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거세게 불던 바람도 자고 따스한 햇살이 환한 아침이다.
봄이 왔어도 봄이 아닌 듯 바람불고 눈오는 차가운 날씨는
윤달이 끼어 그렇다는 어르신들의 얘기라,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어찌 되었건 모처럼의 환한 햇살이 마당 가득 밀려들고
문득 이런 환한 아침을 맞이함에 왈칵 눈물이 나니,
언젠가 읽었던 도종환님의 “다시 오는 봄”이란 시가 생각난다.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이 납니다
살아있구나 느끼니 눈물이 납니다
기러기떼 열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있구나 생각하니
눈물납니다
눈녹은 물은 날이 갈 수록 불어 조양강 물줄기는 세찬 물보라를 치며 흘러가고
바위틈 수줍은 생강나무 노란 꽃은 봄인가 망서려 활짝 피지 않았다.
휴일과 맞물린 장날이 되어 찾은 장마당은 이른 아침부터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모처럼의 대목에 장꾼들은 신바람나고 손들은 구경할 일 있어 좋다.
아무리 나물이 많네 무엇이 많네 어쩌고 하여도 결국은 사람이 많아야 흥청거리니
이토록 많은 사람이 오는 날은 못 팔아도 공연히 신명나겠다.
장터 입구에는 크고작은 항아리들을 늘어놓아 들어가는 발목을 잡고
즉석김을 굽는 기름냄새는 고소한 김냄새와 함께 골목에 진동한다.
뭉치로 파는 양말과 함께 알록달록한 치마와 몸뻬바지도 산같이 쌓여
이 것을 입을까 저 것을 입을까 고르는 할머님들의 모습 정겹고,
호도나무 대추나무 사과나무를 비롯한 온갖 묘목들이 때를 만나
한 그루 아니면 서너 그루씩 묶이어 팔려나간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빨간 딸기를 잔뜩 쌓아놓은 과일가게 지나 어물전에는
산골에서는 모처럼의 멍게 미더덕 쭈꾸미 꼬막이 보여 군침이 돌고,
보기 좋게 썰어 쌓은 갈치토막이 먹음직스럽다.
난전을 펴지 못 한 할머님들은 조금이라도 빈 자리가 보이면 작은 보따리풀어 앉았으니
손수 캔 달래 냉이 씀바귀 꺼내놓고 집에서 담근 청국장도 내놓는다.
봄이라 하여도 응달진 길바닥에 앉았으니 춥기도 추워 두툼히 입었어도 추운 모습이라
얼른 모두 팔렸으면 속으로 바램을 가져도 본다.
또 둘러보니 김이 무럭무럭 따뜻해 보이는 두부는 연신 자르기가 바쁘게 팔려나가고
이름도 모를 장아찌며 이런저런 젓갈이 가득한 반찬전도 바쁘고,
다음의 푸줏간에서는 바삭하게 튀긴 닭다리와 양념 가득 입힌 강정이 맛있어 보이고
불에 구울 요량인지 양념에 버무린 닭발이 포장되어 팔리기를 기다리는데,
족발삶는 냄새도 구수하려니와 쌓인 족발이 푸짐하기도 하다.
콧등치기국수 올챙이국수 메밀전병 배추전 녹두전 수수부꾸미 등을 파는 먹자골목엔
장날을 기다려 많이도 준비했고,
일하는 아낙들의 전에 못 보던 유니폼이 산뜻하다.
나물전엔 반가운 취나물이 보이고 벌써부터 보이던 달래 냉이 씀바귀 쑥과 함께
제비꼬리같이 앙증맞은 원추리도 자리를 잡았고,
산같이 쌓인 더덕과 함께 통통한 도라지 황기가 많이도 나왔다.
밀려드는 물음에 연신 대답을 하면서도 손은 더덕껍질을 벗기느라 분주하고
더덕의 알싸한 향은 퍼지고 또 퍼진다.
약재상을 지나려니 벌나무 헛개나무 산뽕나무 마가목이며 무슨무슨 나무 하여
약이 된다 하는 온갖 나무들이 뿜는 내음 또한 진하고,
오래 전부터 우리네 조상들이 애용하여 이른 바 민간요법으로 알려졌으나
현대과학으로도 그 효능이 속속 밝혀지기에 대견하다.
때를 만난 종묘상엔 이런저런 씨앗을 찾는 이들이 많기도 하다.
