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과학자의 이야기-
우주는 팽창하고있다.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시간이 흐른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이 공간만이 팽창하고 있는 것일까?
평행우주(平行宇宙)라는 것이 있다.
만약 당신이 앞에 있는 빵과 우유를 보고 생각한다.
당신은 고민한다, 무엇을 먹을까?
바로 그 상태에서 우리들의 우주는 두갈래로 나뉘어진다. 즉, 우리들의 우주는 선택을 할때마다 각 선택에 맞게 무한히 분열되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평행우주의 가설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가정해 보기로 하자.
옛날, 아주 먼 옛날, 우리들의 먼 조상들은 뭔가 특별한 선택이나 발명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까마득한 옛날에 지은 소설은 지금 시대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비과학적인 일들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과감히 말한다.
그것은 소설일 뿐이다. 소설은 허구를 바탕으로 지어낸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비!과학적이다...라고.
하지만... 하지만 소설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기중기가 개발되지 않았다면, 아니, 아예 석탄조자도 발견되지 않았다면...
평행우주의 가설에 의거하여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매우 다른 모습의 세계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에게서 갈라나온, 아니 우리들의 세계가 분열하여 갈라진 세계에는 어떤 생물이 자라고, 어떤 기술이 있고, 어떤 종류의 인간들이 존재하는걸까? 나는 평생 그것에 매달려왔다. 그것만 보고 살아왔다.
그것에 의지하여 살아왔다.
나는... 알고 싶다.
그리고 증명해 보이고 싶다. 나를 무시한, 나를 모욕감에 젖어들게 만들어 평범한 연구가 아닌 비정상적인 연구를 하게 만든 원로의 늙은이들에게... 나는 30년이 넘게 평행우주로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꿈은 곧 깨어 현실로 돌아오게 되지만 꿈속에서의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은 행복한 꿈을 꾸긴 싫다.
그래, 그것은 꿈일 뿐이다.
현실이 아냐.
만질수도 볼수도 느낄수도, 교감할수도 없어.
그래서 나는 만들기로 결심했다.
다른 우주로 넘어갈수 있는, 나의 꿈을 현실로 바꿔줄수 있는. 일장춘몽(一場春夢), 한낱 봄날의 꿈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나를 해방 시켜 줄 그런 물건을!!!
나는 각고(刻苦)의 노력 끝에 그것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갈수 없다... 내가 원하던 세상에... 내가 가고 싶어 하던 그곳에...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했는데...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나의 육신은 식어가고 있는것이다.
나는 할수 없다... 그래서 대리(代理)를 시킨다.
나의 대리는 아무것도 모른채 어느새 바뀌어버린 세상을 마주하게 되겠지.
하지만 나의 대리를 위해 최소한의 준비는 해 놓는다.
큭....크크큭.... 최소한의 준비라. 내가 한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놀라운 말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본적이 없는 세계에 자신도 모른채, 자신의 의지는 철저히 배제된채, 그리고 무엇보나도 나에의해 보내지는 대리를 걱정하는 나의 모습이라니.
위선적이다.
더러운 위선의 가면을 쓰고있는 나는 구역질 날 정도로 더러운 인간이다...
하지만 누가 나를 욕한들 어떠리, 누가 나의 시체를 밟는다 한들 어떠리... 인간은 죽으면 한낱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 한 것을.
그래도 그 전에 충분히 위선으로 자신을 덮어 변명거리 정도는 마련해 두고 싶은 것이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나는 눈을 감는것이다. 두 번다시 눈을 뜨진 못할테지만... 두 번다시 아침에 떠오르는 뒷산의 해를보지 못할테지만...
아아, 선영아...
-도주(逃走)-
“거기서라~! 도둑놈의 자식아~!”
헉 헉 헉
지치지도 않나 저 경찰들은... 벌써 1시간째 저 체력만 좋아보이는 경찰들에게 쫒기고 있다. 겨우 빵 한조각 덕에... 아~ 어제 어떤 이상한 늙은이에게 받은 파란 목걸이가 계속 내 목주위를 간지른다.
당장 손을 뻗어 간질러 이 고통스러운 간지러움을 해소하고 싶지만 지금은 뒤에 뭐 빠지게 나를 쫓아오고 있는 저 경찰들을 어떻게 따돌리나 하는 생각에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기지를 않는다.
