 시기적으로는 위진남북조에서 수-당 시기에 해당한다.
북조는 불교를 실제의 신앙으로 수용함으로, 불교 조각 작품을 많이 남겻다.
남조는 불교 교리 중신의 이론을 받아들여 많이 연구하였다.
493년 북위의 태무제는 북량을 멸망시키고, 양주의 숭료 3000명을 포로로 잡아 ㅅ우도인 팽성(오늘의 대동)으로 데려갔다. 태평진군 7년(446)에도 장안의 기술자 2000명을 팽성으로 데려간 일도 있었다. 이로서 팽성(대동)은 북방 불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운강 석굴을 뚫고, 많은 부상을 조상하였다.
북위의 불교는 북제-북주를 거쳐서 수-당으로 연결되었다. 중국의 조각사도 그런 맥락으로 연결된다.
북위가 수도를 낙양으로 얾기면서, 용문석굴을 뚫었다. 용문 서굴의 불교 조각(붕상 등)은 수-당으로 이어진다.
(*병령사 석굴과 맥적산 석굴은 중국 화가 편에 있습니다.)
첫댓글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