그런데, 저 한 켠의 아저씨가 파는 뱃살빼는 약이라는
좁쌀같이 생긴 노란 알갱이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만물전을 구경하자,
이런저런 골동품이라 부를 수 있는 여러 옛물건들도 구경할 만 하고
빨래집게부터 시작하여 이런저런 공구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모처럼의 장날이니 호떡이 빠질소냐 기름냄새 풍기고
감자떡을 찌느라 솥단지에서는 김이 펄펄 난다.
길손 가득 태운 관광버스는 연신 장마당 입구에 도착하니
왁자하게 내리는 이들을 맞아 관광안내하는 이들도 덩달아 바쁘고,
각설이 삼순이는 엿이 가득한 엿판 앞에 두고 이들이 지나면 가윗소리 요란하게 낸다.
그리고는 하는 말,
“엿먹어!“
얼핏 들어 무슨 말인가 의아하여 한 번 치어다보게 되지만
엿을 파는 그 녀라 맞는 말이니 모두 웃는다.
겨울 동안에도 닷새마다 장은 열렸으되 이는 그저 장날이니 열었을 뿐이고
금년의 첫 장은 오늘이라 장마당 한 켠에 있는 공연장도 바쁘다.
공연장을 빙 둘러 있는 주막거리도 산뜻하게 단장하여 길손들을 맞으매
성급한 주당들은 이른 아침부터 막걸리 동동주에 흥이 나고,
갓 찐 찹쌀을 가득 놓고 떡메치는 체험을 하느라 길손들은 모처럼 힘을 쓰고
나누어주는 콩고물묻힌 인절미 한 조각과 함께 웃음판이 벌어진다.
공연장 한 가운데에는 장마당의 번영을 기원하는 고삿상이 차려져
커다란 돼지머리 하나 웃고 앉았으니,
기웃거리던 장꾼들은 하나둘 와서는 절을 하고 지전꺼내 입에 물려준다.
장터의 번영을 기원하는 축문이 읽혀지고 부정타지 말라는 소지는 불살려져
흰 연기와 함께 하늘로 날아간다.
그리고는 풍물놀이가 시작되어 북 장단에 장고소리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상모꼬리 흥겹고
기다리던 정선아리랑이 울려퍼진다.
반갑소야 반갑소야로 시작되어 느리게 불러 구성진 긴 아리랑은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에 이어 아우라지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로 건너가고,
이런저런 해학이 있어 빠르게 불러 경쾌하기도 한 엮음 아리랑에서는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봉을 찾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서방님을 찾는다.
노래가 흥에 겨우니 사람들은 앉아서는 어깨춤과 함께 손뼉으로 장단맞추고
일어서서는 덩실덩실 춤을 추고,
군수 또한 아니 나올 수는 없음이니 정선아리랑의 고장답게
아라리 몇 가락을 부르며 함께 흥겹다.
긴 겨울을 먼지만 풀풀 날리던 장마당 한 켠의 공연장은 종일 울려퍼지는 아라리와
주막의 흥청이 더하여 올해도 번창하겠고,
2일과 7일에 열리는 장날이면 어김없이 정선아리랑은 울려퍼지겠다.
노래가 끝날 적에는 으례 불리우는 구절이 있으니,
정선같이 살기 좋은 곳 놀러 한 번 오세요
검은 산 물 밑이라도 해당화는 핍니다...
좋아하기에 장날의 별식으로 삼는 빵이며 한두 가지 소소한 일용품을 사고는
조양강을 거슬러 북평의 집으로 가는 길,
강물엔 물오리들이 많이도 날고,
밭에서는 감자를 심느라
농부들은 분주하다.
첫댓글 참나원.. 이렇게 세세한 글의 댓글에 무슨말을 적으리오. 손들고 갑니다.ㅋ
참 나, 그렇다구 가기는요... 일루 오드래요~ ㅎ
나그네님 오랫만이예요~ 장날의 풍경이 눈에 아른거리며 그립네요...콧등치기와 메밀전병이
먹고싶은 일요일 아침이예요~
그래요. 언제든지 또 와요.
생활상 이 엿보이네요,정선쪽으로 해마다 피서가던 생각이나네요,설악쪽(1997년도)가던것을 갑자기 정선쪽으로 지도만 보고 가서는그해부터 10년간 한집(북면 숙암리)으로만 피서 가고 가을이면 2박3일놀다오곤 햇는데 메스컴 한번 타던니 그후로는 방도 구하기 힘들어지던데..
그랬군요. 숙암은 북면이 아니라 북평면입니다. 항골도 좋으니 다음에 오드래요.ㅎ
정선5일장은 몇 일 날짜로 열리나요?
날 잡아 함 가리다~
네, 매 2일과 7일이랍니다.
그 날은 청량리에서 아침 8시에 정선가는 기차도 떠나고...