“이자식~! 오늘은 꼭 잡고만다! 거기서!!!!”
이제 질리지도 않나... 내가 서란다고 설 것 같았으면 처음에 도망치지도 않고 잡혀갔을거다.
바보같은 경찰 나으리. 하지만 이제 제법 경찰 아저씨와 나와의 간격이 좁혀졌다.
내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아직 성장기를 완전히 지나지 않은 청소년의 육체가 썩어버린 경찰이라고는 하지만 어른인 경찰에게 체력적으로 앞설리가 없으니까.
동네를 2바퀴 돌았고 높은산, 낮은 언덕 등을 수시로 뛰어다니며 경찰과 나의 추격전은 4시간 가까이나 지속되었다. 지금 내가 뛰고 있는 곳은 언덕이다.
그것도 매우 낮은 언덕, 일명 재우(再虞) 언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 언덕은 내가 초등학교시절에 친구들을 모아 패싸움을 벌이던 장소의 주무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내 모습은...
4시간이나 추격을 계속한 탓에 내 몸에는 엄청난 양의 땀이 비오듯 쏟아져 내려왔다.
눈에 들어가고 입에 들어가고, 심지어는 코속까지 슬며시 스며들어 숨쉬는 것 조차 여의치 않은 상태지만 만약 나를 쫒아오는 저 경찰들에게 잡혀 그 끔찍한 김대호를 봐야하는 소년원에 가게 되는 것 보다는 지금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나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물론 헉헉대는 숨소리를 계속 내뱉으며.
김대호는 내가 어렸을적에 많은 구역들을 접수하면서 부딪힌 골목보스들중의 한명인데 걔중에는 매우 뛰어난 싸움꾼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이다. 현재 나와의 승부수는 약 10여회? 아마 내가 그녀석에게 2번 정도 더 이겼을것이다.
하지만 원체 비겁하고 나에 관한 일이라면 -불행에 관련된- 물불을 안가리고 달려드는 녀석이라 매우 처리하기 힘든 녀석이라고 할수 있다.
그놈이 지금 소년원에 있는 것이다.
그녀석과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지 피를 본다. 싸움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것이다.
재우 언덕을 달린지 드디어 2시간째...
뒤를 돌아보았다. 내 얼굴에 미소가 드리운다. 경찰들이 지쳐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안지치냐구? 당연히 나도 지친다. 하지만 잡힐순 없다. 김대호가 싫거든.
“이자식!...헉헉... 거기...헉... 서라~!!,,,헉..구!!”
숨이 흐트러진다. 내가 이긴거다. 저 경찰들을...
이제 경찰들이 쫓아오지 않는다.
포기한건지 아님 다른 꼼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안심해도 좋은 타이밍이다.
정신없이 달려온 이곳은 내가 사는 마을 무신동을 한눈에 담을수 있는 유일한 장소 꼭지 절벽이다.
변변한 산도 없다고 말하는 우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높은 곳이랄까?
어느새 이곳까지 온것이다.
나는 절벽의 끝쪽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역시 2시간의 장시간 추격전은 내 몸에 많은 무리를 준 듯 하다. 어깨도 뻐근거리고.
나는 이곳에서 한동안 쉬다가 다시 집으로 가야게다고 생각했다.
위이이이이잉
갑자기 기분나쁜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기계음(器械音)인 듯 한 이 소리는 내 귀에 모기가 날라다니는 듯한 불쾌함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그소리에 반응하듯이 내 목에 걸린 파란색 구슬에서도 비슷한 공명음(共鳴音)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이제 구슬에서 밝은 빛도 새어나오길 시작한다.
그리고 빛은 점점 강해져 곧 내 주위의 모든 것을 그 강렬한 빛으로 감싸버렸다.
-오크-
눈을 떴다.
절벽에서 떨어진 나는 눈을 뜨자마자 절대로 믿기 힘든 광경을 보게 되었다.
요괴(妖怪)…
절대로 믿지 못할 광경은 내 주위를 느믈거리며 부유하고 있는 갖가지 형상의 요괴를 말하는 것이었다.
책이나 만화, 영화 등에서 자주 등장하여 이야기거리의 소재가 되는 요괴…
상상으로만 만날 수 있는 그 존재가 내 주위에서 보란 듯이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었다.주위를 둘러보니 내 주위에 있는 요괴들 말고는 칠흑같은 어둠 뿐이었다.
나는 내가 정신을 잃기 전까지의 상황을 생각해 봤다. 음… 빵을 훔치다가 걸려서 경찰들에게 쫓겨서... 그리고 절벽위에서... 이상한 빛에 둘려싸여진 것은 알겠는데...
나는 내 목에 걸려있는 푸른색 보석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보통의 구슬과 다를바 없는 그저 그런 빛깔의 푸른 구슬... 거의 죽어가고 있는... 그래... 식어가고 있던, 어떤 여자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던 한 늙은이에게 받은 구슬... 노인네에게서 받은 이 구슬때문에?
그럼 이곳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리고 주위에서 떠돌아다니는 저 생물들은…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어느하나 제대로 답변할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좀더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뚝,뚝,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날아다니는 요괴… 내 주위에서 떠돌고 있는 요괴 중 하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요괴의 몸에 닿자마자 내 손은 유령이라도 만진 듯 그 요괴의 몸을 쑥 하고 통과하였다.
그 요괴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듯 여전히 공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보통사람이 이런 일을 겪으면 무서워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난 옛날부터 이런 만화같은 일들을 동경해왔기 때문인지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뿐.
좀 더 그 생물에 대해 조사하고 싶었지만 우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에 한치 앞도 볼수 없는 어둠 속으로 몸을 맡긴 채 정처없이 걸어나갔다.
내가 어둠을 향해 걸어나가자 내 주위에 있던 요괴들은 잠시 움찔거리며 내 주위를 빠르게 돌다가 일순 모두 뭔가의 명령이라도 받는 듯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그 요괴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것을 보고 요괴들이 간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내 이마에 툭 하고 부딪히는 것이 있었다.
나는 바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마에 부딪힌 것은 그냥 돌이었다. 조금 다른 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미약한 냉기를 조금씩 흩트리고 있다는 것일까…
아무래도 내가 있는 곳은 동굴같았다.
어둠 때문에 주위를 볼수 업소 어떤 곳인지 알수는 없지만 간혹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냉기를 머금은 돌, 그리고 처음 정신을 차렸을때부터 느꼈던 습기…
나는 이곳이 동굴이라고 거의 확신 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동굴에 있는 것일까?
아까 구슬에서 나온 강력한 빛에 쓰러진 나를 누군가가 옮겨놓기라도 했단 말인가.
여전히 의문은 꼬리를 달며 내 머릿속을 휘젖고 다녔지만 역시나 추론할수 있는 가설조차 세울 수도 없다.
쳇,...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밑바닥 인생을 굴러온 나지만 이 상황은 도대체가… 거기다가 내가 방금전에 요괴의 존재…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에 말려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 앞은 가로 막고 있는 벽에 기대어 바닥에 털썩 하고 앉았다.
아무것도 할수 있는 일이 없다.
대충 이런 동굴에 갇히게 되면 출구의 빛을 따라서 탈출 하거나 바람의 방향을 느끼고 탈출 하지만 지금 이 동굴에서는 바람 한점, 빛 한점도 느낄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다시 칠흑의 어둠 속에서 계산 할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감고 있는 눈에서 빛이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맨눈으로 태양을 망원경의 렌즈에 의지해서 보는 것만틈이나 환할 것 같은 빛이 내 눈을 향해 들어왔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만약 지금 눈을 감는다면 다시 눈을 떴을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의 세계가 나타 날것만 같아서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계속 눈을 뜨고 있자 아무것도 볼수 없었던 나의 눈은 점점 원래의 제 역할을 해가고 있었다. 빛은 동굴의 천장인 듯한 곳에서 뿜어져나오는 듯 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나는 동굴 천장에 붙어있는 조그마한 돌에서 빛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돌은 다듬어진 보석인 듯 매끄럽고 둥그런 모양이었다.
스스로 빛을 낸다는 야명주일까? 아니, 야명주의 빛은 사람이 눈을 뜰 수 없을정도의 빛을 내지는 못한다. 그럼 저것은 뭐란 말인가.
적어도 내가 살던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닌 듯 싶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나는 소설이나 만화에서처럼 다른 세상으로 넘어 온 것 같다는 터무니 없는 상상을 해봤지만... 큿, 그럴리 없겠지... 하지만 아까 본 그 요괴들은...