정선장에 작년 가을에 가봤는데 크던데요 일행들 40여명이 나물이며 엄청들 사던데요 ~관광버스도 많이들오고 정선 아리랑노랫말 구수하니 불러볼만합니다 ㅎㅎ
정선에 다녀갔다는 분을 만나면 왜 이다지도 반가운지...ㅎ
이름도 유명한 정선 오일장 ,
봄향기 가득한 봄나물과 사람들 먹거리에 ..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인절미에 콧등치기 국수도 맛보고 ...
잘 구경했습니다 ~감사히 ..^^
잘 보셨다니 제가 감사하지요...
기차타고 5일장 가보앗는데,,, 하루 여행하기엔 넘 좋아요,,
그렇지요. 장날 아침에 청량리를 떠난 기차는 저녁에 다시 돌아가니...
머리 속으로 장판을 그려봅니다.
입구는 옹기장수 그리고 잡화들 과일장수 생선장수 ...
일할때 입는 몸빼바지는 우찌그리 편하지
이제는 엄마가 병원에 계서서 입어 볼 수가 없지만
봄날 장날이면 색 고운 몸빼바지 샀다고 자랑하시든 생각에
정선장은 가보진 못 했지만 어디서든 장판은 흥겹고 신명난다.
어느날 바람처럼 다녀와야겠다.
정선아리랑 한자락 듣고 조양강 푸른 물도 보고 싶고
콧등치기 국수 한그릇과 조랭이 떡국한그릇에
입가심으로 수수뿌꾸미, 메밀전병도 맛보아야겠다.
걸판지게 한판놀음이 벌어진 정선장을 눈 감고 그려봅니다.
고맙습니다 좋은글에 행복을 담아갑니다.
어줍잖은 글, 잘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정선 5일장이 갑자기 구경가고 싶네요~어찌나 맛갈스럽게 묘사를 해서 글맛을 살려 놓으셨는지 부럽습니다^^정선 장을 구경가고 싶어지네욤~내일이라도 당장...^^
장날을 기다리심이 좋을 듯...ㅎ
사람이 사는 멋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시드립니다
그리 느끼셨다니 감사하지요...
장 마당 풍경이 참 정겨워요 ...언제 날잡아 한번 가고 싶네요 ㅁㅁㅁ
네, 이제 나들이하기에 좋은 날이 계속됩니다.
엊그제까지 강원도에 눈이왔는데...
계절은 이제 농작물을 심는 시기가 되었군요.
정선나그네님의 문학적 재능에 감탄합니다.
그 곳에서 소설이나 수필을 집필하시면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리라 믿어집니다.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그저 취미삼아 쓰지요. 감사합니다.
궁금턴 정선 5일장
정선나그네님 뒤에 바짝 붙어 이전 저전 구경타
공연장 정선아라리에 정신 팔려 주저앉았더니
그새 울님은 빵 사가지고 북평 집으로 돌아 갓삣네...
어쨋거나 정선 5일장 구경 한번 잘 했습니다.
따라올까봐 내삣다는...ㅎ
단순히 장이 아니라 군 축제라고 해도 되겠네요.. 이번 장날은..
구경잘하고 갑니다 ㅎㅎ
그렇습니다. 비단 그 날만 아니라 매 장날이 정선의 축제일이지요.
나그네님은 뭐 사가 오셨남요?? 그런 얘기는 없네요..ㅎㅎㅎ
그라고 요즘은 이방에 식구들이 거의 낯 선 닉들만 보입니다,,,그려,,,
나그네님의 글만 그런가요,,,
요즘 모두 바쁜 모양입니다.ㅎ
글구 새로이 많이 오셔야지요.
정선님 안 심심하라고 장이 다시 섰네여~
그 할마씨의 맛난 메밀전이 아직도 눈에 삼삼한데.......
이제 장날이면 어김없이 아라리공연장에 가지요.ㅎ
가고싶은맘은 굴뚝이고 혼자는 엄두않나고 친구는 모두다 주부이다보니 마음만 날마다 정선으로 갑니다.
언젠가는 때가 되겠지요...
정선에 가면 곡 정선 장을 돌아 보리라....ㅎㅎㅎ아라리 공연장에서 너울너울 정선님과 함께 춤도 추고...ㅎㅎㅎ
좋습니다, 좋아요. 너울너울 춤도 추고...ㅎ
시골장의 아기자기 정겨운모습과 맛난 먹거리들 그냥 지나칠수 없는 풍경입니다. 감사합니다. ^^*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줄 남겨주시니 감사하지요. 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에구, 존경까지... 황감합니다.