아냐, 요괴는 이 세상에서도 있다고들 하지 않았던가, 본적은 방금이 처음이지만...
그래, 이곳은 내가 살던 세계야... 난 그냥 동굴에 있는 것 뿐이라구.
그렇게 자신을 자기합리화 시키는 짓을 여러번 반복하는 동안 이제 시력은 거의 회복이 되었다.
그 덕에 이곳은 거~대한 동굴의 안속이라는 것을 확인 하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천장의 밝은 빛 덕에 동굴의 내부를 볼 수 있게 된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에 쓰러져 있던 자리는 대충 느낌상 동굴의 정중앙인 듯 싶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원의 모양을 하고 있는 동굴...
정말이지 거대 그 자체라고밖에 말할수 없을 정도로 넓은 동굴의 내부에 놀란 것이고 또 하나 놀란 점이 있다면 동굴의 천장이나 벽에 박혀있는 검(劍)과 도(刀)들! 도산검림(刀山劍林)이 따로 없다고 생각 될 정도로 동굴의 내부에는 엄청난 수의 검과 도들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동굴에 밖혀 있는 검과 도들은 해동검도를 몇 년 정도 배우긴 했지만 진검을 본 적도 없던 내가 봐도 한눈에 보검(寶劍)이나 보도(寶刀)인 것을 알수 있을정도로 귀티나게 보이는 보검들이었다.
내 눈이 욕망으로 불타올랐다. 어렸을때부터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비싼 물건만 보면 가지고 싶어하는, 아니 훔쳐버리고 싶어하는 성격이 발동된거다.
하지만 출구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검과 도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두리번거려 출구를 찾기 시작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온 방향의 반대방향에 조그맣게 뚫려 있는 구멍을 하나 발견하게 된었다.
아마도 출구 인 듯 싶었기 때문에 나는 곧장 내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서 그곳으로 뛰어가려 했으나...
먼저 나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검 하나를 빼가기로 결정하고 내가 서있던 벽에서 2미터 정도 떨어진 벽에 박혀 있는 검을 하나 뺐다.
이걸 가져가서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벽에 박혀 있던 검은 의외로 몇 번 손으로 쥐고 흔들자 툭 하고 벽에서 빠져 나왔다.
내가 고른 검은 길이가 한 1미터 정도에 다른 검들의 -다들 박혀있어서 손잡이와 검신(檢身)의 반가량 정도밖에 보이진 않지만- 손잡이에 비해서 좀 수수해 보이는 검이었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이곳에 박혀버린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동굴의 높은 습도에도 불구하고 검에 녹이 전혀 없다는 정도일까.
왠만하면 보석이 박혀 있는 검을 고르고 싶지만... 이 검도 날이 예리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그냥 이 검을 가지고 나가기로 했다.
검을 든 나는 곧장 출구 쪽으로 뛰어갔다.
몇분을 걸었을까.
출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출구에서 녹색의 뭔가가 안쪽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놀라서 뒤로 몇발짝 물러선 나는 그 녹색의 뭔가를 경계하며 내가 뽑아온 검을 올려들었다.
출구쪽의 그것은 점점더 동굴 안쪽으로 접근하였고 나는 내 눈앞에 서 있는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머리에는 뿔이 두개 나있는 투구를 쓰고 상의는 입지않은 채 하반신은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듯 한 천으로 감싸고 있는 그 존재는 특유의 녹색 피부로 자신의 존재를 나에게 알리고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내 앞에서 있었던 것 같은 그 존재는 바로 오크!
즐겨 읽던 판타지 소설의 단골 게스트로 출연하곤 하던 몬스터 오크였던 것이다.
처음 보는 것이라 내가 생각하는대로 오크인지 맞는진 모르겠지만 소설에서 묘사하던 그 모습과 너무나도 맞아떨어지는 모습에 오크라고 단정짓게 된것이다.
“크워러 크러러크 크와”
오크가 나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지만... 알 리가 있나...
아... 그건 그렇고 나... 정말로 다른 세계에 떨어진걸까나...
싫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다니... 차라리 소년원에 붙잡혀 들어가서 김대호 그자식과 치고박고 싸움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아냐, 아직 희망은 있어... 혹시 알아? 이 오크가 우리 나라 토산종으로써 몇백년동안 이 동굴에서 생활을 해오고 있었는데 내가 최초 발견자가 된건지 말야...
하지만... 판타지 세계에서 나오는 오크는 그렇게 인간과 친한 존재가 아닌데 말이야...
사는 것부터 생각하는게 좋을 듯 싶구나....
거기다가 오른손에 있는 저 도끼는...
“크와 크와 크라크라나.”
뭐라고 하는 건지... 이제 내가 답답해진다... 하지만 난 그 오크가 나에게 호감이 없다는 것은 잘 알수 있었다.
오른손의 도끼를 서서히 치켜들고 이제 거의 발작적으로 나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으니...
내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오크가 발을 굴려 내쪽으로 뛰었다.
갑자기 오크가 그런 행동을 취할 줄은 몰랐던 나는 일순간 당황하였으나 그렇다고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
내가 이래뵈도 운동신경 하나는 끝내주는 몸이란 말씀. 나는 오크가 뛰어서 내릴 지점을 예상하고 검을 든 채로 옆으로 굴렀다.
의외로 오크는 나보다 더 둔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오크의 오른손에 들려져 있는 도끼가 내머리를 반으로 쪼개기 전에 구를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자신의 회심의 일격 -인지 아닌지는 잘...- 이 빗나가서인지 오크는 내가 굴러 착지한 방향으로 다시 뛰어오며 다시 동굴이 떠나갈 듯 고함을 질렀다. 다시 내가 피한다 해도 이래서는 피하는 꼴밖에 되지 않은가!
나는 오크를 따돌리고 출구쪽으로 도망을 가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 동굴 바깥은 -그래도 동굴 안이지만- 저 천장에 박혀있는 돌에서 나오는 빛이 비치지 못하기 때문에 오크가 쫓아온다면 내가 잡혀서 회떠지기 십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나를 쫓아오는 오크를 피하는 것 밖엔 할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오크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느라 내옷은 엉망이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통에 동굴의 바닥에 몸의 군데군데가 긁혀버린 것이었다.
몇 번 피하다보니 숨이 차오른다. 아까 경찰들과의 추격전을 버렸던 나로써는 원래 지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지칠 수밖에 없었다.
피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내가 지칠대로 지쳐 움직임을 멈췄을때, 나를 노리고 있는 저 오크는 날 향해서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도끼를 내몸에 찍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나도 검을 들고 있지 않은가!
손에 쥐어져 있는 검을 쳐다보았다.
예리하게 갈려져 잇는 검날.
동굴 벽에 쳐박혀 있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만큼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검을 보며 결심했다.
도망치지 않기로...
오크는 계속 나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뛰어오기 때문에 빈틈을 잘만 노린다면 오히려 내가 저 무지막지한 오크를 회 떠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침착하자 침착...
오크는 계속해서 내가 자신의 공격을 피하자 이제는 두손으로 도끼를 감싸쥐고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이쪽으로 달려온다.
그래... 정확하게 목 부위를 노린다 목을...
“크워워우어~~~!!!”
내 예상대로 오크는 다시 아무런 곡선적인 움직임도 배제한채 일직선으로 나를 향해 달려오
고 있다. 검을 써본 적은 없지만...
벨수 있다!
지금이라면!
달려 오는 오크를 보며 생각했다.
저 오크의 피부는 단단해 보인다.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나의 몸으로는 벨수 없을 것 같을 정도로 오크의 피부는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딱딱하다는 인상을 나에게 심어주었지만...
저 오크의 달려오는 가속도! 그리고 이 검의 예리함...
이제 오크가 거의 내 검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
나는 두 손으로 검을 오크의 목을 향해 겨누었다.
그때!
풀쩍
달려 오던 오크는 2미터 가까이 왔을때 갑자기 점프를 시도했다.
뛰어 올라서 그대로 나에게 도끼를 내려찍을 생각인가보다.
나는 오크가 그런 의외의 움직임을 보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매우 당황했지만 생
명이 달려있다. 죽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크가 나에게 도달하기 전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목숨이 달린 일이라 그런지 내가 방금 움직인 속도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쿵!
오크는 내가 없는 빈자리에 자신의 도끼를 내리 꽂았다.
그리고는 바로 내가 뛰어나간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튀어나가자마자 바로 오크의 옆쪽으로 다시 뛰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검을 들어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오크의 머리위에 검을 치켜 들었다.
그리고 바로 오크의 두뇌골을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오크의 머리를 파고 들었다. 검은 오크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놓았고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수 있었다.
그러나!
죽었다고 생각했던 오크의 몸이 움찔거리지 시작하더니 갑자기 도끼를 든 손으로 내 어깨를 벤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오크의 머리에 박혀져 있는 검을 뺄 틈도 없이 어깨를 뒤로 젖혔다.
어깨에 박혀 있던 도끼가 떨어져 나가고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오크는 마지막 힘을 짜내 나에게 공격한 듯 이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지만 내쪽의 어깨의 상처가 너무 심했다.
나는 곧바로 상의의 티셔츠를 찢어 어깨를 감싸멧다. 극심한 고통이 계속 밀려왔다.
“큭! 으으...”
나는 완전히 죽어서 바닥에 쓰러진 오크의 시체 옆에 누웠다.
아니, 쓰러졌다고 보는 쪽이 맞을것이다.
구역질 날 정도로 역겨운 냄새가 내 코를 찔렀지만 더 이상은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리고는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시하-
내가 다시 눈을 떴을땐 낡은 듯한 집 천장이 제일 먼저 내눈에 띄었다.
어깨의 통증도 없었다. 누군가에 의해 옮겨진 듯한 나는 지은지 몇십년이나 되어 보이는... 그것도 옛날 중세 시대에서나 볼수 있을 것 같은 목조 건물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무래도 역시 뭔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지금 누워 있는 침대와 중앙에 뭔가 집의 크기와는 비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될 정도로 커다란 테이블과 그 위에 놓여져 있는 엄청난 수의 비커들과 실험관들... 그리고 침대 바로 밑에 놓여져 있는 책장들과 그 안에 빼곡히 꽂아져 있는 책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려다가 그냥 다시 침대에 누웠다.
도대체 누가 나를 이곳으로 데려 온걸까... 그리고 도대체 여긴 어디인걸까...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리고 그에 맞는 답을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라? 드디어 깨어났나보구나,”
알수 없는 언어... 처음들어보는 언어였다. 역시 이곳은 내가 살던 세상이 아닌걸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여자였다.
이 집의 주인인듯한 그녀는 역시나 중세 여자, 아니다, 저건 여자가 입는 옷이 아니라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법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입을 법한, 그런 새하얀 로브를 입고 있는 그녀는 손에는 불은 색깔을 띈 도마뱀 -이라고 하기에는 꽤 컸다-을 들고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반쯤 들고 일어나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얼굴을 볼수 있었다. 진한 녹색의 머리색과 짧게 자른 단발머리 스타일에 꽤나 귀여워 보이는 외모.
그리고 초록색 빛깔의 눈동자.
나는 여자가 이쁘게 생겼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 속으로 진한 경계심을 품기 시작했다.
대부분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예쁘거나 잘생겼다면 일단 경계심을 풀기 마련이지만, 난 아니다.
어렸을때부터 주위의 여자들이라고는 조금 반반하게 생긴 자신들의 외모를 이용해서 남자들의 등이나 쳐먹거나 잘난 척하던 여자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일단 예쁘게 생겼다 싶으면 먼저 경계부터 하게 된 것이다.
크.,. 특히 진 그년이 사기치는데는 천재였지... 얼굴로 남자 꼬신다음에 진딧물처럼 남자의 돈을 빨아먹고, 그리고 버리고...
“흐응, 뭘 그렇게 쳐다보는거야? 일단 감사정도는 하라구, 내가 ‘웨폰즈 그레이브’(weapon‘s grave)에서 거의 뒈질려고 한 널 이곳까지 와서, 그리고 나의 이 아름다운 손으로 치료까지 해 줬으니 말야.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니깐, 쳇, 기분 나쁘네...”
여자가 다시 뭐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그런데 여자가 다시 말을 함과 동시에 내 목에 걸려있던 구슬이 내가 처음 정신을 잃기전처럼 빛을 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빛은 매우 전의 것에 비하면 매우 미약한 것이라서 일순 빛을 내더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게 뭐냐? 신기한 물건이네... 아티팩트? 흠... 무슨 용도로 쓰는거야?”
헉! 갑자기 여자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헉....이런 말도 안되는...!”
“말도 안되긴 뭐가 말도 안된다는거냐... 특이한 놈이네...”
그리고 여자의 반응으로 봐서는 내가 한 말도 전해진 것 같은데... 이런 신기할데가 있나... 나는 고개를 숙여 목에 걸려있는 구슬을 슬며시 쳐다보았다. 구슬에 뭔가가 힘이 있는걸까?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어이 어이, 대답정도는 해줄수 있잖아? 뭐, 방금 질문이 곤란한 질문이었다면 철회해주지.. 하지만 이름 정도는 말해줄수 있겠지? 아,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구나. 상대방에게 이름을 물으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지, 내 이름은 시하라고 해, 아, 성은 없어, 넌?”
내가 여자의 언어를 알아들고 말할 수 있게 된 일에 대해 생각하던 나는 여자의 질문에 점점 빠져들어가던 상념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음... 그런데 시하...라고? 먼저 이름을 밝혔으니 나도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안되는건가?
별로 저런 여우같이 생긴 -경계심, 경계심~- 여자에게는 별로 밝히고 싶진 않지만...
“내 이름은... 선진우....선진우다.”
“썬지누? 뭔가 이상한 발음이네... 성은 너두 없지? 평민인가보네? 이름은 그렇다 쳐도 처음부터 반말이구나? 뭐, 내가 먼저 반말을 한거지만 말이야, 하지만 나보다 꽤나 어려보이는데 말야... 아, 그건 그렇고 너 어떻게 웨폰즈 그레이브에 있었던거지? 옆에는 오크의 시체를 두고 말야.”
니 생긴거 보면 반말 할 수밖에 없는데 어쩌라구, 한 16세 정도 되 보이는데.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서 거기 있었는지는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나도 내가 어떻게 그곳에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 그럼 오크는? 니가 해치운거?”
“.,..그렇다.”
“흠....꼬마애 치고는 대단한걸? 어떻게 너같은 어린애가 오크에게 이길수 있었던거지? 아, 이겼다고 하기엔 좀 뭐하네, 같이 쓰러져 있었으니...”
저여자... 시하라고 했던가? 되게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말을 마구 내뱉는다... 솔직히 나는 그때 처음본 오크라는 괴물을 무찔렀을땐 내 자신이 매우 자랑스럽게 느껴졌었다. 뭔가 내가 변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데 저 시하라는 여자가 하는말은 완전히 나보고 허접하다고 하는 소리이지 않은가... 저절로 양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나였다.
“호, 자존심이 상하셨나부지? 내가 방금 한 말에... 하지만 너무 우쭐하다가는 큰코 다치는 수가 있다구, 그래도 뭐, 인정해주지.. 나이가 몇 살이야?”
“자존심 상한적 없다.!”
있지만 저 여자 앞에서는 왠지 우기고 싶어진다.
“아, 그러셔? 알았으니 나이나 말해줘,”
“.....열여섯...살.”
“어머~ 생긴 것 보다 삭아보이네~ 난 열여덞 정도일줄 알았는데,”
시하는 짐짓 과장된 몸짓을 하며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그러는 너는 몇 살이냐?“
나는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노 코멘트(No comant)! 초면에 숙녀의 이름을 물어보는건 실례라구, 써지누라고 했던가? 발음 하기 어려운데 뭔가 다른 별명같은건 없어?”
흥, 자기편한것만 추구하는 여자로군. 하지만 생각해보니 한국식 이름은 이곳에서 발음하기 에는 꽤 힘들하고 생각됐다. 그래, 기왕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거 내가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까진 뭔가 다른 이름을 써야겠다.
음... 그런데 이름을 어떻게 정하지?
“가이.. 가이라고 불러줘.”
“뭐, 그러지, 그건 그렇고 이제부턴 어떻게 할꺼야? 상처도 내가 손썼으니 완벽하게 회복됐어. 흉터도 남지 않을꺼구, 아, 수고비는 받지 않을께. 대신 지금 갈곳이 없다면 우리집에서 일주일만 아르바이트 해줘, 요즘 중요한 실험을 하고 있거든. 그런데 내가 혼자 처리하기에는 좀 양이 많아서 말야, 응? 어때?
정말 빠르게 말하고, 많이 말하는 여자다...
그리고 시하의 제안은 당장 갈곳이 없는 나에게는 반가운 제안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